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크 탐험 일지
콩크 대원이 직접 공장, 본사에 방문해 제작 과정, 회사의 역사, 현장 뒷이야기 등을 취재해 소재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심층 이해를 돕는 콘텐츠입니다. 

* 박찬용 작가요기요 디스커버리를 오마주하여 제작했습니다.
Vol.04 구채옻칠

구채옻칠 맵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Wanted] 정직한 옻칠가


'구채옻칠은 옻칠을 정직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구채옻칠 카탈로그를 넘겨보다 페이지 한편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묘하게 시선이 꽂혀 문장을 여러 번 곱씹었다. 보통은 우리 제품이 당신에게 필요하다거나, 우리 제품을 쓰면 어떤 사람이 될 거라 말하는데 이 문장은 채용공고나 결혼정보회사에서 볼 법한 느낌이다. 한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할 관계에서 쓸 법한 문장이 제품과 함께 있으니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져 그 의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탐험 현황

일시 겨울치고 다소 따뜻했던 2월 중순
장소 대전 유성구 구채옻칠
획득샘플 옻 벗은 참옻물 (?)
현장상황 겉보기엔 다를 것 없는 여느 사무실이었으나 내부는 게임 맵처럼 흥미진진했다.

구채옻칠은 옻칠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누구나 쉽게 사용할 있는 옻칠 제품을 만드는 천연 도료 전문 회사이다. 무지갯빛도 일곱 빛깔밖에 안 되는데 검정 옻칠에 구채라니 싶었던 찰나,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대표님이 사무실 문을 열어주시자마자 형언할 없는 진한 향과 수많은 컬러 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잠깐, 모든 옻칠로  색이라고? 검정은 기본, 빨주노초파남보에 황금색까지 곁들여 아홉 색깔을 있단다. 당장 설명을 청하고 싶었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먼저 공간을 둘러봤다.


세 개의 관문

공간은 크게 사무실, 연구실, 생산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체감상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비밀을 파헤쳐가는 구조였다. 가장 처음 마주친 사무실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대표님의 방이 보였고, 연구자료와 , 옻칠 샘플들로 빽빽한 책장과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영락없는 교수님의 방이었다. 이것저것 습득할 게 많아 눈과 귀가 바쁘게 움직였다. 두 번째 관문은 연구실. 여기저기 색이 묻은 장 안에 빼곡하게 줄 세워진 형형색색의 통, 스테인리스 개수대, 튜브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둥근 플라스크, 사용법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쇠붙이 기계들까지 ·고등학교 시절에 느꼈던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졌다. 연구실에 들어 대표님은 자연스럽게 하얀 가운을 걸치셨다. 머리에 가운을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모습에 순간적으로 메롱 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인슈타인이 동양에서 태어났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마지막 관문은 생산실.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어 무기 정비에 한창인 진영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돌아가고 있는 기계들 때문에 이전보다 소음이 있었고 조금 서늘하고 날것의 알싸한 향도 느껴졌다. 

우연한 만남, 그리고 헤어지지 않을 결심

한 회사의 대표, 교수, 그리고 과학자까지,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그를 보고 입혀진 역할만 세 가지였다. 학창 시절 화학을 전공한 그의 첫 역할은 연구원으로, 1976년부터 25년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의 아내조차 그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몰랐을 정도로 국가의 일은 입이 무거워야하는 엄중하고 외로운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화학을 하고 싶었어요. 다이너마이트, 원자폭탄, 핵무기 같은 만드는 화학이 아니라 사람에게 이로운 화학을 하고 싶었어요.” 


자신만의 연구, 사람을 살리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그는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차가버섯과 같은 자연물로 유기농약과 비료를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로 황칠 연구를 제안받게 된다. 황칠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갸우뚱하고 있던 찰나, 광택이 없는 나무들 사이 반짝이며 노란빛을 반사하는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바르는 황금을 만들어내는 칠, 황칠이 바로 그것이었다. 

2001년 황칠을 연구하던 중 식용 옻닭용 옻 제거액 제작 의뢰를 받아 옻칠 연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희귀한 황칠나무 대신 상대적으로 많은 옻나무로 황칠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싶어 황칠용 옻칠을 개발하게 된다. 이후 옻칠의 끝없는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버렸고, 무려 7년간 옻칠을 연구한다. 이런 열정이 알려져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세계 옻칠 생산지를 찾아다니며 샘플을 채취하고 천연 옻칠을 분석하게 된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미얀마, 태국 등 옻칠이 있는 곳이라면 그가 있었다. 각지의 샘플을 채취해 와 분석을 통해 두 눈으로 전통 옻칠의 우수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한반도의 옻칠'에 삶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연구내용이 집약된 책 <누구나 쉽게 칠할 수 있는 옻칠 & 황칠 옻 이야기> - 각지를 돌아다니며 옻나무의 종류, 지역, 채취 시기마다 옻칠 주성분 및 분자구조가 다름을 확인하고 옻칠 지도를 완성했다. 

