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밥값 하셨나요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에세이 당번 파주입니다.

더위가 이르게 찾아와서 그런지, 벌써 여름의 초입에 온 기분이네요.

오늘의 에세이 주제는 자기 증명입니다. 제목에서 유추하셨겠지만, 요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아주 재미나게 보고 있거든요.

저도 하루하루 무가치함과 싸우고, 자기증명을 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이 레터를 써서 보내는 것도 스스로의 무가치함과 전면전을 벌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밥값과 싸우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는 사람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마감을 철저하게 지키고, 맥락을 빠르게 파악하고, 군더더기 없이 실행한다. 그런데 밥값을 못하는 사람은 제각각이다. 못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고 창의적일 수가 없다.

구태여 유형별로 분류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감 직전에서야 돌연 ‘아, 맞다!’를 외치는 사람. 스스로 발등에 불을 붙이는 이 감탄사는, 본인에게는 뒤늦은 발견이지만 주변에게는 갑작스러운 화재 경보다. 불을 지른 건 분명 자기 자신인데, 불을 끄느라 주변 동료들이 동원될 때가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팀원들 모두가 물통을 나르는 아수라장의 현장. 그 혼란 속에서 '아맞다'씨의 존재감만큼은 또렷해진다.

어제 분명히 공유한 파일을 오늘 또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다. 아마 오늘 보낸다 해도, 내일도 같은 문서를 쫓아 발신자를 찾아올 것이다. 메신저나 메일의 검색 기능의 존재를 모르는 건지, 아는데 쓰기 싫은 건지. 같은 파일을 무한 반복 요청하는 이 사람을 나는 직장의 도르마무라 부르기로 했다. 끝나지 않는 루프 속에 타인을 가두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둘은 거대한 존재감을 뽐낸다.

한편, 말은 청산유수인데 막상 돌아보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도 있다. 두 시간짜리 회의가 끝난 뒤, TO DO는 '다음 주에 다시 모여 논의'뿐인 그런 회의. 결론을 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회의를 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한 퍼포먼스다. 나는 이런 부류를 회의론자라 부른다. 회의를 사랑하되 결론은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론자라 불리기에 마땅하다.

이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일을 잘하면 된다. 문제는 그게 마음만 먹는다고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신 다른 것을 잘해야 한다. 나는 그걸 '밥값 증명 퍼포먼스'라 부른다.

회의실에서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옆자리 동료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내용은 별게 없다. '이거 아무래도 방향이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정도의 하나마나 한 헛소리. 귓속말이라는 형식이 내용의 무게를 대신 들어주는 방식이다. 소곤거리는 순간 상대를 비롯해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괜히 긴장하고, 당사자는 뭔가 중요한 걸 포착한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존재감. 대단한 인사이트가 아니어도 된다. 귓속말이라는 행위 자체로 충분하다.

누구나 다 아는 문제를 굳이 꺼내는 방식도 있다. '이거, 타깃팅이 너무 넓은 거 아닌가요?'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가 이미 인지한 사실이다. 대안은 없다. 그냥 언급만 한다. 그래도 '날카로운 지적'이라는 표정들이 돌아온다. 대안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지적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얼마 전 미팅에서 목격한 장면들이 꼭 그랬다. 어쩌다 미팅에 끌려온 사람들은 바쁘게 피드백을 쏟아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 콘텐츠는 이러쿵 저러쿵….'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지난주에 발행이 끝난 상태였다. 다음으로 언급한 콘텐츠를 두곤 '이 제품은 해당 포인트보다는 날씨가 더워졌으니까…'라고 말해봤자 이미 컨펌 완료되어 1시간 뒤 발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늦은 피드백은 피드백이 아니라 공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회의실에 앉아있는 이상 무언가를 뱉어야 한다는 강박이 공허한 피드백을 쏟아내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부류를 시간을 달리는 직장인이라 부른다. 문제는 달리고는 있는데 방향이 과거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엔 AI로 업무를 자동화했다며 으스대는 경우도 봤다. 이걸로 업무효율이 늘었다고. 자신이 쉬는 동안 자신을 복제한 AI가 일하고 있다며.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의 메일을 보내면 돌아오는 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알맹이 없는 말뿐, 문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은 없다. 자동화한 건 업무가 아니라 '메일을 회신하는 행위 자체'였던 거다. AI가 대신 '잘 읽었다'고 말해주는 동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다른 곳에서 자동화 성공담을 설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나 자세히 아느냐면,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맞다씨도, 도르마무도, 회의론자도, 모두 과거 내가 지나온 모습의 일부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주연을 비롯한 주변 인물 대부분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싫어서, 남을 헐뜯는다. 아무리 주인공이래도 그런 짓을 일삼으니 정을 붙이기 쉽지 않다. 남을 씹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것만큼 비겁하고 궁색한 짓도 없으니까.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정확히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 회의에서 귓속말을 건네고, 대안 없는 지적을 남발하고, 잘 읽지도 않은 메일에 '잘 읽었습니다'로 답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거다.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대단한 일을 해낸 척. 나는 아닌 척.

