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활동가 여름과 밥먹다
Host
담: 엄살원 주인. 기획, 음식 등등을 한다.
유리: 엄살원 직원. 섭외, 식사 등등을 한다.
예인: 촬영 감독. 촬영하다 쉬는 시간에 가끔씩 식탁에 앉는다.
Guest
여름: 진단명 없는 아픈 사람, 그리고 활동가. 성매매 현장이 아픈 사람 정체성에 한몫했다고 합리적 의심 중이다. 진단명이 없다 보니 아픈 사람 정체성을 가져도 되는지 고민이다. 내가 경험하는 고통을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을 때도 아프다고 말한다. 엄살 부리기 대마왕. 아픈 사람들은 엄살을 더 적극적으로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내 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기 위해 통증일기를 쓰고 있다. 돌봄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몸의 나약함을 사랑한다.

진단명 없는 아픈 사람

담: 처음에 엄살원이 뭐 하는 데라고 들으셨어요?

여름: 제가 이해하기로는 아픈 사람 비건 밥 먹이는 거? 유리가 비건 밥 먹으면서 인터뷰 당하면 된다고 해서 좋다고 했죠. 

담: 정확하다. 맞아요. 흔쾌히 와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드세요.

여름: 네. (만두 한입)이 만두 너무 맛있어요.

담: 감사합니다. 여름 님이 프로필 보내주셨을 때, 거의 이 사람 초대하려고 기획한 걸로 오해받겠다 싶을 정도로 소개가 엄살원에 딱이었어요. “진단명 없는 아픈 사람”이라고요. 

여름: 저는 계속 아픈데, 어디 한 군데 정해진 곳이 아픈 게 아니라 통증이 옮겨 다녀요. 

담: 옮겨 다니는 통증은 신체적인 건가요? 예를 들면 팔, 다리 이런 식으로 옮겨 다니는 건가요?

여름: 네, 신체적인 것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아프고. 작년부터는 통증 일기를 쓰고 있어요. 아플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상태가 어떤지를 다 적어요. 자가면역 질환이 있는 친구가 그 일기를 보고 자기가 겪는 여러 가지 증상을 알려줬거든요? 저하고도 겹치는 게 있어서 류머티즘 내과에 찾아갔어요. 근데 제가 원하는 진단명 같은 건 주지 않고 아무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왜 아픈 건지 모르니까 당황스럽고, 어떤 데에선 이건 그냥 계속 약 먹어야 한다 그러고. 또 어떤 데는 가니까 현대 의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바이러스의 감염일 수도 있다 그러고. 아씨 이거 뭐지… 그랬죠. 자가면역 질환을 알려준 친구의 경우는 운이 좋게 진단에 필요한 증상이 모두 발현돼서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진단을 받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구나. 의학에서 정해놓은 기준점에 딱 맞아야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거고, 그래야 내 몸에 맞는 약도 먹을 수 있는 거고. 진단명이 없다는 게 되게 외로운 것 같아요. 아픈데. 분명히 나는 아픈데 설명은 할 수 없고, 꾀병 부리는 사람 같고, 그런 고민이 있습니다.

담: 이다울 작가 생각이 너무 나요. 혹시 아세요? 그 친구도 등의 일기라는 통증기록을 연재했었거든요. 지금은 천장의 무늬라는 단행본으로 나왔어요. 이다울 작가는 최종적으로는 섬유근육통으로 진단을 받았어요. 이 작가가 병원 다녔던 순서도 여름 님이랑 비슷해요. 원래는 체력이 짱인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파서 병원을 전전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비슷해서 놀랐어요. 외로운 일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그리고 진단명에 대한 갈망도 그렇고.

여름: 아, 들어 봤어요. 저도 주변에 아픈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진단명 없음에 대해서. 그게 얼마나 외롭고 고립되는 경험이었는지. 제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때 그 친구가 저에게 줬던 언어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류머티즘 병을 가진 사람들이 그 진단명을 찾아서 병원을 돌아다니는 기간이 평균적으로 몇 년 이상 된다고 하더라고요.

담: 류머티즘이 정확하게 뭐예요? 

여름:  뭐라 해야 될지.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데 자가면역 질환 중에서도 류머티즘, 베체트, 섬유 근육통... 종류가 많아요. 이제 류머티즘성 관절염 같은 경우는 관절에 염증이 생기거나, 관절이 강직되거나, 퇴행하거나 그런 거예요. 

