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는 '여론'인가? : ‘눈팅하는 뉴비’의 시대

커뮤니티는 ‘여론’인가? : ‘눈팅하는 뉴비’의 시대

Spiral of silence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08), 2023.12.6,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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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커뮤니티, 어그로, 눈팅, 침묵의 나선, 여론

1.머리말
2. ‘한 줌’ 악성 어그로에 취약해진 커뮤니티
3. 커뮤니티는 ‘우리’인가? : 갈라파고스 효과 #기세등등 뉴비
4. 공격받을까 봐 ‘눈팅’하셨나요? : ‘침묵의 나선’ #눈팅하는 뉴비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넥슨-손가락 사태’가 한 주 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사실 관계를 요약하자면, 일부 커뮤니티에서 여성 원화가가 A게임 홍보영상에 ‘고의적으로’ ‘혐오의 표식’을 넣었다는 논란이 제기됐고, 이에 넥슨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후속조치’를 한 사건인데요.1) - 커뮤니티에서 처음 제기되었던 핵심 의혹의 요소들이 사실 관계 확인 및 인터뷰를 통해 신빙성이 없거나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이어 다수의 언론, 단체들도 잇따라 정리 기사 및 논평을 내놓고 있는 등 현재진행형입니다.

그간 저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한 SNS 반응이나 댓글들을 유심히 살펴보곤했는데요. 자주 답답해지고 한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 기사에 달린 수많은 뜨거운 댓글들 가운데, - 덩그러니 놓여있던 한 댓글을 발견했습니다. 이 댓글을 읽고는 왠지 모르게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논란에 대한 기사를 읽으려면, 논란이 무엇인지부터 공부해야 하는 세상이네요...”

<fig.1>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한 캐릭터 영상의 콘티. 일부 커뮤니티 유저들이 과거 페미니즘 관련 SNS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규탄’했으나 취재 결과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문제의 컷을 그리지 않았고(링크), 개인의 ‘일탈’로 특정 컷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링크)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왼쪽) 일부 정치인들은 ‘커뮤니티발 논란’이 있은 직후 자초지종을 알아보지 않은 채 앞다투어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상단부터 차례로 허은아, 이상헌, 류호정 의원의 발언(링크) / 스튜디오 뿌리, 허은아 의원 페이스북

저는 위의 댓글이 마음에 걸렸던 이유에 대해 한참 곰곰 생각해보았는데요.

아마도 이는, 오늘날 부쩍 늘어난 ‘커뮤니티발 논란’의 주된 특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마치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듯 뜨겁게 불타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왜 논란인지, 그 논란이 실체가 있는지, 검증된 근거는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커뮤니티 발 “창조 논란”이라는 말까지 있었죠.(링크)

그럼에도 ‘커뮤니티’의 논란은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 책임과 관련해 ‘넥슨’만 주목되곤 하는데요. 실은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커뮤발 논란’에 대해 다수의 정치인들 역시 ‘강력하게 일갈’한 바 있습니다. 논란 및 정치인의 발언을 일부 언론이 검증 없이 고스란히 받아쓰고(링크), 그런 과정에서 실체조차 모호했던 ‘커뮤니티 여론’은 한층 힘을 얻게 됩니다.

이번 사안이 만약 마무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와 같은 ‘커뮤니티 논란’의 구조 자체를 살펴보고, 무엇이 이 시대의 ‘진짜 여론’인지를 살펴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손가락 논란’ 그 자체보다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진절머리나거나 슬프고 화나게 만드는 커뮤니티의 작동 방식과 ‘여론’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추어 해찰을 해보려 합니다.

박현수의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을 지팡이 삼았습니다.

1)관련해서 현시점에도 기사, 칼럼이 많이 나왔으므로 최대한 핵심만 요약해서 적었습니다. 조금 더 사안의 자초지종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겐 다음 정리글을 추천합니다.(팩트체크 / 플랫레터) 또한 여성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피해자를 향한 강도높은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링크)

