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달을 맞아, 책을 쪼끔 읽자

독서의 달을 맞아, 책을 쪼끔 읽자

“Which three books would you take to a desert island?”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98), 2023.9.13,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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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독서, 가성비, 책, 무인도, 즐거움

1.머리말
2.같은 책을 두 번 본다고?
3.무인도에 딱 ‘세 권’만 가져간다면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9월은 ‘독서의 달’입니다. 독서의 달을 맞아 다양한 독서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책을 많이 읽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이런 구호는 대체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안 읽는 사람은 어차피 그런 말을 들어도 안 읽을 것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굳이 독서의 달이 아니라도 항상 ‘읽을 책 목록’에 익사할 지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 뿐 아니라, 인스타나 기사들을 보다보면 재밌는 OTT 신작들은 또 얼마나 많고, 눈길을 끄는 영화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와중에 ‘이달의 주목할 만한’ 신간은 항상 쏟아져 나오고 온·오프라인 북토크도 많고,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피곤해서 아직 읽지 못한 뉴스레터와 기사, 유튜브들도 많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남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 지금 제 책상 모니터에 붙은 ‘읽어야 할 책’ 목록은 길이가 길어져만 가고 있고, 책상 위에는 읽다만 책, 읽어야 할 책, 1년 전에 샀지만 여태 못 읽은 책 등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습니다. 드라마도 보고 싶습니다.

<fig.1> 당나귀가 위태롭게 쌓인 책들 위에 앉아 책을 보고 있습니다(Pilar Albarracin, A literary donkey). 실은 책 말고도 기사, 신작 드라마, 영화, 레터 등 볼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왼쪽) “국립도서관에 천만 권의 책이 있는데 당신은 언제까지 책을 한 자씩 읽을 것인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독서의 달’을 맞아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많이 읽기’에 대한 얘기보다는 ‘적게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다면 책을 안 읽었던 사람도 덜 화가 날 것이고, 책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한숨 돌리고 싶은 사람 중 한명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리리딩>(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과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프랑수아 아르마네)을 지팡이 삼아 ‘적게 읽기’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같은 책을 두 번 본다고?】

“다시 읽기는 작은 죄책감을 수반한다. 맞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용파산 스왑과 다윈, 스테로이드, 그 밖에도 많은 걸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좀 내버려둬, 제발.” -Roger Angell

연구자님은 같은 책, 영화 등을 두 번 이상 보시는 편인가요?

제 경우는 레터를 쓰려고 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대체로 고개를 앞을 향해 둔 채 새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소식, 정보, 신간 등을 향해 펠리컨처럼 ‘우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느낌이죠. 큐레이션 레터들도 일단 구독해두고 있지만 - 수십시간을 읽어야하는 글을 10분 분량으로 압축해놓았다는 글 조차도 읽을 시간이 좀체 나지 않아 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흐름을 놓치거나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 혹시나 무언가를 빠트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죠.

오늘날 우리는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책 등의 ‘정보’를 가능한한 가성비있게 섭렵해야 하죠. 독서법 가운데서도 ‘1년에 책 1000권 읽었더니 생긴 변화’ ‘1시간에 1권 독서법’ 류의 책 제목은 여전히 인기고요.

이런 ‘가성비’ 시대에 같은 책을 보고 또 본다는 것은 아주 수지가 맞지 않는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운전면허를 두 번 따는 사람같달까요.

<fig.2> 교수직 은퇴 후 '1년동안,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 각잡고 다시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퍼트리샤 마이어 스펙스.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책부터 시작해 다시 읽어가는 과정은, 과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가진 채 '새로운 책'을 읽는 경험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왼쪽) 영문판 <리리딩>의 표지. 오래되어 낡은 책의 모서리가 인상적이네요. Harvard University Press

그런데 모두가 새로운 정보를 우겨넣기 바쁜 시대에 ‘1년 동안,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리리딩On Re-reading>을 쓴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입니다.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는 버지니아대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데요. 은퇴 후 그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인상깊게 읽었던 소설들 수십편을 ‘각잡고 다시 읽어’보는 프로젝트죠. 이를 통해 다시 읽기만이 줄 수 있는 경험, 가치를 곰곰 탐구해보려고 한 겁니다.

