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작가가 그리는 우울

당신이 읽고 싶어지는 책을 소개합니다 📚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익사할 위험이 크다고 말하지만, 나는 부인한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위험의 한 가운데에 안전이 있다는 사람을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 같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우울하다는 것> 두 번째

🖋 젊은 작가가 그리는 우울

어느 순간부터 우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된 것 같습니다. 우울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가사의 노래가 청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우울로 인해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는 이제 청년들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를 이제는 고쳐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울하니까 청춘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우울은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가는 청춘의 관문이 된 셈입니다.

청년 세대의 우울은 더 이상 관념적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통계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2030 세대의 우울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이렇게 우울에 잠식된 청년들은 때때로 문학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에서 최근 젊은 작가들이 청년 세대가 공감할 만한 글과 현실적인 글로 청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리고 있는 ‘우울’은 기존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단순히 우울이 부정적이고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의 바다 한가운데에 오히려 ‘삶’이 있다고 외칩니다. ‘우울’이라는 끝없는 바다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바인드북은 지금의 한국 문학을 이끌어나가는 젊은 작가들이 어떻게 ‘우울’을 삶과 연결시키려 하고 있는지 여러분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 오늘 소개하는 책

<연필로 쓴 우울> | 장혜린

<밤의 팔레트> | 강혜빈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 조수경

🪑 우울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우울이라는 감정이 만연한 세상이 되었다지만 우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울은 아직도 감춰야 할 치부 혹은 남에게 전염시켜서는 안 될 사적인 감정으로만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우울에 대한 발화가 허용되는 것은 우울을 극복하고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성공담을 말할 때, 오직 그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우울의 극복이 아니라 우울 그 자체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장혜린 작가의 소설 같은 수필 <연필로 쓴 우울>은 그러한 시도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사진 : ⓒ 잔물결

책의 주인공은 20년 가량의 짧은 생애 동안 행복한 감정이라고는 거의 느껴본 적이 없는 중증 우울증 환자인 동시에 청년인 누군가입니다. 이제껏 아무도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았던 만성적인 우울증에 대해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 써내려간 일종의 ‘투병 기록’인 셈이죠. 우울의 치료와 극복에 대한 책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이 젊은 작가는 우울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단지 ‘우울’이라는 이 복잡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독자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전달해줄 뿐입니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를 통해 우울은 역설적이게도 삶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울을 치료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아 왔던 사회적 시각에서 우울은 얼마나 과장되고 왜곡되어 왔던가요. 삶에 스며든 우울을 거울 비추듯이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을 진실된 관점으로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책 속 한마디

“사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적이 없다. 다만 이렇게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을 뿐이었다.”

🎨 우울의 색은 어쩌면 무지갯빛

‘파란색’을 뜻하는 영어 단어 ‘blue’는 우울이라는 뜻으로도 자주 사용되죠. 우울이라는 감정에 색깔이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가장 먼저 짙은 푸른색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혜빈 작가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물감으로 삼아 ‘시’라는 짙푸른 그림을 그리는 듯한 화가와도 같은 시인입니다. 강혜빈의 시집 <밤의 팔레트>에는 다양한 색감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색 ‘블루’는 남들과는 다른 화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화자와 공존하는 우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진 : ⓒ 문학과지성사

이 시집은 남들과는 어딘가 다른 ‘나’의 존재로 인해서 혼란스러워 하고 우울을 느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울에서 비롯된 슬픔과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낸 한 생존자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강혜빈 시인의 작품들은 단순히 ‘나’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시를 통해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사실은 나와 같은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려 합니다. 이 시집은 ‘우울’이라는 푸른색 감정이 ‘나’를 거쳐 ‘우리’를 만나 살아 있다는 감각과 사랑, 그리고 용기라는 무지갯빛 감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색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색들을 조합해내는 ‘팔레트’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책 속 한마디

잘 울지 않는 게 강한 걸까 물어보면

참을수록 햇빛과 친해질 수 있다고 답하듯이

산책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울하기 때문에

화창한 날에도 우리에겐 울 권리가 있다

— 「필름 속에 빛이 흐르게 두는 건 누구의 짓일까」 중에서

🕯 아침은 밤과 가장 맞닿은 시간

우울이라는 감정이 극에 치달을 때 우리는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순간에는 죽음이 끝없이 펼쳐진 우울이라는 바다에 던져진 단 하나의 구명보트처럼 보일 때가 있죠. 삶이 아니라 안락한 죽음이 오히려 최선이라고 느끼는 이들은 분명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지는 못할지라도요.

사진 : ⓒ 한겨레출판사

조수경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인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안락사가 합법화된 가까운 미래입니다. 주인공인 서우는 오랜 시간 방 안에 틀어박혀 우울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고 결국 안락사를 진행하는 센터에 들어가게 되죠. 어떤 이들의 시각에서 서우의 선택은 단순한 ‘안락사’가 아니라 ‘자살’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오직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삶의 고통은 어떤 것인지 파고드는데요. 지독한 우울과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락한 죽음을 선택하려는 소설 속의 여러 인물들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한 가지 물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좋은 삶,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주인공 서우는 센터에서 언제든지 약을 받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만 한 달이라는 유예 기간 동안 죽음 앞에 놓인 삶의 가장 생생한 단면들을 마주합니다. 산책을 통해 느껴지는 생경한 감각,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속의 작은 웃음, 옆에 있는 이와 맞잡은 손을 타고 전달되는 미세한 떨림까지. 이 모든 것들은 죽음의 곁에 있으면서 동시에 삶을 구성해나가는 작은 조각들이 됩니다. 밝은 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이 칠흑 같이 어두운 밤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듯이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 용기 역시도 지독한 우울이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책 속 한마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꽤 소중하지. 필요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삶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삶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덧붙이기]
📺 같이 보면 좋은 드라마 : 어 밀리언 리틀 씽즈

사진 : ⓒ ABC

방송사 ABC에서 방영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어 밀리언 리틀 씽즈"는 우연한 계기로 절친한 친구가 된 네 명과 그들의 연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존, 게리, 에디, 롬은 10년 동안 우정을 유지하며 많은 일들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들의 눈에는 완벽해 보이기만 하던 존은 사무실에서 뛰어내리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는 존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시작하게 됩니다. 존이 죽은 이유를 찾으려는 친구들은 그 과정에서 우정의 위기를 맞이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인물들이 각자의 삶에 존재하던 문제를 마주하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랍니다.

시즌 1의 네 번째 에피소드에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생각하던 인물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상담사는 고민하는 내담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떨어지면 99%가 죽는데, 살아남은 1%는 대부분 자신이 다리에서 떨어질 때 사실은 자기가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도저히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상담사는 말합니다. 만약 "이렇게" 살기가 싫은 거라면, 죽음을 선택하기에 앞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그때 죽을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내담자는 상담사의 말을 듣고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극심한 우울과 고통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이렇듯 지독한 우울과 슬픔은 삶에 대한 의지와 아주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백예린

<우울하다는 것> 두 번째 '젊은 작가가 그리는 우울'에서는 이렇게 우울의 여러 측면들에 대한 글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만나보았습니다. 우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우울을 통해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며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끝없이 펼쳐진 우울이라는 바다 앞에서 우리는 종종 한없이 무기력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라앉을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아가서 우리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을 수도 있겠지요. 우울이라는 바다를 표류하는 지루한 항해 속에서도 누군가는 나의 배에 함께 손을 잡고 올라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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