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냉장고를 비울 요량으로 냉털 음식을 해 먹기에 돌입했습니다. 본가에서 가져온 명란젓, 언제 넣어두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황태, 없으면 섭섭한 냉동면, 주스 갈아 먹을 때 쓰려고 모아둔 채소 등등.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만만한 건 냉동 해물이었죠. 휘뚜루마뚜루 아무 곳이나 넣어서 먹기 좋거든요.
그러니까 냉털 파스타를 만들려고 냉장고를 뒤져보니 손에 집히는 게 가지와 버섯, 양파, 냉동 해물이었던 거죠. 그렇게 그냥 한 끼 대충 때울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최근 만들어 먹은 어떤 파스타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기름 두르고 중약불에 타지 않게 양파, 버섯, 가지와 홍합, 새우, 오징어 등의 냉동 해물 믹스를 오래 볶아 맛을 뽑아낸 다음, 마늘 가루 살짝 뿌려주고 멸치액젓을 넣어서 감칠맛을 입혀줍니다. 멸치액젓은 살짝 많다 싶을 정도로 넣어서 짭짤함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맛술로 잡내 제거해 주고 소금간 잊지 않아 준 다음, 파스타 면을 면수로 농도 조절해 가며 볶아주고 마지막으로 불을 끈 다음 레몬즙으로 코팅하고 후추를 가득 뿌려주면 완성이에요.
멸치액젓의 짭짜름하고 콥콥한 맛, 레몬즙의 새큼한 맛, 마지막에 갈아 올린 통후추의 톡 쏘는 맛이 각각의 존재감으로 혀를 때리는데, 절묘하게도 이 세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삼삼해 보이지만 강렬한 모습을 숨기고 있는 파스타예요. 일부러 좀 짜게 만들어서 술과 곁들여도 기막히게 어울릴 맛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전반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건강한 느낌이라 좋았어요.
제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냐 하면, 다음날도 똑같은 레시피로 파스타를 해 먹고도 모자라서 이 파스타에 온갖 의미를 더해보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