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율 #출산율 #가사노동 #취향 #팬덤 #소비자
#페미니즘 #자기반성

소제목 보고 놀란 사람 손! 사실 내가 그래. 이런 주제를 다뤄도 되나, 고민이 많았거든. 한쪽에선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선 너가 말하는 건 가짜 페미니즘이라 아우성치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주저하게 될 때가 많아. 오늘 소개하는 책에서도 이렇게 말해.


  • “요즘 페미니즘 진영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자기 검열, 낙인에 대한 공포, 또 ‘좋아요’ 한 번 눌렀다가 ‘완전 싫어’의 대상이 된 경험이 보여주듯 페미니즘 내부의 치열한 편싸움이 일어난 것이지요.”

-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2021) p.23


  최근에 신작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출간한 정희진 선생 역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부 않는 페미니즘, 신자유주의에 포섭됐다.”, “남녀 모두, 심지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조차 여성주의는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고 생각한다.”라며 작심발언을 쏟아냈지. ‘피해자 중심주의’나 ‘성적 자기 결정권’ 등 지금까지 여성 운동을 이끈 핵심 개념들에 이견을 제기하면서 말야.


  그래서 나부터 자기검열과 (누구에게서든) 낙인에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미니즘을 소제목으로 썼어. 참, 나는 네로황제야.


  오늘은 발송 계획에 없었는데 두 가지 때문이야. 우선 넷플릭스에서 세련된 블랙코메디 영화를 한 편 봤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샘 에스마일 감독에 줄리아 로버츠와 마허샬라 알리, 에단 호크 등이 출연해.

  내용은 단순해. 뉴욕 브루클린의 좁은 집에 살던 네 명의 백인 가족이 근교에 수영장 딸린 고급 별장을 빌려 주말여행을 가. 그런데 유조선이 해안가에 좌초하고 각종 통신기기가 먹통이 되는 등 이상을 일들을 겪게 돼. 급기야 늦은 밤, 별장을 빌려준 원래 주인이라며 상당히 고급진 옷을 입은 흑인 부녀가 찾아와. 도시 전체에 정전이 일어나 모든 기능이 마비됐다는 말을 전하면서 말야.

  흑인 부녀의 말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도시 전체에 일어났다는 정전은 누구의 소행인지, 유조선이 항구가 아니라 왜 해안가에 좌초했는지에 대해선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라며.

  이 영화를 보면 테슬라가 전자전・사이버전 시대에 얼마나 끔찍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질 알게 돼.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주요 양상이라든지, 미국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부식 상태, 첨단기술의 양면성도 다각도로 관찰할 수 있기에 사회과학적 논의를 위한 입문 교재로도 꽤 훌륭해.
  

  특히 흥미로웠던 건 다음의 대사들이야.


  • “내 똑똑한 클라이언트 중엔 거액을 잃은 사람들이 있어요. 팩트가 아니라 편견을 토대로 투자를 했거든요. 팩트와 편견을 구분하긴 쉽지 않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실수로 손해를 보면 쌤통이다 싶기도 해요.
  • 최악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죠. 엄청난 거액을 잃고도 말이에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난 제일 겁나요. 내가 절대 이해 못 할 부류니까.”


  • “매일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의 심리를 읽는 거야. 상대를 잘 알아야 거짓말을 잘 할 수 있고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거든. 그렇게 사람을 연구하고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법을 관찰하면 알게 돼.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런데 내가 너와 네 아빠를 그렇게 대했어.
  • 우린 늘 서로 상처를 주지. 언제나 의식도 못한 채로 세상 모든 생명에게 상처를 줘. 그리고 종이빨대와 동물복지 제품을 쓰며 죄책감을 잊지. 웃기는 건 다들 속으론 알고 있다는 거야. 모두가 거짓 속에 살며 합의된 집단 망상에 빠져 자신들의 끔찍한 실체를 외면하고 있다는 걸.”
이토록 솔직한 자기반성이라니! 

  물론 난 종이빨대와 동물복지 제품을 쓰는 사람이야. 집에선 가죽제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장바구니와 에코백이 생활화되어 있지. 그럼에도 이것이 자기합리화나 도덕적 우월감이 되지 않기를 내게 바랄 뿐이야.
#혼인율 #출산율 #가사노동
오늘 월미레터를 보내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개인 SNS에 ‘가사노동시간과 혼인율・출산율’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어. SNS에서 읽기엔 짧지 않은 글이라 별 반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공유가 많이 됐더라고. 댓글도 꽤 달렸고.