그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만든 옻칠의 매력은 도료로써 옻칠의 가능성과 한반도 옻나무의 품질에 있었다. 동양, 그중에도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미얀마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되는 옻칠은 각자 나무의 종류와 옻칠의 성분이 다른데, 가장 질이 좋은 칠은 한··일의 참옻나무에서 채취되는 칠로, 우루시올(C21H34O2)을 주성분으로 한다. 우루시올은 카테콜* 계열의 천연물로, 나무랄 없는 물리화학적 특성을 보인다. 항균, 내곰팡이, 방충, 내열, 내마모, 내수, 내화학성, 부착성, TVOCs(총휘발성유기화합물) 제거, 습도 조절, 내지문성, 전자파 흡수, 수맥차단・・・ 읽기만 해도 숨찰 정도로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을 가진 옻칠, 그중에서도 한반도의 것은 최상급이다. 


*카테콜(C6H4(OH2))은 키노, 너도밤나무 등에서 발견되는 독성 유기 화합물로, 무색이었다가 철과 반응하여 붉은색을 나타낸다. 합성 카테콜의 대부분은 살충제 생산에 소비되며, 나머지는 향수나 의약품, 사진 현상액이나 철・코발트 따위 금속의 분석 시약으로 사용된다.

화학자의 사랑은 없던 도료도 만든다

최고의 도료가 되기 위해서는 보호와 장식, 그리고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옻칠은 보호는 물론 옻칠만이 가진 기능성을 통해 수명까지 연장하니 첫 번째 조건은 합격이다. 그러나 장식과 산업화 가능성에서는 거의 낙제 수준에 가깝다. 옻칠 특유의 어둡고 깊은 검은 색은 장점이자 한계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까다로운 전처리 과정, 긴 건조시간과 경화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작업 조건은 산업화에 적합하지 않다. 잘 마르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고 산패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옻이 오르는 치명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옻이 오른다'는 표현은 옻을 잘 몰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옻을 타는 사람은 옻칠 작업장 근처에도 갈 수 없는데, 우루시올이 휘발성이 짙어 빠르게 공기 중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옻액이 피부에 묻으면 옻을 타든 안타든 피부 알레르기로 고생할 수 있다. 우루시올이 가진 독성은 항균, 내곰팡이, 방충과 같은 유용한 기능이 되기도 하지만 도료로 사용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자, 이제 옻칠을 사랑한 화학자가 후광과 함께 등장할 차례. 옻칠을 최강 도료로 만들기 위해 우루시올을 분리, 정제한 다음 다량체를 만들어 알레르기 유발 현상을 크게 완화했다. 조금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분자 간 결합을 통해 우루시올을 무겁게 만들어 쉽게 날아가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직접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공기 중에 퍼지지 않을 뿐 독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우루시올은 옻칠이 가진 기능의 주역과도 같아서 옻을 타지 않는 옻칠이 있다면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앙금 없는 팥빵에 가깝다.

알레르기를 완화한 전통옻칠을 시작으로 까다로운 작업조건, 제한적인 색 표현 문제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현재는 공예, 산업, 전통, 가구, 식기, 장판 등 분야 따라 맞춤으로 사용할 수 있는 28개 군의 제품이 있으며, 구현할 수 있는 색은 무려 31개나 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조만간 습기, 곰팡이, 결로와 VOCs(휘발성유기화합물)가 없는 옻칠 페인트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뿌리거나 바를  있고, 다양한 색과 질감을 낼 수 있어 기존의 페인트, 플라스터와도 견줄 수 있는 벽 마감재의 등장을 예고했다. 친환경 기능성 도료를 찾던 디자이너들이 반가워할 소식이다.

난, 이 사랑 반댈세!

쓰여진 것만큼 과정이 간단했던 건 아니다. 과정 속에서 숱한 실망과 좌절이 있었다. 현재 옻칠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오랜 시간 전통 옻칠을 지켜온 장인 혹은 현대에 와서 옻칠을 배워 사용하는 젊은 화가들이다. 옻칠을 개량하면 반가워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다르게 기성 작업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전통적으로 옻칠을 다루던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을 뺏긴다는 생각에 적대적이었고, 심지어는 개량 옻칠은 전통 옻칠이 아니라고 믿기도 했다. 


