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 아니 꼰대의 슬픔 [풀칠 137호]

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 풀칠 주제는 ‘젊은 꼰대’입니다. 이른바 ‘젊꼰’은 온라인상에서 썰이 끊이지 않는 주제인데요, 안타깝게도 이번 풀칠은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직장 동료들이나 후배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내 안의 흑염룡, 아니 꼰대 기질이 깨어나는 걸 느끼곤 합니다. 뭐 별수 있나요, 주기적으로 예방 접종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표지는 인공지능 달리2를 사용해서 작업했습니다. 명령어는 'Surprised young office worker realizing that his reflection in a hand mirror is a monster, oil painting'.

꼰대라는 단어의 어원이 프랑스어로 백작을 뜻하는 ‘콩테’에서 왔다는 걸 아시는지. 일제 강점기에 자신을 귀족으로 칭하고 싶어 하던 이들을 통해 꼰대라는 단어가 수입됐다. 아,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물어본 적도 없다고?

“너 그거 꼰대 마인드야.” 회사 업무에 대한 고민을 듣고 있다가 결국 자기 적정과 완벽히 맞는 직장은 없고, 일은 어려워야 배울 수 있는 거라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순간 나는 억울했다. ‘아니 내가 꼰대라고? 나는 후배들한테도 늘 존댓말을 하고, 가끔은 커피도 사주면서 고민 얘기도 들어줬다고!’ 꼰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게 진짜 일리 없어’라는 노래가 자동 재생됐다.

꼰대란 무엇인가. 학창 시절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옆머리가 긴 학생들을 잡으러 다니는 주임 선생님을 일컫던 단어가 아닌가. 아니면 선배들이 다 가는 술자리에 왜 너만 빠지려 하냐는 예전 직장 상사야 말로 그런 단어에 적합한 사람 아닌가.

화가 난 나는 인터넷에서 꼰대 테스트를 검색해 자가 진단을 해보았다. 다양한 문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 중 하나를 고른 나는 찬찬히 나의 결백함을 입증하고자 했다.

확실한 정시 퇴근보다 높은 연봉이 좋다(흠.. 어차피 야근할 거 연봉이 높으면 좋은 거 아닌가?). 휴가를 가도 내가 보내는 카톡엔 답해야 한다(음.. 거래처가 휴가지 내가 휴가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나?) 삐빅-. 꼰대.

‘이거 질문지가 잘못 됐구만.’ 다른 테스트를 펼쳐들었다.

인맥 자랑을 많이 한다(음.. 미팅 상대의 상사를 알고 있으면 잘 지내느냐고 묻는 건 자랑이 아니겠지?). 요즘 애들은 노력 없이 불평만 하는 거 같다(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불평할 수 있지만 본인도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겠지?). 삐빅-. 꼰대.

그제야 나는 내가 오랜 야근과 잔업에 시달린 나머지 괴물이 되어버린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근은 필수도, 심지어 선택도 아니어야 함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다고 내 뒤에 온 사람도 힘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걸레 비린내가 난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재밌기도 했지만 많은 양의 업무에 짓눌려버린 나는 인정 투쟁을 함과 동시에 ‘인정’의 인플레이션을 바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너도 이만큼 노력해야 해. 실은 그게 나 자신의 가치를 깎아버린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꼰대화는 생물학적 노화와 마찬가지로 막을 수 없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매일 같이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운동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것처럼. 꼰대화를 조금은 늦추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도 해방될 수 없다는 격언처럼. 남의 노력과 고민을 평가절하 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남도 나도 잘 자고 잘 쉴 수 있기를. 퇴근길에 남모르게 읊조려본다.

아매오 : 후배를 향한 애매한 관심이 그 자신을 꼰대로 만듭니다. 진짜로 관심 갖고 살피는 것도 아니면서 관심 있는 척 하려다보니 물어보나마나한 사생활을 물어보고 하나마나한 조언을 하게 되는 것이죠. 제 경험상 자연스럽게 생기는 관심이 바로 애매한 관심에 해당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아예 관심을 갖지 않거나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꼰대가 될 위험에 빠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뭐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쉬운 것만 하려고 드는 순간 꼰대가 돼 버리는 겁니다.

파주 : 꼰대 테스트 문항을 따라 읽다가 짙은 농도의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아니, 저런 생각은 다들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있지만요. 꼰대가 된다는 건, 게임으로 치면 잘못된 2차 전직을 해버린 것과 비슷한 재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멋진 어른’으로 승급해야 하는데, 인성 스탯을 잘못 찍어버린 나머지 ‘꼰대’로 망캐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고요.

여하튼 저는 오늘도 MZ, 아니 잘파(Z세대+알파)세대의 요즘 트렌드가 무엇인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하기 위해서인데요. 해설을 읽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그 밈들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저의 늙음이 문제인지, 요즘 분들의 고차원 유머가 문제인 것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하이에나처럼 SNS를 어슬렁거립니다. 이게 제 일이니까요.