담: 그러니까 자기 몸이 자기한테 알러지가 있는? 

여름: 네.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게 몸이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병이에요. 예를 들어 베체트병 같은 경우에는 몸이 엄청 약해져서 염증이 잘 생겨요. 구내염도 그냥 한두 개 나는 게 아니라 한 다섯 개 나고. 어떤 경우에는 관절통이 심하게 오기도 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여서 진단명을 찾기가 어려워요.

담: 소개에 또 그렇게 쓰셨잖아요. "엄살 부리기 대마왕. 아픈 사람들은 좀 더 꾀병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엄살 부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귀찮을 수도 있고. 차라리 안 아프다고 거짓말 하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까. 여름 님한테 엄살은 무슨 의미예요?

여름: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예를 들어 통증의 강도가 1부터 10까지 있으면 제가 경험하는 통증은 보통 5 이하거든요.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지만 너무나 불규칙적이고 장기적인 통증이 있어요. 그러면 그게 아픈 범주에 들어가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요. 제 마음 속에서도 아프다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것만 범주화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아프다”라고 말을 하기가 애매했는데요. 근데 제 애인이 약간 갓반인이거든요? 

담: 다행이네요. 균형이 잘 맞네ㅋㅋㅋㅋㅋ

여름: 네ㅋㅋㅋㅋㅋㅋ그 애인이 제가 통증 일기를 쓰는 걸 보고 “보통 사람은 그렇게까지 매일 아프지 않아.”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구나, 하고 알았죠. 통증 5 이하인데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한 게 첫 번째 엄살. 

두 번째는, 나의 괴로움, 고통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럴 때도 저는 아프다는 말을 빌려와서 쓰거든요. 그렇게 아프다고 말하는 걸 엄살 부린다고 표현했어요.

담: 그러니까 보통은 다르게 표현되는 어떤 현상을 아픈 것으로 부르신다는 거죠. 그런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여름: 신체적인 아픔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뭔가 있는 거요. 어떤 트라우마라거나. 나는 건강하지 않고, 위험한 상태고, 이 일을 못 하겠지만, 그런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리고 그게 사회적으로 납득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을 때 아프다는 말을 빌려서 쓰는 것 같아요

담: 좋은 전략인데요? 어떻게 보면 엄살을 부린다는 게 훨씬 더 에너지를 쓰는 일로 보여요. 내가 그렇게 하면 다른 아픔도 가시화가 되고, 이후로는 다른 사람도 좀 편할 수 있고요. 여름 님 그런 별명도 있잖아요. 천재 활동가.

여름: 앗… 부끄러... 

담: 저 진짜 동의하거든요. 여름 님은 천재 활동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여러 일 중에 사회운동이 뭐 그렇게 쉬운 편도 아닌데... 이게 칭찬이기도 하지만 걱정이기도 해요. 주변에 아픈데 고기능인 사람 많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너무 잘 기능해서 아픔을 의심받기도 할 것 같아요.

유리: (촬영 마치고 합류)너무 배고프다. 잘 먹겠습니다.

담: 만두 찌니까 되게 예뻐졌죠. 아까 빚을 때 걱정 많이 하셨잖아요. 이쪽이 여름 님이 빚은 거구, 이쪽이 제가 빚은 거. 거의 티 안 나지 않아? 누가 빚은 건지 잘 모르겠지? 유리 꺼는 국에 들어가는 만두처럼 빚어가지고 한 번에 알아보겠는데. 

유리: 그래도 쫌 알겠는데? 제일 예쁜 게 담이 빚은 거.  

담: 아 그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름: 만두란 거… 어렵네요.

담: 그래도 맛은 똑같아요. 오늘 카메라가 있어서 그런지 긴장을 해가지고 잘 못 빚겠는 거예요. 예전에 팝업 식당 잠깐 할 때 하루에 혼자 백 개 가까이 빚고 그럴 땐 잘했는데... 

여름: 손 다치셔서 더 그런 거 아니에요?

담: 네. 오늘 전반적으로 손이 좀 떴어요.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열어서 보여드릴 것도 아닌데 혹시 몰라서 냉장고도 싹 정리했어요. 저는 남의 냉장고 열어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여름 님 냉장고에는 지금 뭐뭐 있어요?

