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이 주목한 부분
🛒
노인을 위한 리어카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11.21. 화요일
추위는 왜 주말에 몰아치고 주중에 누그러지는 걸까요🙄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이번 주 큐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저는 허남설 기자이고요, 애매한 지점을 톡 건드린 기사를 좋아해요.

집 근처 큰길가에 '고물상'(자원재활용센터)이 하나 있습니다. 출퇴근길에 매일같이 지나치면서 이것저것 눈에 들어온 모습이 있어요.

저녁에 고물상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그앞에 노인들이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하나둘씩 세워놓습니다. 다음날 문을 열면 전날 모은 폐지를 팔고 다시 길을 나서죠.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보니 줄을 선 리어카가 밤사이 더 늘어 스무 대는 되더라고요. 한밤에도 노인들은 어디선가 폐지를 줍습니다. 도시가 24시간 내내 폐지를 쏟아낸다는 건데, 수거하는 노인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노인들이 쓰는 폐지 수거 장비가 리어카뿐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유아차나 작은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 더러는 대형마트에서 유실된 듯한 쇼핑카트를 쓰는 노인도 있습니다. 아주 드물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 심지어 초소형 화물차도 있고요. 폐지를 수거하는 생태계에도 존재하는 어떤 격차를 느꼈습니다. 폐지 가격이 얼마 안 될 텐데 기름값을 감당할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요.

오늘은 폐지 수집 노인을 관찰하며 아주 구체적인 생각을 한 어느 병원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약 3분 동안 기사를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은 지난 8월부터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이 사용하는 리어카·유아차 등 운반구를 개선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리어카는 폐지를 많이 실을 수 있지만, 그 무게만 50~70kg에 달해 몸에 부담을 주며 비탈길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다.

☑️ 노인들은 잔뜩 쌓인 폐지가 시야를 가리거나 쏟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초인종이나 걸이가 필요하다는 답도 나왔다.
병원이 리어카를 연구하는 이유
2023. 11. 19. 김세훈·최혜린 기자
73세 김순자 할머니(가명)가 지난 13일 서울 중랑구 일대를 다니며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순자씨(가명·73)는 매일 새벽 6시 음료 운반용 카트를 밀고 폐지 수집에 나선다. 김씨의 폐지 수집 구간은 주택가 일대 2㎞ 정도다. 주택가 뒤편에 버려진 상자와 인근 상가에서 내놓은 박스 상자들을 빠짐없이 모으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흐른다. 김씨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송계공원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목장갑을 끼고 폐지 수거 작업에 한창이었다.

"발로 건드려보면 알아. 병 소리가 나는지, 깡통소리가 나는지." 쓰레기봉투를 이리저리 살피던 김씨가 봉투 안에서 '에프킬라' 빈 통 2개를 찾아냈다. 버려진 밥솥도 준비해둔 비닐에 담아 카트 손잡이에 척 걸었다. 버려진 종이상자 사이에서 캔이나 고철류를 만나면 유난히 반갑다. 고물상에서 가격을 후하게 쳐주기 때문이다.

30분쯤 지나 고정끈으로 동여맬 수 없을 정도로 카트에 상자가 쌓이자 그는 상자를 하나씩 해체해 카트에 차곡차곡 쌓았다. 김씨가 이날 1시간 남짓 모은 폐지의 양은 24㎏가량이었다. 인근 고물상에 수집한 폐지·고철을 넘겨주고 받은 돈은 1400원. 김씨는 이 돈을 받아들고 "한 번 돌아서 500원도 못 받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캔이랑 밥솥도 있어서 좀 더 받았다"고 했다.
김순자 할머니가 이날 주운 폐지의 양은 약 24kg으로 1400원어치였다. 한수빈 기자
칠 벗겨진 음료 운반용 카트는 김씨의 '오랜 동반자'다. 가로·세로 길이 1m 남짓한 상자까지 카트에 담을 수 있다. 어깨높이까지 차곡차곡 폐지를 쌓으면 카트 무게는 60㎏까지 되는데, 이 무게가 김씨가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옮길 수 있는 최대치다.

김씨는 2000년 무렵 남편과 트럭을 몰면서 폐지를 수집했다고 했다. 동네 곳곳에 폐지와 고철이 널려 있던 때였다. 이후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 김씨는 남편이 남긴 높이 1.2m의 14㎏짜리 카트를 밀며 폐지수집 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부쩍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지난 8월 팔에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지만 '물리치료 비용 3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진통제 약만 타왔다고 했다. 김씨는 "물리치료 한 번 받으려면 나흘 동안 번 돈을 다 써야 한다. 아프면 그냥 전기장판 틀어놓고 쉬거나 보건소에 가서 침을 맞는다"고 했다.
김순자 할머니가 거리에 쌓인 폐지를 음료 운반용 카트에 옮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중랑구청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랑구 내에서 김씨와 같은 폐지수집 일을 하는 노인은 100여명가량으로 파악된다. 전국적으로는 약 6만6000명이 폐지수집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사용하는 운반구는 일반 리어카부터 음료배달에 주로 쓰이는 카트, 유아차까지 다양하다.

여러 운반구들은 이들의 생계보조 도구인 동시에 나름의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리어카의 경우 무게만 50~70㎏에 달해 근골격에 무리를 주는 데다, 경사로 등에서 사고 위험성이 높다. 유아차나 음료용 카트의 경우 무게는 비교적 가볍지만 수집한 폐지가 쏟아지기 쉽고,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폐지 양이 적어 여러 번 왕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은 지난 8월부터 폐지수거 노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운반구 제작·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무게나 안정성 등 기존 운반구의 단점을 보완하고 노인의 신체조건에 알맞은 운반구를 보급하자는 취지다. 지금까지 70~80대 폐지수거 노인 8명이 건강진단·면담·현장실태조사 등 사전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인들은 모두 회전근개 파열·척추협착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응답자 5명은 허리 통증을, 3명은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김씨도 2006년쯤 폐지를 옮기다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적이 있다. 김씨는 "그때는 남편이 있어서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면서도 "그때 척추를 다쳤는데 요즘도 일을 많이 하면 허리가 시큰거린다"고 했다.

