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봄이 왔다고 느낄 때는?🌺
여성의 삶, 레퍼런스가 필요할 때 <엘르보이스>
오늘의 뉴스레터를 다 읽는 데 약 5~7분이 소요될 예정이에요! ⏰

[미리보기]
💌오늘의 에세이 - 경주 할아버지
💌요주의 여성 - 판다가 되어도 괜찮아
 💌봄 맞이 이벤트🍋
💌엘르보이스 더하기 - #타인의삶 시리즈


연한 잎이 돋아나는 봄날에 듣기 좋은 'Flowers Of K - 양방언'의 피아노 연주곡을 추천드리니 <엘르보이스>를 읽으며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딸 나은이에게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세 명의 할아버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두 분, 그러니까 어머니의 재혼이 선사한 새 가족 덕에 아이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보너스로 더 받고 있는 셈이다. 나은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친정엄마는 아이가 할아버지를 부를 때 거주하는 지역명을 붙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서울 할아버지, 포항 할아버지, 경주 할아버지라고 말이다.

출처 - Unsplash

그러곤 당신의 이혼이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며 미안해 하셨다. 손주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아직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친정엄마의 미안함은 사실 이혼만이 아니다. 경주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란 사실도 크게 자리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아이가 내게 질문할 때까지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설명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올봄, 경주로 이사 와 일곱 살이 된 나은이가 드디어 말을 꺼낸 것이다. 엄마, 나 할아버지가 눈이 잘 안 보이는 거 알아. 그걸 뭐라고 부르지? 장애인인가?”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경주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엄마와 재혼하고 10여 년 동안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그래서 그에겐 나는 영원한 스무 살, 엄마는 40대에 머물러 있다. 내겐 20년 넘게 어떤 호칭으로도 불려본 적 없는 그지만 언젠가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은데, 나은이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며, 꿈에서도 나오지 않는 얼굴이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며 그가 밤새 울었다 했다. 잠깐, 아주 잠깐 눈을 뜰 수 있다면 그 1초를 나은이를 보는 데 쓰고 싶다고 간절히 빌던 당신이었다. 그는 내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으나 나은이의 할아버지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그를 나은이처럼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나은아. 할아버지는 장애인이 맞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시각장애인이라고 해. 그러나 볼 수는 없어도 눈이 잘 보이는 사람보다 더 잘 느끼실 수 있어. 모든 감각이 눈 대신 피어나. 그래서 우리보다 더 빨리 계절의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어. 공기 냄새와 들려오는 아침의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지. 지난해보다 좀 더 분명해진 발음으로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마다 목소리만 들어도 나은이가 얼마나 컸는지 아신대. 나은이는 언제 할아버지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

동생이 눈앞에 있는데 어디 있냐고 이름을 부를 때요. 꼭 막대기를 들고 산책을 나가시는데 계속 눈을 감고 계실 때 느꼈어요. 할아버지는 제 얼굴을 모르겠네요. 제 동생 얼굴도 모르고요. 너무 슬퍼요.”

출처 - Unsplash

산다는 것은 봄을 한 번 더 만난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봄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저기 계속 보인다고 해서이라고 한다. 나은이는 일곱 번째 봄을 만나면서 드디어 할아버지를 새로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유난히이라는 단어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봄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 테니 봄이 볕이나 꽃이란 말이라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본다.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아 조심스럽게 길을 이끄는 나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신은 오늘도 내 아이들을 안고 아파트 중앙 현관 앞에 나무처럼 서서 따사로운 볕을 느끼고 있다. 그의 마디 굵은 가지 끝에 피어난 여리고 예쁜 꽃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걸 잠시 나도 눈 감고 느껴본다.

엄마, 좋은 생각이 있어요. 할아버지 손을 제 얼굴에 가져가 만져보라고 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는 손이 눈이니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어요. 아주 귀여운 푸들 강아지를 안내견으로 드리면 어떨까요? 제가 그 강아지를 잘 돌볼 자신이 있어요!”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귀여운 생각이 어른들을 살게 하는 힘 같다. 장애인, 안내견처럼 가르친 적 없는 단어를 불쑥 사용하며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는 아이를 보며 나 또한 너처럼 성장해 가는 단단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신 안에 온전히 갇히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는 용기 있는 한 사람, 종종 절망에 빠지려는 아내를 실없는 유머로 일으켜 세우는 평범한 남편, 그리고 숫기 없는 딸내미의 호칭 없는 부름에도 따뜻하게 답해준 아버지. 까불이 손녀가 장난치다 넘어져도 너는 순발력이 참 좋은 아이구나!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해주는 멋진 할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여기, 경주에서 살고 있다.



