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공간을 상상하는 중

큰일이에요, 대학생 친구들과 노는 게 무척 재밌었어요. "주디님 동숲 같아요."라는 말이 좋았어요. 무해하고 편안하다는 이야기로 들려서요,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의미든, 그런 느낌을 준다는 의미든, 꾸밈없고 따뜻한 기분을 회사에서 느낄 수 있다니, 가끔은 너무 편하게 지내면 안 돼, 눈치 챙겨! 스스로 다짐하면서, 또 그런 걸 다짐해야 한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팔자 좋게 살고 있어요.


좋다는 말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으려고요. 일이 없다, 하면 일이 많아지는 것처럼 좋아, 좋아, 자꾸 말하면 왠지 덜 좋아질 것 같아 이 말을 아끼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좋은 기분이 들면 만끽해야죠. 충분히 좋아하고, 감사해하고 즐거워하고 그러다 슬퍼지면 또 슬퍼하고 그냥 그 기분에 충실해 보는 거죠.


돌아올 곳이 있어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따뜻한 게 강한 거라고 생각해요. 쓸 수 있는 마음이 그만큼 많은 거니까요. 근데 이건 주변 사람들을 포함한 환경이 주는 것이라, 고마운 기분이 들어요.

2/19 (목) : '라이프오브파이' 뮤지컬

2/20 (금) : 대외활동 발대식

2/21 (토) : 윤현상제, 이삿짐 정리 시작

2/22 (일) : 저녁 약속

2/23 (월) : 인테리어 상담

2/24 (화)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뮤지컬

2/25 (수) : 과장님 승진턱, 뮤직바

2/26 (목) : 커피인쇄소 방문

2/27 (금) : 이백사호 방문

ch1. 수제 벽돌이 구워지는 중!


시안 공방에서 동생이 수제 벽돌을 만들고 있어요.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모양들이 사랑스러워요. 흰색으로 구워서, 4월에 이사하게 될 집 현관 옆 흰 벽에 절반 높이로 붙일 거예요.


햇살, 빛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따뜻하게 쏟아져 내리는 모습도 파장에 따라 색색이 부서지는 모습도, 일렁이는 빛 그림자도 모두 좋아요. 햇살을 형상화한 거라고, 문을 열면 햇살이 타일에 비치면 좋겠다는 제작 의도를 듣고 더 마음에 들었어요.

ch2. 컨셉은, 도쿄 빈티지


아파트지만 주택 같이 개성이 느껴지는, 포근하고 다정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도쿄의 골목에서 만난, 작고 아늑한 작업실 겸 가정집 같은 느낌으로요. 이런저런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어요. 빈티지, 페브릭, 개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늑한 아지트처럼 인테리어 하고 싶어요.


토요일 낮에 엄마와 학동역에서 만나 칼국수와 보리 비빔밥을 먹고 든든한 상태로 윤현상제에 갔어요. 수많은 타일 중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이 있었어요.


롱브릭 타일에 붉은빛 도는 매질을 채워 현관에 사용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매질이 더러워질 것이 분명해서 내려놓았어요. 엄마는 다음 집을 지을 때 꼭 사용해보고 싶은 벽돌이라고 했고, 저도 다음 집 이사 가면 쓰겠다고 미련을 한가득 풀어냈어요.

현관은 최종적으로 쨍한 흙색 타일을 골랐어요. 계속 자연을 닮은 색이었으면 좋겠다, 학교 벽돌을 연상시키는 포근하고 정감 있는 색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두 가지 기준을 꼭 맞게 충족했어요. 동생의 수제 타일과도, 고동색 중문 색과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중이에요.
화장실과 부엌 타일도 두 번째 픽으로 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바닥에는 흰 타일, 둘러싼 4면의 벽에는 녹색 이태리 타일을 사용하고, 그레이색 매지를 채울 계획이었어요. 부엌에는 같은 종류의 흰색 타일을 사용하고요.
그런데 수제 타일이 색이 조금씩 달라 얼룩덜룩 해보일 것 같아, 각각 깔끔한 아이보리, 흰색의 모자이크 타일로 바꿨어요. 작은집인 만큼, 장식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아주 깔끔하고 심플한 바탕에 오브제와 소품들로 포인트를 줄 거예요.
조명은 매립등과 간접등을 설치하고, 주인공이 될 조명들은 도자기로 레이스 느낌을 낸 펜던트 조명과 벽걸이 조명, 그리고 스탠드 3가지로 조합하려고 해요. 자꾸 너무 예쁜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설레는 느낌으로 수많은 타일과 매지, 소품들을 둘러봤어요.

ch3. 내 집, 내 공간, 내 아지트


월요일에는 반반차를 내고 인테리어 상담을 했어요. 내 공간을 이모저모 꾸미는 건 엄청나게 재밌는 일이었어요. 마구 큰돈을 쓰며 쇼핑을 하는 느낌도 들고요. 상상하는 이미지를 이야기하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하나씩 논의를 하는 과정이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이상으로 설레고 도파민이 돌았어요.


17평의 작은 공간 구석구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달했어요. 어려운 인테리어 이야기를 능숙하게 하는 엄마를 보며, 맞다 우리 엄마가 집을 지어본 사람이었지, 새삼 느껴졌어요.


화장실에 단차를 두어 건식처럼 사용했으면 좋겠다, 라운드 형태의 벽면을 허물지 않고 살리고, 싱크 상부장을 없애 탁 트인 구조를 만드어 달라는 등 요청사항을 전달하는 엄마는 공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어요. 법률문제를 변호사를 대동하여 해결하는 느낌만큼 든든했어요.

