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호 (2026-1) ☀︎ 우연의 가능성 위로 흘러가기 
☀︎ ESSAY
     우연의 가능성 위를 흘러가면  
 

“그래서 5XXX번이랑 2XX번이랑 같은 데서 타요?”

“…음… 그건 모르겠어!”

“…근데 언니, 지금 거기 맵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손에 든 핸드폰 앱에 ‘길 찾기’를 여전히 띄워둔 그녀는 깔깔 웃으며, 그거까진 안 봤어!, 라고 말했다. 언니는 말했다. 어차피 정류장을 대충 알고 있는데, 거기 근처 가서 확인하면 된다고. 자기가 거기까지 가는 동안 빨리 오는 버스가 바뀔 수도 있단다. 나는 말했다. 언니, 그러기엔 정류장이 너무 코앞 아니야? 이미 우리가 언니가 말하는 그 근처인 거 아니에요? 언니는 다시 깔깔 웃었다. 그녀가 ‘대충 아는’ 그 정류장은 천천히 걸어도 2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더 빨리 오는 버스가 바뀔 수 있으니 그때 가서 다시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내게는 무척 재밌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정보’로 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것이 정보였다면, 모조리 찾아보고 알아내서 기억해 내는 것으로 취급돼야 했다. 정보란 것은 고정적이며, 유지된다. 일순간에 변할 가능성은 정보의 보편 속성이 아니다.


늘 정보 취급을 당하는 버스에게 그녀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고, 심지어 그 가능성 위로 떠다닌다.


“언니는 정말 우연의 가능성을 사랑하는구나?”


그녀는 이 정보들의 통제자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대신 유동적이며 액체적이고, 흘러가고 있는 것에 함께 흘러가는 사람이다. 버스는 정보가 되지 않음으로써 도구화되지 않았다. 뭐랄까, 그녀라는 사람의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 도구화되지 않아서 그녀 스스로 삶에 끼워준 느낌이다. 그래서 그 작은 거 하나가 그 자체로 의미를 생성해 버린 느낌. 말하자면, 나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는 문장을, 버스는 나를 싣고 간다 같은 문장으로 바꿔준 느낌이다. 버스에게 주체성을 마련해준 재미있는 사람 같으니라고.


삶은 일상이다. 달리 말해, 삶은 익숙한 것들의 총체다. 돈이나 직장, 가족, 하늘과 땅처럼 쉽게 바뀔 일이 없어서 고정되어 버리는 것들로부터 시작해, 버스나 지하철, 내 손에 키보드며 노트북, 내가 있는 집과 앉아 있는 의자까지. 바꾸지 않으면 고정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대체로 그런 것들이 삶을 이룬다. 내가 너무나 순순히 사용하고, 또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들 말이다.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은 채로.


아무래도 바뀔 일이 없으니 딱히 생각할 일도 없다.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줄 어떠한 가능성에 관하여는. 더욱이.


언니는 정류장을 목전에 두고 마침, 바뀐 신호에 횡단보도를 종종 걸으며 마침, 대충 아는 정류장에 정차한 5XXX번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몇 분 뒤에 오는지를 외웠더라면 몇 분을 따라잡지 못할까 봐 불안해졌을지도 모른다. 몇 분만을 생각하느라 나와의 말 몇 마디에는 관심을 잃었을 수도 있고, 몇 분을 놓쳐서 기분이 나빠졌을 수도 있다.


현재만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지금’이라는 자극은 매우 강렬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지금 이 순간이 되었는지, 다만 우리가 감지하지 않을 뿐이다. 1초 전 선택의 결과로 나는 어떤 글자를 지우고 또 입력한다. 거기 안에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시하고 살아간다. 멈춰있는, 실상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시선을 멈추고 있을 따름이다.


하루하루가 재미없어. 새로운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 우연의 가능성들이 떠내려간다.