【2.‘한 줌’ 악성 어그로에 취약해진 커뮤니티】

연구자님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해본다’라는 말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을텐데요. 누군가는 커뮤니티에 회원가입을 해서 글을 쓸 수도 있고, 댓글을 적거나 혹은 조용히 가끔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엔 많은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어떤’ 커뮤니티에 들르는지가 그 사람의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다만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 공간을 어떻게 겪고 있든 - 점차 온라인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현상’을, 바깥에서 얼핏 보고 오해를 한 채 안심하고 넘어갈 순 없습니다. 온라인의 문제는 더 이상 온라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을 제대로 관찰하고 바로잡을 부분은 바로잡지 않는다면 문제는 곪아서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박현수는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이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태도를 바탕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작동 방식을 내부자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저자는 약 20년간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만큼, pgr21, 디시 등 다수의 커뮤니티에 머무르고 실제 관리자를 맡기도 하며 다양한 일을 겪어온 ‘온라인 원주민’인데요. 이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어디서 접하기 힘든 독특하고 참신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fig.2> PC통신 커뮤니티 1세대 천리안 메인 화면. ‘게시판 및 대화실 이용시 건전한 언어를 사용합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주된 접속 기기를 바탕으로 1세대(PC통신), 2세대(초고속인터넷), 3세대(스마트폰)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왼쪽)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책표지 / 천리안, 갈무리

‘커뮤니티 논란을 바라보는 자세’와 관련해서 이 책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커뮤니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내용’만 주목할 게 아니라 커뮤니티 구조를 파악하고 -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커뮤니티에 ‘혐오성 글들’이 아주 많다고 했을 때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면 ‘혐오를 하는 나쁜 사람들만 잔뜩이군’ ‘혐오는 나쁘다’ 정도에서 그칠 수 있는데요.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외부자’들이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물론 게시글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이 게시판에서 과연 누가 글을 얼마나 쓰는지, 실사용자들 가운데 몇명이나 이에 동의를 누르는지, 추천/비추천 수 표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스템상 어떤 글들이 특별히 주목 보상을 받는지,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알력 관계는 어떠한지 등의 ‘맥락적 환경’을 면밀히 살펴야 제대로 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저는 이런 걸 ‘커뮤니티 리터러시’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저는 커뮤니티 리터러시가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펴들고서 ‘온라인 원주민’인 저자의 안내를 따라 흥미로운 해찰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를 1~4세대로 구분해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는 흐름으로 이루어져있는데요.

이중 오늘날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커뮤니티는 스마트폰 시대 이후(2010년 이후)에 크게 성장한 ‘3세대 커뮤니티’2)이고요. 대부분의 ‘커뮤니티발 논란’은 3세대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레터에선 ‘3세대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칩니다.

“3세대 커뮤니티는 소수 유저의 악성 어그로에 심각하게 취약해졌다!”

저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한 3세대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특징을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친목’ 금지 = 구성원 간 ‘친목’을 경계하고, ‘익명성’ 중심
2) 관리자 OUT = 문제에 대한 관리자의 개입을 최소화
3) ‘자극적인 외부 게시물’ = 자체 생산 콘텐츠보다, 자극적인 외부 게시물을 가져오는(퍼오는) 경우가 대부분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어그로 증가’와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친목’ 금지 = 기본적으로 ‘인간 관계’는 끈적하고 양면성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알고 지내면 오지랖을 당하기도 하죠. 반면, 일절 서로 관계가 없는 동네에선 누가 수상한 사람인지 적발하기도 어렵고, 안전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는 3세대 커뮤니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친목 금지’를 짚고 있는데요. 저자는 이 때문에 ‘익명성’이 지배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간편하게 극소수의 악성 유저가 게시판 전체의 분위기를 몰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골치아픈 것은 악의를 품은 한두명의 이용자가 여러개의 아이디로 혹은 익명으로 하는 여론몰이다. 꾸준하게 추천, 좋아요 조작을 하면서 게시판 전체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려는 악성 유저들은 어디에나 있다. 현재 이들을 잡아내고 관리하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이제 타인보다 자신의 의견을 더 강하게 주장하려 하는 극소수의 헤비 유저가 하는 조작에 의해 하나의 커뮤니티 전체가 휘둘리는 것은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현수,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이하 동일)

대체 누가 ‘여러 명인 척하고 어그로를 끄는 분탕 유저’인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3세대 커뮤니티는 비록 ‘친목질’의 부정적인 영향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우회 접속을 통한 어그로성 글의 도배, 추천수, 댓글 조작 등에 심하게 취약해졌습니다.

2) ‘관리자 OUT’ =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대부분의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불량 게시글을 적극 제재할만한 ‘구실’도 ‘유인’도 없습니다.

대체로 악성 유저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억압’에 반대하곤 하고요. 더구나 오늘날 커뮤니티엔 자극적, 혐오 게시글이 많을수록 광고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관리자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관리할 이유도 없죠.

