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THINGs)
글, 사진 송률
SPACE는 매월 건축가의 일상을 지켜주고 빛내주는 사물에 관한 글을 싣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끼는 물건, 정이 많이 든 물건에 대한 글을 써주시곤 하는데요. 수파 송 슈바이처의 공동대표 송률 건축가는 '버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도 책을요😳 10월호 '것'의 일부를 뉴스레터로만 공개합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고, 보고, 이해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수업만 들으며 선배들 작업하는 것만 보다가 2학년이 되어서야 선배를 따라 건축 서점을 간 적이 있다. 학교로 직접 찾아오는, 학교 사정을 모두 꿰뚫고 있는 일명 ‘책아저씨’의 서점이었다. 선배와 책아저씨는 책장의 책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러이러 해서 꼭 봐야하고, 이것도, 저것도… 안 사면 설계를 못 하게 될 것처럼. 한꺼번에 그렇게 책을 많이 사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지적인) 책이 대신 채워주기라도 할 것처럼, 설계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엄청난 양의 책들을 먼저 구입했다.
(...) 물론 학교 다니면서도 건축 책을 자주 구입했다. 유행처럼 「a+u」 건축가시리즈는 누구나 갖고 있었을 것이다. 유학을 가면서 남겨둔 책들은 이리 옮겨지고 저리 옮겨지면서 어느 정도는 잃어버리고, 어느 정도는 남았다.
나는 작업 할 때 한 번씩 책장을 보며 책 제목들을 훑는다. 그런데 이 훑는 흐름을 계속 방해하는 책들이 있다. 분명 건축가의 고유한 아이디어가 들어있는데, 그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고 오브제만 보이게 하는 책들이다. 책이 아니라 광고 팸플릿 같다. 「a+u」 건축가 시리즈와 특히 몇 명의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의 책이다. 항상 거슬렸지만, 책은 버리면 안 된다는 지적 허영이 망설이게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닳고 닳은 똑같은 언어를 몇 십년 동안 자기 참조만 하는, 특히 한국에서만 인기 있는 그 오브제를 참을 수 없었다. 버리자! 이건 독이다. (...) 옆에 있는 사람은 학교 도서관에 선물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그런 광고 같은 오브제로서의 책들을 보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요즘 학생들은 책을 잘 보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썩는 것보다는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 동네 담당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런데 정말 우스운 일을 경험했다. 페이스북에 어떤 건축가가 어렵게 어느 책을 구했다고 업로드 하였는데, 내가 버린 책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항상 '냉장고'를 짓는 건축가의 책이다. 고백하건데, 나 아주 잠깐 후회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기쁨을 주는 책을 나는 폐지로 버렸다는 죄책감.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책은 폐지로써 더 가치가 있었다.
지성(의 상징인 책)이 폐지가 되는 순간! 그러나 처음부터 폐지로 출판되는 책도 참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