  그래서 너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월미레터로도 발송해.
요즘 트위터 아니 이제는 X에 종종 들어간다 팔로잉을 하지 않는데도 피드에 온갖 글이 뜨는 게 신기해서. 알고리즘인지 지역 맞춤형 추천인진 모르겠지만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 

  그리고 대부분, 재치있다 똑똑하고 정의롭기까지 해 나같은 보통사람은 정말 평범하게 살아야겠구나 싶고. 트위터리안들로만 세상을 만들면 상당히 이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페이스북도 그렇다 

  오늘은 부부의 가사노동 분담과 혼인율・출산율의 상관관계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이를 테면 미국 남성들은 상당히 가정적이라 퇴근 후엔 가족들과만 시간을 보낸다는 얘기. 한국남성의 가사노동 분담 시간이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는 통계도 올라왔다

  사실 이런 글을 볼 때면 아리송하다 가치관 형성 체계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윗세대들은 논외로 두더라도 적어도 80년대생 이후만 놓고 봤을 때, 출퇴근 시간이 변수로서 어떻게 처리됐는지가 궁금해졌다 

  즉, 출퇴근 시간이 30분인 사회와 왕복 3~4시간인 사회의 ‘삶의 양식’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고용형태와 출퇴근 시간, 부부의 가사노동 분배, 주거지 결정 등의 이슈를 다룬 논문을 여러 편 읽었었다 이런 얘기.

①부부가 주거지를 결정할 땐 여성의 부모님댁과 인접한지, 혹은 여성의 출퇴근 시간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②일자리 만족도가 높으면 장거리 통근시간도 감내한다
③남성의 임금이 증가할수록 여성의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가사노동시간이 늘어난다
④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높거나 비슷할수록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은 비슷해진다

  이런 의미. 한국은 비수도권을 제외하곤 애당초 직장과 근거리 권역에 거주할 수 있는 인구비가 높지 않다 한 시간 이상 출퇴근이 일반적이라는 것. 

  그런데 여기에 임신・출산・육아 등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출퇴근 시간’에 있어선 남성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선택을 한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도 일부 있겠지만 남여를 떠나 사회적으로 육아를 대신 책임져줄 주체가 부족한 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그러니 여성의 직장과 가깝거나 하다 못해 부모님댁이 인접한지가 주거지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거고. 
수원이나 의정부에 거주하면서 한 사람은 도시 내에서, 한 사람은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한 쌍의 부부를 가정해 보자. 이들이 아무리 ‘성평등’ 개념을 뼈 속 깊이 탑재했더라도 물리적 출퇴근 시간이 크게 차이나 버리면 한쪽의 가사노동시간이 더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장거리 출퇴근을 감내한다는 건 앞서 말했듯 일자리 만족도, 즉 임금이 높다는 얘기다 이런 조직일수록 승진 경쟁이 치열하고 여기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 시간도 늘어나며 가사노동시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서 보았듯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사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상대 성별’의 임금이라는 건 꽤나 의미심장한 지표기도 하다 

  그러니 ‘남성이 가사노동을 기피해’ 혼인율・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주장은 여성이 허영심에 들떠 남자 키 180이 안 되면 거들떠도 안 본다는 도시괴담만큼이나 허무맹랑하게 다가온다

  즉, 수치상으로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왜 이런 결과값이 나오게 됐는지를 실제 부부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되짚어 보자는 것.

  한국의 가사노동시간을 말할 때 출퇴근 시간 외에도 고려되어야 하는 두 가지 변수가 더 있다 ‘주말부부’와 ‘외벌이부부’ 비율-
지난 해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부부 8쌍 중 한 쌍이 주말부부란다 자녀 교육은 물론 직업 안정성 때문에라도 부부가 함께 거주하지 못하고 주말에만 만나야 한다는 것. 자연히 한쪽 성별의 가사노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외벌이부부 비율이 높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두 가지 요인인데, 한쪽 성별의 임금이 월등히 높아 다른 성별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다른 한 가지는 한국의 노동실태를 말할 때 늘 지적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맞벌이부부를 하려면 육아를 누군가 대신 책임져야 하는데 여성들일수록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에 고용되는 비율이 높다 그러니 월급과 보모 비용을 비교했을 때 차라리 한 사람이 직장을 관두고 몇 년 애 키우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쯤 운이 좋으면 재취업에 성공, 그게 안 되면 동네 이마트나 반찬가게에서 일 하는 거고.

