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이 오지윤
받는이 님  


다양한 종류의 페스티벌을 애정한다. 대학생 때는 흑해 문화 페스티벌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자주 가는 페스티벌은 락페스티벌이다. 내가 락페스티벌을 좋아한다고 하니, 어떤 남자는 ‘클럽 갈 자신 없으니까 락페스티벌에 가는 거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페스티벌을 가지 않는 사람에게 페스티벌의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클럽의 대체제도 피크닉의 대체제도 아닌걸.



무대 위 뮤지션을 바라보며 일제히 손을 올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 예배당에 모인 신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 역시 하늘 높이 손을 쳐 들게 된다. 아주 본능적으로 손이 끌려 올라간다. 왼손은 왠지 가슴에 얹는다. 그 순간 나의 ‘자아’는 무대 위 뮤지션과 내 옆의 관중에까지 확장되고 만다. 내가 아는 모든 생명체와 교감하고 싶은 욕구와 본원적인 연대감을 이 작은 육체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오른손을 저 먼 하늘 위로 뻗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페스티벌이 멸종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인류는 모여서 밥을 먹고 모여서 춤추고 모여서 노는 동물이잖아. 페스티벌 없이도 우리는 인간일 수 있는 걸까. 후손들은 이 좋은 걸 이제 못하는 걸까 걱정했는데.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페스티벌이 다시 시작됐다. 2년만에 맞은 나의 첫 페스티벌은 무주 산골 영화제. ‘급커브 주의’ 표지판을 수차례 거치며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근처 팬션과 콘도는 꽤나 낙후되었고 꽤나 불편했다. 내가 묵은 방 역시 마찬가지여서 녹슨 열쇠로 열어야 했고 침대에는 짧은 머리카락들이 묻어있었다. 영화제 상영관은 전문 영화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크린도 작았고 객석은 스크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먼 산 속까지 오는 걸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호텔이 아니어도 불평 없이 잘 수 있는 사람들.  작은 상영관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페스티벌은 결국 같은 결의 행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누구나 특히 예민한 것이 있고 그닥 무딘 것이 있다. 같은 것에 예민하고 같은 것에 무딘 사람들이야말로 함께 지낼 만 한 사람들이란 걸 살수록 깨닫는다. 새벽 1시에 깊은 산속에서 이불을 덮어 쓰고 10년 되 영화를 함께 보는 시간 동안 나는 나와 참 비슷한 익명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옆자리의 한 남자는 위스키 한 병을 통째로 옆에 두고 홀짝 홀짝 마시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혼자 온 것 같았는데 전혀 외로워 보이지가 않았다. 벌건 얼굴에 어울리는 빨간 하와이안 셔츠가 왜이리 반가웠을까. 어이, 그 쪽도 이런 순간을 많이 기다렸군요. 말을 걸고 위스키 한 잔을 구해보고 싶었지만 운전을 해야해서 꾹 참았다. 


사진은 2019년에 제주도 함덕해수욕장에서 열린 음악페스티벌에서 찍었습니다. 무주에서도 필카 딱 한 롤을 열심히 찍었는데 현상을 하고 나면 보여드릴게요. 페스티벌 예매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다들 그리웠나봐요. 이번 여름, 그 어딘가에서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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