운영진은 조작, 여론몰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난감한 상황에 자주 처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조작과 여론몰이로 유저들을 자극하여 글 리젠, 곧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운영진 입장에서 긍정적이다[…]악성유저들은 쉽게 공정성을 구실로 삼을 수 있다[…]대부분의 경우 운영진은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fig.3> 2018년 리옹에서 열린 국제월드와이드웹 컨퍼런스에서 이목을 모은 커뮤니티의 갈등 발생 및 요인과 관련된 논문(링크)의 핵심은, "1%도 안되는 소수가 전체 갈등의 74%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익명 게시판은 이런 갈등조장이 훨씬 더 자유롭게 일어납니다. (왼쪽·기사링크) 주목도가 높은 디시의 '실시간베스트' 갤러리의 대부분은 타 플랫폼, 커뮤니티 등에서 가져온 혐오를 조장하는 '퍼온 글'이 주를 이루고 있고, 이런 글들을 생산하는 주체는 익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회원이 자체 생산한 게시글도 있긴 하지만 소수이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편입니다. 커뮤니티 안에서도 복잡한 알력관계가 있는 거죠./ 신문과방송, 사이트 화면 갈무리

3) 마지막으로 3세대 커뮤니티의 주요한 특징은 게시판에 ‘자극적인 외부 게시물(펌게시물)’이 주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2세대 이전) 정적인 커뮤니티에선 굳이 억지스럽게 자극적인 컨텐츠로 눈길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나 사진,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분석글 등 자체적인 콘텐츠들을 생산했죠. 내가 직접 만든 요리, 키우는 강아지 사진, 영화평, 취미용품 자랑 같은 것이요.

하지만 3세대가 되며 스마트폰을 쥔 ‘뉴비’들이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하고, 개개인의 방문이 쏠쏠한 ‘광고수익’이 되자 - 3세대 커뮤니티들은 최대한 ‘가성비’ 높은 방법으로 이들의 ‘관심’을 최대한 많이, 오래 끌기 위한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자체 생산 게시글’보다는 외부 커뮤니티 등의 자극적인 ‘게시물’들을 퍼오기 시작한 것이죠.3)

3세대 커뮤니티는 2세대와 1세대의 소스를 재생산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기존의 소스가 자극적으로 변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이 재생산한 자극적인 소스들은 온라인 전반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본 많은 뉴비가 3세대 커뮤니티로 유입되었다. 새로운 소스의 생산보다 주목받았던 외부 소스를 재생산하는 것이 시선을 끌기에는 더 가성비가 좋았다[…]많은 신규 유저가 지속적으로 들어왔고, 동일한 소스를 반복해도 흥미를 갖는 층이 유지되었다. 2010년 이후 3세대 커뮤니티들이 오랜 시간 역사, 정치 이슈들과 젠더 이슈 등의 소스를 동일하게 반복하면서도 계속 덩치를 불릴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간 알쏭달쏭하지만, 주요 커뮤니티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게시판(유머, 이슈, 시사, 베스트 등)에 현재 어떤 글들이 주로 올라오고 있는지를 보시면 실감이 되실 것같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유입 유저’들의 시선을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선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전문적인 축구 얘기만 하면 안됩니다. 지나가던 누구나 화를 내며 관심을 가질 만한 자극적인 ‘퍼온 게시물’이 수익엔 훨씬 도움이 되죠.(사실관계는 별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왜곡, 가짜뉴스인 편이 ‘매력적’이죠)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만의 ‘차별화’를 위해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고 - 다른 커뮤니티, 집단을 배척하고 욕하는 게시글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과거엔 ‘영화 커뮤니티’ ‘스포츠 커뮤니티’같은 식으로 취미, 분야에 따라 커뮤니티가 나뉘었다면 - 갈수록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얘길 하게 되었고(=수익성이 좋은 자극적인 게시물), 3세대 커뮤니티들은 어떤 사안에 대한 ‘집단적 반응’으로만 구분되게 되었다는 겁니다.

같은 이념을 외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었다[…]3세대 커뮤는 독창적인 무언가보다는 같은 내용의 반복과 확대에 집중하는 장소로 변하게 되었다[…]사이버 발칸화는 사이버 공간에서 관점과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싫어하고 적대하는 인터넷 분열 현상을 뜻한다.

물론 이처럼 ‘자극적인 게시물’을 맘껏 퍼오고, 참여를 북돋기 위해선 앞서 설명한 두가지 요인(1.익명성 2.관리부재)이 필수겠죠.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1) 친목보다 익명성이 중시돼 일부 악성 유저를 걸러낼 수단이 사라졌고, (2) 악성 유저, 혐오 게시글을 관리할 구실, 유인이 사라지며 방치되었고 (3) 자극적인 글을 위주로 공유하고 집단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3세대 커뮤니티들은 과거에 비해, 아주 적은 노력으로도 자극적인 주장/혐오가 ‘주류’처럼 보이는 것이 굉장히 쉬워진 것이죠.

