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이 반짝이는 순간, 언제 보셨어요?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 칭찬받았을 때, 게임할 때.
여러 장면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번 주에 좀 다른 걸 봤어요.
아이 눈이 아니라, 어른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이요.
그리고 그 반짝임이 옆에 있던 아이에게 번지는 순간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혜린이 어릴 때 저는 책을 정말 많이 읽혔어요.
책만 잘 읽히면 아이가 알아서 큰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책을 읽으면 똑똑해져요. 그건 지금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책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느꼈어요.
지식 말고요.
가슴을 울리는 것. 사람을 반짝이게 하는 것.
그게 뭔지 오래 설명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에 두 번, 눈앞에서 봤어요.


화요일에 촬영이 하나 있었어요.
혜린이가 어린이 면접관이 되어서 어른을 인터뷰하는 영상인데,
미얀마에서 일하는 유니세프 담당자분이 오셨어요.

그분이 아이들이랑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눈빛이 반짝반짝했어요.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미얀마는 지금 내전 중이에요.
힘든 일 위에 또 힘든 일이 겹치는 곳이에요.
아이들이 마실 물이 없고, 아파도 치료받을 병원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숫자나 사업 설명이 아니라
자기가 그 땅에서 직접 본 아이들의 이야기였어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어요.

자기가 뭘 위해 사는지가 또렷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은 표정부터 달라요.
그리고 잘 흔들리지 않아요.
가진 게 밖이 아니라 안에 있으니까요.


혜린이도 뭔가 느꼈는지 평소보다 집중해서 듣더라고요.

저는 그 옆에서 생각했어요.
저 눈빛은 책 백 권을 읽어도 안 생기는 거구나.
누군가를 직접 만나야, 직접 봐야 생기는 거구나.


목요일엔 또 다른 촬영이 있었어요.
정부 문화의날 인터뷰 영상이었는데,
90초짜리 하나를 찍는데 우리 집에 열한 명이 왔어요.

90초예요.
유튜브에서 스치듯 지나갈 90초.

솔직히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 정도 영상이면 두세 명이 와서 금방 찍고 가겠지.

그런데 감독님이 조명 바꾸고 다시, 카메라 각도 바꾸고 다시.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찍는 거예요.


놀란 건 그다음이에요.
누구 하나 힘든 티를 안 냈어요.
조명 담당은 조명을, 카메라 담당은 앵글을,
각자 자기 자리에서 더 좋은 90초를 만들려고 끝까지 맞추더라고요.

열한 명이 같은 목표 하나를 보고 움직이는 모습을,
혜린이랑 저는 옆에서 계속 봤어요.


촬영이 끝나고 혜린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우리 대충하지 말자.

우린 영상을 찍을 때 좀 대충대충 하는 감이 있거든요. ㅎㅎ
웃으면서 한 말인데, 저는 속으로 뜨끔했어요.

아무도 혜린이한테 대충하지 말라고 안 했어요.
잔소리도, 교훈도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봤을 뿐인데,
그 말이 저절로 나온 거예요.


저는 그날 하나를 배웠어요.
아이의 기준은 말로 안 올라가요.

대충하지 마. 열심히 해. 최선을 다해.
엄마들이 매일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 말로 아이가 달라지는 걸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없어요.


같은 말을 백 번 해도 아이는 그대로인데,
그렇게 사는 사람을 한 번 직접 보면 달라요.
설명이 필요 없어요.
아이 안의 기준이 저절로 따라 올라가요.

책이 지식을 준다면, 사람은 기준을 줘요.
나보다 한 뼘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내 기준도 나도 모르게 그 높이로 당겨져요.
가르쳐서가 아니라, 봤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어요.
이건 혜린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그 눈빛에 마음이 움직인 건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열한 명이 90초에 쏟는 정성을 보면서
내 일을 돌아본 것도 저였고요.
나는 내 콘텐츠를, 내 하루를 어떤 기준으로 만들고 있나.


그날 밤 혜린이랑 한참 이야기했어요.
그 담당자님은 어떻게 저런 눈빛을 갖게 됐을까.
우리는 요즘 뭘 대충하고 있었을까.

이런 대화는 억지로 만들 수가 없어요.
식탁에 앉아서 오늘 뭐 배웠어, 하고 묻는다고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같은 걸 봤으니까, 같은 순간에 마음이 움직였으니까 나오는 이야기예요.

같은 걸 보고, 같이 이야기하는 동안 알았어요.

혜린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저도 자라고 있었어요.

아이를 위해 만든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에서 제일 많이 배운 사람이 저일 때가 많아요.


그리고 하나 더요.
혜린이가 하루 중에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서 보는 어른은
그 담당자분도, 열한 명의 스태프도 아니에요.
저예요.

반짝이는 어른을 만나는 건 일 년에 몇 번이지만,
저는 매일 그 아이 옆에 있잖아요.
제가 일하는 모습, 제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
제가 힘들 때 어떻게 버티는지까지.
아이는 그걸 다 보면서 자기 기준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정작 물어야 할 건 이거였어요.
나는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인가.
나는 내 하루를, 내 90초를 대충 살고 있지는 않나.

혜린이가 대충하지 말자고 했을 때,
그 말 앞에서 뜨끔한 사람은 저였으니까요.


돌아보면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잘 키워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대학에 가야 답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공부가 제일이지, 그 생각으로 키웠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라는 걸 알아요.
똑똑한 아이보다 눈빛이 살아 있는 아이.
정답을 아는 아이보다 자기 안에 기준이 있는 아이.
그게 훨씬 단단한 거라는 걸요.

책이 첫 번째 단계였다면,
지금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것을 함께 보고,
본 것을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요.
아이만 키우는 육아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자라는 육아로요.

그렇게 저의 육아는 한 단계 진화하는 중입니다.


이번 주, 아이와 함께 뭘 보셨나요.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는, 어떤 눈빛이었을까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