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보이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OCTOBER 31, 2025
요 며칠 냉장고를 비울 요량으로 냉털 음식을 해 먹기에 돌입했습니다. 본가에서 가져온 명란젓, 언제 넣어두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황태, 없으면 섭섭한 냉동면, 주스 갈아 먹을 때 쓰려고 모아둔 채소 등등.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만만한 건 냉동 해물이었죠. 휘뚜루마뚜루 아무 곳이나 넣어서 먹기 좋거든요.

그러니까 냉털 파스타를 만들려고 냉장고를 뒤져보니 손에 집히는 게 가지와 버섯, 양파, 냉동 해물이었던 거죠. 그렇게 그냥 한 끼 대충 때울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최근 만들어 먹은 어떤 파스타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름 두르고 중약불에 타지 않게 양파, 버섯, 가지와 홍합, 새우, 오징어 등의 냉동 해물 믹스를 오래 볶아 맛을 뽑아낸 다음, 마늘 가루 살짝 뿌려주고 멸치액젓을 넣어서 감칠맛을 입혀줍니다. 멸치액젓은 살짝 많다 싶을 정도로 넣어서 짭짤함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맛술로 잡내 제거해 주고 소금간 잊지 않아 준 다음, 파스타 면을 면수로 농도 조절해 가며 볶아주고 마지막으로 불을 끈 다음 레몬즙으로 코팅하고 후추를 가득 뿌려주면 완성이에요.

멸치액젓의 짭짜름하고 콥콥한 맛, 레몬즙의 새큼한 맛, 마지막에 갈아 올린 통후추의 톡 쏘는 맛이 각각의 존재감으로 혀를 때리는데, 절묘하게도 이 세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삼삼해 보이지만 강렬한 모습을 숨기고 있는 파스타예요. 일부러 좀 짜게 만들어서 술과 곁들여도 기막히게 어울릴 맛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전반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건강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제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냐 하면, 다음날도 똑같은 레시피로 파스타를 해 먹고도 모자라서 이 파스타에 온갖 의미를 더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보이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지만 타인의 의견이나 시선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만한 생각이며, 누구나 각자의 시선과 상황으로 타인을 제멋대로 판단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가능한 선에서 ‘보이는 나’도 내 맘에 들게끔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이쯤에서 2016년 10월 26일에 노트에 적어 두었던,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관해 썼던 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되 고요하게, 그리고 인정과 신뢰를 받고 능력 있지만 나서지 않는, 좋아하는 사람을 끔찍하게 챙기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가치관과 의견이 뚜렷하고, 온화하고 여리지만 고집 있는, 그러면서도 배려 있는 사람’

9년 전에도 저는 지금과 같은 걸 생각했고 같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저 글을 쓸 당시에는 사실 큰 생각이 없었는데 유독 저 각각의 단어들이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남더라고요. 하나 버릴 것 없이 계속 곱씹고 자신을 다잡게 되는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지지난주의 저는 멸치액젓 해물 파스타 같은 사람이 되자고 마음가짐 글을 9년 만에 업데이트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이기에 심심할지 몰라도 내실 있게 끌어당기는 파스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더해서요.

억지스러워 보여도 진심입니다. 중요한 재료는 멸치액젓과 레몬, 후추이고 나머지 재료는 곁들임 정도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만들어 보시고, 감상도 함께 알려주시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멸치액젓 해물 파스타

재료 [1인분 기준]

(필수)
파스타 1인분
양파 1/4개
가지 1/2개
냉동 해물 믹스 1주먹
멸치액젓 2스푼
맛술 1스푼
올리브오일
레몬즙
소금
후추

(기타)
마늘 가루

만드는 법

1. 파스타 면은 패키지에 적힌 시간만큼 삶아줍니다.
2. 채소는 한입 크기로 썰어줍니다.
3.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채소와 냉동 해물을 중약불에 타지 않게 볶아 충분히 익혀줍니다.
4. 마늘 가루와 멸치액젓을 넣고, 맛술 1스푼을 넣어 잡내를 제거합니다. 소금간을 더해 간을 맞춰줍니다.

5. 파스타를 넣고 잘 볶은 다음, 불을 끄고 레몬즙을 둘러준 후 후추를 가득 뿌려 접시에 담으면 끝!

제가 사용한 멸치액젓은 삼게 멸치액젓으로, 피쉬소스로 통용되어 판매중인 상품입니다만 꼭 수입 피쉬소스가 아닌 국산 멸치액젓으로도 충분히 맛이 난답니다.
님, 오늘의 파스타는 어떠셨나요?
너무 길었나요? 레시피가 부실했나요?
듣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다음 레터에 반영해 답장할게요.
제가 궁금하다면 아래에서 더 확인할 수 있어요!
R.DAM
artist.rd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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