<리리딩>의 핵심 메시지는 “다시 읽기는 결코 ‘읽기X2’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책을 2번 읽었다면, 그건 같은 읽기에 곱한 것이 아니라 -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각각 ‘다른 경험’일수밖에 없다는 거죠.

왜냐면, 일단 우리가 항상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건 그 때의 ‘나’와 ‘책’ 사이의 대화인데요. 같은 책을 읽더라도, 내가 처한 상황과 경험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반복해서 읽는 책은 친숙하면서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읽는 사람이 변하면 책도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간 쌓인 경험은 독자의 시각을 변화시킨다[...]직접경험 뿐 아니라 수 년에 걸친 독서(및 다시읽기)를 통한 간접경험이 <에마>를 읽을 때 도움이 된다[…]독서량이 늘면 <에마>를 이해하는 시각도 미묘하게 달라진다[…]연상작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자면, 다시읽기는 의식이라는 팰림프세스트*에 끝없는 수정을 가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 아주 옛날,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이미 내용이 쓰여있던 양피지를 지우고 그 위에 다른 내용을 적었던 것을 뜻합니다. 창작의 과정을 이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링크)

-페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리리딩>(이하 동일)

조금 알쏭달쏭할 수 있습니다만, <아기공룡 둘리> 만화책을 10살 때 읽었을 때와 30살 때 읽었을 때의 경험이 같을 수 없는 것에 비유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둘리와 친구들의 짖궂은 장난과 난장판을 깔깔대며 보았다면, 나이가 들고 직장인이 된 시기에 <아기공룡 둘리>를 볼 땐 아무래도 화를 자주 내고 피곤해하는 고길동에 이입하기가 쉽겠죠.

일곱살 때도 절절한 이별 노래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 훗날 ‘이별’을 경험한 이후 이별 관련 노래를 더 사무치게 들을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하겠고요.

물론 어릴 때의 읽기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 사람이 경험을 쌓아가며 새로운 읽기를 하게 되고 - 또 그 경험들이 쌓이고 성장하고, 변하며 우리라는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거죠.

등장인물들은 예전에 비해 다소 흉허물이 눈에 띄지만, 옛 고교 동창처럼 우리가 알아볼만한 특징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다시 읽기는 자아의 성장과 연속성을 기록하는 급수degree인 것이다. 다시 읽기라는 행위가 정체성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장을 측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예전에 읽어서 텍스트에 대한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더라도, 새로운 순간에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읽는 행위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갑자기 뜬금없이 “아, 난 참 10살 때에 비해 많이 변했구나...”라고 깊이 생각할 계기는 잘 없지만, 우리는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나라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변했는지를 새삼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눈으로 봐선 잘 알 수 없지만, 문지방에 표시하는 걸 통해 성장을 가늠했듯이요.

꼭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의 ‘다시 읽기’에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번 볼수록, 처음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대목에 눈길이 가거나 처음엔 스토리를 허겁지겁 쫓아가다가 놓쳤던 새로운 부분이 눈에 띄곤 하는데요. 아마 너무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만화, 연극 등의 ‘n회차’ 관람을 해본 적이 있으시면 고개가 끄덕여지실텐데요.

입체적이고 촘촘하게 잘만들어진 작품일수록 여러번 보아도 또 새로운 것들을 자꾸자꾸 내놓곤 하죠.

<fig.3>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1번만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n차 관람(여러번 보기)'을 하는 것은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왼쪽) 우리는 '스포일러'를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다시 읽기'는 결말을 알고서도 그 작품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인스타그램, 인터넷 커뮤니티

다시 읽기 과정에서 우리는 ‘한 번만 봤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다채로운 깨달음과 즐거움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읽을 때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아내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고 작가의 서술 기법을 음미할 여유가 있기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보다 그 책을 더욱 찬탄하게 된다. 책은 그대로이지만 그 책을 읽는 경험은 새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읽기는 미리 아는 즐거움을 제공한다[...]사전에 습득한 (작품에 대한) 지식은 다른 종류의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읽는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감정들이다. 다시 읽을 때의 흥분은 처음 읽을 때의 그것과는 다르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예전에 인상깊게 접했던 한 연구 결과가 떠올랐습니다. 스포일러를 당해도 실은 작품을 즐기는 데 별 상관이 없다는 내용이었죠(링크).

