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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 1일 3매 | 최갑수

끈질기게 매달린다는 것


   강연이나 개인적인 자리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취재를 갔는데 음식이 맛이 없거나, 여행지가 별로라면 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묻는 이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는 여행지가 별로거나 음식이 맛이 없으면 쓰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볼품없고 맛이 없으면 쓰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프로페셔널 여행작가입니다.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사람입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를 받고 움직이죠. 정해진 시간 내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에는 일정 분량의 양도 포함이 됩니다. 1박 2일의 취재를 다녀와 원고 50매와 사진 30장을 넘기기로 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프로입니다.


   저는 프로 작가입니다. 한 분야의 프로라면 그 일로 생계로 이어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작가는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고, 배우는 연기를 해 생활을 합니다. 요리사는 요리를 팔아 가족을 부양합니다. 하나의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간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죠. 그러니까 직장인, 작가, 배우, 요리사, 유튜버, 디자이너, 사진가 등 여러분은 모두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 저는 끈질기게 매달립니다. 쓸거리가 없더라고 어떻게든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새지만, 주부도 프로입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뭐 먹지?’ 하면서도 끝내 뭔가 그럴듯한 음식을 만들어내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도대체 쓸 게 없어, 오늘은 뭘 써야 하지?’ 하면서도 결국은 읽을 만한 칼럼을 써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민물회를 먹은 에피소드를 들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먹어?’ 하고 안 먹어도 그만이었지만 먹었습니다. 인도 나갈랜드에서 살아 있는 애벌레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 안 먹어도 되지만 먹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죠. “아니 그걸 어떻게, 그리고 왜 먹어요?” 어느 글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먹어야 뭐라도 한 줄 쓰니까요.” 가벼운 우스갯소리같지만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일주일 취재하는 동안 “마른 낙엽처럼 맛없는 슈니첼을 일곱 장이나 먹었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여행작가는 슈니첼이 맛없다고 안 먹는 사람이 아니라 맛없는 슈니첼을 먹고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에게 들려줘야 합니다. 그것도 재미있게요. 저는 이탈리아 마르케를 여행하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먹으며 살고 있더군요.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알프스 자락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마른 낙엽 같은 슈니첼을 먹고 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전 그걸 매일 한 장씩, 무려 일곱 장을 먹은 겁니다. 이 둘을 엮어 하나의 원고를 만들어냈습니다. 슈니첼 먹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풀 방법을 찾아낸 거죠. 대전은 흔히들 ‘노잼도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전에서 먹은 두부 두루치기와 칼국수가 맛있었습니다. 대전과 슬로베니아를 연결했습니다. 슬로베니아는, 아는 이가 별로 없는 작은 나라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평화롭고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습니다. 대전과 슬로베니아를 엮어 하나의 원고를 만들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제가 원고를 잘 썼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경북 영주에 취재를 와 있습니다. 새벽의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늦은 점심으로 김치찌개에 도토리묵을 넣은 약간 이상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네. 충분히 이상하게 보일 만한 음식이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습니다. 이걸로 뭔가 하나의 글을 만들어봐야겠죠. 소백산과 온천, 파바로티, 콜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등을 엮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근사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말입니다. 대상과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려야 합니다. 어떻게든 뭐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걸 자꾸 연습하다 보면 좀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꾸만 자꾸만 끈질기게 매달리다 보면 조금 더 쉽게 매달릴 수 있는 요령이 생깁니다. 여행작가는 맛 없다고 숟가락을 탁 내려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

   여행작가. 지금 영주에 취재를 와 있다. 호텔에서 이 레터를 쓰고 보낸다. 어제는 무섬마을과 성혈사를 돌아보았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등을 썼다. @ssuchoi

📚 주말에 읽은 책 - 박웅현·오형식,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

예술과 콘텐츠라는 일에 관하여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과 디자이너 오영식이 일과 생각, 디자인, 예술, 영감, 클라이언트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이다. 그들이 30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며 깨달은 점에 대해 풀어놓는다.


   박웅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의 대가.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을 썼다. 오영식은 현대카드, 롯데카드 로카 등의 브랜딩 작업을 한 토탈임팩트 대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 많다.


   나는 예술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약간은 가벼운 이런 마음으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의미는 나중에 생기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반가웠다.