  사실 한국에서 혼인율이 크게 깨진 건 IMF 이후 위와 같은 구조가 고착화되면서부터다 상대적으로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내몰리기 쉬운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 임신・육아・출산으로 자칫 잘못하다간 내 일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며 결혼을 통한 사회 재생산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해 버린 것. LINK

  배우자와 가사노동을 철저하게 1:1로 분담하느냐/마느냐로 싸우는 건 네이트판에나 올라올 법한 자극적 가십이고, 근본적으로 자녀를 출산했을 때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최소 3~4년을 누가 키울 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들은 아예 그 구조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혼인율과 출산율 이슈는 육아를 사회가 책임져 줄 수 있는지와 한국의 고질적 병폐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더 큰 변수라는 것.

  종종 혼인 이슈에 주택 문제도 언급되지만 이건 나는 생각이 반반이다 요즘 2030을 만나면 결혼 이전에 연애조차 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그럼에도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직업 안정성과 교육.

  전자에 대해선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도 알 수 없는데 또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 무서워서 어떻게 시작하나? 그리고 후자에 대해선 내가 시달려온 그 입시지옥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마음이 무의식에 깊이 박혀 있다 

  난 혼인율・출산율에 연연하기보다 축소사회를 빨리 받아 들이고 여기에 맞춰 사회구조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손을 드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혼인율과 출산율을 끌어 올리고 싶다면 결국 두 가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 해결과 국가가 육아를 완전히 책임져줄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뭐, 다들 잘 아는 얘기기도 하지만 새삼스레 길게 적는 이유는 처음에 봤던 트위터 작성자가 미국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거대한 구조적 문제 위에서 움직이는 이슈를 “한국남자는 이래서 문제야”라며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켜 버린다 

✓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너는 왜 못해? 
✓ 네가 잘하면 되는 걸 왜 남탓을 하고 그래? 

  흔히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를 ‘개인능력주의’로 지적하는데 이러한 폐단이 그의 논증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 

  물론 답 없는 남자들 많다 남성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적이고 구조적으로 자행되는 병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 남여 대립항으로만 몰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게다가 여성이라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완벽한가? 

  서로 조금씩 부족한 게 있기 마련이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 몰라서’ 실수도 한다 그리고 모름지기 사회라면 새로운 사회계약과 공동체 설계를 위해 때론 대화하고, 설득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며 그럼에도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밑도 끝도 없이 남탓, 네탓. 그런 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특히 스스로 배운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더더욱. 

  낯 뜨거운 얘기긴 하나, 지식인의 책무라는 걸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게 좀 필요한 시기기도 하다
 
 
+. 이 글이 남성들이 가사노동 분담을 회피해도 된다는 논리로 악용되거나 오독되는 일이 없기를. 뼈 속 깊이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가사노동 분담이 상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지적하는 건 어떤 주장을 펼칠 때 고려해야 할 변수들과 논증 방식에 관한 것이다
#취향 #팬덤 #소비자

“중산층은 자기 자녀의 성인기, 즉 자신의 노후 대비나 근로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자본을 축적해야 하는 시기에 자녀의 근로주의를 실현시키기는 데 소득과 자산을 대부분 투자하게 됩니다. 자녀를 고임금노동에 진입시키고자 막대한 돈과 시간을 집중 투여하죠. 돈도 돈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취업 준비를 위한 시간, 근로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성실함을 보여주는 시간의 의미입니다. 일종의 대규모의 ‘잃어버린 시간’이라 할 수 있지요. 분명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를 근로주의와 발전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과 경쟁으로 해결하겠다고 무모하게 나서는 셈입니다.”