2)이 책에서는 2세대, 3세대 각 커뮤니티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대신 전반적인 경향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후 3세대 커뮤니티에서 다시 2세대 커뮤니티로 넘어가는 인원도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설명했듯 1)익명성을 중심으로 하면서(*반친목) 2)관리 강도가 낮고 3)시사, 유머 등 일반 주제를 폭넓게 다루는 게시판이 있는 커뮤니티를 총칭하여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3)올드비 유저(=오래 활동한 초기 멤버)들은 여전히 취미, 특정 분야에 대한 취지에 맞는 자체 생산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3세대가 되며 기존 2세대 커뮤니티들 역시 자극적인 혐오성 퍼온 글들이 늘고 있고, 이 때문에 내부 간의 갈등도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예를 들면 축구 커뮤니티에서 축구 글 쓰지 말라고(?) 하는 경우 등)

【3.커뮤니티는 ‘우리’인가? : 갈라파고스 효과 #기세등등 뉴비】

위에서 주로 ‘구조’적인 차원에서 살펴보았다면, 이번엔 돋보기를 그 안의 ‘복작복작한 유저들’에게로 가져다대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세대 커뮤니티에서 크게 늘어난 ‘뉴비(신규 유입자)’들에 주목해보려 하는데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저자는 눈길을 끄는, 인상적인 유형의 ‘뉴비’를 소개합니다. 저는 여기에 ‘기세등등한 뉴비’라는 이름을 붙여보았습니다.

‘기세등등한 뉴비’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 세계가 곧 진실이고, 내 말이 곧 진리다!”입니다.

직접적인 사회 경험 등이 부족한 청소년 등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유형인데요. 마치 새장 안에서 태어난 새가 ‘새장 속 세계’가 전부인양 착각하듯, 커뮤니티에서 본 인물상, 자극적인 사건들을 곧이 곧대로 ‘사실’로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커뮤니티에서 ‘맘충’과 관련된 수많은 출처가 검증되지 않은 사연과 민폐 등을 그대로 진실로 믿고 특정 집단에 대한 강한 편견과 증오를 갖게 되는 거죠.

만약 이때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고,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런 ‘자극적인 썰’들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만 세상을 접한 이들은 증오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생산된 자극적인 이야기에 자신의 마음을 내맡기는 겁니다.

이처럼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들어진 인식에 대해, <여론>을 쓴 미디어학자 월터 리프먼은 ‘의사 환경(擬似環境·psuedo-enviroment)’이라고 말하기도 했죠.(링크)

<fig.4> 과거엔 데스크탑에서만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누구나 가진 스마트폰으로 거의 하루종일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커뮤니티의 ‘뉴비(신규진입자)’ 인원 및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왼쪽)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는 새장 안에서 바라본 바깥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 Unsplash

저자에 따르면 이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과도 다른데요.

이들은 세상의 진리가 전부 자신의 생각이라고 당당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 레터(✉️링크)에서도 소개했던 ‘평면 지구론자’들은 적어도 - 자신들이 ‘소수’이고, 자신들의 깨달음을 타인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인식이라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뉴비들은 곧이 곧대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죠.

저자는 이런 성향을 ‘갈라파고스화’라고 묘사합니다.

갈라파고스 같은 온라인 삶을 살다 보니 그들은 다른 이들의 존재를 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확증편향과 비슷해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3세대들은 외부인의 존재 자체를 적게 봤다. 그들은 자신들이 3세대 커뮤니티라는 틀 안에 가두어져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것이 3세대 유저들이 가지고 있던 끝없는 자신만만함의 이유였다. 자신들이 절대다수라는 믿음 말이다.

이런 성향은, 말하는 사람들이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 환경에선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고요.

특히 일관적인 경향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의견이 ‘주류’라는 인식은 아주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기 만의 상자 안에 갇힌 것처럼요.

온라인 환경의 특수성은 그들에게 확신을 더해주었다[…]어떤 입장을 가진 어떤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떄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상식적인 다수 의견이라고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베스트글은 찬반이 분명한 소재로 작성된 글이 선정되며, 조작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큼에도 불구하고 상징성을 갖는다[...] 사실 유저간의 많은 커뮤니케이션 중에서 찬반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베스트글은 마치 그 커뮤의 모든 것인 양 상징성을 갖는다. 예컨대, 찬반이 51:49로 갈리는 어떤 글은 베스트글이 될 것이다. 찬반이 7:3이고 확실하게 의견을 갖지 못한 인원이 90이라도 그 글은 베스트글이 될 것이다. 여론은 50:50이라도 그 주제에 완전히 몰입한 소수 유저의 조작은 쉽사리 여론이 100:50처럼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뉴비들은 아주 작게 부스러진 정보만을 얻고 그것이 전부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온라인에서의 삶을 구축해나간다. 그들은 그 부스러진 정보를 오프라인에 대입한다. 부스러진 정보에서 나온 작디작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분석한다.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자명하다.