*상꼰대 특) 요즘 트렌드 공부함

야망백수 : 저는 꼰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상대가 사는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를 수 있다는 걸 까먹는 순간의 상태를 이르는 말.’ 오늘도 꽤나 많은 시간을 꼰대로 살았네요. ‘내 일에 집중하다 보니’를 단골 변명으로 쓰고 있긴 한데, 설득력이 있는지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더 주의 깊게 듣고, 가끔 자기 세계를 소개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고마워하는 연습을 해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꼰대

2년차 풀칠러, 회계사.

아매오: 회사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풀칠러: 모 회계법인의 감사본부에서 일한다. 1월부터 3월까지는 회사가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하는 재무제표의 정확성을 감사한다(이때를 ‘시즌’이라고 부른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그러한 감사를 준비하고 내부 회계관리제도 용역 같은 걸 한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감사본부의 꽃은 재무제표 감사다. 그러니까 시즌에는 아주 많이 매우 높은 강도로 일한다는 뜻이다. 정말 하얗게 불태운다. 4월부터 나름대로 여유롭게 회사를 다니고 5월부터 6월(바로 지금!)은 가장 한가한 때다. 이때 밀린 독서도 하고 고향도 다녀오고 여행도 간다.

아매오: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풀칠러: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게 너무 없었다. 경영학과였고 주변에서 다들 회계사 공부를 하길래 나도 했다. 자아실현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매일 웃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내 맘에 쏙 드는 직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회계사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다녔지만 아직 탐나는 직업은 찾지 못했다.

아매오: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풀칠러: "풀칠러야,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내 평판이 좋은 분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갑자기 퇴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퇴사를 할 것인가? 성장이 느껴지지 않을 때 또는 사내메신저로 편하게 대화 할 동기가 3명 이하가 될 때다. 시즌의 노동강도를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다. 일단은 배울 것도 많고 좋은 분들 아래에서 일해서 만족스럽다. 4년 차까지는 일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출장이 잦을 경우 퇴사 욕구가 샘솟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출장이 거의 없었다. 출장이 많아진다면…퇴사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갈 수도.

아매오: 풀칠 이번 호 주제는 ‘젊은 꼰대’다. 본인이 정의하는 꼰대란 무엇인가?

풀칠러: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 꼰대가 아닐까?

아매오: ‘나 꼰대가 돼 버렸나?’라는 생각을 한 적 있나?

풀칠러: 내가 1년 차일때 당연히 했던 일들을 지금의 1년 차 선생님들이 해주지 않을 때…? 마음 속으로 약간 째려본다. 답하고 나니 진짜 꼰대 같은데…지금까지 두 번 정도 째려봤다. 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에서 1년 차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안 해서 그냥 내가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을 때 그랬다. 그리고 시즌일 때 주말에 1년 차 선생님이 자꾸 질문할 때도 그랬다. 나는 질문을 모아서 평일에 물어보곤 했는데 날 편하게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자꾸 주말에 물어본다. 사실 시즌 주말에 일하지 않는 감사본부 회계사는 없다. 그럼에도 주말은 밀린 일을 쳐내는 소중한 개인 시간이다. 어쨌든 내 일을 멈추고 그걸 봐줘야 하는데 내 능력이 부족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질문한 선생님을 마음 속으로 째려보게 된다.

아매오: 본인이 생각하는 ‘사라져야 할 꼰대질’과 ‘그럼에도 필요한 꼰대질’이 있다면 하나씩 꼽아달라

풀칠러: 사라져야 할 꼰대질이라. 권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호통치며 지적하는 것이다. 절대 호통치지 않고 지적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호랑이처럼 군림하는 사람 앞에선 더 긴장해서 더 실수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사회초년생이 실수 없이 배울 수는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꼰대질은, 이미 꼰대질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과 다른 분위기를 가진 지적이라고 하면 되겠다.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먼저 퇴근하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말로만 인사한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다음에 눈 보고 인사해주면 안 되냐’고 하시더라. 그 선생님 성격을 생각하면 여러 번 고민하셨을 텐데 부끄러웠다. 지금도 가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노력 중이다.

아매오: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풀칠러: 성인이 되고 내 인생은 대학-공부-약간의 휴식-회사로 요약된다. 놀랍게도 회사 생활을 하는 지금 정신 상태가 제일 건강하다. 이유는 너무 많다.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수업시간에 잠깐 만나고 곧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대학 때보다 하루종일 붙어있는 회사에서 마음 맞는 좋은 친구를 사귈 가능성이 높다. 열정적이고 똑똑한 사람을 지켜보는 것도 늘 좋은 자극이 된다. 그를 본받고 싶다기보다 내 인생도 더 잘 굴러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회계사 시험이 끝나고 입사하기 전까지 6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난 나의 의지로 6개월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금방 나태의 굴레에 빠져 TV만 봤다. 오히려 지금 책도 더 많이 읽고 여행도 더 많이 가고 현실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하면서 내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했다는 보람은 느낀 적 없다. 언젠가 그런 기분을 느껴보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