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북 이벤트 발표합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반짝거리는 문장들
들어가면서
생일맞이 블라인드 북 이벤트를 예고했는데요, 여러분이 골라주신 인생 문장을 소개합니다. 예순 개 가까운 문장이 모였고, 이 중 아홉개만 고르는건 너무 힘들더라구요. 결국 하나 더 골랐어요. 
선정되지 않은 문장의 경우에도 제가 아끼고 보듬으며 볼 것 같아요. 다른 편지를 쓸때도 종종 꺼내볼게요. 좋은 문장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문장
사람의 고유함을 사랑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 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생활습관이 다르기에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이 문장을 읽으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도 결국 이해하고 서로 연대하게끔 만드는 명령 같아요. 저의 가치관과 신념은 앞으로 이 문장이 보호해줄거라 믿습니다."
"각자 세대"라는 문장이 좋았는데 저는 독자님의 추천사도 참 좋더라구요. 그래서 이 문장을 골랐습니다.
두 번째 문장
은하수가 우리에게 건네주는 위로

견디기 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면 가끔 마음이 되게 편해지더라고요. 말없이 토닥토닥 맘을 달래주는 기분도 들고요. (...) 다른 분들도 이 문장을 보시면서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니,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잠시나마 위로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은하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망원경을 웅크리고 있는 마음이 들었어요. 별은 사실 빠르게 흐르는 것이니 우리는 사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일까요. 힘들었던 시기 독자님에게 도움이 된 이 문장을 두번째로 뽑아봅니다.
세 번째 문장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준 책과 문장들이라 공감이 됐어요.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오만함을 내려놓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문장이 아름답거나, 혹은 사유에 귀기울이게 되는 책들이 있는데 물고기 책은 후자인것 같아요. 종종 추천을 받고 있는데 문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아직 읽을 엄두는 안 나지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서 이 문장을 골랐어요.
네 번째 문장
먹고 싶은 건 항시 있어야 해

"너, 먹고 싶은 건 항시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게 있는거 자체가 살고 싶다는 거니까. 그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정문정 작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니까 우리 일단 밥부터 먹어요(브런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묘한 힘을 줘서 이 문장을 좋아해요. (....)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살기, 살아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위로가 담겨있어요. 방금 생각났는데, 공감도 할 수 있네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이 부분이요!"
해당 문장은 정문정 작가가 교수실에서 펑펑 울었을 때 교수님이 여러 조언을 하시다 남긴 말이라 해요. 그러게요, 생에 몰두하다보면 지금의 내 감정, 하고싶은 것을 알기 어렵더라고요. 먹고싶은건 항시 있어야죠.
다섯 번째 문장
인간이 선하다는 마지막 믿음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

"삶을 포기하고 싶을만큼 힘들었을 때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님의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앞의 문장이 조금 생략되었는데 장관님이 죽음을 은하수에 빗대어 말하세요. 하지만 뒤에 도덕률도 질서정연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사람이 선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선하다는 걸 믿는 장관님의 말이 따뜻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힘을 받았다는 독자님의 사연에서도요.
여섯 번째 문장
잎갈나무의 지혜

(...) 치료법은? 휴식. 그리고 스스로에게 친절할 것. 잎갈나무의 잎이 좋은 본보기다. 이 생존 전문가는 위도상 가장 북쪽 지역에서 자란다. 그리하여 바늘잎을 일부러 떨구어내고 좀 더 상냥한 날씨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간 겨울잠을 자며 버틴다. 길고 혹독한 시베리아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갈나무가 살아가는 법이다.

- 리즈마빈, '나무처럼 살아간다' 잎갈나무 중

"한동안은 몸과 마음과 생각을 조금 쉬며 겨울을 잘 견디고 좀 더 상냥한 봄날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작년에 만나게 된 책인데 제 인생책이 되어버렸네요 :)"
독자님이 보내주신 것처럼 문장 하나만 보아도 반할 것 같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림자 하나도 침대 밑 괴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구절이 마음아프게 공감되었어요. 방전된 독자님의 마음에도 다시 잎이 돋아날 수 있길 바라요.
일곱 번째 문장
논리는 위로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조심스러웠고 변변치 않았다. 반박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논리를 갖다 댈 영역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 세상의 슬픔 중에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많지 않겠으나, 그런 논리들이 그 슬픔에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그동안 살면서 어떤 사건을 마주하면 설명해야한다는 강박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런 논리들이 슬픔에 위로가 되지는 못할 거라는 문장이 와닿았습니다. 설명할 수 있으나 설명해서는 안되는 영역들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피해자가 왜 피해자인지, 왜 슬픈지 설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때가 많은 것 같아요. 슬픔에 대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여덟 번째 문장
생일선물로 이만한 게 없네요