여름: 두 달 동안 냉장고에 봉인되어서 상한 오이와 말라비틀어진 상추, 한 달 전 밑반찬으로 해놓은 무조림이 슬슬 영혼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음식물 쓰레기 버려야 할 거 같아요. 

담: 무조림! 집에서 요리 좀 해 드시는 편이에요?

여름: 네.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주로 한식을 해 먹어요. 무조림, 찌개류, 볶음밥, 나물무침 같은 것들 위주로 먹는 거 같아요. 

담: 한식 안 하길 잘했다. 한식 잘하는 사람 입맛 무서워.

유리: 오늘 메뉴는 어떻게 구상했어요?

담: 그냥 떠오르는 대로? 오늘은 명절 느낌 났으면 좋겠어서 만두 했고, 만두랑 국수랑 잘 어울리니까 국수도 한 종류 하자. 좀 재밌게 콜드파스타 어떨까, 양식 비빔국수니까... 이런 식으로 정한 거 같아요. 

딴말인데 <나는 왜 알아요/웃어, 유머에>라고, 이랑 님이 친구들이랑 드랙 메이크업 빡세게 하고 마지막에 전을 부쳐 먹는 뮤비가 있거든요? 첨 봤을 땐 막 울었어. 너무 예쁘고 좋아서. 나도 명절에 본가 안 가는 친구들 모아서 만두 빚거나 다른 규모가 큰 음식 해 먹거든요. 좀 촌스러운데 그때마다 속으로 감동받아. 우리는 서로를 선택한 가족…그러면서ㅋㅋㅋㅋㅋㅋㅋ

유리: 좋다. 명절 음식 좋아. 여름은 명절 음식 좋아해요?

여름: 네ㅋㅋㅋㅋ

담: 좋아하는 음식 말해주세요. 나중에 또 초대할 때 반영할게요. 

여름: 주로 몸에 해로운 거… 맵고 짜고 단 거요. 

유리: 싫어하는 음식은?

여름: 콩이나 견과류 안 먹어요. 왜냐면… 맛이 재수 없어요. 특히 콩밥이 너무 싫어요! 

담: 사전  질문지에서 먹는 기쁨을 중요하게 여기시냐고 물어봤는데, 여름 님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 하셨더라고요. 저는 중요한 편인 거 같아요. 근데 그걸 인정하기가 오랫동안 창피했어요. 지금도 그렇고. 음식하고 맺는 관계가 하여튼 복잡해. 뭐 먹고서 아 살겠다, 그렇게 느낄 때도 있고, 먹어야만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도 있고. 여름 님은 음식과 관련된 좋은 기억이나 나쁜 기억이 있어요?

여름: 음식과 관련된 기억… 이런 거 말해도 되나요? 상한 음식에 대한 건데요.
저희 가족은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이후로 저를 기르는 것을 그만두고 각자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났거든요. 그래서 집에 저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됐는데, 이때부터 자취인지도 아닌지도 정의하기 모호한 생활을 하게 됐어요.  

아무도 저에게 집안일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휙 떠났기 때문에 저는 자주 상한 음식을 먹고 앓아눕곤 했어요. 친구들은 이해를 못 했어요. "왜 자꾸 상한 걸 먹는 거야?" 그러면 저는 "우리 집에 먹을 게 그거밖에 없는데? 그리고 상한 건줄 몰랐는데 먹어보니까 상했더라." 그랬어요. 

다행히 교복이 바뀌고 나서는 귀신같이 상한 음식 냄새를 잘 맡게 됐어요. 그래서 비릿하고 쉰 냄새가 나는 음식은 먹지 않게 됐는데, 그래도 버리기 아까워 보이는 음식은 먹고 탈나서 누워있고…….. 먹을 게 그거밖에 없었어요. 아니, 사실 먹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도 항상 저는 상한 줄 몰라서 먹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몰라서 먹었다는 게, 상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줄 알았다는 것보다 덜 멍청해 보이고, 덜 우스워 보이고, 덜 수치스러워서요.