이들은 비록 커뮤니티에 오래 상주하지만, 커뮤니티의 작동 방식을 파악하고 자신과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균형있는 시각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이들은 강한 신념을 기반으로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관련 발언, 행동을 하는 등 온-오프의 경계를 흩뜨립니다.

【4.공격받을까 봐 ‘눈팅’하셨나요? : ‘침묵의 나선’ #눈팅하는 뉴비】

“이제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90명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부정적인 댓글이 10개가 달렸다는 것은 그글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나머지 90명은 어떻게 보는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박현수,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신 연구자님들 가운데선 고개를 갸웃하는 분이 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속하는 거지? 지금까지의 설명 중에서는 내가 경험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실은, 오늘 커뮤니티의 올드비나 관리자, 악성 유저, ‘기세등등 뉴비’ 등보다도 제가 더 주목해보고 싶었던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눈팅하는 뉴비’인데요.

가끔 검색을 하다 우연히 걸렸을 때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한 반응을 얻고 싶을 때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종종 ‘눈팅’만 하고, 글을 쓰거나 댓글을 적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혹은 에브리타임이나 블라인드 등 (정보를 얻기 위해 속하게 된) 커뮤니티에서도 가끔 ‘실생활 질문’ ‘실질 정보’만 얻고 대부분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논쟁엔 끼어들지 않습니다. 이들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악플 세례를 받는 게 두려워서, 혹은 그 커뮤니티의 주된 분위기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해 입을 닫는 이들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3세대 커뮤니티 시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이 시대의 ‘여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결론에서 ‘눈팅하는 뉴비의 급증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성향이 극단화, 집단화되면서, 조금이라도 대세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 강력한 ‘조리돌림’을 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점차 ‘눈팅하는 뉴비’들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고 간과되곤 합니다.

온라인 내에서 기존 유저가 본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익명 뒤에 숨게 되는 것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이런 상황에서 점점 자신을 숨기고 남의 반응만을 관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유저들은 스스로를 숨긴 채로 외부 떡밥에 대한 평가만을 반복하였다[...]모두가 한 시점에 한가지 떡밥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했다. 그것은 집단을 더 강도 있게 뭉치게 하였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끝없는 단결만을 추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변화했다. 단결만을 추구하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의 생산적인 활동은 공격받기 일쑤였다[...]최근에는 어느 커뮤니티를 가도 게시물들의 조회수에 대비하여 리플의 수는 매우 적다. 이는 우리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이다. 모두가 직접적으로 반응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깜짝 놀랐는데요. 저는 이게 저만의 경험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둘러보았을 때 저는 자주 주눅이 들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커뮤니티에 제가 관심이 있던 주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달았다가 나쁜 댓글을 받고 깜짝 놀라서 한동안 인터넷 사이트를 차단해놓기도 했었는데요.4) 그 이후로 저는 웬만하면 필요한 정보만 얻을 뿐 적극적으로 글, 댓글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일상에서든 글로든 꽤나 떠들기 좋아하는 편이지만, 커뮤니티의 세계에선 존재감이 딱 ‘먼지만큼(조회수)’인 것입니다.

저자는 날이 갈수록 이런 ‘눈팅하는 뉴비’들의 존재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런 생태계는 결과적으로 더 극단적이고 더 왜곡된 커뮤니티를 낳을 뿐이라고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는 점점 더 ‘극소수만의 리그’가 되고, 이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억지로 스트레스를 이겨내거나 ‘좀 더 참을만한’ 다른 커뮤니티를 찾아 갑니다. 그 과정에서 한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나누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에 대해 차분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3세대 커뮤니티에서의 ‘솔직함’은 솔직함이 아니라, 자극적인 방식으로 집단화된, 발화권을 가진 극소수의 목소리일 뿐입니다.

<fig.5> 입을 가리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극단적일수록 공격성은 ‘외부’ 뿐 아니라 ‘내부’로도 향합니다. 커뮤니티의 규칙, 분위기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거죠. (왼쪽)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은 격변기, 논쟁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일수록 침묵의 나선 효과가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즉,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 Unsplash , 사이

마지막으로 ‘침묵의 나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독일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의 저서 <침묵의 나선>(1984)에서 우리는 ‘눈팅하는 뉴비’에 대해 흥미로운 해찰을 해볼 수 있습니다.

