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쓴 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진문 감별기'가 된 『조국의 시간』
영화 '사일런스'에 등장하는 '후미에'. 일본 에도 막부가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영화 '사일런스' 장면 캡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찬사를 보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영화 ‘사일런스’(2016)에 ‘후미에(踏み絵)’가 나옵니다.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밟는 그림’입니다. 17세기 일본 에도(江戶) 막부가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만든 나무 또는 금속 재질의 판을 뜻합니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그 위에 새기고 사람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차마 밟지 못하는 기독교도는 박해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독교사에는 십자가 밟기나 성서 훼손을 강요하며 이를 하지 못하는 이를 탄압하는 이교도들이 등장합니다. ‘후미에’의 역사가 길다는 의미입니다. 국가 사이의 전쟁 때는 투항한 뒤 전향 의사를 밝히는 상대편 병사에게 자기 나라의 지도자를 욕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2차 대전 때 미군에 생포된 독일군이 히틀러를 욕하면서 투항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신념과 사상을 확인하겠다며 특정한 말과 행동을 요구하는 일은 개명된 현대에도 나타납니다. 군사독재 시절의 한국에서는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 ‘시국사범’에게서 전향서를 받으며 “김일성 개XX”라고 외쳐 보라고 했습니다. 다수의 증언이 있습니다. 수년 전 '보수 논객' 변호사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정일ㆍ김정은 개XX라 못하면 종북 세력”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진박 감별사’를 자처한 정치인이 있었는데요, 그는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은 ‘진박(진짜 박근혜 지지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야당(지금은 여당) 측이 “5ㆍ16은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질문으로 후보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일종의 사상 검증이었습니다. 『조국의 시간』이 ‘후미에’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책을 쓴 조국 전 장관은 ‘저를 밟고 전진하시길 빕니다’(11쪽), ‘나를 밟고 전진하시길 바란다’(362쪽)고 했지만 밟지도, 받들지도 못하면서 난처해 하는 여권 정치인들이 속속 눈에 들어옵니다. 겉으론 "밟으라" 했지만, 책을 보면 자신의 결백함을 믿지 못하는 자는 ‘검찰ㆍ언론ㆍ야당 카르텔’과 한통속이라는 투로 말하고 있습니다. 온갖 일에 의견을 내 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책에 아무 말이 없습니다. 4ㆍ7 재보궐 선거 직후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외치다가 친문 세력의 비난에 바짝 엎드린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늘 '조국 사태'에 대해 한마디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예상대로 대국민 사과 발언이 나올지, 그렇다면 그 수위는 어느 정도가 될지 주목됩니다. 그 사이 ‘강성 친문’의 등에 업혀 대권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이낙연, 정세균 두 주자는 ‘나는 차마 밟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전 총리는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조 전 장관께서 뿌리신 개혁의 씨앗을 키우는 책임이 우리에게 남았다”고 했습니다. 정세균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그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 가슴이 아립니다.’ 이로써 여권에서 ‘진문’과 ‘진문 아님’의 경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조 전 장관이 낸 책이 만든 파장입니다. 이재명 지사가 뒤늦게 한마디를 한다 해도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때가 지났습니다. 조 전 장관은 책에서 내내 검찰 권력, 경제 권력, 언론 권력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 것이 이 기득권 세력의 반(反)개혁 '협잡'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조국을 밟고 지나가는 것’은 결국 그가 말하는 '카르텔'의 편에 서는 게 됩니다. 『조국의 시간』이 여권 내부에 ‘진실의 시간’을 불러들였습니다. 언젠가 올 시간이긴 했지만 갑자기 성큼 와 버렸습니다. 조국 전 장관이 던진 ‘후미에’ 때문입니다. 여러 의미로 많은 일을 하는 분입니다. 매주 한 차례 중앙일보에 글을 쓰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국 전 장관의 '밟고 전진하라'는 글은 '어디 한번 나를 밟고 지나가 보라'는 협박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시죠. 더 모닝's Pick 1. 공개 행보에 나선 윤석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연희동 거리를 걸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나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 것은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는 연희동에서 골목상권 전문가 모종린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의 대선 출마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도 '진실의 순간'을 앞당긴 『조국의 시간』의 촉매 효과 때문일까요? 😲 2. 서울옥션 회장의 '컬렉터 이건희' 회고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예술품 수집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미술품 공부를 엄청나게 했고, 국보급 작품은 어떻게든 한국으로 다시 들여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장해야 할 필요가 있고 가치가 있다면 가격을 따지지 않았는데, 돈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3. 백신 낙제로 위기 맞은 대만 총통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방역 모범국 지도자로 칭송을 받다가 추락의 길에 들어선 겁니다.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이 되는데 백신 준비를 제대로 못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임기가 3년이 남았는데요, 조기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네요. 😟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매일(월~금) 아침 뉴스레터에 새 소식을 담아 새 날을 알립니다. 세상으로 향한 작은 창을 열어 보세요. 빛과 바람과 풍경을 전합니다. 이상언의 '더 모닝' 뉴스레터를 놓치셨나요?😭 지난 뉴스레터는 아카이브 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어요. 😊 아래 버튼을 누르시면 👇 이상언의 '더 모닝' 목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