오늘도 불 켜진 사무실에선 누군가의 밥값 증명 퍼포먼스가 한창이다. 타이밍을 한참 놓친 피드백이 쏟아지고, 아무 의미 없는 자동 회신이 오가고, 내용 없는 귓속말이 오간다. 톨스토이는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라고 했지만, 틀렸는지도 모른다. 밥값 못하는 사람도 결국 엇비슷하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똑같이 밥값을 하려 애쓰고 있다.
야백 :  탈무드에 나오는 굴뚝청소부 이야기 아시나요.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고 한 아이의 얼굴을 깨끗했다고 합니다. 이때 누가 얼굴을 씻었겠느냐고 랍비가 제자들에게 묻죠. 제자들은 당연히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었을 것이라고 답했는데, 랍비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씻었다고요. 왜냐하면 얼굴이 더러워진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더러워진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은 더러울 것으로 생각했다는 풀이와 함께요.

팀장으로 일한 지도 어느새 3년째인데요, 팀원들과 면담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자기 몫을 잘 해내고 있는 팀원은 밥값을 잘 해내고 있는지를 걱정하고, 조금 더 잘 해줬으면 싶은 팀원들은 자기가 이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탈무드와 실사례를 종합해 보건대, 우리가 밥값을 못하고 있을 확률보단, 밥값을 한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판단을 잘 못하고 있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요? 어쨌든 회사는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합시다. 회사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원래 엉망진창인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밥값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날에는 일찍 퇴근해서 맛있는 밥을 먹고요. '밥값을 하느냐'보다 '밥값을 계속 벌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깐요. 엉망진창인 곳에서 엉망진창으로 일하면서, 이 엉망진창을 회한이나 혐오가 아니라 농담으로 관조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 이건 역시 밥값보단 밥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야백 : 인간의 가치가 널뛰기하는 ‘AI시대.’ 주식도, 화장실의 부동산 가치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그려.

지난 호에 보내주신 답장에
다시 짧은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풀칠러A : 야백님, 파주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연휴 동안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총 네 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중에 [너바나 더 밴드 :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란 영화를 추천해 드립니다. (진짜 영화 제목입니다) 정식 개봉은 20일이라고 하네요. 보는 내내 낄낄대면서 웃다가, 극장에서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요즘 보내주신 뉴스레터를 보면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이 많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싫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영화 보면서 잠깐이나마 기분 좋아지셨으면 하는 마음에 오지랖을 부려봅니다. 좋은 글 보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날씨가 좋네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세상살이 화이팅.
야백 : 이거…본체는 그럭저럭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자판만 잡으면 왠지 모르게 침울한 기운을 풍기는 것 같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다음 번엔 [너바나 더 밴드 :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 에서 얻으신 것 같은 기분 좋은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얘기 쓰기에 도전해 보렵니다. 일단 영화부터 보러 가야겠군요.(마침 오늘이 개봉일!) 추천 고맙습니다.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화이팅!
풀칠러B : 며칠 전 [이혼숙려캠프]에서 이호선 상담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네요. 물고기는 목소리가 없지만 비명을 지른다는 내용이었는데, 숱한 직장인들의 삶이, 현대가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원을 생각하다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날려 먹는다는 얘기는 더없이 그러했고요.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헤매고 막막해하다가 또 훌훌 일어나길 거듭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하는 자아로 살아가는 건 빌어먹게도 힘드네요. 소원을 생각해놔야겠습니다. 누가 언제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어느 날 신이 내게 물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파주 : 마침 지난주에 난생 처음으로 [이혼숙려캠프]라는 걸 보게 됐습니다. 증오에 잠식된 엄마와 해서는 안 될 것들에 중독된 아빠, 그 사이에서 부모를 향해 욕설을 던지는 아이… 정말,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에 그날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평생 나쁜 도파민으로 점철된 프로그램이라고 오해하고 살뻔했는데, 세상에나 그런 따뜻한 말들이 오가는 프로그램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마찬가지로 소원이란 걸 진지하게 생각해본 게 언제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일단 하나쯤은 생각해둬야겠어요. 신보다는 팀장님이 먼저 물어볼 것 같지만요.
풀칠러C : 시간이 어느 쪽에 서있나요? 혹은 어디로 걷고 있나요? 저도 그리로 향하고 싶어요.
야백 :  저는 아무래도 시간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와 마주 보고 서신 다음에, 그 방향으로 쭉 가면 그쪽이 아마도 시간이 가는 방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없는 소리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주, 시간과의 산책이 만족스럽길 바랄게요.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오늘 못난 일을 한두 가지 벌였더라도, 그것 또한 나름의 증명이었을 겁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주 뒤에 또 뵙겠습니다.

우정을 담아, 풀칠 팀 드림.
credit
에세이 | 파주
코멘트 |  야백
풀칠러스케치 | 야백
사진 | 파주
편집 | 야백, 파주

Published by
풀칠 | 밥벌이 미학 연구회
먹고 사는 게 다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