우리는 통상 어떤 반전이 중요한 영화,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지뢰’처럼 나쁜 것으로 여기곤 하는데요.(실제로 ‘스포일러spoiler’의 단어 뜻 자체가 ‘망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연구팀이 학생들을 둘로 나누어 한 집단엔 TV 드라마의 결말을 미리 ‘스포’해주고, 나머지 팀에는 결말을 알려주지 않은 채로 보게했다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미리 결말을 ‘스포당했던’ 팀의 시청 몰입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1) 이는 단지 ‘줄거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는 두번째 읽고, 또 다시 읽을 때 줄거리를 알면서도 다른 즐길거리를 찾아 거기에 주목하고 또 집중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죠.

또한 우리는 익숙한 작품을 여러번 다시 읽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의견을 더 풍부하게 반영해 개입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다시읽기가 회를 거듭할 수록 책을 둘러싼 자유의 공간은 확대되며, 독자가 반응할 수 있는 가능성도 넓어진다[...]다시 읽기는 역설로 가득하다. 과거에 매달리는 보수적인 활동이지만 또한 판단을 뒤집고 가정을 거부하므로 잠재적으로 혁명적이다.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이 튀어올라와 독자를 놀라게 하거나 혹은 즐겁게 한다. 다시 읽기는 자아가 생각하고 뛰어놀고 명상하도록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런 점에서 다시 읽기는 자아의 확대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과거의 자신과 연관돼 있으므로 어떤 측면에서는 첫 독서보다 오히려 더욱 개인적이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확실히 인스피아를 쓸 때도, 기본적으로 첫번째 독서는 최대한 저자의 의도에 맞추어 읽지만 - 두번째 독서를 할 땐, 첫번째로 읽을 때 파악했던 책의 내용을 지팡이 삼아 조금 더 나만의 질문을 파고들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그래야 책의 내용을 단순히 그릇 속 구슬을 옮겨담듯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궁금한 질문에 조금 더 집중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능숙한 독자라면 첫 독서부터 ‘내 생각’에 집중하며 읽을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체로 첫번째 읽을 땐 내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곤 합니다. 두번째, 세번째 읽을 때 비로소 조금씩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해찰해 볼 여유가 생기죠.

마치 낯선 나라로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첫날은 그저 입을 벌리고 돌아다니기 바쁘다가, 그 이후에 조금씩 거리의 풍경이나 새, 작은 표지판, 동네 서점에도 눈길을 보낼 수 있듯요.

책을 펼쳐서 나의 질문에 집중해 멋대로 해찰을 해보는 것을, ‘책을 둘러싼 자유의 공간’에서 놀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덮으면서는, 결국 다시 읽기란 책을 나의 것으로 온전히 만들고, 맛보는 과정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처럼 “다시 읽기”는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책(작품)에서 다채로운 결의 즐거움, 깨달음을 끌어낼 수 있게 해줍니다.

한번만 ‘읽어 치우고’ 나서 ‘한 권 더 읽었다!’를 외치고 급하게 지나가는 읽기로는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신문에서 이 연구 결과를 처음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계속 이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요. 칼럼의 필자는 이 연구결과에 대해, 인간의 '이입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비록 나는 '결말을 아는 김스피'이지만, 영화를 볼 땐 '결말을 모르는 주인공'에 절실히 이입하기 때문에, 결말을 알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저는 '다시 읽기' 측면에서 풀어보았습니다. 애초에 첫번째 읽기와는 다른 두번째 읽기, 세번째 읽기...의 경험이 있다는 거죠.