   - 책 속에서 -


   -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했던 게 생각납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자연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거든요. 


   - 제 작업은 이런 거예요. 클라이언트가 그리고 싶어 하는 걸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대신 그려주는 일이죠.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말하는 동안에 캐치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 

 

   -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순수’ 예술의 개념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든 조각을 하든, 가구를 만들든, 심지어는 오늘날 속된 말로 '노가다'라고 하는 건설 현장의 벽돌공과 회반죽공까지 모두 예술가였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아티스트artist’라는 말 대신 ‘기술자artificer’라는 말을 썼다. 위대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역시 그들이 살던 당대에는 기술자였다. 그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주문을 했을 때 계약을 맺고 그림이나 일상용품, 글, 음악을 만들어주었다.

   근대 이후 이 모든 것들이 독립적으로 분화하여 오늘날의 작가와 예술가가 등장했다. 작가와 예술가는 근대의 발명에 가깝다. 따라서 오늘날 디자인과 광고, 건축 같은 고객의 주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작업은 예술이라는 범주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디자인은 조형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기술자(또는 예술가)가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대 이전에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사람은 찬사, 비문, 청원서, 헌정사 등의 문장을 귀족을 대신해 돈을 받고, 써주었다. 근대 이후에 이들은 시인, 소설가 등의 문학가로 독립했다.

   오늘날 디자이너를 예술가라 부르지 않고 카피라이터를 문학가라 부르지는 않지만, 이들은 모두 예술적 재능과 예술성을 필요로 한다. 디자인에서 예술성을, 광고 카피에서 문학성을 찾을 수 있을까? 분명한 타깃층이 있는 창의적인 작업에서 목적에 충실할 것인가, 표현에 충실할 것인가? 디자인과 광고 작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과 한계는 과연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업적 동기에 의해 창조된 예술에서 개성과 주관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 “광고는 예술의 탈을 쓴 기획서다." 광고는 기획서입니다. 그런데 기획서를 소비자한테 그냥 던지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으니 이걸 문학처럼, 시처럼, 예술처럼 포장하거나 정제를 해줘야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하려다 보니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도 필요하겠지만 문학적인 어떤 터치가 필요한 거예요.  


   - 콘셉트가 명확하고 정제가 잘된 카피를 던지고 나면 반응이 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과정을 잘 모르지요. 왜 좋은지를 몰라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다음에 좋은 이유를 찾아요.

 

   -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2퍼센트 차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디테일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죠. 그 차이는 결국 훈련의 양에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 과도한 예술성을 발휘하고 싶다면 네 작품을 해라, 광고 쪽에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늘 얘기를 하죠. 

 

   - 만약에 오프사이드 규칙이 없으면 경기 수준이 떨어질 거란 말이죠. 모두들 골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찬 공을 넣기만 하면 되니까 수비 전략이 다양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세상에 제한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화가들도 대부분 사각형 안에 그림을 그려야 하지요. 디자인을 할 때도 주어진 조건에 가장 적합한 걸 찾아내는 게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닐까 해요. 자율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하는 거지,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제한 사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정제하는 것이 좋은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합니다.


   - 오후 4시에는 일을 시키면 안 돼요. 만약 4시에 일을 시키려면 그건 30분 내로 끝날 만한 일을 시켜야 하고요. 4시에 불러서 뭘 시키면 야근인 거지요.

 

   - 복잡한 걸 단순화시키는 게 회의거든요. 처음에는 해결책이 막 복잡할 것 같다가 생각이 정리될수록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그냥 ‘이거다’하고 정리가 되거든요. 그 과정을 거쳐야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연륜인 거지요. 곽재구 시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 생업도 결국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저는 언제 일이 제일 잘 되냐면, 프로젝트 비용이 높을 때예요. 비용이 높으면 높을수록 일도 잘되고, 책임감도 커지고, 아이디어도 많이 나와요. 그 이유는 생업이기 때문이죠.

 

 📎 Clip - 매일의 이별


   나는 김광석의 노래 매일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타인과의 헤어짐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어제 나의 몸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내 몸과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였다. -한겨레〉 어느 날 ‘정희진의 어떤 메모 - 아픈 몸을 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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