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머물게 하는 체험형 전시 공간 BEST 5
2026 / 10 / 1 / NO.43
#관객을 움직이게 만드는 체험형 전시의 진화
님, 요즘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죠?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계절이라 저도 얼마 전 전시를 보러 갔어요. 천천히 둘러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작품 하나를 보고 금세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림 한 점을 얼마나 보고 있을까?’ 적어도 1분쯤은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짧더라고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관람객 150명을 지켜봤더니, 유명한 그림 앞에 머문 시간이 17초 남짓이었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줄 서서 찾아가는 전시는 조금 달라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기도 하고, 냉동고 문을 열어야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방문을 열면 사춘기 딸이 한숨을 푹 쉬고 있기도 하고요.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는 대신 몸을 움직이고 이곳저곳을 탐색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죠.

라스베이거스의 이상한 마트부터 맨발로 걷는 도쿄의 미술관, 침대 없는 침대 회사의 공연까지. 요즘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관람객이 그 안에 들어가 경험하는 공간이 늘고 있어요. 오늘은 사람들이 왜 이런 곳에 오래 머무는지, 전시와 브랜드 공간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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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머물게 하는 체험형 전시 공간 BEST 5
⏱️ 생각보다 짧은, 우리의 전시 관람 시간

그림 한 점만 그런 건 아니에요. 박물관 관람객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비벌리 세렐이 전시 110개를 살펴봤더니, 10개 중 8개는 평균 관람 시간이 20분도 채 되지 않았어요. 전시물이 여러 개 있어도 관람객이 실제로 멈춰 서서 본 건 세 개 중 하나 정도였고요.

©Unsplash

그래서인지 ‘무엇을 보여줄까’만큼 ‘어떤 경험을 남길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꽤 오래전부터 나왔어요. 1992년 박물관 관람 경험을 연구한 존 폴크와 린 디어킹은 같은 전시라도 누구와 왔는지, 어떤 기분으로 왔는지에 따라 관람 경험이 달라진다고 봤어요. 1998년에는 경영학자 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경험’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실었고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순간을 만드는 것도 가치가 된다는 이야기였어요.


요즘 관객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변화가 조금 더 선명해져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를 보면 공연·전시를 직접 관람한 사람은 60.2%로 1년 전보다 2.8%p 줄었어요. 반면 문화예술 행사에 직접 참여한 사람은 5.8%, 문화예술 교육을 경험한 사람은 8.6%로 각각 1.1%p, 2.2%p 늘었고요.

물론 이 숫자만으로 사람들이 이제 ‘보는 것보다 참여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다만 관객이 가만히 보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여요.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질문도 자연스럽게 달라졌어요. “이 작품을 어떻게 잘 보여줄까?”에서 “여기 온 사람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어줄까?”로요.

🛒 홀린듯이 두 시간 넘게 구경하는 신기한 마트

첫 번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오메가 마트(Omega Mart)〉예요. 예술과 이야기를 결합한 몰입형 공간을 만들어 온 미국의 아티스트 그룹 ‘미우 울프(Meow Wolf)’가 만든 곳이에요.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네 마트 같죠. 선반마다 상품이 빼곡하고, 직원들도 반갑게 손님을 맞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상해요. ‘미국화된 소고기’, ‘병에 담긴 영향력’, ‘타투한 치킨’, 심지어 종말 대비 코너의 ‘매머드 덩어리’까지. 이런 수상한 가짜 상품만 100가지가 넘어요.

종말 대비 코너에서 '매머드 덩어리'를 정리중인 직원의 모습 | ©Meow Wolf

더 재미있는 건 이곳의 이야기를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무실 전화기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듣고, 서랍 속 메모를 뒤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추리해야 해요. 입구에서 받은 ‘부프(Boop) 카드’를 단말기에 찍으면 숨겨진 영상과 문서도 열리고요. 아이들은 버튼을 누르고 비밀 문을 오가며 놀고, 어른들은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회사의 비밀을 파헤쳐요.

이러다 보니 관람 시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져요. 평균 체류 시간은 약 두 시간. 앞에서 살펴본 ‘전시 하나에 20분’과 비교하면 여섯 배나 길어요. 2021년 2월 문을 연 뒤 첫해에만 100만 명 넘게 찾았고요.