저는 이 대목에서 최근 누군가에게 웹소설을 추천할 때 반드시 결말을 스포하는 게 기본(?)이라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왜?"하며 황당했지만, 해피엔딩인 걸 미리 알고 안심하며 보고 싶다는 거죠.(새드 엔딩일 경우에도 미리 각오가 필요하고요.) 물론 결말이 어떻게 날까 두근거리는 독서도 있겠지만, 다른 종류의 독서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고전도 이미 어떤 내용인지 알지만 그래도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3.무인도에 딱 ‘세 권’만 가져간다면】

우리는 <리리딩>에서의 저자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읽기’의 가치에 새삼 주목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쏭달쏭해지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다시 읽기를 하면 되는 걸까요? 물론 다시 읽기에 정해진 방법은 없겠지만, 그 본질에 대해 궁리해볼만한 재미난 생각 실험이 있습니다. 아래의 질문을 궁리해보는 것이죠.

“만약 무인도에 세 권의 책과 함께 떨어진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습니까?”

한번쯤 들어본 것같은 질문인데요. 프랑스의 유명 주간지 <르누벨옵세르바퇴르>는 십수년 간 이 질문을 ‘각잡고’ 전세계 유명 작가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는데요. 이 질문을 작가들에게 던짐으로써 ‘책’과 ‘독서’에 대한 참신한 이야깃거리들을 잔뜩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과연 무인도에 가져갈만큼 소중한 책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독서를 할 때 진짜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작가 196명의 익살맞거나 진지한 답들을 한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프랑수아 아르마네)입니다.

<fig.4> 전세계 196명의 작가들에게 "무인도에 가져갈 세권"을 물어본 책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왼쪽) 무인도에서 책을 읽게 된다면, 어떤 책을 읽게 될까요. 물론 무인도에서 평생 있을지 한철 정도만 있으면 될지 등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 문학수첩, Ink Spill(링크)

이 책의 컨셉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평소 책이라든지 독서에 대해 생각하는 통념을 정반대로 뒤집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쉬울수록
*짧을수록
*간단할수록
*간편하게 읽고 ‘꿀떡’ 넘길 수 있을수록
*모든 가르침을 준다고 할수록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게 같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고, 간편하게 아는척 할 수 있도록(노력의 가성비가 높은?)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속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무인도에 가져갈 단 세 권의 책”이라고 하는 순간 이 조건을 정반대로 뒤엎은 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인도에선 한 권의 책을 수백, 수천번 읽고 또 읽어야할테니, 금방 읽어치울 수 있다면 너무 심심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 책들일수록 선호가 되죠.

*어려울수록
*길수록
*복잡할수록
*여러번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이야기를 줄수록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수록

실제로 작가들이 꼽은 책들 가운데서도 이런 책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겹치는 책들도 꽤 있었는데요. 단골 책은 성경, 돈키호테, 일리아스, 율리시즈, 신곡, 시 선집, 천일야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입니다.

* “무지무지 두꺼운 책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 전집, <돈키호테> 몽테뉴의 <수상록>을 가져가겠다. 저런 셋 다 동시대인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 (폴 오스터·링크)

* “섬에서 오래 지내야 한다는 가정 하에, 나는 꼭 내가 좋아하는 책보다는 충분히 길고 치밀하며 끝없이 다시 읽을 수 있는 매혹적이고 시사적인 책들을 가져가겠다[...]<옥스퍼드 영시선>이나[...]인생은 기나긴 병상에 불과했으나, 영혼은 지상의 온갖 장애를 뛰어넘어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던 작가의 사유들을 조금씩 맛보는 것보다 고독한 난파 생활에 더 위안이 될 만한 게 있을까? 마지막으로는[...]“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성서”로 정의되는 <일 쿠키아이오 다르젠토>를 넣어가겠다. 꼬질꼬질하고 맨발에 넝마를 걸치고 종려나무 잎사귀 한장을 접시 삼아 염소고기와 카사바뿌리 요리 위에 수그린 채 브란지노 알 피노키오나 소박한 수프 조리법을 보며 침을 흘리고, 레몬 나무가 자라는 그 지상낙원을 꿈꿀 수 있어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려진다.” (존 밴빌·링크)

-프랑수아 아르마네,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이하 동일)

*이하, 각 저자 이름 옆에 작가파일 링크를 첨부했으니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어떤 작가이고, 어떤 작품을 썼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름 옆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어떻게든 흥미롭게 시간을 꽉꽉 채워 즐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몇몇 작가들은 외국어 공부까지 겸하기 위해 은근슬쩍 사전을 끼워 넣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무인도에 떨어지는 걸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는 작가들마저 있습니다.

