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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 일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나라 직장인은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by jason,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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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의미’라는 표현을 들으면, 거부감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에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일하고 싶어서 하나? 다들 돈 벌어서 먹고살려고 일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일을 쉬거나 직장을 잃어본 분이라면, 일이 갖는 여러 의미에 대해 절실히 체감했을 겁니다. 일이 없어지면 돈을 못 버는 것이 가장 힘들지만, 사회적 관계도 없어지고 자존감도 확 떨어집니다.
저는 직업상 다양한 회사와 직무를 간접 경험하다 보니, 일의 의미에 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더구나 대학원에서 이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논문도 쓰면서 일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더 강화됐습니다. 오늘은 HRer 여러분과 일의 의미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고, 저희 회사의 <조직(문화)진단>에 있는 관련 문항을 통해 우리나라 직장인의 생각을 엿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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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의미에 대한 학문적 연구물은 많이 있습니다. Meaning of Work라고 하고, 줄여서 MOW라고 하기도 하는데, Google에서 검색만 해봐도 꽤 많은 책과 논문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론적 틀을 소개하는 것은 이 뉴스레터의 성격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제가 나름대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론적 틀에 제 생각과 경험을 더해서 정리한 결과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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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윤태호(2012), <미생(未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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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일은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일의 가장 원초적인 의미는 경제적 수단입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그것은 여가 또는 취미 활동입니다. 둘째, 일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게 해 줍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도 줍니다. 여러분도 갑자기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 인간관계 중 최소 절반은 사라질 겁니다. 셋째, 일은 자아실현을 도와줍니다. 인간은 일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면이 있습니다. 일을 함으로써 과거에는 자신감이 없었거나 부족했던 부분이 점차 발달하고 그것이 사람 자체를 성장시킵니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꽃피우는 예도 있고요. 이러한 발견과 성장 때문에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느끼면 자존감도 함께 올라갑니다. 넷째, 일은 자아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다’, ‘내가 어느 직장에 다닌다’가 사회적 체면이나 명예가 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직업/직장이 가진 가치를 내재화하면 자아가 바뀝니다. 저는 직업으로 인해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바뀌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다섯째, 일은 생활에 규칙성을 부여해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일정 시각에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출퇴근 시각이 정해져 있지 않은 프리랜서나 전문직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루틴이 필요합니다. 이런 루틴이 개인의 삶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섯째, 일은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후배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그 일이 술술 잘 풀리기까지 하면, 이보다 더 재밌는 일이 있겠는가?”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일에 몰입해서 미친 듯이 재밌게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결과마저 좋아서 주변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면 금상첨화이고요. 일은 고단하고 힘든 것만이 아닙니다. 삶의 활력소 및 원동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일의 의미]
- 경제적 수단
- 사회적 관계 형성
- 자아실현, 성취
- 자아정체성 형성
- 사회적 체면 및 명예 획득
- 생활에 규칙성 부여
- 재미, 삶의 활력소
- 새로운 지식 습득과 경험의 기회
- 타인에 대한 영향력 발휘
- 사회적 기여, 봉사, 애국
- 종교적 소명의 실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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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자들이 일의 의미(MOW)를 연구할 때 썼던 문항 중에 Lottery Ques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Lottery는 우리말로 로또이죠. 그래서 ‘로또 질문(문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원래 이런 질문입니다. “귀하는 로또로 큰돈을 벌게 되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겠습니까? 아니면 이 일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지금 보면 굉장히 단순한 질문입니다. 쉽게 말해, 한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돈이 생겼는데, 일을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일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 만큼 계속 이 일을 하거나 직장을 다닐 것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니 40여 년의 역사가 있는 문항입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단순한 문항으로 개인이 일에 부여하는 의미를 묻는 것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단순함이 주는 날카로움(edge)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가 서비스하는 <조직(문화)진단>에도 이것을 변형하여 개발한 문항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5점 척도로 구분하기 위해 척도별 정의를 내렸습니다. 일종의 continuum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문항과 선택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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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귀하에게 어느 날 갑자기 100억 원이 생긴다면, 귀하가 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선택지]
- 경제적 여유가 생겼으니, 내 일에 더 몰입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저에게 일과 회사는 돈을 버는 것 외에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 회사를 다닐 것 같습니다.
- 갑자기 그만두는 것은 좀 그러니, 일단은 조용히 회사를 다녀보겠습니다. 그럼에도 몰입감은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다니던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예의상 인수인계를 위해 최소한 한두 달 정도는 더 다니다 그만둘 것 같습니다.