<침묵의 나선>의 핵심 메시지는 “격변기, 논쟁적인 주제일수록 여론은 원래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진정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묵하는 다수’를 고려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치 여론을 해변에 널린 조개껍데기처럼 그냥 주우면 되는 걸로 생각하지만(껍데기 200개...의견 200개...), 저자는 여론의 정의를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논쟁적 사안들에 관한 의견”이라고 말합니다.

노이만은 이런 ‘침묵의 나선’ 구조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내용에만 집중하면 제대로 여론을 파악할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힌 학자들은 동료 집단의 의견을 두려워하는 고립된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여론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의미와 차원들을 탐구했는데 그것은 종종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하는 불모의 작업이었다. 그들은 여론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였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침묵의 나선>

오늘날 ‘눈팅하는 뉴비’가 잔뜩인 한국의 커뮤니티는, 사실상 제대로 된 여론을 파악할 수가 없는 엉망진창에 가까운 것입니다. 왜냐면 적대적이고 집단적인 분위기에서, 기본적인 전제인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노이만은, 제대로 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여섯가지 기본 질문을 제시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여론의 맥락을 섬세하게 살피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 중 일부를 아래에 간략히 소개합니다.(p.367)

* 주어진 이슈에 대한 전체 모집단의 ‘실제’ 여론 분포는 어떠한가?

* 여론의 분위기에 대한 개인 의견 측정(‘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 남들이 보는 앞에서 특정 이슈를 말하거나 침묵하려는 경향은 어떠한가?

* 이 사안에 대한 미디어의 입장은 무엇인가?

...

저는 이 대목을 또박또박 옮겨 적으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참고한다고 할 때, 이런 질문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깊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나? - 그저 겉으로 드러난 대화의 양과 내용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요.

우리가 이런 ‘침묵의 나선’ 효과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이 효과가 제대로 된 여론 현실을 파악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잘못된 여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 등 책임있는 주체가 섣불리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 심각한 소통 실패 및 현실의 약자를 향한 구체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4) 의견 차이 뿐 아니라, 각 커뮤니티의 ‘발화 양식’도 영향이 있는데요. 이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의 경우 글을 보는 것은 자유지만, 글을 적는 것은 '닥눈삼(닥치고 눈팅 삼일/혹은 삼개월)'이라며 밀려납니다. 여전히 뉴비의 진입장벽은 실질적으로 꽤 높은거죠.

영미권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에서 과거 한 유저가 활성유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접 계산한 결과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레딧에서도 직접 글을 남기는 유저가 1.9%에 불과했다고 합니다.(링크) 이 스레드에 달린 글들 가운데서도, 이처럼 온라인에서 의견차이로 엄청난 공격을 당하고나서 반발이 두려워 글을 쓰지 않는 '럴커(=눈팅 유저)'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글들이 많습니다.

【5.맺음말】

오늘 레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3세대 커뮤니티는 구조적으로 혐오 조장, 조작에 크게 취약해졌다.
1. 커뮤니티를 익숙하게 보고 자라난 뉴비들은 이를 '현실'로 곧이 곧대로 믿게 될 수 있다
1. 이런 배경에서 '겉으로 드러난 일부 커뮤니티의 풍경'이 결코 '대세 여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두 가지 큰 과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혐오의 온상이 된 커뮤니티를 앞으로 어떻게 적극 '관리'해갈 것인가.
* 침묵의 나선이 극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어떻게하면 '진짜 여론'을 파악해 적합하게 응답할 것인가.

사실, 원래부터 “진짜 여론”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일이었습니다.(이게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면, 그 많은 마케터와 정당 관계자, 학자들이 시장 동향 파악, 여론조사를 하느라 막대한 신경성 복통에 시달릴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복잡한 과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때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대신 어떤 경우엔 숨기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 공격에 취약한 이들의 경우 더더욱요. 대신 목소리가 큰 소수의 사람들은 과대 대표 되기도 합니다.

이때 제대로 된 여론을 알기 위해선, 반드시 왜곡되고 기울어진 커뮤니티의 지평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의 어떤 집단을 도매금으로 '악마화'하거나 커뮤니티를 하는 행위 자체를 손가락질 하는 것으론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커뮤니티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오늘날 우리 중 상당수는 ‘눈팅하는 뉴비’일테니까요.

