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 | 역차별 | 자기만의 방 ‘여성 전용’. 이 네 글자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뜨는 건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여성 전용 역차별.’ 애써 못 본체하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검색어를 입력합니다. ‘여성 전용 스터디카페.’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공부를 해야 하니, 아무래도 여성 전용 공간이 좋겠지요. 현위치 근처에 한 곳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눈에 들어온 기사 하나. ‘여성전용 공간 확대… 역차별 논란도 확산.’ 여성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어디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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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 파란이 여성 전용 스터디 카페를 찾는 이유는 뭐예요? 저는 첫째는 안전이고, 둘째는 편안함이에요.
파란 전 심리적인 편안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늦은 시간 조심! 밤길 조심!’이 이젠 완전히 몸에 배어버려서 해만 지면 저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달까요? (웃음)
라노 스터디 카페에서조차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민반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지만 밤새서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긴장을 늦추게 되고, 잠깐 엎드려 졸 수도 있잖아요. 공용공간에서는 그럴 때마다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노출될 위협에 대해 항상 우려하게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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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여성은 주차빌딩, 승강장, 정류장, 공원 같은 장소를 남성보다 더 두려워해요. 그리고 이 공포는 여성이 맘껏 이동하지 못하게 하죠. 밤 외출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돼버렸고, 좁은 골목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는 다니지 못해요. 대중교통과 택시까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라노 그런 인식의 바탕에는 여성은 항상 ‘무방비 상태’에서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 깔려 있을 것 같아요. 불법촬영이나 ‘시선 강간’ 등의 가능성으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는 거예요. 특히 불법촬영의 경우 한 번 유포된 촬영물은 완전히 없애기도, 가해자를 잡기도 쉽지 않다 하니… 공공장소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될 수 밖에요.
파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불법촬영과 같이 명백한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큰 문제이지만, 여성이 경험하는 위협이 범죄 구성요건에는 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점에도 주목해봐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느낌, 지속적이고 음흉한 시선, 캣콜링. ‘내가 예민한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요. 그 순간들이 모여 불안감이 되는 건데, 이런 순간은 어떤 통계에도 포착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공간이 절실한 것 같아요.
라노 맞아요. 여성 전용 공간에서는 어느 정도 이런 불안한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느낌? 저희 집은 딸만 둘이라 제가 밤에 돌아다니면 유달리 걱정을 하시는데요. 여성 전용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다가 간다고 하면 늦게까지 있어도 안심하시거든요.
그렇지만 가끔은 이런 ‘울타리’ 안에서 슬퍼지기도 해요. 평소에는 내가 그만큼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를 자각하게 되기도 하고, 이런 곳이 아니면 안전하다고 느끼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이겠죠?
파란 저희 어머니는 늘 밤 11시쯤이 되면 제게 문자를 보내세요. ‘어디야?’ 성인이 되고 오랜 시간 일탈 한 번, 사고 한 번 없었는데도요. 그 마음이 너무 이해되면서도, 가끔은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남동생은 새벽 4시에 들어와도 아무 말 없으시니까요. 같은 지붕 아래 비교군이 있다보니 제 현실이 더 불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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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 누군가는 여성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차별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이러한 공간이 왜 생겼는지를 되짚어본다면, 이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백화점 같은 곳의 여성 전용 주차장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은데요. 이전에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쇼핑하고 나오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자주 일어났다고 해요. 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여성 전용 주차장이고요.
파란 저는 여성 전용 헬스장이 떠올라요. 헬스장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공간인지 생각해볼까요. 여성이 들어서면 유쾌하지 않은 시선을 보내거나, 말을 걸거나, 훈수하는 사람이 꼭 있어요.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요. 미디어에서 그리는 ‘운동하는 여자’도, 몸에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은 날씬한 여성뿐이잖아요. 실제로 헬스장을 이용하는 여성이 주체로 등장하는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이렇듯 표면적으로는 여남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들어서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간이 많아요.