담: 조금 동떨어진 얘길 수도 있는데... 저는 주변에 같이 비건 실천하자고 권하려다가도, 제일 걸리는 게 그거거든요. 이건 진짜… 부지런하게 살라는 얘기로 들리기도 할 거 같은 거예요. 직접 음식을 하고, 냉장고 속 음식을 신선하게 관리하고, 영양 밸런스를 고려하고. 근데 이건 비건 아니어도 잘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우리가 지나치게 육식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비건 지향인이 되려면 자기 돌봄 능력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게 좀 억울한 거예요. 자기 돌봄 꼭 잘해야 되나? 못하면 안 되나? 못하고도 비건일 수는 없나?

여름: 저는 자기 돌봄이란 말을 보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기 돌봄을 잘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 두기를 실패한 삶을 살고있어서... 제 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해도 한때에 지나지 않고요. 자기 몸을 돌보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고 싶은 이런 마음, 노력을 놓치지 않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걸 몰라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처럼. 

그게 최선이야?

유리: 근데 그럼 당장 너무 아파서 돌봄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요? 

여름: 애인들에게 연락해서 괴롭혀요. 사실 애인들이 돌봄을 열심히 제공한다 해서 아픈 게 사라지진 않지만요... 만성 질환자는 아픈 게 자연현상같이 늘상 있는 일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같은 건 각자 알아서 수용해라. 

유리: ㅋㅋㅋㅋㅋㅋㅋ

담: 그것도 아무한테나 요구하는 게 아니야. 어떻게 생각하면 영광이기도 해ㅋㅋㅋㅋㅋ

여름: 그럼에도 이런 걸 견디겠다 다짐하고 제 옆에 있을 거라면 어디 한번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괴롭혀줄 생각입니다.

유리: 저도 남을 많이 괴롭히며 살고 있어서, 저 같은 경우는 돌봄을 제공 받는 쪽의 입장을 좀 갈고 닦았어요. 나한테 뭔가를 줬을 때 거기에 걸맞은 다른 정신적 노동이나 이런 걸 내가 주겠다. 반드시 보답한다. 이런 거… 왕좌의 게임에서 라니스터처럼.

담: 라니스터는 항상 빚을 갚는다ㅋㅋㅋㅋㅋㅋㅋ

유리: 그렇죠. 

담: 돌봄을 주고받는 일도 쿵짝이 잘 맞아야 하는 것 같아요. 프로필 중에서 “돌봄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몸의 나약함을 사랑한다”는 말도 좋았어요.

여름: 그 프로필 문구 쓰기 전날에 제가 크게 아파서 새벽 3시에 애인을 불렀거든요. 근데 걔가 옷을 다 입고 나오려는 찰나에 아픈 게 끝났어요. 그래서 전화로 “나 다 나았어.”이랬더니 걔가 네가 이렇게 갑자기 아프니까 우리가 다시 같이 살아야겠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이게 사람 따라서 로맨틱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돌봄 당한다는 건 어쨌든 필연적으로 자유를 통제당하고, 빼앗기게 되니까. 저는 속으로 ‘시발 나의 자유를 뺏어 가겠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면 같이 살아야 되고 그럼 다시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건가?  여기서 자유라는 건 미친 여자로 살아갈 자유에요. 물론 애인이 저를 아주 잘 돌봐주지만. 제가 아주 불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하거든요. 그거 아세요? 자기 파괴적 욕구가 드는데 타인이 내 삶에 개입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못 하도록 막으면 열 받는 거. 사실 이게 애인 잘못은 아니죠. 내가 미친 탓이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돌봄을 착취할 수 없는 밖에 없는 몸에 대해 생각하고... 

담: 돌봄이라는 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이렇게 느슨한 공동체 내에서 충당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보통 애인한테 몰빵하는 방식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딱 두 사람만 서로의 바닥을 봐. 이게 인류가 일부일처를 오래 해와서 그런 건지, 사회가 기능을 못 한 건지 헷갈려요. 기능을 잘하는 사회에서는 1:1 연인 관계에 많은 의존을 하지 않아도 되나? 

여름: 그리고 아픈 당사자가 모노아모리 관계에 있는 연인한테서만 돌봄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애인이 있는데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담: 맞아. 맞아. 맞아.

여름: 그런 시선이 신경 쓰여서 애인한테 의지하게 되기도 하고. 아니면 성격 장애에 따라서도 관계의 양상이 달라요. 예를 들어 경계성 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경우. 저는 BPD 왔을 때 모두의 돌봄을 쳐냈어요. 어차피 이렇게 돌봐주다가 곧 나를 버리고 떠날 거면서, 왜 돌봄을 제공하려고 드는 거지? 그런 불신과 원망이 있었어요. 