그렇다고 할 때, ‘만들어진 적대’보다는 ‘눈팅하는 뉴비’들 끼리의 연대를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저는 이 인의도 위트도 뭣도 없는 일련의 상황을 진심으로 유쾌해 할 사람은 정말이지 ‘한 줌’ 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거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서조차요.

✏️

“애초에 자신들에게 얄팍한 이해를 주입시킨 믿음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은 엿본적조차 없는 그들(독단주의자들)은 지리를 철석같이 확신하고 자신들의 이해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다. 반면에 다양한 <여론의 분위기>를 힘겹게 섭렵해온 더 큰 영혼의 소유자들은 확고한 판단에 더욱 조심스럽고 결정을 내리는 데 보다 더 신중하다.”-조지프 글렌빌(1661)

✏️

“온라인은 자신이 잠드는 땅, 눈뜨면 접하는 땅, 그리고 앞으로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현실적인 장소(다)[...]모든 생명체에게 자신이 하루를 보내는 공간과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박현수,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박현수, 『온라인 커뮤니티, 영혼들의 사회』, 갈무리, 2023.

-여러모로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학술서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분석적 에세이에 가까운데 - 일단 커뮤니티 문화를 직접 중심에서 겪은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분위기 등에서 나오는 통찰이 인상적입니다. 이때문에 확실히 기존의 학자들의 접근과는 다른 대목이 눈에 띕니다. 저자도 말했듯, 사실 이러한 커뮤니티 지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 이처럼 혐오라든지 어그로성 게시물에 대한 번역서가 아닌 한국 서적이 나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문화에 친숙한 '올드비'들을 독자로 상정한만큼 커뮤니티 역사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면 독해가 어려운 대목도 종종 등장합니다만, 책의 마지막에 용어설명이 있으니 이와 함께 검색을 하면서 읽으면 대체로 책의 논지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김경숙 옮김, 『침묵의 나선』, 사이, 2016.

-'침묵의 나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독일 저널리스트 출신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쓴 책입니다. 초판은 198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대체로 고전들이 '뻔한(뻔해진)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제대로 쥐고 읽어보면 반드시 독특한 느낌표를 얻을 수 있듯 - 이 책에서도 그런 해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출간 시점이 출간 시점이니만큼, 당연히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대체로 언론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언론의 책임도 막중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대다수 언론이 기사 가치 판단을 제대로 했다면 대부분의 커뮤니티 발 논란은 흐지부지됐을 것이라는 점에서(의미없는 사안의 경우), 이는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언론 생태와 연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링크1 링크2) 재밌는 것은(진짜 재밌진 않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3세대 커뮤니티가 혐오, 자극적 게시물에 취약해진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일부 인터넷 언론의 특성과도 정확하게 겹쳐진다는 겁니다.(자극적인 복붙, 가성비 게시글-유입 유저마저도 손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사실관계는 별 상관없음.)

윌 스토, 문희경 옮김, 『지위 게임』, 흐름출판, 2023.

-이 책의 부제는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입니다. <셀피> 등의 저서로 유명한 저자 윌 스토가 수많은 개인의 행동을 ‘지위 게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독특한 책입니다. 원래는 이 책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붙여볼까 했는데(집단X개인의 동력 차원에서), 이 책 자체만으로 꽤 독특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른 주제로도 따로 다루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튼 오늘 다룬 주제와 관련해서 이 책의 메시지를 참고해보자면, 사람들이 진짜로 혐오를 하기 위해 혐오를 하기보다는 - 자신의 모멸감에 과잉 반응을 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같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본능 자체를 '악한 것'이라고 억누르기보다는 근본적인 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는 단순히 특정 집단의 뒤틀린 욕망을 '무작정 감싸주기'가 아니라, 지위 게임이 일어나는 장(field) 자체를 조정하는 것을 통해 가능합니다. 혐오 이슈와 관련해 기존의 책들과는 좀 다른 관점의 접근이 가능하니, 관심이 있으신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은 진짜로 혐오의 국가일까?

독서시간: 약 2분 / 글자수: 약 1100자

🖍글 속 한 문장

“온라인에는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여성, 장애인, 어린이, 외국인, 노인 등 온갖 약자를 향한 조롱과 비하가 넘쳐난다. (하지만)정작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 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혐오와 차별이 오히려 '소수'다[...]'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인가'라고 물은 결과 58%가 그렇다고 답했다[...]특히 청년 세대에서는 10명 중 9명에 가까운 86%가 동의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최근 많은 사람들이 커뮤니티 발 혐오 논란에 우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죠.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여론이 아닌 진짜 전국민 대상의 여론조사를 했을 땐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커뮤니티발 혐오’는 언젠가 꼭 다루어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이렇게 다루어보게 될줄은 몰랐네요.

