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14호를 발행합니다.

이번호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황석영 선생의 글을 싣습니다. 리영희의 가족이 기억하는 황석영은 만주에서 개장수하던 시절의 설(說)을 풀던 만담가였습니다. 한 무리의 문인들이 제기동 집으로 쳐들어오면 부인 윤영자는 동그란 양은 밥상에 술상을 봐오고 안방을 점령당한 아이들은 아랫목에 꿍쳐져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는 척하면서 그 얘기들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단연 압권은 ‘약장수 황석영’이었고요. 그런데 팔십을 넘긴 황석영 선생은 이번 글 <사람과 역사의 특징>에서 음주가무 얘기가 아닌 같은 시대를 비슷하게 살아낸 동료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남의 목소리를 빌려 내 울음을 울어보려 했던 소설가와 기자. 사람의 삶을 제약하던 허상이 무너지는 것은 어쨌든 좋다고 생각한 망명객과 학자. 선생은 “아무튼 나는 모든 역사 자료의 뒤에 깔린 개인의 인생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집필을 시작한 와중에도 귀한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호 아카이브에는 송두율 선생의 글을 싣습니다. 지난호 리네만 선생이 보내준 자료에 이은 송두율 선생의 글로 리영희의 독일 행적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소재 ‘개신교 학제간 통합연구소’(FEST)가 리영희를 초청하게 된 계기가 된 글은 송두율 선생이 관계하고 있던 제3세계 전문잡지 <페리페리, Peripherie>에 실린 '한반도의 주변정세의 질적 변화와 우리의 과제'라는 글이었습니다.(이 글은 1983년 논문으로 발표됐다가 1984년 발행된 <분단을 넘어서>에 ‘한반도는 강대국의 핵볼모가 되려는가’의 제목으로 실렸고, 같은해 발행된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에는 ’한반도 주변정세의 질적 변화‘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두 글은 소제목은 같으나 내용 면에서 보충하거나 삭제하는 식의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리영희가 1985년 FEST에 제출한 논문은 87년 발행된 <역설의 변증>에 ’한반도의 전쟁위협과 동북아의 평화‘라는 제목으로 수정보완되어 실려 있는데, 이 글의 저자주에는 이 논문이 86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영어로 발표한 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송두율 선생은 ’첫번째 만남‘으로 이 때의 풍경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리영희가 2000년 제1회 뉴저지, 2006년 제7회 러시아 세계한민족 포럼에 참가해서 발제한 사실을 재단 아카이브팀에서는 송두율 선생의 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을 계기가 되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격변의 시기에 각자의 활동을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두 분의 우정을 느끼게 해준 글입니다. 단지 리영희재단이란 이름의 메일 한 장에 그간의 기억을 복기하고 자료를 찾아 글을 보내주신 송두율 선생님 고맙습니다.

여기에 23년 전, 뉴저지에서 열린 세계한민족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의 한 구절씩을 공유합니다. 꼼꼼하게 당시 행사를 기록한 시사저널 남문희 기자 기사에서 인용했음을 알립니다. 
리영희 “ 남북 간의 군사력 격차가 현격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적 문제인 것처럼 북한에게는 안보 위협 역시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며 서로 신뢰를 쌓으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2년간 군사비를 동결하기로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송두율 “남북 통일이 ‘50년 전의 고향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못 가 본 미래의 고향에서 남북이 만나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땅을 준비한다는 자세로 통일 문제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리영희재단은 6월2일 몇 분의 선생님들을 모시고 리영희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소소한 정담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함께 하고픈 분은 아래를 눌러 신청바랍니다.
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사람과 역사의 특징 

황석영 / 소설가
 "그는 문학인들 가운데 유일한 학자였으나 동료 문인 중 누구도 그가 작가가 아니라고 여기는 이는 없었다. 일찍이 그가 쓴 자서전의 일부인 <역정>의 명문장과 동족상잔의 현장이었던 육이오의 역사적 증언에 대하여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리영희 아카이브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세계경제 위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1984년 7월에 발간된 초록색 표지의 15/16 합병호 속에서 '한반도의 주변정세의 질적 변화와 우리의 과제'라는 리 선생의 글을 발견했다. 내 글 '남한: 일본의 궤적을 쫓는가'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도 오랫동안 이를 잊고 지냈다. 이렇게 기억의 실마리를 찾은 후에 나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리영희 아카이브

전쟁 위기와 한국의 평화 전망

- 1985년 FEST 제출 논문 -

이 논문은 리영희가 1985년 하이델베르크에서의 활동을 마감하면서 FEST에 제출한 논문으로, 필자의 안녕을 고려해 공표하지 않기로 했으나 다음 해인 1986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되었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역설의 변증>에 상당 부분 수정보완되어 '한반도의 전쟁위협과 동북아의 평화'라는 제목으로 실리게 된다. 원문에는 유럽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장의 지도가 첨부되었으나 <역설의 변증>에는 빠져 있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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