개인은 그럴 수 있지만 국가는 어땠을까, 전통이니만큼 국가 차원에서 반가워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일본은 영문 뜻을 검색하면 첫 번째에 '칠', ‘옻칠’이 나올 정도로 인식과 산업이 발전한 나라이며, 중국은 생산량이 많고 국가 연구소가 두 개나 있고 70년대부터 학술잡지도 나오고 있다. 반면 국내는 옻칠에 대한 공업 규격조차 없으며 보수적인 성향이 다소 강한 편이다. 개량옻칠 개발 후 문화재 복원 사업에 사용을 제안해봤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듣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문화재, 사찰, 목조 건축물들은 사용되기만 하면 옻칠의 기능을 톡톡히 볼 수 있는 분야다. 현재 문화재 대부분은 보존을 위해 폴리졸*을, 화려한 색을 내기 위해 유기 안료**, 그 중에서도 석채 안료를 사용한다. 폴리졸은 안료와 상용성도 좋고 접착력도 있어 아주 좋은 재료이지만 수성 아크릴이나 우레탄에 비하면 수분에 약한 편이다. 석채 안료는 천연이라는 이유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석재를 하나하나 잘게 빻아서 만든 거라 제작이 오래 걸리고 비싼 데다가 낼 수 있는 색이 다양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폴리비닐아세테이트 접착제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무기안료는 독성이 높은 4대 중금속(납, 수은, 비소, 6가크롬)산화물이며, 그 독성으로 인해 방부, 방충성을 가져 햇빛에 퇴색되지 않고 화려한 색을 유지하며 오래도록 문화재를 보호해 왔다. 하지만 환경문제로 그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유기안료를 사용하게 됐고, 보존력이 떨어지는 탓에 곰팡이와 흰개미, 외래종 나방 등에 노출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오일 스테인 옻칠과 단청용 옻칠이다. 각각 식물성 옻칠과 견뢰도가 높은 유기 안료를 결합해 만들었다. (단청에 사용하는) 폴리졸이나 식물성오일로 제조한 오일 스테인보다 비바람과 햇빛을 잘 견디는 특성이 있어 오랫동안 한옥, 문화재 같은 건물을 노후되지 않게 유지할 수 있다. 실내에선 거의 변형이 없는 색 보존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기만 하면 반길 줄 알았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긴 시간과 노력 끝에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을 때 포기하고 싶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단단한 답을 들려줬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 장인들은 옛것을 그대로 보존해 후세에 이어가는 게 목표라면, 저는 과학자의 관점에서 소재로써 바라본 옻칠을 알리고, 산업화, 보급화해서 옻칠 산업을 활성화하고 싶은 거죠. 한반도의 옻나무가 너무 우수하기 때문에 산업화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명품이 될 수 있는 소재라고 믿으니까요.” 

오랜 기간에 걸쳐 옻칠의 도료화를 이뤄낸 그는 이제 옻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옻칠의 대중화란 뭘까.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옻칠의 경우 그동안 없었던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 있고, 또는 작가들을 통해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그의 방법은 옻칠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들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사용법을 교육하고, 공방을 통해 교육을 마친 사람들이 작업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옻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강의 중 만들었다며 꺼낸 그림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에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환한 표정으로 액자를 쥐고 있는 그의 모습은 작품을 완성해서 무척 뿌듯한 어린아이 같았다. (이런 말 좀 그렇지만・・・) 귀 여 워・・

그가 옻칠의 대중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옻칠 산업의 부활이다. 옻액은 남쪽으로 갈수록 질이 낮고 색이 붉은데, 국내에서 채취한 옻액은 맑고 투명하고 잘 마르는 데다 아주 단단하고 강하게 건조된다. 다시 말해 굉장히 질이 좋다. 게다가 자연을 해치지 않고 무한히 얻을 수 있으니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현시대에 딱 필요한 도료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옻칠 대중화로 얻은 수익으로 농가를 지원해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고 우수한 토종 우리 나무로 직접 옻칠을 생산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70%가 산이라 전체의 10%만 옻나무를 심어도 전 세계 최강 옻칠 국가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는 사람들

나만 알고 싶은 아티스트를 나만 좋아했다간 얼마 안 가 그 아티스트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소위 '진짜 팬'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홍보하는 일을 자처한다. 커뮤니티, SNS, 기부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내 아티스트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잘 돼가는 아티스트를 보며 다시 뿌듯해한다.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전통도 그렇다. 누군가는 계속 연구와 개발을 통해 보존과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지속되어야 할 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스스로 소명을 부여하고 기꺼이 응한다. 그리고 그 사람 중 한 명이 한종수 대표다. 23년의 세월을 거쳐 단단한 성품(成品)이 되어가고 있는 구채옻칠은 오늘도 옻칠을 정직하게 사용할 사람을 기다린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찾고 또 기다린다. 

구채옻칠 탐험일지, 어땠나요? 피드백을 들려주세요.😊
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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