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평일,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어 편집자의 속이 타는 금요일입니다……. 이미 제 안에서는 제작된 책을 들고, 울며 겨자 먹으며 보도자료를 쓰고, 언론 보도와 독자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할 때인데 말이죠. 그런데 마감이 미뤄져 틈이 생겨도, 왜 보도자료를 미리 쓰기는 정말로, 절대, 이렇게까지 안 되는 걸까요?? 그래서 그건 미뤄두고 각주*를 써 보냅니다. 거의 완성된 이 책 참 좋은데 말이죠, 그 좋음을 4명 정도 알고 있는 게 문제네요. 어떻게 소개해야 더 매력적일까요? 💬💬 구독자 여러분, 11월에 무사히 진입하시기를요.
우린 망했지만 망하지 않았다?
🕯️초초

곧 출간될 『오염된 동반자』의 제목이나 카피, 표지 방향을 고민하면서, 책은 (역시) 비교적 걱정 많고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에게 잘 맞는 매체인가 싶었어요. 얼핏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내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보이는 존재, 사건, 현상, 세계를 다루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그리고 그 내용은, 특히 인문사회서의 경우, 밝고 긍정적이고 덮어놓기보다는 그 반대로 흐를 때가 많잖아요?! (과거 부모님이 제 책장을 보면서 ‘네가 이런 것만 계속 보니까 성격이 이렇지’라며 혀를 차던 모습이 생각나고……)

이 책은 넓은 의미에서 환경‘문제’를 다룹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많은 심각한 위기 가운데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해양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한 쓰레기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저자는 해양쓰레기로 여겨지는 사물들, 그것들과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바다거북·굴·소라게·플랑크톤 등의 해양 생물들, 해변·먼바다·하굿둑·해양연구원 실험실·환경단체 사무실 등 관련 장소들을 만납니다. 해양쓰레기를 줍고 분류하고 기록하는 활동에 동참하고, 다양한 행위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감응하며 연구합니다.

생각해보면,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우리는 이미 살고 있죠. 플라스틱 쓰레기란 ‘나’와의 거리가 달라질 뿐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요(플라스틱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대개 500년에서 10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 책은 이런 사실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삶을 꾸리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저자가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작업 중 하나는 간단하고 자명한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바꿔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 오염된 세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오염 ‘이후’의 이야기를 제출하는 것, 해양쓰레기를 ‘동반자’로 호명하는 것, 종말에 반대하면서 종말 이후를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래야 하는 이유와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따라옵니다. 간단한 걸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 걸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복잡한 것을 위해서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나의 생각과 달리, 해양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더 간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이야기다. 해양쓰레기는 해양 동물의 삶을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과응보를 피하려면 해양에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심리를 움직여야 하고, 정책으로 규제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세계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중략]
하지만 나는 이러한 서사와 함께 그에 따라오는 그늘진 목소리도 듣는다. 해양쓰레기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 인간의 대응은 매 순간 실패하고 있다는 패배감, 눈 밖으로 쉽게 치워버릴 수 있는 문제를 혼자만 붙잡고 있다는 고립감, 문제가 거대하고 만성적인 탓에 누적된 피로감.
[중략]
앞서 간단히 언급한 해결 방법 중에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야기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불행히도 패배의 증거는 쌓여간다.
[중략]
이 책은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 않아서 다르게 묻는다. ‘해양쓰레기가 가득한 세계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인류의 마지막 장면—종말—으로 미끄러지는 우리 시대의 상상력을 붙잡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묻도록 유도한다. 여기에는 존재의 변화 가능성과 삶의 양식을 묻는, 이른바 존재론의 문제가 섞여 있다.”
― 「들어가며」 중에서

버려진 사물들과 ‘어떻게’ 살아갈 건가(그리고 지금껏 사물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었나).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게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다르게 묻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나이브한 것이라기보다, 실패가 만연한 지금의 세계 속에서 더 중요해지는 과제라고 느끼고요. 해양쓰레기를 통한 다른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갈지는 다 다르겠지만, 이 책이 “‘무용’ 혹은 ‘무의미’의 집합으로 여겨지는 쓰레기가 결코 무의미의 담지자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의미 있는 동반자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은 보다 확신을 가지고 적어봅니다. 특히 저 같은 ‘의미충’에게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일은 아주 소중하고요.

과연 해양쓰레기를 가지고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말이냐 싶으시다면, 일단 11월 초 『오염된 동반자』를 무사히 내고서(제발) 또 기회가 닿는 대로 그 이야기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2026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4주기를 맞은 어제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서 열린 ‘이태원 거리 낭독회’에 다녀왔어요. 여러 참석자들과 돌아가며 『팔레스타인 시선집』과 『응답의 시』를 낭독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시 중 한 편을 옮겨봅니다.

「씨발 작법 같은 소리하네, 내 민족이 죽어가는 와중에」

누르 힌디 지음, 한제인 옮김

식민자들은 꽃에 관한 시를 쓴다
난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진 아이들이
곧장 들꽃이 되어버렸다고 대꾸한다
나도 달에 연연하는 시인이 되고 싶지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감옥에서 달을 보지 못한다
달은 정말 아름다워
꽃도 참 아름답지
슬플 때면 꽃을 따 돌아가신 아버지께 바친다
아버지의 눈은 여전히 알자지라 방송을 향한다
제시카가 문자로 라마단 인사 좀 그만 보냈으면 좋겠어
나도 미국인이라 발 들이는 방마다 무언가 죽는구나
죽음을 은유로 쓰는 건 귀신이 소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는 시인이나 할 짓이야
내가 죽으면 꼭 귀신이 되어 널 영원히 따라다니며 괴롭힐게
나도 언젠간 꽃이 우리 것인 양 꽃에 대한 시를 쓸게
당일바리
그날 잡은 생선

사무실 주변에 새로 문을 연 해산문 전문점 간판에서 본 단어. 저는 처음 봤는데, 여러 지역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말바루기] 시다바리 / 당일바리 [출처:중앙일보]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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