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윤주교 바리스타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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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윤주교 바리스타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  23.02.08.

독자님 안녕하세요. 2주 만이라 더 반가운 에디터 모모입니다. 차가운 날씨에 무탈하셨나요?


길어지는 겨울에 굳어질 때, 좋아하는 시구를 떠올리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없다면 /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얼어붙기에 온기를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 오늘은 이 겨울에 어울리는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며칠 전, 앨리웨이 인천점의 윤주교 바리스타(이하 비숍)가 바(bar)에서 있었던 일을 단편 에세이로 팀에게 공유해주었거든요. 이 글을 읽자마자 독자님께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중히 담아왔습니다. 흔쾌히 글을 나눠 준 비숍에게 감사를 전하며, 비숍의 시선을 통해 독자님께도 따스함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앨리웨이 인천점의 바리스타 비숍. ©박은실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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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윤주교 바리스타



1.

바리스타 파라와 2인 근무하는 날. 눈이 많이 와서일까. 뜸한 발걸음에 앨리웨이 몰 전체가 차분하다.

점심 손님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더 이상 오는 걸음 없이 한적해진 시간. 파라도 식사 시간이 되어 떠나고 나 홀로 바를 지킨다. 다음 달 커피를 잠시 탐구할 생각으로 2월의 에티오피아 데메카 원두를 소분하는 순간, 남성 두 분이 매장으로 들어오셨다.

메뉴판을 마주하자마자 드립 커피 쪽에 집중하는 어린 손님. 고등학생 정도로 추정되는데, 싱글 오리진 라인업을 뚫어져라 보며 좌우로 움직이는 눈동자에서 신중함이 여실히 느껴진다.


  - 나는 에티오피아.

  - 어우야, 여기서 커피를 고르는 거야?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분도 메뉴판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붉어진 피부, 하얗게 서린 안경이 두 사람이 눈길을 걸어왔다고 말해준다. 가만히 메뉴를 읽기 시작했지만, 열의 가득했던 어린 손님과는 다르게 어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안내가 필요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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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벨 14번 입력]

S4 HOT 1

S6 HO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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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섬세한 꽃향과 단맛이 좋은 에티오피아 다바예, 아버지는 망고와 오렌지를 떠오르게 하는 케냐 티리쿠. ‘아들 따라왔으니 안 마셔본 커피, 산미 강한 커피 한번 마셔보자.’ 케냐를 고르는 목소리에 마음의 소리가 묻어났다. 서슴없이 바 좌석 메인 브루잉 존에 자리 잡은 두 사람. 원두를 분쇄하는 나의 등 뒤로 네 개의 눈동자가 뚫어져라 나만 보고 있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2.

열렬한 눈빛의 손님들에게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분쇄한 원두의 시향을 권하고 잠시 떨어져 천천히 물을 준비했다. 두 사람은 바꿔가며 향을 맡고 서로의 느낌을 나눴다.


  - 뭔가 평소에 맡아보던 커피 향이 아닌데?

  - 응, 뭔가 향긋해.


두 사람의 대화가 충분하다 느껴질 때, 다가가 천천히 추출을 준비한다.


  - 향은 어떠셨어요?


나의 첫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질문도 쏟아진다.


  - 지금 이 향이 커피에서도 나나요?

  - 에티오피아는 워시드인가요?

  - 케냐는요?


부자 모두 궁금한 것 한가득, 흥미 한가득. 손님의 질문에 답하며 린싱을 시작하자 아들은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촬영 버튼을 누른다. 아버지 역시 내 답변을 들으면서도 시선은 드리퍼에 고정된다. 드립 커피는 처음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이왕 셋뿐인 시간, 내가 하는 행동에 설명을 붙여 추출하기로 한다. 린싱-블루밍-원푸어. 하나씩 차분히 정보를 곁들인다. 이어서 원두 카드를 건네자 말없이 정독하는 두 사람. 아들은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검색하기도 한다.


  - 아들이 커피 학원에 다니는데, 거기 선생님이 여기는 꼭 가보라고 했대요.


이 흥미 가득한 부자가 추운 눈길을 뚫고 우리에게 오게 된 이유를 알았다. 평일 오후. 아버지가 원래 쉬는 날인지 연차를 썼는지, 심심해서 따라왔는지 아들이 졸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 부자가 나란히 커피를 마시는 광경은 자체로 아름다워 한마디로 표현해내기 어렵다.



3.

어느덧 매장이 북적이고, 부자는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다른 손님의 음료를 준비하며 흘깃,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 원두 카드와 핸드폰을 보며 대화 중이다. 커피 한 모금, 말 한마디의 반복. 두 사람에게 커피 한 잔은 부족해 보인다.


  - 괜찮으시면 이 원두 향도 한번 맡아보시겠어요?”

  - 이것들이랑은 전혀 다른데요?”