"(...) 혹 다른 이들이 그 경이와 아름다움을 몰라준대도, 내가 내 시간들을 잘 버티고 살아내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진실만큼은 절대 훼손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올해도 내가 직접 나서서 내 생일을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윤가은, 호호호

"생일 날 우연히 마주한 문장이에요. 생각해보니 한 해를 잘 버텨 온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까. 주기만 하던 마음을 이제는 제가 제게 주려고 할 때 마주한 문장이라 더욱 반가웠어요. 그리고 주변에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이 있다면 꼭 이 문장으로 축하해줘야 싶었어요. 그렇게 발췌해 뒀던 문장입니다."
저도 생일 문장으로 이만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문장을 꼽아보았습니다. 스스로를 가장 많이 축하해주고 싶은 생일날 이 문장을 써봐요, 우리.
저는 돌아오는 화요일이 입사 1주년인데 왠지 이 문장을 들려주고 싶네요. 내 입사 1주년은 내가 제일 많이 축하한다!
아홉 번째 문장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그러네, 나도 그런 것 같아.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이걸 하고 있구나, 하며 잔을 부딪쳤다. 어쩌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사랑받고 싶어서 일하는 거 아닐까.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 너에게 좋은 사람이 돼주고 너도 나에게 그런 거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참 단순하고 좋을 것 같아. 나는 생각했다.

-김사월, ELLE SOCIETY <사랑받고 싶어서 일 합니다 #엘르보이스>

"이 문장을 읽고 친구2처럼 저도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 노래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거창하고 긴 말로 설명할 필요없이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알았어요."
작업물이 사랑받는 기억은 단연 강렬한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관계 부분이 예쁘게 읽혔어요.
열 번째 문장
좋아하는 마음은 낭비가 아니야

(...)좋아하는 마음은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사랑 때문에 불행하다 여겼던 순간이 실은 내 것이었을지도 모를 사소한 행운이나 성공보다 아름다웠다는 것을, 저는 그 시간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정지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제 고등학교 생활의 낙이 되어주신 분이 있어요. 지루한 시간표로 가득한 하루여도 그 분을 마주치는 날이면 그런 하루도 괜찮은 하루가 됐어요. (...) 제 인생을 표현한 구절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독자님의 하루가 빛났군요.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실패한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불행한 사랑이 행운보다 예뻤다는 구절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독자 후기

이전호 피드백 중 게재를 허락해주신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매 레터마다 술술 읽고 넘어갔는데 오늘은 여러 문장들이 발길을 잡네요. 저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이거든요. 특히 밤이 되면요.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걱정의 걱정이 꼬리를 물며 잠못 이루는 것은 물론이고 불안과 긴장에 저를 잡아먹힐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모든 사연과 모든 문장들이 다 저에게 하는 말 같았어요. 실수를 잊지 못하는 사람, 일어나지 않을 일에 전전긍긍하는 사람. 지금에만 집중하면 좀 더 나아질까요? 그래도 괜찮다는 문장들을 보며 오늘 밤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이 아니라 잠의 꼬리를 잡고 편안해져 보고 싶네요.
저도 문장을 정리하다보니 결국 하나의 이야기 -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그렇다고 문장을 퉁쳐서 처방하고 싶진 않아서 부러 더 열심히 문장을 골라보았
피드백을 주셨던 지난주는 편한 밤이 되셨을까요? 오늘 밤은 편히 주무시길 바라요.
소얀님께는 한 번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모두 부정하지 않으시고, 인정해주고, 깊게 감정에 대해 파고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사연 속 이야기나 상황이 다르더라도, 그 안에서 사연자님들이 느낀 감정을 잘 파악하셔서 상황에 맞는 문장들과 위로를 건네주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이 점에 대해 알고 계실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소얀님이 대단하고 멋지셔서 한 번 문장을 남겨보았습니다. 오늘도 좋은 레터 감사합니다:D
제가 이번주 깨달은 게 있는데 저 스스로는 부정적 감정이 휘몰아치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하나하나 발라낼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평소에는 사람들한테 과몰입해서 좀 피곤한 성격입니다. 제가 가진 공감이란 장점을 문장술사로 발휘하나 싶기도 합니다.지난 호를  소중히 아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감 일지
  • 독자님이 피드백으로 기분좋아지는 노래 Phil Good - Everything's Good을 추천해주셨어요. 제 마감송이 되었습니다:)
  • 블라인드북 당첨된 분들께는 제가 발송 직전에 이메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블라인드 북 응모에서 전달해주신 후기에 대한 마음과, 블라인드북 후기는 브런치에 남겨둔 뒤 다음주에 소개드릴게요 :)
  • 책을 선물한다는 건 함부로 다정하게 참견하는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고르고 당첨 문자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문장줍기는 어떠셨나요?
SENTENCE PICKER
sentencepic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