-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둘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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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여러분이라면 이 5개의 선택지 중에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30초만 생각해보고 다음으로 넘어가시죠. 여러분의 선택이 우리나라 직장인의 빅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어떤지 비교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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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직장인은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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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이 문항을 포함해서 <조직(문화)진단>을 진행한 고객사는 2021년 말 기준 약 60개이고, 응답자는 25,000여 명입니다. (이 문항을 포함하지 않고 설문을 진행한 고객사도 꽤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문항인 듯합니다...;;;) 이 중 대기업이 60%, 중견기업이 25%, 중소기업이 15% 정도입니다. 대기업 계열사라 해도 매출이나 규모에 따라 재분류한 결과입니다. 대체로 안정적이고 보상 수준도 괜찮은 회사라고 가정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과가 우리나라 직장인 전체의 의견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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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를 보니, 어떠세요? 예상하신 것과 비슷한가요? 저는 이 결과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로또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어도 계속 회사에 다니겠다는 응답이 68.2%(①+②)입니다. 단기간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응답이 15.7%(④+⑤)인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 결과만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일과 회사에 부여하는 의미가 생각보다 넓고 깊은 것 같습니다. 직장인들이 제가 위에서 말한 일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밝고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것은 아닙니다. 이 데이터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하면 이면(裏面)이 보입니다. 첫째, 일에 대해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좋은 직장, 좋은 일자리일 때만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서 분석하면 차이가 보입니다. 그리고 대기업이더라도 조직문화가 나쁘거나 최근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추세라면 또 부정적인 응답이 높아집니다. 일자리의 질(質)이 일의 의미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둘째, 직급/직위/직책에 따라 편차가 있습니다. 당연히 직급이 높고 직책이 있는 분들이 일에 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지금의 회사 및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죠. 명함 한 장이 자신을 설명해주는 면이 큰 것이죠. 게다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맺어지고 유지되는 인간관계도 많을 것입니다. 반면, 직급/직위가 낮을수록 일을 경제적 수단으로 보는 면이 강해집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나, 최근 MZ 세대의 출현으로 인해 더 가속화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나타나는 성과급에 대한 공정성 시비, 사무직 노조 설립 움직임 등이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셋째, 직무의 전문성이나 복잡성이 높을수록 일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징도 발견했습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생산/제조보다 마케팅/영업이 좀 더 복잡한 문제를 다뤄야 하고, 또 연구/개발로 가면 더 높은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해봤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학력, 전공, 경험 수준이 높을수록 개인도 스스로 학습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을 것이고, 기회비용 때문에라도 포기하기 어렵고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이 해석이 너무 고상하다면, 이런 단순한 해석도 가능합니다. 직무 요건이 높고 직무 자체가 고난도일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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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돈 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 그리고 잡 크래프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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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회사에서 성과급 이슈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노(勞) 측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경영진과 일반 직원 간 보상 격차(Pay Ratio)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직장 내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 셈이죠. 그러니 직원들이 “우리에게도 제대로 나눠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는 몇 년 후는 모르겠고, 지금 당장의 현금 보상이 중요하다”라고 외치는 풍조도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MZ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즉시 보상, 즉시 만족, 현실 중시”라고 하던데, 회사는 오늘 또는 올해만 보면서 경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 직장, 일터에는 돈 외에 많은 의미가 있는데, 너무 한쪽으로만 의미가 쏠리는 것은 걱정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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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의미와 관련해서 유행하는 최신 용어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입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스스로 의미 있게 만드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합니다. Top-down으로 관리자가 직무 내용을 정해주는 직무설계(Job Design)와 반대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자기 일을 환자에게 더 정교한 의학적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환자의 삶에 대한 케어로 인지적 범위를 확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잡 크래프팅은 이렇게 일에 대한 개인의 인식이나 신념을 변화시키는 것 외에, 실제로 일이 갖는 물리적 범위, 인간관계를 바꾸는 변화도 포함합니다.
저는 잡 크래프팅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지지합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고, 그 범위를 넓힘으로써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성과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하는 일의 최종 고객이 누구인지, 그 사람에게 내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의미일지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내 일을 다르게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서 잡 크래프팅이라는 이름 아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억지로 허위의식을 심는 것 같아 이 점도 약간 우려스럽습니다. 잡 크래프팅의 전제는 ‘스스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스로’를 빼버리고 회사가 개인에게 일의 의미까지 부여하려 하는 것은 작위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잘못하면 이런 시도 자체가 노사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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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인 중에 미국 계리사가 있습니다. 미국 계리사는 고소득 전문직이고, 그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게 레벨이 있는데, 초급 단계는 이론적이고 수리적인 시험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레벨이 올라가면 철학, 사회학 논술 시험 같아진다고 합니다. 고차원의 보험계리를 위해서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변화 흐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고 레벨을 따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저는 HRer의 끝판왕은 인사 관련 지식/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이 아니라, 철학, 사회학, 심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적 내공이나 성취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문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기업 현장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중 ‘철학’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일의 의미’일 듯합니다. HRer라면 한 번쯤 내가 하는 일의 의미, 더 나아가 우리 회사 구성원들이 갖는 일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썼습니다. 구성원들에게 각자가 하는 일이 갖는 회사 내 의미,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깨닫게 도와주는 것도 HR이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 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고 싶네요. "당신에게 HR은 어떤 의미입니까?", "많은 직무 중에 왜 HR을 선택했나요?", "HRer로 일하면서 언제 보람되고 행복하십니까?", "귀사에서 HRer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요?", "HRer의 본질적 미션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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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COMPANY w/HRer는 격주로 발행됩니다. 화요일 오전에 찾아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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