여름: 최근에 BPD가 왔을 때는 ‘왜 사람들이 날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ㅋㅋㅋㅋㅋ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했어. 그러면 상대도 말을 하죠. 네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저는 또 그게 변명이야? 그렇게 분노를 하고ㅋㅋㅋㅋㅋ 

유리: 더 열심히 돌봤어야지!ㅋㅋㅋㅋ 

여름: 근데 정신병이 가라앉으니까 저도 같이 가라앉아서 괜찮아졌어요.

유리: 다행이네요. 

여름: 비거니즘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요. 예전에 흉폭한 채식주의자들 팟캐스트에 나가서 ‘성노동 현장에서 비거니즘 실천하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쩔 수 없이 비건 수행을 못 했던 부분, 이런 것만 얘기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손님이랑 배달 음식을 시키면 거의 고기 위주인 상황. 안 먹으면 분위기 깨는 짓이 되니까 먹게 되거든요. 그 부분을 과잉 설명한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건가. 정말로?

유리: 응. 아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안 먹어. 

여름: 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어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안 먹을 수 있었는데... 이거 약간 정신증인가? (유리: 응…….) 그리고 정병이 와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배달 음식을 계속 시켜 먹게 됐을 때, 그때도 최선을 다하지 않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역시 정신증인가?ㅋㅋㅋㅋㅋㅋㅋ

여름, 담, 유리: (잠시 그게 최선인지, 확실한지 토론)

인류는 용서받을 수 없어

유리: 저는 최선보다는 책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던 시기에는 명절마다 백화점 알바를 뛰었어요.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추석, 설날… 이럴 때 나가서 판매 MVP 찍는 걸 부업으로 해왔죠. 한번은 00 000 백화점 정육 매장에서 사무 업무를  봤어요. 그 매장에는 고기를 만드는? 발골하는 기계가 있어. 매장 위생을 완벽하게 해놓고 노동자들이 고기를 발라내서 진짜 싱싱한 고기, 최고급 고기를 만든단 말이에요. 딱 봐도 이건 내가 못 사 먹을 고기야. 진짜 비싸요. 하루에만 몇백만 원어치의 그런 선물… 고기가 팔렸거든요. 얼마였지? 일기에 써놨어요. (일기 드라이브를 찾기 시작)

그때가 제가 비거니즘에 막 진입하던 시기였어요.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 광경을 보면서 ‘인류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랬어요. 직관적으로 ‘인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게 논리적인 단계를 밟아서 드는 생각이 아니었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신성을 해치는 일로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거예요. 용서받을 수 없어….

담: 이거 신화에 그 카산드라, 아무도 자기 말 안 믿어줘서 돌아버리는 예언자나 하는 말 아니야?ㅋㅋㅋㅋㅋㅋ

유리: 저한테 그다음으로 온 생각이 뭐였냐면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책임을 지고 먹고 싶다. 고기를 먹기 위해 요구되는 단계를 다 밟고, 그러니까 이제 동물을 내가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담: 맞아. 죽여도 내가 죽여야 한다. 정을 들이고, 죽이고, 상실에 대처하고 이런 것까지...

유리: 초식 동물들 기분 좋으면 막 춤추잖아. 그런 것도 똑똑히 목격을 하고. 그러고서도 고기를 먹고 싶으면 동물을 도축하고 뼈와 살을 발라내는 일까지 책임을 져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 그날 일기 찾았어요. 보니까 하루 매출이 2억에서 3억 정도였다고 돼 있네. 대단하죠.

담: 하루에?

