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누구보다 맛있는 걸 좋아하지


올해 목표 중 하나가 5kg 찌기라고 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이 목표를 공개한 뒤 살 빼기가 아니라 살 찌기가 목표라니 무슨 일이냐, 나랑 바꾸자는 말을 많이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지금보다 5cm는 더 작던 중2 시절 몸무게로, 이제 건강에 이상이 올락말락한 경계에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생리 주기가 길어지고 현기증이 심해지고 인간 자체의 파워가 떨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어쨌든 목표 달성을 위해 1월 한 달 동안 열심히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크림치즈를 잔뜩 얹은 블루베리 베이글에 아메리카노도 먹고, 두툼한 식빵을 토스트하고 라즈베리잼과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에 두유도 먹고, 바쁠 땐 오메기떡에 바나나라도 먹었죠. 말만 들어도 든든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이런 나의 노력에 보답하리라 굳게 믿고 체중계 위에 올랐는데 1kg이 빠져 있었습니다. 당장 엄마한테 하소연을 했는데요. 엄마는 니가 안 하던 짓(=아침 챙겨 먹기)을 하느라고 힘들어서 오히려 더 빠진 거니까 차라리 앞으로는 아침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엄마 미워어억!!!” 이지만 또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아서 웃고 말았네요… 역시 엄마는 다 알아…

이쯤 되니 그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몸무게가 어쨌든 상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합리화가 고개를 듭니다. ‘인도?의 요기?들은 뼈만 남은 채로 잘만 사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저의 컴플렉스 중 하나는 섭식 능력입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기억하시나요? 중학교 때 열심히 본 드라마인데요. 거기에 정려원이 연기했던 현빈의 전 여친 유희진이 열심히 밥을 먹다가 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위암에 걸렸었는데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설정이었던 것 같아요. 함께 식사를 하던 현빈 어머니(나문희였나?)는 그 모습을 보고 건강하지 못한 며느리를 들일 수 없다며… (하략)

그 장면은 공포였습니다. 저는 어디에서나 잘 못 먹는 것으로 어그로를 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초년생 시절 밥을 먹으면서 하는 업무 미팅은 최악이었습니다. 저와 처음 밥을 먹는, 대체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의 식사 자리니까요. 자리의 막내이자 ‘을’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바쁜 와중에 밥도 먹어야 했습니다. 어느 중식집에서 점심 코스 요리를 먹던 날이 떠오르네요. 앞접시에 탕수육 두 조각, 양장피 세 가닥씩만 떴는데 그걸 아직 다 못 먹었고 그런데 새로운 음식은 계속 나오고 서버는 야속하게도 접시를 치워주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더 먹으라는 배려였겠지만 제 앞에만 앞접시 7개가 남았을 때쯤 상대 업체 분들이 “왜 안 드세요” “천천히 더 드세요”라며 걱정하기 시작했고… 아무튼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사람 살려  

먹는 일은 지금도 참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음식을 컨트롤하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햄버거를 먹는다고 하면, 처음엔 쉬운데 뒤로 갈수록 어느 부분을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크기로 먹어야 후두둑 떨어트리지 않을지 잘 모르겠어요. 후반부에 가서는 애매한 햄버거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맙니다. 오뎅꼬치는 어느 정도 식혀서 어떻게 먹어야 목구멍도 안 찔리고 혀도 안 데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젓가락질을 못 하는 편도 아닌데 먹는 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빠르게 집고 떠올리고 조각내서 능숙하게 입 안으로 집어넣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만 나옵니다. 참 못났다고 생각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저작 운동은 빠르냐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중학교 때 느린 먹는 속도에 의문을 가졌던 친구가 저를 관찰한 적이 있는데요. 결론은 ‘남들이 세 번 씹을 때 너는 한 번 씹는다’였습니다. 물론 그때보단 훨씬 나아졌지만 전투적으로 열심히 먹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힘든 일입니다. 남들보다 먹는 양이 엄청나게 적은 건 아닌데 아무래도 식사 속도를 맞추어야 하니 자연히 남이 피자 세 쪽 먹을 때 한 쪽 먹게 되고… 양이 줄고… 다음엔 더 못 먹고…

어릴 때부터 조금 먹는 습관이 들었던 탓도 있습니다. 반찬을 한 젓가락씩 담을 수 있는 작은 반찬 그릇(보통 앞접시라고 부르는)이 밥그릇으로 활용되는 집에서 자랐으니까요. 엄마도 아빠도 저도 동생도 모두 그 그릇에 반 주걱씩 깔린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나마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덜 먹을까 머리를 굴렸고요.

