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감독 황윤)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67 〈수라〉
7월 19일 오늘의 큐 💡   
Q.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
님, 혹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메일을 클릭하진 않으셨나요? 😉 맞아요! 보아의 2003년 노래 〈아틀란티스 소녀〉의 문을 여는 이 가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죠. 오늘은 바닷길의 시작이자 끝인 갯벌로, 신비로운 생명들이 아직 살고 있는 수라 갯벌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온 황윤 감독이 이번에는 갯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실 황윤 감독은 오래전 새만금 간척사업을 촬영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포기하기도 했었는데요. 수라 갯벌의 생명들을 찾는 '동필-승준' 부자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카메라를 들게 됩니다. 

영화 〈수라〉의 제목인 수라 갯벌은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을 갖고 있다지요. 간척 사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군산 바다의 마지막 갯벌이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오늘도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는 소중한 마음을 〈수라〉에서는 맘껏 만날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두 어깨에 담긴 마음, 좀 더 알고 싶다면 아래 〈인서트〉 속 심달기 배우의 모습에서도 확인해 보세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수라〉


영화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과 마주한다. 오프닝 화면 속의 두 사람은 쇠검은머리쑥새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어느 한 지점에 놓여있다. 무수한 갈대 사이에 허수아비처럼 줄곧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들에게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들 포기하는 법은 없어 보인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들은 그저 무용하게 느껴진다. 왜인지, 미지의 여정과도 같은 장면 그 너머에는 강인하고 끈질긴 아름다움으로 이어진 단단한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수라〉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카메라에 오래간 묻어두며 쌓여갔던 시간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그 세계와 마주한다. 본래 도요새가 날고, 고둥이 헤엄치고, 농게가 지나가는 자리에 영화는 그에 부합하는 소리가 따르지만, 쇠검은머리쑥새의 소리를 녹음하던 황윤 감독의 귀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수라 갯벌을 지나는 전투기 한 대다. 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들을 따라 끝내 아무런 소리가 없는 장면 앞에 도달한다. 그 기다림의 끝엔 무엇이 있었길래, 우리를 무소음의 세계로 이끄는 것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 이 영화 속 유일한 사운드의 부재는 곧 그들의 자리가 사라짐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략)


인디즈 조영은

〈수라〉

감독 황윤|108분|다큐멘터리|전체관람가


마지막 갯벌 ‘수라’의 새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집을 나서는 ‘동필’과 그의 아들 ‘승준’.

오래전 갯벌에 관한 다큐를 만들다 포기했던 영화감독 ‘윤’은 이들을 만나 다시 카메라를 든다.

말라가는 ‘수라’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도요새, 검은머리갈매기, 흰발농게…