* “나는 늘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를 읽고 싶었지만 제대로 읽을 시간도 동기도 갖지 못했다. 무인도 생활은 마침내 이 괴물같은 소설과 마주할 완벽한 기회일 것 같다[...]우리에겐 심연처럼 깊은, 고갈되지 않는 소설이 필요하다[...]어쩌면 외국어를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링크)

* “…마지막으로 자연사에 관한 두툼한 책. 나는 나무와 동물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흥미를 붙이기에 좋은 기회일 것이다.” (제이디 스미스·링크)

* “세가지 조합으로 세 권이 가능하다. 1.카툴루스 작품집+라틴어교본+라틴어-러시아어 사전 2.신곡+이탈리아어교본+이탈리아어-러시아어 사전 3.카바피스+그리스어 교본+그리스어-러시아어 사전.
내게 외국어 학습의 재능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세 조합 중 어느 것이든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는 배들에게 절대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요청하겠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링크)

이쯤되면 이 작가들은 스스로를 무인도에 넣어주기를 기다렸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 책에는 196명의 작가들을 곱하기 3한것만큼 다양한 책들이 등장하는데요. (간혹 3권 넘게 고른 작가들도 있고, 1권이나 0권을 고른 작가도 있는데 대략 평균을 내면 맞을 듯합니다)

위에 선정된 책들이 ‘읽는 것으로서의 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또 색다른 책의 용도를 알 수 있는 선택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책들을 ‘세상과 만나기 위한 책(도구로서의 책)’과 ‘상상력을 북돋기 위한 책(쓰기 위한 책)’이라고 이름 붙여보았는데요.

우선 ‘세상과 만나기 위한 책’을 선택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지붕과 먹을것은 제공되는지? 그렇지 않다면 <미 육군 생존안내서>를 가져갈 것이다. 상당히 유용할 것이며 어쨌거나 끝없는 매혹을 불러일으킬테니까. 그 섬은 어디에 있나? 사실 나에게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빼앗기는 것보다 새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더 끔찍하다. 그러므로 나는 지역대에 맞는 조류학 책 한권을 가져가겠다. 부디 내게 문학작품을 가져가라고 하지는 말아달라…” (루이스 어드리크·링크)

* “아무리 길더라도(혹은 내가 아직 모르는 책이라도) 소설은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더욱 직접적인 인간과의 유대를 느끼고 싶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나는 플레이아드 총서의 플로베르 <서신> 모음을 가져가, 하루에 편지 한두통씩을 모두 나에게 온 거라고 상상하며 읽을 것이다[...]<즐거운 요리하기>도 가져가겠다. 거기에 실린 다람쥐 요리법은 사냥감이 풍부한 내 섬의 숲에서 덫으로 잡을 가지각색의 동물들을 요리하는 데 손쉽게 적용해볼 수 있을터다.” (줄리언 반스·링크)

이 밖에도 선박 건조법을 담은 책, 모기약(?), <로빈슨 크루소>(실용적인 의미에서), 각종 레시피 책 등을 고른 작가들도 있죠.

두 번째로는 ‘상상력을 북돋기 위한 책’입니다. 주로 ‘백과사전’ 등을 고른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대체로 그 책 자체를 읽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그걸로 ‘반짝’ 불을 당겨 다른 생각거리를 얻고 스스로 쓰기 위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이탈리아의 소설가,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고른 ‘단 한권의 책’은 유명하죠.

* “...딱 잘라서, 전화번호부로 하겠다. 그 많은 이름들을 보며 무한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테니까.” (움베르토 에코·링크)

때로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도 책 내용에 집중하기보단 내게 떠오르는 영감에 집중하곤 하죠. 이럴 때 사실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보다도, 내가 거기서 무엇을 느끼고 상상하고 해찰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fig.5>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정봉이(안재홍)가 전화번호부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 이후 태어나신 분들은 드라마 속에서나 보셨을 수 있을텐데요. 옛날엔 이처럼 사람들의 이름, 전화번호를 빼곡하게 적어둔 전화번호부가 집집마다, 공중전화부스마다 놓여있었습니다.