🦶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양말부터 벗으라고요?

오메가 마트가 ‘찾는 재미’를 준다면, 도쿄 도요스의 〈팀랩 플래닛(teamLab Planets)〉은 온몸으로 작품을 느끼게 하는 미술관이에요.

입장부터 조금 특별해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야 하거든요. 맨발로 통로에 들어서면 따뜻한 물이 발밑으로 흐르고, 조금 더 가면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방이 나와요. 그 위로 빛으로 만든 잉어들이 헤엄치는데요. 사람의 다리에 부딪히는 순간 꽃잎으로 흩어져요.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장면이 바뀌기 때문에 똑같은 풍경을 다시 보기도 어렵고요.

Drawing on the Water Surface Created by the Dance of Koi and People | ©teamLab

그래서인지 후기를 보면 “작품이 예뻤다”는 감상보다 물이 발에 닿던 느낌처럼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는 이야기가 많아요. 눈으로 본 장면보다 몸에 남은 기억을 이야기하는 거죠.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며, 2023년 4월부터 1년 동안 250만 4,264명이 이곳을 찾았어요. 한 아티스트 그룹의 작품만 선보이는 미술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해 기네스에도 이름을 올렸고요.

🚪 문 하나 열었을 뿐인데, 사춘기 딸의 부모가 되

다음은 올여름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열린 엔타쿠의 〈너무 착한데? 전 & 틀린 건 아닌데 전〉이에요. 엔타쿠는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공간 디자이너 등이 모인 일본의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일상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미묘한 순간을 전시로 풀어내요.

'사춘기 딸의 방' ©엔타쿠 공식 인스타그램(@entaku_official)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사춘기 딸의 방’이라는 문이 나와요. 열어보면 책상에서 공부하던 딸이 “왜 들어왔어?”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더니 한숨을 푹 쉬어요. 사진이나 영상인 줄 알았는데, 눈앞에 있는 건 진짜 배우고요. 옆방에서는 기념일에 레스토랑에서 50분째 연인을 기다린 사람이 등장해요. 관람객이 들어서는 순간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졸지에 ‘50분 늦은 연인’이 되어버리죠.


이 짧은 순간은 전시장 밖에서도 이어졌어요.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SNS 영상을 보고 찾아온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배우와 마주친 몇 초가 짧은 영상으로 퍼지고, 그걸 본 누군가가 다시 전시장을 찾는 거죠. 전시장 안의 경험이 SNS를 타고 다음 관람객을 불러오는 셈이에요.

<경험 경제> 저자. '조지프 파인(좌)'과 '제임스 길모어(우)'

앞서 본 세 곳은 모습도 규모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어요. “무엇을 보여줄까?”보다 “여기 온 사람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어줄까?”를 먼저 고민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물건을 팔아야 하는 브랜드는 어떨까요? 앞서 소개한 파인과 길모어는 경험 경제를 설명하며 이런 비유를 했어요. 서비스는 무대가 되고, 물건은 소품이 된다고요.

🥄 침대 회사가 침대 대신 숟가락을 나눠준 이유?

지난 9월 초, 성수동 시몬스 갤러리에서도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 열렸어요. ‘프리즈 서울’ 기간에 최고급 매트리스 ‘뷰티레스트 블랙’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요. 정작 공연장 어디에도 매트리스는 없었어요.

대신 입구에서 얼굴을 가린 직원이 숟가락을 건네며 “꿈의 세계로 가는 열쇠”라고 말해요. 무용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면 객석 없이 공간을 옮겨 다니며 공연을 보게 되고요. 숟가락의 정체는 3층에 가서야 드러나요. 꿈을 표현한 영상을 보며 그 숟가락으로 네 가지 한입 요리를 맛보는 거예요. 일반 관람객 예약은 1분 만에 마감됐다고 해요.


침대는 매일 쓰지만 자주 사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시몬스는 당장 침대를 사지 않는 사람과도 만날 방법을 만들어 왔어요. 침대 없는 철물점 콘셉트의 매장부터 햄버거를 파는 그로서리 스토어까지요. 이번에는 매트리스를 보여주는 대신, 브랜드가 이야기하는 ‘잠과 꿈’을 하나의 경험으로 만든 거예요.