청춘을 바쳐 이들을 기록해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동행

들여다 보는 마음

〈수라〉 그리고 〈인서트〉


윤과 동필, 승준의 공통된 진술은 이것이었다. 보지 못했더라면 군산에 살지 않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살았을 것이고, 구태여 군산에 살 이유가 없었으리라는 것. 다수의 간편한 말을 빌리자면, ‘다 죽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새만금에 집요하게 발을 들이는 이들의 죄목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것을 본 죄’다. 찰나의 순간이 프레임 단위로 찍히고, 동공에 정을 박아 넣는 것처럼 일격에 잔상이 새겨질 때. ‘본다’라기보다는 차라리 ‘사로잡힌다’는 표현이 알맞아서 그 순간만큼은 무력하게 수동적이고, 내려놓음에 있어 아무런 저어됨이 없게 된다. 뒤져 보면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을 그런 순간들은 대체로 비이성적인 선택지에 우리 발을 묶어 버리고 만다. 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에 빠진다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답할 수밖에. 너에게는 불모지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한 숨이 느껴진다고. 그런 마음으로 수라와 관계 맺는 이들만이 기어코 척박한 땅을 갯벌로 살려 내고야 마는 것이다. 
한편 어느 동네에서는 다큐멘터리팀 막내가 서툰 실력으로 처음 카메라를 든다. 영화 〈인서트〉 속 미라는 쪽잠을 자려는 선배에 의해 카메라 조작법도 모르는 상태로 떠밀리듯 내쫓겨 인서트를 따게 된다. 미라가 떨어진 동네는 어촌도 아니고, 얼핏 보면 두 영화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수라〉와 〈인서트〉는 대상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고 특별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동류이다. 동시에 무언가 ‘애정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인서트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매개한다. 씬과 씬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거나, 컷과 컷 사이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인서트의 역할은 존재 자체가 관계 맺음과 닮았다. 특히나 인서트를 따기 위해서는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들을 오래, 집중해서 포착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익숙하지 않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미라는 처음에는 “찍을 게 하나도 없다.”며 친구에게 전화로 불평을 쏟아 낸다. 하지만 카메라는 차츰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미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미라가 작은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곧 음악이 깔리고, 미라의 순간이 느리게 흐른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발이 꼬이고, 나도 모르게 입은 벌어지고, 입꼬리가 달싹이는가 싶더니 다시 홀려 정신이 빼앗긴다. 상상 속에서 미라의 발은 이미 중력을 잃었다. 도요새의 군무를 목격한 세 사람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온통 흑백인 세상에서 ‘하나도 찍을 게 없던 동네’는 어느새 얼굴을 바꾸고 미라에게 다채로운 세상을 보여 준다. 대상과 내가 눈을 맞추고 관계할 때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일이다. 〈수라〉에서도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 땅에 여전히 맥이 뛰고 있음을 믿는 이들만이 목격할 수 있는 귀한 순간들의 향연. 우리가 모르는 새만금의 얼굴들.
영화의 말미에서 미라가 찍은 인서트들은 ‘안 봐도 비디오’인 것들만 찍었을 게 뻔하다는 선배에 의해 한번 확인해 보지도 못한 채 삭제된다. 전봇대, 가로등, 낙서. 미라가 본 것들을 간편한 이름으로 축소해 치워 버리는 그의 모습이 새만금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테다. 하지만 미라가 목격한 그 순간은 미라의 마음에 언제까지고 남아 끝끝내 미라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수라〉의 영제가 ‘어 러브 송(A Love song)’임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그의 ‘진짜’ 이름을 지키는 일. 그런 세레나데의 영화들을 한데 모아 엮어 본다.

인디즈 진연우

〈인서트〉 

감독 이용수|10분|드라마


다큐멘터리 팀 진성과 미라는 밤샘 촬영 후 다시 또 촬영을 가야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운전중이던 진성은 도착하면 잠을 잘테니 미라에게 인서트를 찍어오라고 시킨다. 처음 만져보는 카메라를 가지고 인서트를 찍는 미라. 화면 속 세상에 빠져든다. (2018년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식탁 위의 동물들, 어떻게 왔을까? 
많은 다큐 작업을 해온 황윤 감독은 특히나 동물권에 대한 관심을 오랫동안 보여왔습니다. 그중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2015년 작품을 통해 동물권을 박탈당한 채 길러지고 도축되는 동물들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는데요. 개봉 후 8년이 지난 지금, 사회가 논의하는 환경과 동물권에 관한 의제들은 그전보다 질적·양적으로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우리 주변의 동물들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영화를 만나보세요! 
〈잡식가족의 딜레마〉
감독 황윤│106분│다큐멘터리│2015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겨울 날, 육아에 바쁘던 영화감독 윤은 살아있는 돼지를 평소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돼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산골마을농장에서 돼지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이제껏 몰랐던 돼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윤에게 딜레마가 생긴다. 돼지들과 정이 들며 그들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알게 되는 한편 농장의 이면을 알게 될수록, 그 동안 좋아했던 돈가스를 더 이상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된 것. 육식파 남편 영준과 어린 아들 도영은 식단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살 때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식당을 고를 때마다 갈등에 빠지게 된 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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