유리: 응. 하루에 2억에서 3억. 이 규모가 내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200만 원, 300만 원으로 축소된 거임ㅋㅋㅋㅋㅋ

담: 유리의 상상력 안에서 하루에 이백만 원이면 진짜 많이 버는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맞아ㅋㅋㅋㅋㅋㅋㅋ

담: 유리한테 부자는 그렇구나 부우-자는ㅋㅋㅋㅋㅋㅋ

유리: 한 달에 100만 원 벌었대~ 이러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 야, 너네 집에 천만 원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우와 너네 집 돈 많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 저 비슷하게 이건 용서받을 수 없는 수준의 육식이다, 그런 걸 요즘 요리 유튜브 보면서 느껴요. 유튜버들한테도 시즌별로 유행하는 고기 부위가 있거든요? 가령 토마호크가 유행하면 유명 채널마다 다 토마호크 요리를 하는 거야. 채널 이름도 고굽남, 육식맨, 고기남자… 어떤 사람은 고기가 배송 오는 것부터 보여주는데, 그 고깃덩이가 이 테이블만 해요. 그걸 펼쳐놓고 커다란 칼을 들고 발골을 해. 조리해서 먹을 때도 손으로 뚝 떼어서 주먹 쥐고 막 먹는단 말이에요. 그 장면을 보면...신고해야 될 것 같아. 

유리: 너무 존중 없어서?

담: 그런 느낌이죠. 되게 여러 포인트가 있는데, 일단 한 사람이 한 번에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야. 고기가 차고 넘쳐. 그걸 손으로 뜯어 먹으면 테이블에 고기 조각이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누가, 왜 저렇게 많이 먹어야 하나, 저래도 되나 싶어. 그중에는 완전 산골에서 산적 모자 쓰고 가마솥 뚜껑 같은 데다 밥을 먹는 사람도 있거든? 얼굴을 찌푸리고 괴성을 내면서 먹어. 그러니까 연출하고 싶은 남성성이 너무 노골적인 거야. 원시적인 마초, 사냥꾼 인간 같은 거죠. 근데 그 고기를 뭐 사냥했겠어요? 로켓 배송으로 시켰을 거 아니야? 근데 뭐라고 신고하겠어요. 고기를 주먹으로 먹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신고할 순 없잖아. 근거가 없어 딱히. 그런데도 그 장면이 어떤 혐오 표현으로 느껴졌어요.

유리: 그런 거치고 되게 많이 보셨네요.

담: 신고하고 싶어서… 신고하고 싶어서 본 거예요.

유리: 아 진짜 웃겨ㅋㅋㅋㅋㅋ

담: 인간이 죽어야 돼… 용서받을 수 없어... 이런 말 하게 되고.

유리: 저 환경 관련해서도 묵시록적인 말 많이 하거든요. 환경 정책 얘기할 때도 이 문제는 인구의 몇 퍼센트가 죽어야지 사람들이 행동할 거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되죠.

여름: 그럼 안 되죠. 죽으면 안 되죠.

담: 나도 묵시록적인 장면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장면인데, 상상하면 섬찟해서 뭐라고 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러니까 결국 지구 종말이 온 거예요. 인류가 기후 위기를 해결 못 해서, 내가 죽을 차례가 됐는데, 해일이 덮쳐와요. 해일이면 물기둥이잖아요. 그 물기둥 안에 인간이랑 동물들이랑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러다 어떤 돼지랑 나랑 눈이 마주쳤어. 그때의 수치심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종말이 왔을 때, 죽음을 목전에 둔 동물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는 거야. 그때, 어, 개미안하겠지?

여름, 유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 더 빨리 죽고 싶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종말의 해일은 공평하니까 물 안에서 모든 종이 짬뽕처럼 만나는 거야. 너무 미안하겠지. 왜냐하면 나도 알고, 나하고 눈이 마주친 동물도 알겠죠. 나하고 같은 종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을. 너희가 그랬다.. 그럴 것 같아. 왜 이렇게 종말을 상상하게 될까. 

유리: 실제로 종말이 좀 가까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오늘 낮에도 되게 더웠잖아요.

여름, 담: 맞아, 맞아. 좀 무섭게 더웠어.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

담: 이후에는 일정 따로 없으세요? 과일 먹을까요? 오렌지가 있어요.

여름: 좋아요. 저는 집에 가서 재택근무할 게 있어요. 담 님은요?

담: 저는 다른 건 없고, 여름 님 돌아가시면 수업 준비하려고요.

여름: 저도 수업 준비하는데. 

담: 진짜요? 무슨 수업?

여름: 홈리스 대상으로 한글 수업이요.

담: 한글! 어디서 해요?

여름: 홈리스 행동에서 여는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이 있어요. 사무실은 남영역에 있어요. 

담: 학생이 몇 명이나 돼요?

여름: 합치면 50명 되나? 많아요. 5, 60명.

담: 한글은 뭐부터 가르쳐야 하나요?

