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4 June 25, 2024
가끔은 무언가를 완벽히 해내는 것보다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는 일이 몇 배는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잘 해내려는 마음'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이나 그 안에 자리한 고유한 경험을 앞서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새롭게 단장한 SPREAD by B(스프비)는 매거진 <B>의 조수용 발행인에 이어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블루보틀 커피 Blue Bottle Coffee의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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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블루보틀 스튜디오 서울 팝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매 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 자체에 주파수를 맞추려 집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걱정하기보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그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와 냄새, 빛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 실질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데 영감을 주는 주된 존재라고요. 블루보틀 커피라는 하나의 큰 챕터를 지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반추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임스 프리먼의 이야기는 특별치 않게 넘겼던 수많은 실재의 순간들에 대해 다시금 짚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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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BRANDS INFLUENCED YOU THE M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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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Blue Bottle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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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투명한 소리를 지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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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향을 미친 브랜드'라는 이 흥미로운 과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였습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이지만 다른 곳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을 지니고 있죠. 우선 이들은 총괄 디렉터를 선정하는 이사회가 없어 자치적으로 자신들의 수장을 선정합니다. 개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허용하는 조건 아래 운영되고 있는 거죠. 또한 비영리 단체로서 일종의 기구와 같은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이들의 연주를 한두 차례 실제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른 오케스트라와는 구분되는 베를린 필하모닉만의 소리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80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지만 이들이 내는 소리는 유려하게 흘러갑니다. 마치 유기체처럼 말이죠.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이들이 쌓아온 모든 행보는 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또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DNA에 자리한 겸손함은 요즘 브랜드에서 찾기 힘든 요소라 더욱 귀한 가치라고 여겨져요. 단원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더욱 큰 그림을 위해 구성원의 일부로서 맡은 바에 충실합니다. 만약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의 교향곡을 연주한다면, 이는 베를린 필하모닉 스스로를 이야기하고 자신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말러를 위한 연주에 오롯이 몰입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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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li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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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커피 장인 다이보 가쓰지 Katsuji Daibō는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기도 해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부지 개발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다이보는 자신의 킷사텐 kissaten(커피부터 차, 주류 및 식사까지 다양한 식음료를 취급하는 일본식 카페) 다이보 커피 Daibō Coffee를 도쿄에서 약 37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곳저곳에서 팝업을 하기도 하고 적은 양의 커피를 로스팅해 한 거래처에 납품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이보가 도쿄의 갤러리에서 진행한 팝업에 참석한 뒤, 그의 자택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과거 자신의 킷사텐처럼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도 구비돼 있었죠. 여전히 다이보는 커피의 신비로움을 탐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커피를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계속해서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지 말이죠. 그와 만난 이후 저 역시 커피와 끝난 것은 아니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탐구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어떤 또 다른 경험을 마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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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야 Hoshinoya에 가면 그들이 제공하는 접객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절대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세심한 장소 선정이나 소통법에 놀라곤 하죠.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거래 과정과 호텔 경험을 완전히 분리한 것이었습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Karuizawa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면 푸르른 녹음을 그대로 비춰내는 드넓은 통창 유리 배경의 리셉션 데스크를 볼 수 있어요. 이곳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내주는 차를 마시고 있으면 누군가가 조심스레 다가와 호텔 체크인에 필요한 여권과 신용카드를 받아 가죠. 투숙객이 안내 데스크 앞에 서서 직원들의 처리 과정을 모두 지켜보는 대신, 호시노야의 분위기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객실을 안내해 주러 옵니다. 호텔에서 필요한 거래 과정에 경계 공간을 만들어 실질적 경험을 완전히 순수하게 남겨 두는 거죠.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렇게 물 흐르듯 경험을 분리하는 감각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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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의 초석을 다진 '샌프란시스코 페리 플라자 파머스 마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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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페리 플라자 파머스 마켓 Ferry Plaza Farmers Market은 제게 MBA와도 같은 곳입니다. 커피를 시작할 당시 제 목표가 매주 열리는 이 마켓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었어요. 이곳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최근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장인 정신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이곳만의 탁월함이 있어요. 농부들이 선보이는 식재료는 두말할 것 없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고, 누가 어떤 식재료를 파는지, 왜 판매하고 있는지 같은 이유도 정확했습니다. 각 판매자가 자신이 선보이는 재료에 관해 고도로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와도 같다고 할 수 있었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에스프레소 카트에서 커피를 만들어 팔면서 아주 주요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페리 플라자 파머스 마켓은 전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손님들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는데, 이곳을 찾는 이들은 쉽사리 만족하지 않는 고객들이었어요. 아주 기민하고 섬세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토요일에 파머스 마켓을 찾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파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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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방돔 Vendôme 광장의 유서 깊은 빌딩 안에 위치한 안경점 메종 보네 Maison Bonnet는 3대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면 가문의 손자로 추정되는 분이 안경을 서너 개쯤 씌워주는데 그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델을 찾을 때까지 손님에게 거울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아요. 잘 어울려 보이는 제품을 발견하고 나서야 직접 보여 주고 얼굴에 맞게 조정해 주죠. 얼굴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도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고 그들이 안경을 제작하는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합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다소 비싸긴 하지만 안경 하나를 만들기 위해 메종 보네 워크숍에서 이뤄지는 과정 전체를 보고 있자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들이 설정한 이상을 향한 깊은 헌신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이런 노력은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무언가를 완전히 상업화하는 것도 아니고 팔기 위해 격을 낮추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가 만든 안경이 정말 중요해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결과물을 통해 손님이 스스로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이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만의 자부심과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일련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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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프리먼이 당신에게 전하는 단 하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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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늘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박물관에 다녀오는 것인데 말이죠. 제가 보낸 오늘처럼 여러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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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프리먼과의 인터뷰는 아래 영상에서 전체 내용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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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프리먼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움직이는 아이콘을 눌러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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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금요일에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스페셜 레터로 한 번 더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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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B
35 Daesagwan-Ro
Yongsan-Gu, Seoul, Korea, 0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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