Writer 전지민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경주 할아버지 - <엘르> 2022년, 4월호 발췌


✨ELLE가 들려주는 반짝이는 이야기

판다가 되어도 괜찮아_요주의여성 #51
남을 위해 참을 필요 없어. 디즈니 플러스 <메이의 새빨간 비밀>.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주인공 메이와 친구들 스틸컷

요즘 웃을 일이 없다고요? 여기 당신을 무장해제시킬 매력 만점 애니메이션을 소개합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
 
〈메이의 새빨간 비밀 Turning Red〉은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13살 소녀 ‘메이’의 이야기입니다. 엄마의 완벽한 딸이 되고자 노력하던 메이는 어느 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에 빠지는데, 흥분하면 붉은 털이 복슬복슬한 거대 판다로 변하고 마는 것. 더없이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이 소동극은 사춘기와 성장에 대한 은유로 가득합니다. 십 대 시절, 누구나 자기 안에 ‘야수’ 한 마리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낯설고 당황스럽고 통제 불가능한 나.

 영화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 스틸컷

‘엄마와 딸’의 관계에 있어서도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많습니다. 극 속에서 메이만큼 비중 있게 묘사되는 인물이 바로 메이의 엄마 ‘밍’(산드라 오의 목소리 연기!). 헌신적이면서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밍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어머니의 모습이죠. 나이가 들면서 부모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결정을 하면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에 대해서, 이 작품은 훌륭한 조언을 해줍니다. 그런 혼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너 자신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출처 -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선보인 도미 시 감독 @GettyImages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픽사 역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이 단독 연출한 작품입니다. 그 주인공은 중국계 캐나다인 ‘도미 시’ 감독으로, 이번 작품에는 그의 자전적 경험이 듬뿍 녹아 있지요(외동딸이고, 비밀 스케치북이 있었고, K팝 아이돌에 푹 빠졌던). 도미 시 감독은 “크고 털이 많고 빨간색이고 골치 아픈 판다가 사춘기에 대한 완벽한 상징이라 생각했다”라며 “착한 딸이 되는 것과 엉망진창인 진짜 자신을 포용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10대 소녀의 갈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뒤, 디즈니 플러스에서 또 한가지 챙겨볼 것이 〈판다를 안아줘!: 메이의 새빨간 비밀 비하인드〉. 이번 작품은 도미 시 감독 외에도 이례적으로 크리에이티브 팀 주요 리더들이 여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 작품 의도와 제작 과정은 영화만큼 흥미롭습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여성으로 출발한 이들은 리더의 자리에 올랐을 때의 두려움과 동료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기쁨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실제로 누군가의 딸이자 어머니인 그들이 이번 작품의 메시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도 들려줍니다.  

출처 - 디즈니 플러스 〈판다를 안아줘!: 메이의 새빨간 비밀 비하인드

작품 제작 중에 동성 파트너와 함께 자녀를 갖게 된 시각효과 감독 다니엘라 폐인 버그는 말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온갖 혼란과 감정을 경험하고,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도 그 사랑이 변하진 않을지, 자기가 누구인지 남이 뭐라고 생각할지 그런 고민을 겪을 때,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7년부터 픽사에서 일했다는 베테랑 프로듀서 린지 콜린스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정말 멋진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안정적인 부분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해야 해요. 레서판다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런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뜻하는 것 같아요.” 여성 창작자가 주축이 되어 자신들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를 담은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 비하인드 필름을 보고 난 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네가 더 멀리 날아갈수록 엄마는 더 자랑스러울 거야.” 이야기의 끝에서 메이는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자기 안의 ‘야수’를 봉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길 선택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는 것이겠죠.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도 많은 소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부디 길들여지지 말고 마음껏 포효하길. 그들이 널뛰는 세상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Writer 김아름
전 <엘르> 피처&라이프스타일 디렉터 김아름.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책과 영화, 각종 컬처 콘텐츠를 탐닉합니다.
 - <엘르> 2022년, 3월 웹기사 발췌


🍋EVENT🍋

"산다는 것은 봄을 한 번 더 만난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봄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저기 계속 보인다고 해서 ‘이라고 한다." 오늘의 엘르보이스처럼 여러분은 어떤 순간 봄이 온 걸 느끼나요? 질문에 투표해 주신 분들 중 총 5분에게 따뜻한 봄과 어울리는 투썸플레이스 허니레몬티를 드릴게요🍋

( 엘르보이스 구독은 필수! 다들 아시죠? )


  • 이벤트 참여 방법 : 엘르보이스 구독 후, 봄을 느낀 순간을 투표해주세요!
  • 이벤트 기간 : 4/5(화)  ~ 4/18(월)
  • 당첨자 발표 :  4/19(화) 엘르보이스 뉴스레터
  • 경품 안내 : 투썸플레이스 허니레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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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여러분의 목소리 중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모든 분들의 소중한 피드백 하나하나 귀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의 <엘르보이스>가 어땠는 지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기사였다고 생각해요 관계, 우정 등 영원한 게 있을까요?
*N번방을 추적한 기록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읽어보려고요.
*다정한 마음부터 뭉클하고 또 더 깊고 복잡하고 어렵고도 아픈 마음들이 한데 엉켜 있지만 감사한 건, 그래 나도 내 자리에서 포기하지 말자. 한번에 하루를 또 살자. 최선으로. 하는 마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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