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난 레터에서 소개한 닥터 브로너스의 오션 버블 버디를 받으실 용사님 목록은 레터 아래에 실었어요. 축하드려요! 

질척거리는 흙바닥을 지나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개들의 비명, 코를 찌르는 분변 냄새보다도 처참한 아이들의 상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지저분한 몰골로 뜬장에 갇혀 있는 녀석들, 그리고 뜬장 아래에 몇 년치가 쌓인 분뇨. 그 와중에 혼자서만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떠는 아이에게 다가갔더니 엉덩이 쪽에 빨갛게 튀어나온 장기가 보였어요.  

함께 들어간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님들은 신고고 뭐고 일단 살려야겠다, 는 생각으로 아이를 뜬장에서 꺼내 차에 올라탔죠. 급히 차를 몰며 가까운 곳의 동물병원을 수배하는 사이 아이는 마지막 숨을 들이쉬더니 그대로 멈췄어요. 활동가님이 울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얼마 전 카라 활동가님들과 경기도 연천의 한 번식장을 찾아갔어요. 축산법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이 의심되는 곳이었죠. 농장주가 자리를 비운 틈에 들어가자마자 죽음과 맞닥뜨리고 나니 세상이 원망스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놀라운 점은, 이 곳이 무허가도 아닌 합법적인 번식장이란 사실. 수십 개의 뜬장에는 총 81마리의 개가 갇혀 있었어요. 밥은 하루에 한 번씩만 준다고 했고, 물그릇에는 시커먼 구정물이 담겨 있었어요. 중형견 크기의 보더콜리가 좁다란 뜬장 안에서 간신히 몸을 움직이며 애타게 짖고 있었고요. 바닥에는 수없이 밟혀서 납작해진 쥐 사체들, 버려진 주사기가 눈에 띄었고요.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생산업자(농장주)는 동물 몸 길이의 가로 2.5배, 세로 2배 이상인 케이지와 발을 디딜 수 있는 평판을 설치해야 해요. '산모견'들이 몸조리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산모실을 마련한다든가, 아픈 동물은 자가치료할 수 없고 수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든가 하는 규정들이 있지만 이 곳에선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어요.  

긴급 구조하려던 아이가 결국 숨을 거둔 후 에디터는 활동가님들을 따라 다시 번식장으로 돌아갔어요. 능숙하게 전화를 돌려 담당 부처를 찾고, 신고하고, 현장 점검을 요청하는 활동가님들.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은 것 같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겠다고 약속했대요.  

81마리의 개 중 입질을 하는 녀석은 거의 없었고, 나머지는 활동가님들을 너무나 반가워했어요. /사진제공=카라   

담당 공무원이 오기 전에 미리 열악한 환경을 살펴보고 있던 중 농장주가 돌아왔어요. 전투력이 약한 에디터는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활동가님들이 곧장 설득 착수. 다행히 농장주는 점잖은 편이었어요. 현재 68세, 1998년 IMF 때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번식장을 운영한 지 20년째. 번식장이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사냐는 농장주의 말에 답을 내놓을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지옥을 놔둘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이날 출동한 공무원 분들은 많이 협조적이셨어요. 카라 활동가님들의 설득 작업에 동참해서 결국 네 시간쯤 후에는 농장주의 소유권 포기 결정을 이끌어냈으니까요. 카라 활동가님들이 그동안 만난 공무원들 중에는 아예 농장주와 결탁해서 증거를 없애는 사례, 단속 사실을 미리 귀띔해주는 사례 등등 별 일이 다 있었대요. 농촌일수록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아 결탁하기가 쉽기도 하고요.  

드디어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고 이제 구조에 돌입. 이미 해가 지는 시점이었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카라 활동가님들이 수십 개의 이동장을 실어오고 3.5톤 트럭을 수배했어요. 에디터도 열심히 이동장을 나르며 도우다 보니 어느새 깜깜한 8시. 트럭에 실린 개들은 카라 더봄센터와 포천의 임시 보호소(TMI : 보호 비용만 1500만원)로 이동했고, 수의사님들의 검진과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 중이에요. 구조된 아이들의 소식은 카라 인스타에서 앞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진짜 많관부!  

이날 구조 작업은 욕설도, 고성도, 사냥총을 가져온다는 둥의 위협도(특:카라 활동가님들이 자주 겪는 일들) 없이 대체로 순조롭게 끝났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시원하지 않았던 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둔 아이 때문이기도 하고, 바로 500미터 건너편엔 더 큰 번식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벤져스가 아닌 이상 다 구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최소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여력이 될 때 도울 수는 있지 않을까요? 카라는 이날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 뒤늦게 '루시'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카라 수의사님들이 부검해 보니 잦은 출산으로 인한 자궁과 질 탈출, 심장·간의 부분적인 괴사, 지방간과 장 꼬임이 발견됐고 직접적인 사인은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카라는 이제 전국의 '루시'들을 위한 캠페인(인스타에서 자세히 보기)을 펼치고 있어요. 2.24kg의 작은 몸집으로 계속 새끼를 낳다가 죽은 루시를 위해 관심을 놓지 말아주길 조심스레 부탁해 볼게요.   

🐈귀여운 동물 달력 찾으세요? 

'무지개다리 너머의 동물들을 생각하는 카라 2023 달력'이 펀딩 중이에요. 카라가 그동안 길에서, 동물원에서, 번식장에서 만나고 떠나보내야 했던 동물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러스트가 가득. 철제 스프링 대신 종이 스프링을 써서 재활용도 쉽고요. 

서울 마포구의 노을공원은 2002년 쓰레기 매립지에서 공원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썩지 못한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물과 흙이 부족해 큰 나무를 옮겨 심어도 살기가 어려운 상황. 그런데 참나무의 씨앗인 도토리를 씨앗부터 키워 심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요. 올 겨울 따뜻한 집에서 도토리 씨앗을 싹 틔워 주실 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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