라노 같은 이유로 여성 전용 칵테일바, 게스트하우스, 택시 등이 만들어진 거겠죠. '여성 전용'이 붙은 공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기분이에요. 사실 누구보다 이런 공간이 사라지길 바라는 건 여성일 거예요. 이런 공간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으니까요.
파란 맞아요. 그런데 논점이 자꾸만 ‘안전’이 아니라 ‘전용’에 맞춰지는 게 안타까워요.
라노 자신의 공간을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남성이라면, 먼저 여성 전용 공간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하려 해보면 좋겠어요. 밤에는 더 환한 공공 장소, CCTV 사각지대가 없는 장소, 응급상황을 위한 비상 버튼 설치 등 안전설비가 강화된 지역 설계가 필요하겠죠. 언젠가는 아무도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어디에서나 여성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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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오늘의 콘텐츠 | 책 자기만의 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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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성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물쇠로 꼭꼭 잠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잠긴 문을 부수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은 ‘새장 속의 새’나 ‘인형의 집 안의 인형’에 비유되지 않았던가요? 어떻게 ‘자기만의 방’ 안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걸까요? 오늘은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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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고집스럽게 외친다. “1년에 500파운드라는 돈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물쇠를 단 방은 홀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두 가지야말로 여성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21세기 여성에게도 큰 울림을 줄 인문 에세이.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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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실마리
하나,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에서 발표한 두 강연문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요. 강연의 주제는 ‘여성과 픽션’이었습니다. 울프는 강연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해요: “나는 소설가에게 허용되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이용하여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이틀 동안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중략)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그 거짓말에는 진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진실을 찾아내고 그중에 기억할 만한 것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제 청중은 울프가 들려주는 가상의 이야기 속 ‘나’라는 인물을 뒤쫓으며, 그가 흘리고 간 ‘여성과 픽션’에 관한 생각조각을 줍습니다.
그런데 울프는 대체 왜 강연문을 픽션의 형태로 썼을까요? 그는 왜 ‘나’의 입을 빌려 말하는 걸까요? 그건 아마 여성 작가들이 다른 장르의 글이 아닌 소설을 더 많이 썼던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말이죠: “여성이 글을 쓴다면, 그 여성은 가족의 공동 거실에서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중략) 그런 곳에서라면 산문과 픽션을 쓰는 편이 시나 희곡을 쓰는 편보다 쉬울 것입니다. 집중력이 덜 필요하니까요.” 이건 결국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기 위해서는 그 누구의 방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둘,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
흔히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요. ‘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는 여성(어머니)이 만약 돈을 모으겠다고 나섰다면 어땠을 것 같냐고요. ‘나’는 아마 여성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의 아이가 다채로운 경험을 하며 자라날 순 없었을 거라고 말해요. 성장의 자양분이나 성공의 씨앗을 얻기 어려웠을 거라는 말이죠. ‘나’는 이렇게 ‘위대한 (남성의) 성과’ 이면에 늘 여성의 무급노동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결국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가사와 육아라는 무급노동은 여성의 경제적 자유는 물론 성장의 기회까지 앗아갔다는 거예요. 나아가 돈도, 사회 경험도 없는 여성은 언제까지나 집안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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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생각 조각
‘나’는 도서관에서 여성 작가가 쓴 책을 둘러봅니다. 그러다 어설프게 쓰인 소설 한 편을 꺼내들어요. 그 소설은 얼기설기 엮이고 툭툭 끊어지는 문장 투성이었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함께 잠들어 있었죠. 그 반짝이는 가능성을 발견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에게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을 주어야 해. (중략)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돈을 주라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금 쓰는 글의 절반을 다 삭제한다 해도 내버려 두자고요. (중략)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위드, 여성이 ‘시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이건 어쩌면 ‘충분한 시간’을 뜻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불완전하고 취약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괜찮은 시간이요. 그건 달리 말하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러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기회일테죠.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는 세상은 결국, 여성이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세상, 그러다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세상, 그리고 이 모든 걸 바탕으로 여성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일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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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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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함께 만든 사람들 👪
꾸물 라노 리사
무아 장소조
지니 파란 쵸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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