지하철에서 내내 가까이에 살았어서, 역에서 집까지가 까마득하게 느껴졌어요. 평생을 서울에 살다가 떠나게 됐다는 게 슬프기도 했어요. 그래도 내가 주인인 내 집에 사는 건 전혀 새로운 경험이라, 굳세게 잘 살아내 보려고요. 여러모로 감사하는 마음도 가득이고,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멋진 프로젝트가 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내내 엄마와 작당모의를 하듯이, 싱크색과 조명색, 집안 구석구석의 인테리어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을 릴스 콘텐츠로도 풀어내 보려 해요.

ch4.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오해, 각색


짐 정리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기록물들이 하나하나 재밌었어요. 스스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중심을 이루는 요소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었던 것 같다고, 지나간 시간을 다르게 해석해 보게 됐어요.


쓰고 그리고, 만들며 사부작 거린 흔적들, 이야기가 깃든 물건들을 보물처럼 모아두는 건 지금도 계속하는 일이에요. 정리는 버리는 것이라 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만지작 거릴 수 있는 건 좀 다른 경험이라 어디까지 버릴지 고민이에요.


보드랍고 폭닥한 물건들을 좋아하고 유연하고 편안한 운동에 끌리는 것, 계속 발전적인 생각들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궁금한 것들을 찾아서 경험해 보면서 바쁘게 하루를 굴리는 게 비슷했어요.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스스로를 좀 더 이해하고 그만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같아요.


꽃보다 남자 포토카드나 알까기와 공기 게임 구슬, 계속 심을 리필할 수 있는 펜 등 먼 어린 시절까지 한바탕 돌아보고 나서야 짐이 조금 정리가 되었어요. 이제 진짜 이사하는 기분이 들고, 그동안의 시간을 정리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의식 같았어요.

ch5. 신과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뮤지컬을 봤어요. 손으로 한땀한땀 뜬 것 같은 무대였어요.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캐릭터들과 대사 덕분에 영화를 보며 느낀 신비롭고, 놀라웠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났어요.

작은 무대공간에 신들의 목욕탕, 기찻길, 마녀의 집, 온천수를 제조하는 지하실 등 성격이 다른 수많은 공간을 구현해 냈어요.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을지 놀라웠어요.


또 어릴 때는 잘 의식하지 못했던 여러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어요. 자연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 모성애에 대한 관점 등이 읽혀서 새로웠어요.

ch6. 어떤 이야기가 더 좋은가요?


박정민 배우가 나오는 라이프오브파이를 봤어요. 주인공은 마지막에 어떤 이야기에 더 끌리는가, 질문을 던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역경 앞에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해석할지 선택해야 하고, 주인공은 동물들에 빗댄 아름다운 동화로 풀어내기로 해요. 처음에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들어요. 그러다가 그 안에 담긴 진실과, 이야기를 만들어낸 엄청나게 강인한 마음과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읽어내고, 존중하게 돼요.


아름다움과 고통이 공존할 때 완벽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ch7. 의식주, 하나씩 집중해 보기


엄마가 집을 지으며, 의식주 중 ‘주거’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본 적은 처음이고 그게 너무 귀한 경험이었다고 했어요. 저도 그 정도의 강도는 아니지만, 요즘 인테리어를 하며 주거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고, 상상하는 걸 즐기고 있어요.


어디 살지 지금까지 부모님이 결정해 줬어요. 작년에 잠시 맹그로브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아무 곳이나 풀어놓으면 거기에 그냥 살았어요. 그런데 의견과 취향을 반영하며 직접 내가 살 곳을 만들어가니 의미가 무척 새롭고 행복해요. 그러면서 의식주 각각의 영역에서 깊은 취향을 만들고 싶다! 다짐했어요.


동시에 최근에 부쩍 미식의 세계에 대한 욕심도 생겼어요. 이백사호에서 만난 촉촉하면서도 알알이 탱글 하게 살아있던 굴솥밥, 플레이버타운의 설탕코팅, 코코넛, 부드러운 딸기의 조합이 말도 안 되게 절묘했던 케이크, 정동진에서 만난 과자같이 바삭한 황태멸치와 통통하고 부드러운 대구탕까지 맛있는 한 끼를 충분히 음미하며 먹는 게 너무 재밌어요.

어릴 때, 엄마가 글 쓰는 것과 맛있는 걸 좋아하니, 세계를 여행하는 푸드 칼럼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몽글한 기분도 떠오르고, 올해는 맛있는 걸 먹고 기록해 봐야겠다, 요리도 좀 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ch8. 어른들의 말은


저보다 어린 사람들을 만날 일이 너무 감사하게도 계속 있고, 특히 취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대답을 하면서 제가 꽤나 명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고민상담소를 열어달라는 열렬한 리액션에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어떤 관점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충분히 묻되, 결국 나에게 가장 맞는 선택은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른들의 말을 정말 잘 듣는 편이었는데요. 제가 답을 주는 입장이 되니, 사실 아무도 답은 알 수 없고, 답을 주는 사람들의 경험은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더 빨리 옛날 것이 되어버린다고 느끼거든요. 저를 포함해 다들 조금 덜 불안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어요.

ch9. 운동, 루틴, 매일 해도 좋은 것


클라이밍 동호회를 덜컥 신청했어요. 클라이밍과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시간 운동, 퇴근 후 필라테스를 함께 하며 일상 체육인으로 거듭나 보려고요.

ch10. 일상을 기록하기, 섬세하게 보기


요즘 소소하게 하는 게 있다면, 햇빛이 머무는 순간을 포착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걸 구경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그림자가 벽에 비친 모습이라던지, 아침과 점심 그리고 퇴근 즈음 달라지는 햇살의 느낌을 가만히 보는 게 좋아요.

최근에 딸기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딸기잼 스콘이에요.
선물 받은 키링! 이것 조차도 빨간색이네요.
귤껍질 드림
essayhe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