민경두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폐지수집 노인들이 몸을 숙이고 무거운 것을 옮기는 동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허리, 척추, 어깨 등에 무리가 가게 된다"며 "대상자들의 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퇴행성 질환과 직업 특성에 따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녹색병원 측은 개별 면담을 통해 신형 운반구 초안에 반영할 요소를 찾고 있다. 김씨는 면담에서 "보관이 쉬운 접이식 운반구가 필요하다"며 "이동 중 폐지가 떨어지는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른 면담자는 "폐지를 많이 쌓아두면 높이가 높아져 건널목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위험한데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다. 이밖에 '초인종이 있었으면 좋겠다' '비닐 등을 거치할 별도의 걸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도 나왔다.

허승무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면담과 현장 조사 내용을 종합해 신장에 따라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바퀴가 4개 달린 캠핑카 타입의 운반구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안전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경광등이나 브레이크 기능 설치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 궁금증에 힌트를 주는 연구 결과가 있었어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2년 발간한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배재윤·김남훈)라는 보고서입니다.

이 연구는 '적극적으로'(한 주에 8시간 이상)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을 1만5000명 정도로 보고, 이들이 하루 발생하는 폐지의 약 10%를 수거한다고 추정했어요. 다만, 아파트에서는 보통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은 전문처리업체가 폐지 등 재활용품을 전속으로 수거하죠. 그래서 아파트를 빼고 단독주택·연립주택(빌라)으로만 한정해 보면, 폐지 수집 노인이 처리하는 폐지는 전체 발생량의 약 35%에 달한다고 해요.
폐지 수거 노인이 없다면 이 많은 폐지는 어디로 갈까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받는 대가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논의가 있습니다.

폐지 가격을 1kg당 90원이라고 하면, 하루 100kg씩 한 달 내내 수집해도 30만원이 안 되죠.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전문 처리 인력과 장비·시설을 동원하면 비용이 30배나 더 들었을 텐데, 이를 노인들에게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을 주며 '퉁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폐지 수집 노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었죠. '노인 빈곤'을 해결하자는 맥락에서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이나 공공일자리 확대 등이 자주 거론됩니다.

그간 이런 논의를 생각하면, 녹색병원의 '리어카 연구'는 생각을 전환하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노인에게 직접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은 아니지만, 몸에 무리가 덜 가도록 장비를 바꿔 의료비 지출을 줄이거나 더 오래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노인 빈곤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되겠지만, 사실 세상을 한걸음이라도 진전시키는 건 이런 대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찾아보니, 노인이 수집한 폐지를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이되 캔버스 등 폐지 가공품을 제작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비영리기업도 있습니다. 원대한 목표를 향한 '한방'만 기다리기보다는 이렇게 작지만 구체적이고, 또 당장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는 사람들을 더 자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일, 강원도와 양양군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을 열었습니다. 환경단체는 그동안 케이블카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환경부 또한 환경 훼손 가능성을 우려한 적 있습니다. 최근에는 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 평가 결과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시인 박진성씨의 성희롱을 폭로한 김현진씨를 만났습니다. 박씨는 지난 11월8일 1년 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그동안 박씨는 김씨의 폭로가 허위, 즉 '가짜 미투'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김씨는 피하지 않고 줄곧 재판정에 나갔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구독자님의 이야기
📬 "투표날이 되면 브이도, 엄지척도 하지 않으며 기념사진에 임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떠올라 '웃픈' 기사였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한 미국 연예인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를 보고 더욱 그의 팬이 된 기억도 있어요." (수수리님)

📬 "최근 할리우드 배우들이 파업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그것도 정치적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이처럼 적극적이기 어려운 게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던 경험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소신을 밝히는 만큼 역풍이 심한 것도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르쇠 해야 하는 분위기 자체는 아쉽습니다. 개그 소재로 쓰인다는 건 그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거겠죠." (익명의 독자님)

📬 "개인적으로 <나락퀴즈쇼>의 분위기를 싫어했는데 그 이유가 그곳에선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일을 죄악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면 옳은 일에도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교사의 정치권은 다른 나라에도 없는지 궁금합니다." (흑곰두목님)

📝 "지난 점선면Lite <🤐세글자 말하면 나락 가는 사람>에 많은 독자님이 의견 남겨주셨어요. 수수리님처럼 ‘투표날이면 브이도 엄지척도 하지 않는 연예인’의 모습을 많이들 떠올리신 것 같아요.

한 익명의 독자님은 이명박 정부 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후 연예인들이 더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기 어렵게 되지 않았을까, 의문을 제기하셨어요. 이명박 정부가 '좌파 연예인 대응 태크스포스'를 만들어 반정부 성향 문화예술계 인사를 방송프로그램 등에서 하차하도록 하는 등 견제·관리했었던 정황이 드러났죠. 마침 지난 17일 배우 문성근씨, 방송인 김미화씨 등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에서 일부 승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흑곰두목님은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또 다른 집단인 교사를 떠올리셨어요. 다른 나라도 교사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지 궁금해하셨는데요, 미국 등 OECD 국가에선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널리 인정하는 게 대세입니다. 업무나 수업 중에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요.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는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오늘 레터를 공유하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서
해당 사이트의 링크를 복사해 전달해주세요.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