예전 일본에서 비슷한 앙케트(‘무인도에 가져갈 레코드’)가 진행되었는데 음악가 오타키 에이이치는 레코드가 아닌 ‘레코드 연감’을 가져갈 것이라 답했다고 하죠. 책장을 펼치고 앨범 커버만 보아도 상상 속에서 전곡이 재생되므로 레코드가 굳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런걸로 치면 굳이 ‘책 세권’이 아닌 ‘무언가 세개’를 가져가겠냐는 물음에도 책을 꼽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을까요? 책은 기계도, 충전도 필요없으니까요. tvN

<북극허풍담> 등을 쓴 덴마크 소설가 요른 릴(Jørn Riel·링크)은 실제로 1950년대에 그린란드 북동쪽 무인도에서 18개월 넘게 지낸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때 그 모험 기지에 있는 책이 마침 단 3권이었다고 합니다. 무선방송 실습교본, 1200쪽짜리 원거리 통신 규약집, 그린란드의 젊은 주부를 위한 요리책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읽을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오실로그래프의 효용, 몽골 공화국과 내몽골 자치구 간의 호출 신호는 물론 베이킹소다로 지나치게 열정적인 남자들을 달래는 케이크 만드는 법까지 몽땅” 알게되었다고 하죠.

그는 이번에도 같은 책을 가지고 가도 좋겠지만, 대신 이번에는 마음에 든 소설 한권, 시선집, 그리고 ‘아이슬란드 영웅전설 5~6킬로그램(?)’을 택하겠다고 겸허하게 응답했습니다.

한편 어떤 작가들은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 “차라리 익사하는 게 낫다. 독서란 많은 책을 읽을 가능성이 있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도 멘도사·링크)

* “책이라고? 무인도에서? 뭐하러?” (응우옌 후이 티엡·링크)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속 응답들 속에서 정말로 책을 즐겁게 가지고 노는 프로 독서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새삼스럽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읽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리를 해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는데요.

저는 많은 정보들을 잔뜩 읽어야 한다는 ‘부담’에 치여 억지로 읽기보다도, 그저 키득대거나, 푹 빠져들어 읽거나, 재미난 궁리를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무인도라고? 전화도 없는? 정보 공해가 전혀 없는? 그건 모든 성실한 작가가 세상의 소음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기억을 솟구치게 하고 스스로와의 심도있는 대화를 나눌 장소...” (필리프 솔레르·링크)

【4.맺음말】

‘100개 나라를 여행한 사람은, 해외에 한번도 안 가본 사람보다 현명할까?’

최근 한 여행 사진작가가 SNS에서 던져, 화제가 된 질문입니다.(링크)

과연 ‘더 많은 여행’은 사람을 더 현명하게 하고, 더 열린 시선을 갖게 할까요? 그는 ‘세계 100개국을 다녔다는 사람’도 깜짝 놀랄만큼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결국은 여행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죠.

그는 과거 한 글에서 ‘장기여행자’의 두 유형을 거론하기도 했는데요. 첫째 유형은, 자신이 많은 곳을 다녔으니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의 위대한 경험담, 지식을 허풍스럽게 늘어놓기 바쁜 사람입니다. 둘째는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녔어도 여전히 낯선 곳에서 그곳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여행자들을 만나면 저는 대부분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입니다[...]많이 보고 느낄수록 빠질 수 있는, 다 보고 다 알고 있다는 함정을 경계하는 것. 첫번째 여행을 떠나던 그 마음처럼 끊임없이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 세상은 다양한 시선으로 가득하며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독서(혹은 모든 종류의 읽기, 보기 등)’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몇 권을 ‘읽어치웠냐’보다도, 무엇을 즐겁게 읽을지, 어떤 곳에 더 머무르며 고집스럽게 바라볼지, 자기만의 고민을 가지고 책 안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또 관찰할지, 익숙해보이던 주변 풍경을 어떻게하면 또 새롭게 볼 수 있을지 쪽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다소 생소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쪼끔 읽기’ - 읽은 거 또 읽기, 세 권만 읽기 -에 대해 해찰해보았는데요.

