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어느 아침 일이에요.
아이가 학교 갈 시간인데 식탁 위에 숙제가 그대로 놓여 있었어요.
어젯밤에 다 해놓고 안 챙긴 거예요.
지금 뛰어가면 교문 앞에서 전해줄 수 있어요.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숙제를 집어 들고, 신발을 반쯤 꿰다가, 문 앞에서 멈췄어요.
갖다주면 오늘 하루가 편해요.
아이는 곤란할 일이 없고, 저는 마음 졸일 일이 없고, 저녁 식탁도 평화롭겠죠.
안 갖다주면 아이는 선생님 앞에서 곤란해질 거고, 저는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할 거예요.
고작 종이 몇 장이에요. 뛰어가면 십 분이면 돼요.
이걸 갖다주는 게 사랑일까.
현관에 한참 서 있었어요.
요즘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속상하면 안 되는 분위기잖아요.
예전에는 부러지면 안 된다 정도였는데, 지금은 마음이 쓸리는 것조차 안 되는 데까지 왔어요.
넘어질 만한 돌은 엄마가 미리 다 치워두는 육아. 저도 그 마음을 알아요.
저도 그랬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혜린이 어릴 때 저는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그냥 뛰었어요.
준비물을 놓고 가면 챙겨다 줬고, 비 오는 날엔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 있었어요.
친구 사이에 서운한 일이 생기면 제 마음이 먼저 뛰었어요.
상대 엄마 번호를 찾아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밤이 되곤 했어요.
아이가 속상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저는 제일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돌아보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 시절 제가 대신 뛰어준 수십 번 중에 혜린이한테 남은 게 뭔지 생각해보면, 없어요.
아이는 그대로였고, 다음에도 같은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뛰는 건 또 저였어요.
제가 부지런할수록 아이가 배울 일은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
심리학에서는 이걸 도둑질이라고 부른대요.
부모가 아이 일을 대신 해주는 것.
레고를 대신 맞춰주고, 숙제를 대신 마무리해주고, 갈등을 대신 풀어주는 것.
겉으로는 사랑인데, 실제로는 아이가 스스로 해볼 기회를 훔치는 거라고요.
어릴 때는 결과가 좋아 보여요.
그런데 스스로 해본 적 없는 아이는 언젠가 자기 몫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아요.
남이 대신 뛰어준 경기를,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뛰라고 하면 너무 까마득하니까요.
마음은 근육과 닮았다고 해요.
근육은 다치지 않아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조금 찢어졌다가 아물면서 강해져요.
아이 마음도 그래요. 속상한 일을 겪고, 소화하고, 다시 나가면서 단단해져요.
엄마가 매번 먼저 뛰면 아이는 찢어질 일이 없고, 찢어질 일이 없으면 아물어볼 일도 없어요.
근육이 생길 자리가 없는 거예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그렇게 배워요.
살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 곤란해지는 날이 있고,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은 날이 있어요.
어른의 세상이 그렇잖아요.
그런데 아이 앞의 억울함을 엄마가 매번 나서서 바로잡아주면, 아이는 공평한 세상만 연습하다가 불공평한 세상으로 졸업하게 돼요.
억울함을 소화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채로요.
친구 문제는 특히 더 그래요.
저한테 오는 DM 중에 제일 많은 게 친구 이야기예요.
"그 친구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도 오고, 엄마들한테도 와요.
친구가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마음이 통째로 무너지는 거예요. 사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날 그 친구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여지를 견디는 힘이 없어요. 관계가 조금 흔들리는 상태로 하루를 버텨본 적이 없으니까요. 관계에서 부딪혀본 적이 없으니까, 작은 섭섭함도 감당 못 할 무게처럼 느껴지는 거죠.
친구가 없다는 고민도 많아요.
먼저 다가가는 것, 거절당해보는 것, 서먹한 시간을 견디는 것.
이것도 전부 겪어봐야 생기는 근육이에요.
말을 걸었다가 어색하게 끝나보기도 해야, 다음엔 덜 어색하게 거는 법을 알게 돼요.
그런데 그 기회를 못 가진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싸워본 적 없는 아이는 화해해본 적도 없고, 거절당해본 적 없는 아이는 다가가는 법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은 이래요.
숙제를 못 챙기면 곤란함을 겪어야 해요. 친구랑 싸우면 스스로 풀어야 해요. 친구가 없으면 먼저 말을 걸어야 해요.
글로 쓰니까 차가워 보이죠.
솔직히 처음에는 참는 게 일이었어요. 지금은 좀 달라요.
아이가 제 손 없이 겪어내고 무사히 돌아오는 걸 여러 번 보고 나니까, 지켜보는 쪽이 편해졌어요.
요즘은 혜린이가 친구 일을 이야기하면 그냥 끝까지 들어요.
어떻게 하라는 말은 아껴요.
좋은 양육은 아이가 서툴고 어눌하게 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말을,
이제는 붙잡지 않아도 돼요.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해둬요.
곤란했던 날, 싸운 날, 집은 편안해야 해요. 저는 캐묻지 않아요.
오늘 어땠는지 묻고 싶은 걸 삼키고 그냥 밥을 차려요.
아이가 말하고 싶어지면 그때 듣고, 끝까지 말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둬요.
찢어진 근육이 아무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이, 밖에서 다치고 온 마음도 쉴 자리가 있어야 다시 단단해지거든요.
세상은 아이를 봐주지 않지만, 집은 아이 편이라는 것.
그거 하나면 아이는 다음 날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갑니다.
물론 다 겪게 두라는 말은 아니에요.
아이가 들 수 없는 무게라는 게 있어요.
매일 반복되는 괴롭힘 같은 일에는 어른이 바로 들어가야 해요.
지켜보는 것과 방치는 다르니까요. 그 구분만큼은 엄마가 계속 보고 있어야 하고요.
그날 아침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저는 숙제를 식탁에 도로 내려놨어요.
신발을 벗고, 커피를 내리고, 식탁 위의 숙제를 몇 번이나 쳐다봤지만 그대로 뒀어요.
혜린이가 혼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 꽤 곤란했겠죠.
집에 와서 투덜투덜하더라고요.
엄마가 봤으면서 왜 안 갖다줬냐고요. 저는 네 물건은 네가 챙기는 거라고만 했어요.
그날 밤부터 자기 전에 가방을 싸더라고요.
제가 열 번 말했을 때는 안 생기던 습관이 한 번의 곤란으로 생겼어요.
닫힌 방문 앞에서 저 혼자 웃었어요.
오늘 우리 아이 앞에 놓인 돌멩이, 치우실 건가요, 두실 건가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