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읽은 책 - 박웅현·오형식,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
예술과 콘텐츠라는 일에 관하여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과 디자이너 오영식이 일과 생각, 디자인, 예술, 영감, 클라이언트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이다. 그들이 30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며 깨달은 점에 대해 풀어놓는다.
박웅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의 대가.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을 썼다. 오영식은 현대카드, 롯데카드 로카 등의 브랜딩 작업을 한 토탈임팩트 대표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 많다.
나는 예술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약간은 가벼운 이런 마음으로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의미는 나중에 생기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반가웠다.
- 책 속에서 -
-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했던 게 생각납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자연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거든요.
- 제 작업은 이런 거예요. 클라이언트가 그리고 싶어 하는 걸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대신 그려주는 일이죠.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말하는 동안에 캐치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
-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순수’ 예술의 개념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든 조각을 하든, 가구를 만들든, 심지어는 오늘날 속된 말로 '노가다'라고 하는 건설 현장의 벽돌공과 회반죽공까지 모두 예술가였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아티스트artist’라는 말 대신 ‘기술자artificer’라는 말을 썼다. 위대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역시 그들이 살던 당대에는 기술자였다. 그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주문을 했을 때 계약을 맺고 그림이나 일상용품, 글, 음악을 만들어주었다.
근대 이후 이 모든 것들이 독립적으로 분화하여 오늘날의 작가와 예술가가 등장했다. 작가와 예술가는 근대의 발명에 가깝다. 따라서 오늘날 디자인과 광고, 건축 같은 고객의 주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작업은 예술이라는 범주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디자인은 조형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기술자(또는 예술가)가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대 이전에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사람은 찬사, 비문, 청원서, 헌정사 등의 문장을 귀족을 대신해 돈을 받고, 써주었다. 근대 이후에 이들은 시인, 소설가 등의 문학가로 독립했다.
오늘날 디자이너를 예술가라 부르지 않고 카피라이터를 문학가라 부르지는 않지만, 이들은 모두 예술적 재능과 예술성을 필요로 한다. 디자인에서 예술성을, 광고 카피에서 문학성을 찾을 수 있을까? 분명한 타깃층이 있는 창의적인 작업에서 목적에 충실할 것인가, 표현에 충실할 것인가? 디자인과 광고 작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과 한계는 과연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업적 동기에 의해 창조된 예술에서 개성과 주관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 “광고는 예술의 탈을 쓴 기획서다." 광고는 기획서입니다. 그런데 기획서를 소비자한테 그냥 던지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으니 이걸 문학처럼, 시처럼, 예술처럼 포장하거나 정제를 해줘야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하려다 보니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도 필요하겠지만 문학적인 어떤 터치가 필요한 거예요.
- 콘셉트가 명확하고 정제가 잘된 카피를 던지고 나면 반응이 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과정을 잘 모르지요. 왜 좋은지를 몰라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다음에 좋은 이유를 찾아요.
-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2퍼센트 차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디테일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죠. 그 차이는 결국 훈련의 양에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 과도한 예술성을 발휘하고 싶다면 네 작품을 해라, 광고 쪽에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늘 얘기를 하죠.
- 만약에 오프사이드 규칙이 없으면 경기 수준이 떨어질 거란 말이죠. 모두들 골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찬 공을 넣기만 하면 되니까 수비 전략이 다양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세상에 제한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화가들도 대부분 사각형 안에 그림을 그려야 하지요. 디자인을 할 때도 주어진 조건에 가장 적합한 걸 찾아내는 게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닐까 해요. 자율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하는 거지,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제한 사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정제하는 것이 좋은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합니다.
- 오후 4시에는 일을 시키면 안 돼요. 만약 4시에 일을 시키려면 그건 30분 내로 끝날 만한 일을 시켜야 하고요. 4시에 불러서 뭘 시키면 야근인 거지요.
- 복잡한 걸 단순화시키는 게 회의거든요. 처음에는 해결책이 막 복잡할 것 같다가 생각이 정리될수록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그냥 ‘이거다’하고 정리가 되거든요. 그 과정을 거쳐야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연륜인 거지요. 곽재구 시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 생업도 결국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저는 언제 일이 제일 잘 되냐면, 프로젝트 비용이 높을 때예요. 비용이 높으면 높을수록 일도 잘되고, 책임감도 커지고, 아이디어도 많이 나와요. 그 이유는 생업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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