이번 레터가 연구자님들께, ‘우리는 아주 많이, 모조리 살펴보고, (요약본이든 뭐든) 죄다 읽어치워야 한다!!’라는 부담없이, ‘그저 읽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무인도에 세 권의 책을 가져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요?”2)라는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곰곰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실은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을 읽는 내내 떠올려보았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조용히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이 평생 읽고, 보는 그 많은 글들 중에 당신의 손 두 줌에 쥘 수 있는 글들은 얼마나 될까요? 물론 그마저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지겠지만요...’

✏️

“많이 읽되,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말라(Read much, but not many books)-밴저민 프랭클린”

“우리가 도서관이나 길에서 방황하다가 우리 자신마저 잃어버리느냐 아니면 자신의 천분天分을 찾아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우리는 얄팍한 페이지에 뿌리를 내리고 꼼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방랑하는 유대인처럼 흐름을 따라 드넓은 지평선을 향해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도 있다[...]독서는 독자에게 단어의 미로로 들어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서 페이지의 여백 너머에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라고 요구한다.”
-알베르토 망겔, <책 읽는 사람들>

2)혹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바로 딱 떠오르시는 분, 혹은 평소 궁리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은 어떤 세권의 책을 택하셨는지, 레터 최하단의 <편지보내기> 버튼을 눌러 공유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책을 떠올리셨을지 궁금하네요.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이영미 옮김, 『리리딩』, 오브제, 2013.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어릴 때 읽었던 책부터 평생의 독서를 되돌아보며, 과거의 인상깊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어렸을 땐 아주 사랑했던 소설이 돌이켜 읽어보니 아주 별로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옛날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 제대로 읽지 않았던 소설이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흥미롭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하기도 합니다. 주목하는 포인트들도 아주 달라졌고요.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레터에서 다루었던 리처드 세넷의 <장인> 메시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장인의 '반복 작업'이 결코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니듯, 진지한 독자의 '리리딩'은 결코 '단순' 반복 독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같은 경전을 무한히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겠죠.

프랑수아 아르마네, 김희진 옮김,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문학수첩, 2018.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무엇을 가져갈래?" 등의 컨셉의 질문은 꼭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편인데요. 아마도 이런 류의 질문이 우리를 확 잡아끄는 이유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행동이나 사물의 쓸모,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질문의 시초는 앙드레 지드라고 하는데요. 그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전부를 영원히,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나머지는 어떤 하나보다 더 나아보인다-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만약 이렇게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면 한 책에 도저히 모이기 어려웠을 196명의 작가들의 개성있는 목소리가 모여있는 진기한 책이니만큼, 이 책을 지팡이 삼아 여기 나온 작가들의 소설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일단 요른 릴의 소설(<북극허풍담>)을 읽어보려 합니다.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위즈덤하우스, 2015.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읽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독서법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대담 등)을 엮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머릿속에 남았던 대목은, 그가 3년에 책 한 권씩을 독파해나가는 독서법을 대체로 견지해왔고(물론 3년 내내 정말로 한권만 읽는다는 건 아니고, 주로 각잡고 독파하는 고전 한권을 얘기하는 것이겠죠),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소설을 한 작품 쓴다는 것이었는데요. 즉, 그에게 있어 읽기는 곧 쓰기와 거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는 평소 두꺼운 사전과 원서, (일본어버전) 번역서를 두고 세 권을 동시에 읽는 편이라고 하는데, 여동생은 그런 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거야? 두꺼운 쪽?"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독서 예산 삭감’이라는 말의 의미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600자