☀︎ CURATION: 우연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 ☀︎ PROJECT. ROCK N ROLL 1편, 2편 by @yeo___mi
⌁ 길가의 돌멩이가 어떻게, 그리고 또 얼마나 멀리 이동하는지 관찰하는 프로젝트. GPS와 콘크리트로 가짜 돌멩이를 만들어 길가에 두고, 우연이 이끄는 돌멩이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누군가의 발에 차이고 쓸리고, 통제할 수 없는 힘들이 돌멩이의 길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누가 의도적으로 집어 간 것처럼 빠르게, 멀리, 움직이는 날도 있죠. 돌멩이는 가만히 있고, 또 움직입니다. 


돌멩이는 어디로 어떻게 갈까요? 우연이 품은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요?

     ☀︎ ☀︎ BOOK: 책과 우연들 | 김초엽 | 열림원
☼

(160쪽) 예전 같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책들이 눈에 잔뜩 들어왔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필요해서 사들인 게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을 책들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한 애정과 즐거운 대신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독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그게 일종의 직업병이라며 투덜대고 있었지만, 혹시 이 불순한 독서가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잘못 탄 버스가 존재하지도 몰랐던 도시의 낯선 장소로 나를 데려가주는 것처럼.  

(230쪽)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래면 ‘나는 소설만 읽을 거야’하는 고집 센 독자의 자세를 조금 접어두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재미있는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아주 약간 열어놓는 것. 그것은 소설가로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태도였다. 좋아하는 세계를 자꾸 의식적으로 넓혀나가지 않으면, 소설도 내가 편애하는 자그만 세계에 갇히고 말 테니까.


☼
⌁ 소설가 김초엽의 에세이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젊은 작가 편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요. 막 직업인이 된 소설가가 책과 함께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소설 쓰기가 아니라도, 어떤 종류든 창의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되는 지점이 많을 거로 생각해요. 저는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에 대해 주목해 읽게 되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일수록, 자기 세계에 갇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때 우연한 마주침을 거부하지 않을 용기는 나의 세계를 넓히는 한 걸음이 되죠. 
☀︎ PROGRAM: 우연의 가능성에 기대어
     ☀︎ ☀︎ 미완성글쓰기클럽 by @domangchill.tws
⌁ 미완성글쓰기클럽은 각자의 미완성 글을 미완성으로 이어 쓰는 릴레이글쓰기클럽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호스트로부터 글감을 받고, 참여자는 글을 미완성합니다. 쓰고 싶은 만큼만 써요. 다음 순서의 사람이 그 글을 받아서 이어 씁니다. 역시 쓰고 싶은 만큼만 씁니다. 누구든, 언제든지, 완성하고 싶을 때 글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글들은 내가 쓰는 순간 생각했던 전개와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갑자기 등장인물이 늘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설정을 놓치기도 하고, 설정이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의 쓰기' 외에는 전부 우연에 맡기고, 그 우연에 기대어 얼마든지 씁니다.

이 우연의 가능성에 기대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ᄂ 언제: 6월 5일부터 10회의 글쓰기
 ㄴ 어디서: 온라인(구글 블로그와 이메일 활용)
 ㄴ 얼마: 5만 원의 참가비. 완주하신 분들에 한해, 쓴 글을 엮은 소책자를 전달합니다.
 ㄴ 어떻게: 링크의 스마트스토어에서 결제
 ㄴ 무얼하는지 구경: ↘︎ 구글 블로그에서 1기 현재 진행 중
 ㄴ 또 다른 참고: 인스타그램
사실은 제가 운영하는 클럽입니다. 생각씨앗 가족들이 참여해 주시면 소책자 배송 때 뭐라도 더🤫
1기 진행 과정. 이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
당신이 사냥한 오늘의 햇빛이 있나요?
당신이 만난 <우연의 가능성>이 있나요?
나를 즐겁게 하는 콘텐츠가 있나요?
무척 좋아서 소문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나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한 주제가 있나요?
지난 호 뉴스레터는 여기서, 지지난호 뉴스레터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41명의 구독자와 함께하는 중입니다.
⦧eunjeansong⦦
제안 문의 협업은 아래 메일로
seedsofthought.biz@gmail.com
수신거부 Unsubscribe 하실 건가요? 진짜로...?
stibee

이 메일은 스티비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