그때부터 먹는 일은 언제나 ‘일’이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보면 가관입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세월아 네월아 먹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리클라이너에 드러눕습니다. 그 자리에서 책을 보든 스마트폰을 보든 하면서 조금 소화를 시키며 쉽니다. 그리고 다시 비척비척 식탁 앞으로 걸어가 남은 음식을 먹습니다. 화상아! 그럴 거면 먹지 마!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1인분을 먹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식사를 끝내면 대략 1시간 반 정도가 흘러 있습니다. 밥친구 시트콤을 3-4편 정도 보는 시간이죠. 식당에서는 그따위로 밥을 먹을 수 없으니 중간 휴식 없이 먹을 수 있는 정도만 먹습니다.


그나마 대학에 가고 술을 마시면서 먹는 행위와 조금 가까워졌습니다. 몸무게와 체력 최전성기를 찍었던 대학 시절, 녹두호프 이모의 끊임없는 안주 공급과-이땐 이모카세라는 말이 없었지만-밤새 이어지던 술자리는 깨어 있는 시간 모두를 뭔가 먹는 일에 쓰도록 했고, 안주와 술은 쉽게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저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최고의 한 입’,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며 정진했습니다. 제철 음식, 혐오 식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노포를 찾아다니며 좁디 좁은 위장 공간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기 위해 엄선에 엄선을 거듭했죠.

술과 맛있는 음식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제는 기록할 때! 라고 생각하며 2019년 정도부터 찍기 시작한 네이버 지도 속 별이 얼마 전 1,000개를 돌파했습니다. 별을 찍었다고 다 가느냐? 아닙니다. 이곳들과 캐치테이블, 뽈레, 신뢰할 수 있는 네이버 블로거와 유튜버 들의 크로스체크를 마친 곳만 엄선하여 방문 및 추천 진행하고 있사오니 언제든 추천 문의 환영합니다. 지역과 시간뿐만 아니라 누구와,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어떤 목적으로, 언제 방문하는지를 모두 고려하여 추천 드리오니 신뢰해주셔도 되오며… 술집 위주임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제주도에도 별 100개 찍혀 있음

먹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는 건 매우 뿌듯한 성장의 증거입니다. 나는 이제 한 인간으로서 어떠한 과업을 이루었노라. 오버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말씀 드렸듯 섭식 능력은 저의 컴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들개이빨 작가님이 설파했듯 인간은 ‘먹는 존재’인데 이 정도의 못남이라면 너는 인간 실격이다 싶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이 유독 남의 먹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던 걸까요.

술에 더해 친구들의 채찍질로 먹는 양도 나름의 계단식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면 한 개를 다 먹은 날, ‘큰사발’ 컵라면을 먹은 날, 공기밥 한 개를 다 먹은 날 제 곁에는 늘 멋진 친구들이 함께였죠. “한 개만 더” “한 걸음만 더”를 외치는 트레이너처럼 “한 입만 더” “할 수 있다”를 외치면서요. 아까 한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저에게 먹는 행위는 대체로 일이지만 좋은 친구들, 혹은 좋은 술과 함께 할 때면 즐거운 여가활동이 된다고요.

이제 저녁 약속을 위해 나가봐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팔순이 훌쩍 넘으신 외할머니의 칠순잔치 이후로 처음 호텔 뷔페에 가는 것 같군요. 오픈 이래 가장 조금 먹는 사람으로 기록될 준비를 하고 겸허히 나서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하고 맛있고 건강한 ‘먹는 존재’가 되시길!


근황: 면허를 따고 냅다 중고 아반떼(2013년생, 주행거리 6만, 대전 출신, 이름 후보 ‘철수’, ‘실베스타’, ‘실버서퍼’ 등)를 사서 운전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인왕산-북악스카이웨이-남산둘레길-강변북로를 지나는 코스였어요. 사실 운전보다 연수 선생님의, 마치 토지 오디오북 같은 끊이지 않는 스토리가 더 비중 있어서 운전 실력이 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휴 뒤의 첫 출근 잘 하셨나요? 조금만 지나면 주말이고 또 곧 삼일절 연휴가 기다리고 있으니 힘내기로 해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민해
allthatliberty@gmail.com
서울 02-6461-4143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