🖍글 속 한 문장

“내년 문체부 예산안을 보면, ‘국민독서문화 증진사업’이란 항목 자체가 없어졌다[...]단체들은 “전체 114억원 규모의 독서 관련 예산이 10분의 1로 쪼그라들어 12억원 남은 것”이라 주장했다[...]내년 예산안에선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8억원), ‘지역출판산업 육성’(2억원), ‘파주출판단지활성화지원’(14억원), ‘영세출판 창작 및 경력자 재취업 지원’(11억원) 등도 폐지 또는 일부 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저는 어렸을 때 그냥 아무책이나 읽는 걸 좋아하는 아동이었습니다. 너무 아무책이나 읽는 바람에 실은 어린 나이에 읽을 필요도 없고, 읽을 수 없는(?) 책들을 자주 붙잡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차에 초등학교 때 처음 갔던 ‘동네 도서관 동화책 읽기 교실’은 제게 ‘제 나이와 수준에 맞는 양서를 만나게 해준’ 고마운 기억이었고, 또 그때 만났던 <몽실언니> <초콜릿 공장의 비밀> 등의 재미난 어린이책들은 몹시 사랑하며 책장이 거의 다 뜯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떠올려볼 때, 단지 책에 대한 예산이 ‘판매, 인프라’ 등에 대한 예산만 있으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은 여전히 어떤 공간, 어떤 맥락일 것입니다. 또한 물론 이런 양서를 만들어내고 볼 수 있게 하는 출판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빼놓을 수 없겠죠. 작은 도서관에 대한 우려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링크)

조선 최고의 둔재, 독서왕 김득신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5000자

🖍글 속 한 문장

“김득신은 머리가 나빠 그렇게 1억번 이상 읽은 책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습니다[...] 김득신이 말을 타고 어느 집을 지나다가 글읽는 소리를 듣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글귀인데…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그러자 하인이 말했죠. “아니 저 글귀는 ‘부학자 재적극박’ 어쩌구 하는 말이잖아요! 나으리가 평생 읽으신 글귀잖아요. 저도 지겹도록 들어서 외었는데 나으리만 모르겠다는 겁니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조선 최고의 독서왕으로 유명했던 김득신(1604~84·인물사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는 1만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책벌레로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는데요.(링크) 실은 그는 엄청난 둔재라서 글도 겨우 10살에 뗐고, 바깥에서 하도 들어서 하인도 기억하는 구절을 정작 본인은 까먹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래도 그는 계속 읽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읽는 게 즐거웠으니까요.

그의 '반복 또 반복'은 결국 나름의 성취를 이루어내게 했습니다. 김득신의 묘비에 적힌 한마디입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재주가 부족하거든 한가지에 정성을 쏟으라. 이것저것해서 이름이 얻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책 덕후들에 얽힌 완전 이상한 이야기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500자

🖍글 속 한 문장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다면? 영국의 헌트라는 사람은 다음 권을 빌릴 수 없게 되자 런던 도서관에서 총으로 자살했다. 영국 소설가 에벌린 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런던 공습 시기 사람을 시켜 자기 책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아들을 런던에 남겨 책을 지키게 했다[...]아이작 아시모프는 글쓰는 기계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살아갈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쩌겠느냐”는 질문에 “타자를 더 빨리 두드려야죠”라고 답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존 맥스웰 해밀턴의 <저술, 출판, 독서의 사회사> 책 서평입니다. 독서에 얽힌 깜짝 놀랄만하고 흥미진진한 일화들이 가득 담겨있는 책입니다. 19세기에 한 스코틀랜드 시인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서평을 쓴 서평가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도 읽어보지 못했을 재밌는 얘깃거리들을 읽을 수 있고, 책을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책벌레들이란 쯧쯧..."이라고 혀를 찰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 달 동안 책 한 권에 살아 보았다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2600자

🖍글 속 한 문장

“책에서 한 달 살기의 진정한 기쁨은 정말 해 봐야 알 수 있어요. 저도 해 보기 전까지 이 읽기가 제게 이렇게까지 많은 감정과 변화를 가져다 줄지 전혀 몰랐어요. 여행도 그냥 “너무 좋았어” 하는 후기를 듣는 것과 직접 가서 한 달을 살아 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여러 번 살펴서 내어놓은 글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엄청난 만족감을 주더군요...책은 부담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책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어요. 내 곁에 좋은 사람 하나, 좋은 책 하나만 있어도 삶은 분명 달라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쓴 하지희 저자 인터뷰(yes24)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제목과 컨셉을 듣는 순간 아주 부러웠고 저도 그런 프로젝트를 언젠가는 반드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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