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사망 원인은 사망 보험금 때문에 법적인 쟁점이 됐습니다. 고인이 들었던 보험에서는 상해로 사망하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 폭염


'폭염일수'란 하루의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수를 의미합니다.


2018년의 폭염일수는 35일로, 집계를 시작한 1973년 이후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6월에만 폭염일수가 4일이어서 벌써부터 무더위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오늘은 폭염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판결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2018년 7월 22일, 경기도 광주시 거리에서 폐지를 줍던 70대 노인이 쓰러졌습니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2시 59분 사망했습니다.


7월 22일의 최고기온은 38도였습니다.


사망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인을 진료한 의사는 '일사병에 의한 사망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소견을 적었습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은 '최근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 고령의 변사자가 폐지를 수거하던 중 일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썼습니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사망 보험금 때문에 법적인 쟁점이 됐습니다.


고인이 들었던 보험에서는 '상해'로 사망하는 경우 1억 원,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 2000만 원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유가족은 '건강하던 고인이 상해로 사망했다'며 1억 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고인의 사망은 지병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2000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보험사에 나머지 보험금 80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습니다.


보험 약관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사망하면 상해로 인한 사망으로 분류합니다.


재판부는 폭염이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망에 이르게 한 외부의 요인이 중대하거나 직접적인 경우에는 고인에게 질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외래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망인이 쓰러진 2018년 7월 22일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폭염이 발생한 날인 점 (중략) 등을 종합하여 볼 때, 망인이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실외에서 폐지 수거 작업을 하다가 일사병 또는 일사병이 진전한 열사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추단되므로, 망인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입은 상해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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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망 보험금과 관련된 판결을 더 찾아봤습니다.


GOP 경계근무 중 겪은 간부·선임들의 가혹 행위로,


병원 입원 중에도 나아지지 않은 심각한 우울증과 불면으로,


콜센터 근무 중 겪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 대해


법원은 이들이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것'이 아니라, '(고의가 아닌)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망 당시 고인들이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런 판결들의 의미는 뭘까요?


폭염 노동과 군대 내 가혹 행위, 정신질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이 단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개인의 질병이나 선택),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건 아닐까요.



(이 레터는 최윤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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