여름: 저희가 원래는 어린이용 교재를 가지고 자음, 모음 이런 것부터 가르쳤는데요. 교사들은 그런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한글만 배우는 데 급급한 거 아닌가, 교재 중심으로 하는 일반 정규 수업이랑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한글을 목표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삼아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자, 이런 방향이 됐어요. 매주 다양한 주제를 정해서 공부하고 있고요.. 전에는 돈 공부도 했어요. 

담: 돈 공부? 

여름: 아, 계산하는 법이요. 그 밖에도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해요. 병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내 몸에 어디가 아픈지  종이에 색칠해보고. 같이 노래 부르고, 가사 공부하고, 글 같이 읽고. 이게 무슨 글인지 토론하고 나서 오늘의 문장 같이 쓰고요.

담: 프로그램 알차네요. 얼마나 장기적인 프로젝트에요?

여름: 야학 자체는 거의  10년 넘었어요. 봄학기, 가을학기로 구성되어 있고 종강하면 방학을 해요. 한 학기당 1개월 반~ 2개월 정도 진행하고, 방학중에 교사들끼리 모여서 다음 학기에도 수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런 걸 묻고.  

홈리스 당사자분들이 정규 교육을 못 받는 계층이다 보니까 배움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그분들이 야학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거에요. 중간/기말 평가나 학생회 이런 데서 앞으로 뭘 배우고 싶은지 계속 의견을 받고 있어요. 다음 학기에는 영어 교실이 열렸으면 좋겠다 아님 컴퓨터 교실 열렸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단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할 것 같아요.

담: 한 사람이 계속 다닐 수 있는 거죠? 수업 하나 듣고 나가고 이런 게 아니라?

여름: 오래 들으시는 분들 많아요. 저희 반에는 한글 교실에 거의 5, 6년씩 나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야학이라는 게 그냥 공부만 하는 데가 아니라 공동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담: 얼마나 가르치셨어요?

여름: 저는 별로 안 됐어요. 이제 2년 정도. 저는 2019년 가을에 들어가서 지금 4학기째 하고 있어요. 

담: 재미있겠다.

여름: 재밌어요. 재미있고 힘들어요. 저희 반에는 학생이 서너 명 있는데. 학생마다 원하시는 것도 다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수업 참여도도 되게 다르고… 오래 다닐수록 학생들끼리의 관계도 수업에 엄청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날은 A랑 B랑 싸우고 둘 다 수업을 안 들어온다거나ㅋㅋㅋㅋㅋ

담: 그러면 그날은 수업에 한 분 남는 건가요?ㅋㅋㅋㅋㅋ

여름: 네. 그분이랑 저랑 소통하고ㅋㅋㅋㅋ

담: 저는 대안학교 졸업한 사람들 두 명하고 같이 글쓰기 수업하는데요. 수업 갈 때 점점 더 긴장이 돼요. 왜냐면 친구들이 공부를 너무 잘하니까 그들의 질문이 저를 압도하는 데까지 얼마 안 걸릴 것 같은 거예요. 가르치러 가는 모든 자리에서 항상 그런 긴장을 느껴요. 좋은 일이겠지만. 

야학 교사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처음에?

여름: 저는 빈곤 문제에 원래 관심이 많아서, 반-빈곤 운동 단체는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홈리스 행동에서 야학 교사를 모집한다길래, 너무 하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전에 다른 야학 교사분이랑 이야기 나눴는데 그분이 자기가 썼던 지원서를 지금 보면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도 그래요. 너무 뽑히고 싶어서 당사자성을 막 어필했어요. 나는 빈곤 당사자다! 그렇게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더 엄청난 곳이었어요. 품을 많이 들여야 했고, 긴장도 많이 해야 했고. 

저는 교사가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입 교사 오티에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야학이라는 공간은 누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 곳이다. 학생-교사가 상호작용을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았구나, 내가 너무 정규 교육의 정상성에 갇힌 수업을 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담: 근데 물론 옛날에 쓴 문장이 창피할 수도 있고, 목적이 있어서 쓰는 글은 유치해지기도 하지만… 빈곤이 우리한테 해준 게 없는데 그런 경우에라도 스펙이 되면 좋잖아요. 빈곤 팔아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은 것 같은데요? 잘 쓰셨을 것 같아요. 