🛁 화장품 매장 2층에서 공연이 열린다고요?

마지막은 러쉬 성수점이에요.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인 러쉬의 컨셉 매장인데요. 이곳에서는 1년 넘게 매장 2층 난간을 무대 삼아 공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초대장도, 예약도 필요 없어요. 골목을 걷다 노랫소리에 고개를 들면 그 순간 관객이 되는 거죠.

러쉬 성수점에서 진행된 ‘무명배우의 욕실편’ 공연 현장 ©러쉬코리아

첫 시즌 ‘무명배우의 욕실편’은 아흔아홉 번째 오디션에서 떨어진 배우가 욕조와 거품 친구들을 만나 속상한 마음을 씻어내는 이야기였어요. 공연이 시작되면 러쉬 특유의 향이 골목까지 퍼지고요. 공연을 시작한 2025년 9월에는 ‘러쉬 성수’의 네이버 검색량이 전달보다 2.4배 넘게 늘었고, 지금까지 약 4만 명이 공연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고 해요.


여기서 눈여겨볼 건 공연 자체의 재미만은 아니에요. 러쉬를 떠올리게 하는 향과 거품, ‘씻는다’는 행위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거든요. 공연을 보고 즐기는 동안 어느새 러쉬라는 브랜드의 감각까지 기억하게 되는 거예요.

💪 결국 오래 남는 건, 직접 해본 경험이에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게요. 어떤 공간은 금세 둘러보고 나오지만, 어떤 곳에서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그 차이는 꼭 화려한 기술이나 큰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어요.

앞서 본 곳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가만히 구경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맨발로 걷고, 문을 열고, 단서를 찾으며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들어갔죠. 중요한 건 이런 행동이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시몬스의 ‘잠과 꿈’, 러쉬의 향과 거품처럼 그곳에서 한 일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이야기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다음 공간을 기획할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때요?“사람들이 여기서 뭘 하면 좋을까?”“그리고 나중에 어떤 장면을 이야기하게 될까?”보여줄 것을 하나 더 채우기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야기할 장면 하나를 만드는 것. 다음 오프라인 공간은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세요.

아래 아티클 전문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해보세요!
오프라인 인사이트를 더해 줄 팝업스토어 5
박물관이 살아 움직인다 실사판: 국중박 '분장놀이'
님~! 박물관 진열장 속 유물이 무대 위를 걸어 다니는 모습, 상상해 보셨어요?

지난 9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국중박 분장놀이’ 결선이 열렸어요. 관람객이 직접 유물로 변신해 무대에 오르는 대회인데요. 2024년 작은 행사 코너로 시작했다가 지난해 ‘분장놀이’라는 이름을 달았고, 올해는 전국 권역 예선까지 열릴 만큼 판이 커졌어요.

반응도 뜨거웠어요. 지난해 83팀이었던 신청자가 올해는 275팀 643명으로 세 배 넘게 늘었어요. 결선 날에는 사전 신청한 2천 명에 현장 관객 1천 명 가까이가 더 몰렸고, 4시간 넘게 자리를 지킨 사람도 많았대요.

2026 국중박 분장놀이 대상 수상자 '백자 잉어모양 연적' ©국립중앙박물관

올해 대상을 받은 건 높이 9.4cm의 ‘백자 잉어모양 연적’이에요. 대학생 전은슬 씨가 바닥에 누워 펄떡이는 잉어를 온몸으로 표현했죠. 천장 높이에 맞추느라 9층 탑을 6층, 4.3m로 재현한 ‘청동 공양탑’ 팀처럼 기발한 분장도 등장했고요. 재미있는 건 무대가 끝난 뒤예요. 전은슬 씨는 9월 30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4만 원으로 사흘 만에 잉어 분장을 만든 이야기를 들려줬고, 박물관에서는 실제 ‘백자 잉어모양 연적’도 10월 22일까지 공개하고 있어요.


유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대신, 내가 직접 유물이 되어보는 것. 이 작은 발상의 전환이 박물관 한쪽의 코너를 3년 만에 수천 명이 모이는 무대로 키웠어요. 유홍준 관장도 “내년에는 더 성대하게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니, 벌써 2027년에는 어떤 유물이 걸어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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