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여성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무기력하게 복지에 의존하는 여성을 떠올리시진 않았나요? 그런데, 20여명의 한부모여성을 인터뷰한 결과, 오히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지향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어요. 인터뷰 참여자들은 ‘단 한 번도 일을 전혀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수급에 의존하지 않고 더 일을 하고 싶다’는 답변을 했어요. 심지어 어떤 응답자는 ‘수급 받는 사실 자체가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우리가 흔히 수급을 받는 취약계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죠? 이들은 일을 하며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에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현재 한부모여성은 금전적 지원 외에도 다양한 정부 혜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부모여성 스스로도 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일을 하여 자립하고 싶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요. 그렇다면 왜 이들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연구자들은 정책의 잘못된 전제가 한부모여성으로 하여금 일 또는 양육이라는 양자택일을 하게 만들고, 이것이 빈곤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도대체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 몇 만원 차이로 탈락되는 수급
  우리나라의 한부모여성 대상 사회보장 제도는 권리로서 지원하는 체계가 아닌,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위소득과 같은 소득 구간 뿐 아니라, 시설 거주여부, 미혼한부모 여부 등 나의 빈곤 정도에 따라서 차등 지급되는 것이죠. 문제는, 소득기준에 따른 엄격성 때문에 이들은 수급과 탈수급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한 응답자는 ‘몇 만원 차이로 수급지위가 박탈되며, 수급에서 탈락하는 순간 나아진 것은 없는데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수급자보다 낫다고 여겨져 지원이 끊기지만, 현실은 수급보다 더 어려워 마치 생존이 힘든 남극과 같은 상황이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결국 대부분의 한부모여성은 복지 잔류를 위해 안정적인 전일제 일자리를 포기하고 수입이 낮은 일자리를 선택하는 거죠. 저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수급) 덫에 갇히기’라고 표현했습니다.

• 전통적 성별역할 분리모델과 정상 가족 규범에 기초한 제도
  저자들은 또한 한부모가정의 빈곤화 과정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합니다. 즉, 한부모여성의 빈곤 원인은 한부모남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기존의 정책들은 돌봄 의무에서 자유로운 남성 정규직 근로자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돌봄 결핍을 해소해줄 수 없는 현재의 정책들이 경제적 책임과 돌봄 책임을 모두 다해야 하는 한부모여성에게는 충분하지 않을 수밖에 없죠.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돌봄 서비스 대상자는 정규직 취업 지위를 중심으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정규직 여성은 대부분 전일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문제는, 돌봄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같은 시간제 일을 하고👉시간제 일을 해서 4대보험이 안 되고👉4대보험이 안 되니 돌봄 서비스 신청을 못하고👉돌봄 서비스 신청을 못 해서 시간제 일을 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소득 한부모여성일수록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이죠.

• 돌봄권과 노동권, 둘 다 보장할 수는 없을까?
  저자들이 강조하는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돌봄권과 노동권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이 아닌, 모두 사회권으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개인의 권리입니다. 즉,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도 일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하고, 돌봄 또한 불이익 없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미국의 학자 낸시 프레이저(1994)는 이를 ‘보편적돌봄자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이라고 개념화하여, 돌봄책임을 수행하면서 노동시장에도 참여하는 시민이 보편적 규범이 되는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저자들은 돌봄권과 노동권이 서로 맞물려 있는 상호 유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앞서 강조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봄과 노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돌봄권과 노동권은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보장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한부모여성은 일과 양육,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결과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구 소득 기준과 상관없이, 개인의 권리로서 한부모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합니다. 즉, 돌봄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더 취약해지면 안 되는 것이죠.

• 그러나, 보편적 지원과 동시에, 사회맥락적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접근도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한부모여성은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다른 사회 취약계층에 포괄되어 다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같은 한부모여성이라도 그들의 현실은 자녀들의 생애주기는 물론 가구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자녀와 친정엄마를 홀로 돌봐야 하는 이중돌봄 책임을 떠맡은 사례도 있었고, 자녀의 언어나 인지발달이 지연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다자녀 한부모여성 사례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부모여성의 삶을 살게 되었고, 사연도 다들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정책을 구성할 때에는 자녀 수, 나이, 사회적 환경 등 여러 층위에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