부자의 흥미를 돋우기엔 몰트 블렌드가 제격이겠다. 이전에 마신 두 잔과 전혀 다른, 구운 곡물을 연상시키는 커피다. 이번에도 역시 원두 카드를 건네자마자 바빠지는 눈동자, 이어지는 질의응답.


  - 로부스타?는 뭐지?

  - 로부스타는 말이야. 그, 커피가……


로부스타의 설명은 아들에게 맡겼다. 열심히 머릿속을 뒤져 설명을 이어가는 아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 나는 조용히 몰트를 나눠 두 사람 앞에 놓았다.



4.

두 사람은 매장을 나설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책은 끝내 펼쳐지지 않았다.


  - 다음엔 아내랑 올게요.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0분 남짓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시간이었다. 메뉴를 안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책을 읽다 돌아갔을 수도 있다. 시향을 권하거나 질문에 잘 대답하지 않았다면, 나를 말 없이 지켜보다 조용히 잔을 비우는 두 사람을 상상해본다. 몰트 시음을 권하지 않았다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공부한 내용을 꺼내게 되었을까. 그저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오늘 이 부자의 시간 속에 나는 괜찮은 바리스타이지 않았을까. 항상 이럴 수 없겠지만, 언제든 그럴 수 있기를.

바리스타 비숍의 이야기, 어떻게 읽으셨나요? 마지막으로 비숍의 소감을 전하며 오늘 레터를 마칩니다. 피드백 버튼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도 함께 나눠주세요. 비숍이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또 인사드릴게요.


“무뚝뚝한 아들과 그 옆의 아버지, 두 사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흔한 일상의 한 장면이고 어디서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소통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성이 터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은 순간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 몇 시간 뒤에 바로 글을 써 내려갔거든요. 두 부자의 모습에 노래 한 곡이 떠올라 조심스레 추천해 봅니다. 잔잔한 R&B라 졸릴 수도 있지만 좋은 곡이에요. 진한 순간을 남겨주신 두 부자 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 비숍의 추천곡
Luther Vandross - Dance With My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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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교 Bishop, 바리스타

커피와 맥주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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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실 Momo, 뉴스레터 에디터

함께하기, 재미있게 하기, 의미 있게 하기. 세 가지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 조이님...! 행사 때 뵀던 기억이 나요. 다음 번 행사에서는 조이와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ㅎ 연말 행사 때는 오히려 모모, 조이 두 분 그리고 빈브라더스에 구성원 분들이 보여주신 모습에 제 눈이 더 반짝였던 기억이 나네요.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자리 만들어주세요.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커피를 더 좋아하게 만들어 주셔서,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보내주셔서 그 노고에 새삼 감사드린다는 인사도 전해요...ㅎ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메이)


💌 새로운 Joy가 나타나네요. 우리에게도 기쁨이...BB레터에 새로운 필자인 조이가 또 다른 시선으로 유익한 레터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요. 물론 BB레터가 격주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더욱 깊이 있고 양질의 콘텐츠로 꼭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기억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이 있듯이 조이에게도 행복한 초행길이 BB와 함께하시길 바랄게요! (HotCoff)


💌 우선 JOY님의 레터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독자에서 필자가 되시다니 신기하고 재밌어요.
JOY님의 생경한 시선이 어쩌면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돼요. 커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없이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돼요. 때로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당연시 여겼던 원초적이고 순수한 질문에서 특별한 발견을 하곤 하잖아요. 투명한 시선으로 분명 새로운 부분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지난 구독자 모임에서 영화 같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찬)


💌 조이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ㅎㅎ읽으면서 저 또한 BB에 반하게 되는 부분들이 공감도 됐고요. 마음속 구름이 싹 사라졌다는 표현이 참 예쁘고 와닿네요ㅎㅎ 앞으로의 조이님도 응원해요! 오늘도 좋은 레터 감사합니다. (Barista__sim)

💌 모모님이 때때로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함께 하시는 분이 생기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편안하고 유익한 뉴스레터는 물론 고인물(?) 구독자들의 정신을 번뜩 들게 해주는 뉴스레터도 기대해볼게요! :) (Pedro)

💌 귀엽네요 조이! 커피 잘 모르는 커피 회사 마케터라니 더 기대가 크네요! 커피를 잘 몰라도 뽑힐 정도로 어떤 영역에 대단한 능력자일 것 같기도. 커피 전문가들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참신한 아이디어 뱅크일 것 같기도. 옛날엔 디제잉, 타투와 잘 어울리던 바이브의 비비도 있었더랬죠.ㅋㅋ 조이가 다시 살려보세요.ㅎㅎ)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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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커피다. 동시에 커피는 커피가 아니다.'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찾아 방황하는 듯 써 내려간 '종이잡지클럽' 김민성 대표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 BB레터 #042 | 김민성
공유 숙박, 공유 오피스 플랫폼에 이어 공유 주거 산업에 몸 담고 있는 박찬빈 님의 특별한 커피 경험은 무엇이었을지, 찬빈님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 BB레터 #054 | 박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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