“정치가 상품화되면 상품을 구매한 자와 구매하지 않은 자 사이의 정치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화됩니다. 우리가 이데올로기로만 누군가를 고무하고 사회적 연대로 이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정치가 굿즈, 아이템, 소비 가능한 체험의 형태로 구성되는 큰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팬덤 문화는 묘한 쾌락을 줍니다. 멤버십을 갖고 있는 한,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느낌을 주죠. 요컨대 팬덤 시장은 거대한 정동 경제(affective economy)를 누리고 있습니다. 정동 경제는 스타와 팬 사이의 감정을 상품으로 순환시키고 이어주는 힘을 의미하고, 따라서 구매는 곧 사랑이요 연대라는 각본이 팬덤 내부에서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팬덤 문화에는 하나의 약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스타에 대한 깊이 있고 비판적인 토론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여성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굉장히 폭발력 있는 이 조직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토론, 논쟁, 이질성, 다양성을 축출하고 배격하는 동질적인 상호 감시 체제의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타를 지키거나 우리의 기쁨을 지속시킨다는 명분으로 낭만화하죠.”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사면 그것이 표식이 됩니다. 그러니 사는 행위를 명료하고 구체적인 나의 행동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그것만큼 나의 자아를 보여주는 확실한 행위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도, 쾌락도, 사회적 연대도 소비를 함으로써 해결하려 합니다. 이처럼 소비가 우리 사회의 복잡한 관계들을 전부 장악하는 행태적 메커니즘이 되었다는 사실에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저 ‘사지 말자.’라고 말하자는 게 아닙니다. 물건의 소유가 의식의 변화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 김현미,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2021) p.143, 189~190, 194, 195, 262
오늘은 밑줄 그은 문장이 많다. 참, 이 책은 이번 시즌 <중산층 모더니티> 3회차에서 다룰 예정이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아. 첫 번째 월미레터에서 소개한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는 2회차에 다함께 읽을 거야.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어느새 8년이 흘렀어. X(트위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영페미니즘 담론에도 자기점검 내지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거지.

  그런데 서두에서부터 반복되는 얘기지만 ‘어떤’ 페미니즘 담론들에선 개인능력주의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상당히 강하게 묻어나.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사회구조적 조건을 구체적 현실을 바탕으로 분석하기보다 개인적 요소를 근거로 좋다・싫다, 옳다・그르다 편 갈라 논쟁하는 일이 빈번해.

  그런데 이건 페미니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야. 한국 나아가 대부분의 국가들이 ‘소비자본주의’ 즉, 소비를 통해 나의 취향을 드러내고 제존재를 증명하는 메커니즘이 일반화되면서 소비가 곧 개인의 능력이자 영향력이라는 공식도 함께 뿌리내리게 됐어.

  팬덤 문화에서 가장 빈번하지만 정치적 자장 안에서도 소비가 정치적 올바름의 지표로 치환되어 버려. 소비할 수 있는 ‘개인능력’이 정치적 올바름의 전제조건이 되고 사회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는 작업에서도 개인 단위의 역량과 책임을 논하는 방식으로 뱅뱅 맴돌아.

  즉, 개인의 소비 역량이 최고 계급이 되어 버리는 팬덤적 사고가 요즘의 ‘어떤’ 정치와 ‘어떤’ 페미니즘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어 버린 점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거리두기를 하자는 것.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 나온 대사처럼 “의식도 못한 채로 세상 모든 생명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종이빨대와 동물복지 제품을 쓰며 죄책감을 잊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 

  그렇다고 아무 것도 소비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난 여전히 종이빨대와 동물복지 제품을 사용해. ‘쇼핑’을 사랑하고 즐기기까기 하지.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지구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킨다고 나는 믿지 않아. 소비는 하되 착각하지 않는 것. 환상에 빠지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며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동요하지도 않는 태도랄까?

  드라마틱한 감정을 체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효능감은 떨어질 수 있어. 그러나 세상 변화가 타노스의 핑거 스냅처럼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는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뿐이야. 즉, 카타르시스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해 만끽하고 우리는 ‘진짜’ 일상을 조금 더 활력 넘치게 살아보는 게 어떨까?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도 건네 보고 말이야.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책을 꼭 읽어 보도록 해.

  참, 혹시해서 덧붙이지만 이 글은 ‘페미니즘은 틀렸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리 앞에 놓인 무수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페미니즘에 대한 학습도 게을리 해선 안 돼. 다만 남여 편을 가르는데 함몰한다든지, 팬덤적 사고에 기반해 상호간의 건강한 비판마저 가로막는 편협한 방식의 ‘어떤 페미니즘’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웹툰・웹소설 보기라는 취미
어느새 세 번의 월미레터를 발행했네. 유익하고 재밌었길 바라며~

📣안내
다음 월미레터에선 “숨기고 싶은 웹툰・웹소설 보기라는 취미”를 다루려고 해. 그래서 사전 서베이에 참여해줬으면 해.

  요즘 연말이라 다양한 웹툰・웹소설 플랫폼에서 결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이를 캡처해 타입폼 서베이에 올리는 거야. 더하여 내가 올해 읽은 가장 좋았던 웹툰・웹소설 하나씩도 추천해줘~ 월미레터와 함께 2023년 웹라이프를 회고해 보자고.
*ex. 네이버 → ‘올해 내가 열람한 웹툰 총 회차수’

  그럼, 월플라워즈? 월미댁? 월미안?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아무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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