🐰💌 누군가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면...

2023년 4월 다섯번째

난 당신이 필요 없어요.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속박당하고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늘 생각한다. 회사에서, 집에서 또 다른 곳에서 누군가의 생각에 무조건 맞춰주고 있지는 않은지. 소심한 성격 탓에 늘 다른 사람에게 맞추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결정을 하고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잘 몰랐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뭔가 대단해보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했었다.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멘토라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말과 강의를 듣고 있으면 무언가 방법이 찾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그 이후 (조금은) 맹목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엔 부모님일텐데 학교에 가고 직장생활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영화 <렌필드>의 주인공 렌필드는 드라큘라의 종으로 오랜시간 살아간다. 렌필드는 드라큘라에게 신선한 사람을 제공하면서도 그가 얻어가는 건 별로 없다. 몇 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가 얻어가는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드라큘라의 권능에 완전히 종속되어버린 미성숙자 같다.

렌필드는 완전히 속박당하고 조종당한다. 그러다 우연히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모인 상담 자리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드라큘라를 챙기지 않기를 시작한다. 그 상담 자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 사람을 속박할 권리는 없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바로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잘났는지, 얼마나 힘이 센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속박과 조종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에 따를 의무따위는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인 그리고 예의없는 상사를 만난 적이 있다. 고함을 치고 물건을 던지는 그 앞에서 나란 존재는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래서 지시를 따랐고, 시키는대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되었다는 말이 날아왔다. 점점 수렁에 빠지는 상황이 반복되다가 결론 내린건, '나는 정말 안되는 구나. 능력이 없구나' 였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다. 아무 답도 없이.

정말 우울했던 시기였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가진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폭압적인 상사를 벗어났고,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상사의 능력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영화 <위플래쉬>를 떠올려보면 쉽다. 나는 이 영화 속 교수를 싫어한다. 그 교수가 능력을 끌어올리는 스타일을 정말 싫어한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그걸 받아내지 못하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다. 그걸 뚫고(이겨낸다는 표현을 쓰기 싫다) 나온 사람이 성장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장과정에서 존엄은 없고 자신도 없다.

렌필드도 드라큘라의 강압적인 태도 밑에서 어느 정도는 성장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미숙아다. 전혀 자아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 폭압에 맞서고 싸우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삶을 찾고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렌필드>의 경쾌함과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결국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정신적으로 독립한 렌필드의 선택을 응원한다.

렌필드 예고편

이건 내 아이야

렌필드가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면, <만달로리안>은 요다 종족의 아이인 그로구가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아직 아이인 그로구는 요다 종족의 아이 답게 포스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말을 못하고 적절한 상황에서 능력을 쓰지는 못한다. 그 상황에서 만난 만달로리안 딘 자린은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스타워즈> 영화와 시리즈를 챙겨보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이 가는 건 <만달로리안>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자그마한 아이와 아빠가 되어가는 한 성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만달로리안이 그렇듯 딘 자린도 감성적인 성향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도 그렇지만 기계음으로 나오는 음성에도 감정이 잘 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딘 자린은 그로구에 독특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건 그로구가 고아라서 느끼는 측은함일수도 있고,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작은 아이에 대한 따뜻한 감성일수도 있다. 그가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그로구를 챙기는 건 그의 마음 속에 작게 나마 자리잡은 부성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딘 자린이 과거에 결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로구를 만난 이후, 생각과 감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하면서 그는 좀 더 다른 종족이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모두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종족인 만달로리언들을 모아 자신들의 행성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그 사이에서 그로구의 위치도 챙긴다. 또한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그로구를 위해 그를 입양한다. 어쩌면 딘 자린과 딘 그로구는 운명적으로 서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꽤 많은 제약과 불이익을 감당하는 딘 자린의 선택은 앞서 본 드라큘라와 교수의 선택보다는 백만배는 나아보인다. 아직 작은 아이지만 그의 성장을 위해 무언가를 알려주고, 치열한 전투의 순간에는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알려주는 그 모습이 바로 내가 가지고 싶은 부성애의 모습이고, 앞으로 되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다.

그로구를 입양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그를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을 시종일관 쓰고 생활하는 만달로리안들에게도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이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되는 중이다.

만달로리안 예고편

이게 사랑일까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 본격적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한다. 연애로 부를 수 있는 그 시간들은 아마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크고작은 반전들이 그 연애를 꽉 채워준다.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외의 면을 발견해나가는 그 시간들은 꽤나 즐거운 시간들이다.

영화 <고스팅>의 주인공 콜과 셰이디는 서로를 발견하고 밤새도록 대화를 나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침까지 이어진 그 만남은 셰이디의 집에서 또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이 둘은 사실 잘 맞아보이지 않는다. 티격태격을 계속 보여주는 그 모습은 서로에 대해 과연 믿음이 생길 수 있는지를 자꾸만 의심하게 만든다.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콜은 사실 숨길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와는 반대로 셰이디는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있다.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진짜 모습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콜의 입장에서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셰이디는 콜의 연락에도 답이 없고 불쑥 일하는 곳으로 찾아온 그에게 툴툴 거린다. 자신의 일을 망치고 엉키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콜에게 쏟아진다. 콜이 과연 비난 받아야 할까? 정작 상대방에게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건 셰이디인데. 서로에게 호감은 있지만 과연 이게 서로의 호감만으로 정리가 되는 일일까.

티격태격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엄청난 액션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가 서로를 돕고 그러다 또 싸우고. 이해하지 못할 관계의 등락이 이어진다. 콜의 감정에 이입이 되다가도 그가 어이없는 선택을 할 때마다 그 공감은 떨어진다.

결국에는 실력있는 스파이인 셰이디의 엄청 쎈 기에 콜이 완전히 눌렸다. 영화 내내 콜은 무언가에 억눌려있다. 영화의 말이 그가 셰이디를 구하긴 하지만 콜이 다시 셰이디와 만나기로 결정한 그 순간 부터 더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건 사랑이 아니다. 두 사람은 전혀 맞지 않는 커플이다. 결국에 두 사람은 평생 셰이디의 적에게 쫒길 것이고 콜은 셰이디의 비위를 맞추다 어느 순간 우울함에 빠지게 될 것 같다. 마치 <렌필드>에서 드라큘라에게 종속당한 렌필드처럼!!!!

고스팅 예고편

📽다음 주엔 어떤 영화가 개봉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