오늘날 커뮤니티는 여론 왜곡에 이어 학습 효과까지 도맡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 모두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구조와 관리 체계(책임)에 대한 지적이라는 점을 우선 명확히 해야합니다.

네이버 헤비댓글러 0.1%가 여론 흔든다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2500자

🖍글 속 한 문장

# 네이버 아이디 'nic1****'는 2012년 8월 가입 이후 네이버뉴스에 올라오는 기사에 3만 6253개의 댓글을 남겼다. 하루 평균 13개꼴이다. 이 이용자는 지난 20일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십니까” 고민정 돌려세운 문 대통령의 말(국민일보)'이란 기사에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와 촛불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승리하시길"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이용자가 지금까지 받은 공감 수는 37만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팩플이 네이버 포털 뉴스 댓글 작성자의 활동을 분석한 기사입니다. 네이버 뉴스 이용자의 87%가 하루에 댓글을 1개 미만으로 달았는데요. 절대 다수라고 할만하죠.

반면 하루에 댓글을 10개 이상 다는 헤비유저는 전체의 0.1%였는데, 이들이 전체 기사 댓글창의 분위기를 좌우했다는 지적입니다. 꼭 네이버 뉴스창 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은 이처럼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 오직 온라인을 통해 여론을 파악할 경우 이처럼 왜곡된 여론을 바라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문제라고?” 기업과 여론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3400자

🖍글 속 한 문장

질문 기회를 준 송동현 대표(밍글스푼)에게 돌아오는 홍보·마케팅 기획자들의 말은 “그럼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어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때는 그게 맞고 지금은 이게 맞다”고 설명한다. 콘텐츠 제작에서는 옳고 그름만큼이나 ‘적절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의견이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또는 애초에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있다면 재고를 미뤄도 되지만, 위험 감수를 줄이고 싶다면 콘텐츠 방향을 수정하는 것을 권했다.
송 대표는 “이해관계자는 원래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통제할 수 없음을 가지고 최대한 통제하는 것이 위기 관리 측면에서의 마케팅과 광고”라고 언급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사과문의 시대'라고 할만큼 어떤 광고가 논란이 되어 기업들이 위기에 처하는 일이 많습니다.(섬네일은 강남구 유튜브에 올라와 문제가 된 홍보영상입니다) 위기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습니다.

맺음말에 간단하게 ‘여론은 원래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적었는데요. 창작, 정치, 마케팅에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인이든 마케터든 창작자든 원래 여론은 파악하고 맞추기 어려운 게 ‘기본’이고,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의 마음을 어떻게 섬세하게 읽고 접근할 것인가가 결국 고민의 핵심이며 - 이는 유사이래 쉬웠던 적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같은 뇌를 이식한 로봇들의 사회가 아니라면요. 연장선상에서 저는 송 대표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기도 했는데요. 창작자, 마케터, 정치인에겐 안개낀 듯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균형있는 분석, 가치를 품고 그것을 지켜가려는 과단성이 필요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워진’ 목소리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500자

🖍글 속 한 문장

“수업의 한 과정으로 이 강의(<사회문제와 공정>)를 들은 학생들은 원하는 주제별로 저마다의 경험과 생각을 게시글로 올리며 '에타'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경합하는 공론의 장으로 바뀌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이들의 글들은 비아냥 속에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지속적 삭제를 당했다고 한다. 실망한 학생들을 보며 나임윤경 교수는 이들의 글들이 더 이상 삭제되지 않도록 아예 책으로 출간할 것을 제안했고, 학생들도 동의하여 출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공정감각>(2023, 문예출판사)은 에브리타임에서 ‘문자 그대로 지워진’ 게시글들을 모은 문집입니다.

다만 이 책을 오늘 살펴본 <온라인 커뮤니티...> 책이 지닌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커뮤니티의 기존의 발화 방식,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오프라인 논리 위주의 투박한 접근이라는 점이 지적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일관적이지 못한 관리 기준을 갖고 있긴 하지만(애초에 이 책을 읽다보면 여기 실린 글들이 ‘삭제’돼야 할 이유가 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발화자가 어떤 집단의 분위기, 발화 방식에 친숙하지 않은 경우 타깃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말 걸지를 고민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복잡한 얘기입니다만...여튼 어떻게든 균열을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돼야겠죠. / 오늘 레터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 에브리타임에 대한 대학 언론 기사입니다. (서울대저널1 전북대신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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