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적당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풍요로운 근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필라테스 스튜디오에는 회원권을 끊어 입장했다 . 내가 아무리 오만상을 쓰고 운동을 해도 선생님은 상냥한 서비스를 베풀었다.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고양이의 털을 빗어주고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내가 꽤나 윤기있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공간의 이동이 없어지고 모든걸 집에서 혼자하니 거품이 빠지고 본질만 앙상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저 일하고 밥먹고 똥싸고 스트레칭하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었다. 내 스스로에게 내 정체가 까발려진 기분.

나는 내가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간이라 믿었것만. 나는 외로운 승냥이. 사람이 그리웠다. 틴더를 깔았다. 분홍색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이콘. 틴더라고 영어사전에 찾아보니 불을 붙이는 부싯돌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반려견들의 교배를 위한 매칭앱으로 시작했다는 말이 있었다. 반려견의 교배를 위한 앱에서 주인들이 교배를 했구만. 예문도 나왔다. “tinder is Macdonald for date”. 나는 맥도날드를 좋아한다.

틴더에 입장하자 “코로나 때문에 답답해서 가입함” 이라는 식의 자기소개가 자주 보였다. ‘나는 원래 이런거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하는거임’이라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거는 외로운 얼굴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나도 마찬가지 였다. 모르는 이성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다음과 같이 시작됐다.

남: 어디세요?
나: 저는 집이에요.
남: 벌써 퇴근하셨나요?
나: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라서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었어요.
남: 와, 부러워요. 저도 코로나 때문에 사는게 재미 없어서 가입했어요^^

재택근무라는 것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히는 것과 비슷했다. 회사에 출근할 때는 그렇게 집에 가고 싶었는데, 아무리 좋은 것도 비교군이 없으면 매력이 없다. 나는 1인용 소파에 쳐박혀서 틴더를 했다. 계속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만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팠다. 틴더는 피곤했다.

틴더를 오래 전에 해 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사진 너머를 보라’ 라는 명언을 남겼다. 2D로 된 얼굴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3D로 바꾸고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매력있게 써놓으라는 말도 들었다. "33살. 강남 건물 임대업중."같은 말로 어필하는 사람들을 봤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50억 자산이 있으니 함께 불려가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나중에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한 번 만나보지 그랬냐고 등짝을 때리셨다. 정말?) 어떤 분은 "나랑 사귀면 올리브영 40% 세일"이라고 적어놨으며 어떤 분은 철학자의 명언을 원어로 적어놨다. 나는 결국 자기소개에 아무말도 적지 못했다.

소개팅앱에는 FWB라는 세글자가 자주 보였다. Friends With Benefit, 쉽게 말하면 잠자리를 갖는 친구 사이. 경선 언니는 차라리 발정났다고 쓰지 허세를 부린다고 뭐라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태연하게 변호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요리를 하게 된 이유가 고기는 먹고 싶은데 피를 보기 싫어서 라고 한다.인간은 동물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핏덩어리를 먹으면 죄책감과 역겨움이 들도록 설계 되었다. 그래서 고기를 칼로 썰고 불에 익힌다. 원래 어떤 모습의 생명체였을지, 최후의 표정은 어땠을지. 생각할 필요가 없이 오직 맛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동물이 아니라, 요리를 먹는 게 되는 거다.


‘FWB'도 ‘요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지어보려는 노력의 차원에서 우리는 굳이 ‘Friends’라는 관계를 붙인다. 욕망을 포장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난다.

FWB를 해봤다는 친구에게 FWB의 좋은 점을 물어보았다. 

“연애하기 좋은 상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연애를 하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 소모도 지칠대로 지쳤다. 하지만 섹스는 좋은 것. ‘친구’라는 정의가 상대와의 유대감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이런 합의가 이뤄지면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녀는 생각은 매우 논리적이고 군더더기 없었다. 또 다른 친구는 ‘연애며 결혼이며 복잡한데 섹스나 신나게 하자’ 라고 말했다. 오, 어른이 되고 꽤 오랜만에 ‘신나게’라는 부사를 들었다. 그의 문장은 순수하고 투명했다. 어린 아이가 실로폰의 아무 음정이나 두드려 댄 것처럼 청량하고 불규칙한 소음이 주책없이 울려퍼졌다.


한 번은 소개팅앱으로 만난 남자가 여덟번이나 데이트를 해놓고 사귀자는 말을 안했다. 참지 못하고 캐 물으니, 연애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연애가 자신 없다고? 말로만 듣던 FWB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냐. 쿨한척 물어보려는데 그 순간 말이 잘못 나왔다.

“그럼 F&B 하려는 거야?”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F&B 업계 클라이언트를 오래 맡았었다. 우리 팀 광고주에는 커피도 있었고 건강식품도 있었다.  F&B는  Food(음식)와 Berverage(음료)라는 뜻이다. 나와 그 남자는 겸연쩍게 웃었다. 말 실수였지만 F&B는 어떤 사이일까 궁금해졌다. 손도 안잡고 뽀뽀도 안하고 주구장창 차마시고 밥만 먹는 사이일까. 그래도 서로 더 아껴주는 사이일까. 그것도 못할 짓이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하고부터 그 남자는 연락이 끊겼다. 질문이 내 입으로 나오는 순간 예상한 결과이긴 했다. 우리는 FWB도 아니고 F&B도 아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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