여름: 그래도 구할 수 있으면 빨리 찢고 싶어요.

연대의 기술

담: 일하시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궁금해요.

여름: 성노동을 할 땐 최대한 아무 감정도 안 느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없는 거 같고, 단체에서 일할 땐 자주 기쁨을 느껴요. 우리가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성과를 이뤘을 때나, 서로 사랑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이 제가 쓴 글 보고 감상평 나눠줄 때 대체로 기쁜 거 같아요. 슬픔은 잘 모르겠어요.

담: 저 여름 님 글 너무 좋아해요. 연대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느낌?ㅋㅋㅋㅋㅋㅋ스펙트럼이 넓으신 것 같아요. 가난, 성노동, 섭식장애, 트랜스젠더 인권, 동물권, 가끔 K팝 사랑도 보여주시구... 여름 님 같은 천재 활동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요? 

여름: (웃음) 또 부끄러... 연대 어려워요… 

예전에 인천 옐로하우스(성매매 집결지)에 제가 연대를 하러 갔었어요. 근데 제가 생각했던  거하고 너무나 다른 거예요. 저는 옐로하우스 연대 요청을 온라인에서 접했는데, 보통 활동가들이 연대 활동 다녀왔습니다 하고 올리는 게시글을 보면 내부에서 갈등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까 되게 삭막하고... 모인 사람들끼리도 의견 충돌이 은근 많았어요. 싸움이 번질 것 같은 긴장이 계속됐죠. 연대자랑 당사자랑 의견이 다르다 보니 언쟁이 붙기도 하고. 우리 앞으로 보지 말자, 이러고 헤어지지만 어차피 법원에서 또 만나야 되거든요. 그러면 법원 앞에서 또 싸우고. 그런 걸 보면서 느꼈어요. 연대라는 건 아름답지 않은 거구나. 존나 싸우면서 동행하는 거구나...

담: 연대 과정에서 입장의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서로 싸울지, 서로를 피하지 않고서 어떻게 싸울 수 있을지가 굉장히 까다로운 것 같아요. 

여름: 특히 성매매 집결지에서 오래 있으려면  여성들은 억세고 성깔이란 게 있어야 되거든요. 약간의 폭력성도 갖고 있어야 되고. 몇십 년 동안 집결지에서 살아남으려고 그 마초적인 문화까지 몸으로 다 습득한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게 외부로 향할 때는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내부로 향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연대는 처음이다 보니까 고민을 많이 했었죠. 

담: 지금은 다른 분야의 활동가들하고도 많이 연대하시잖아요. 우악스러움이랄지, 그런 기질이 활동가들에게 전반적으로 있나요? 아니면 노동쟁의 현장이라든가, 말씀하신 성매매 현장이라든가, 싸움을 즉각적으로 벌여야 할 일이 많은 공간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특성인 건가요? 

여름: 저는 사실 초보 활동가라 잘 모르겠어요. 역사가 깊어지면 저도 그렇게 싸우는 게 가능해질 수도 있겠죠? 저보다 조금 윗세대인 운동가를 만난 적 있는데 저는 그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싸움의 기술이 제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달라서. 

재개발 현장에서는 용역들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해요. 짱돌을 들고 달려와서 사람을 때리려 하고, 엄청 폭력적인 상황이잖아요. 근데 그 활동가분이 짱돌 들고 달려오는 용역을 카메라로 계속 찍으면서 도망가더라고요. 그 장면이 긴박한데 너무 대단해서 막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경찰서에서 촬영 안 되는데 경찰한테 카메라 들이밀면서 그냥 찍고. 구청에도 쳐들어가서 카메라 들고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죠?!”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활동 기록이자 증거를 남기는데 너무 웃기고. 보고 많이 배웠어요.

담: 안 무서우셨어요?

여름: 처음에는 어버버버버 했어요. 저랑 비슷하게 활동 시작했던 분은 그 상황을 보고 공황이 와서 힘들어하기도 했었어요. 

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모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어디까지 강해야 하는지 모를 것 같아요. 

여름: 그래서... 연대는 기술이다. 다 배워야 한다.

담: 연대는 기술이구나.

여름: 유리는 어떻게 생각해요? 활동가의 우악스러움. 

유리: 그런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고…ㅇㅅㅇ(구석에서 조용히 오렌지 먹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