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이웃작가들의 생각을 글로 담습니다.
추구미
안녕하세요. 어쩌면 뉴스레터입니다.

벚꽃이 팝콘처럼 아름답게 봄을 채우고 있습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어쩌면 뉴스레터가 기다려지셨을까요?

이번 글쓰기는 '슈델 작가'님과 함께 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어요. MBTI를 다시 해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스스로를 정의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글을 한번 써보자며 모인 사람들이라 제법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MBTI를 해가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우린 참 다르구나라고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면서 써내려가는 나의 이야기들을 소담하게 담아보았습니다.

어쩌면 이번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에 대하여 진솔한 생각들을 남겨보았습니다. 쌓인 눈 속에서도 열심을 다해 피어나 봄을 알린 벚꽃처럼. 좀처럼 내 마음대로는 되지 않지만,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보려 애쓰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신이 남 몰래 추구하는 당신만의 아름다움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슈델작가의 추구미

요새 유행어라는 추구미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되었다. 

전혀 생각해 본적 없던 추구미란 단어는 나에게 지루하고 식상한 일상의 삶에 자극을 주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날아든 조약돌이 물수제비를 몇 차례 뜨고 가라앉듯 울림과 파동이 있었다.

뇌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까지 할 줄이야….

추구미는 Z세대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한다. 2022년 하반기부터 Z세대 사이에서 확산하기 시작하였다는데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한 추구 미가 있었나? 하고 생각해 보니 추구했던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입는 것, 여행지, 좋아하는 색상 등 취향에 적합한 것들을 나름 선택하며 살았다. 그렇다면 취향? 개성? 가치관? 성향?.

그런데 추구 미는 이런 단어와 뜻하는 게 비슷한 것 같지만 무엇인가 분명 다른 게 있다. 

X세대의 시조격인 70년생인 나는 시대별 흐름에 맞는 획일화된 브랜드, 메이크업 등 유행 패턴의 흐름을 쫓아 구매하고 소비했던 세대이다. 물론 지금도 이 흐름은 여전히 남아있다. 좀 더 세분되고 있다는게 달라진 것일까? 개인의 특성을 살린 배려가 깔려있다. 예전엔 나를 모르고 유행을 좇았다면 지금은 나를 알고 그것에 맞는 그것을 확신하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코드별 선택지가 많다. 미디어의 발달이 제품과 스타일 등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적극적인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추구 미는 사회적으로도 세분된 사업과 경쟁력의 모토가 되며 큰 영향력을 주고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흥미와 재미를 겸한 삶을 나도 느끼며 살면좋겠다.

나도 나에게 맞는 추구미를 찾아야겠다. 설계하고 그것에 맞는 삶은 나에게 많은 삶의 활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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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 작가의 애쓰지 않으니 기다란 샐러리를 만났네

동내면
발바닥을 붙이고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렸다가
무릎 사이 거리로 조절해보는 떨림
두 눈 옆을 감싸는 투명한 파동
애쓰지 않으니 시원하게 빠져나가-
오랫동안 편안해지고 싶었다
신곡리
지난가을 노란 춤을 췄던 곳
붉고 어두운 바닥 벽돌 사이사이
마른 풀잎이 짤따랗게 피어있다
꿋꿋한 생명-
공작 단풍나무 가지가
우산처럼 내 앞에 우두커니
한참을 요리조리 바라보았다
괜찮아 넌, 언제나 보호받고 있어
을사년
나무뱀이 굳건히 미소짓는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초록과 주황으로 둘러싸인 곳
할 일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들
시작의 시작
매산로 
13번 버스 발판 앞
연둣빛 봄 잎사귀 한 장
아-이제-
동교동
기다란 샐러리를 품에 안고 스르르 
자전거를 주차하는 여자
오래도록 편안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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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자 작가의 추구미

 Book 살롱 모임에서 <추구미>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MZ들의 신조어란다. 모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X세대 이가 신 용어를 소개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지식iN에서 찾아본 추구미(追求美)의 정의는 이러했다.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줄임말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취향을 뜻함.’ 추구미가 취향일 수는 있으나, 취향이 추구미와 동일어는 아니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MBTI 검사에 이어 최근에 유행한다는 추구미 테스트도 딸려왔다. 예전에는 혈액형만 가지고도 성격을 웬만큼 알 것 같았는데, 이제는 최소 16가지 유형 넘게 파악해야 사람 속이 좀 보이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졌나 보다.

 친절한 네*버씨는 내가 검색하지 않은 또 다른 신조어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도달가능미> 란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이미지’라는 의미로, 추구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쓰는 말이란다. 추구미를 추구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란 소리겠다.

 갑자기 올라온 <추구미>란 화두 덕분에 평소라면 잘 생각하지 않을,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대한 물음이 생겼다. 생각을 끄집어 내보니, 나의 외적인 로망은 발레리나와 같은 하늘하늘함, 국민 첫사랑 수지와 같은 청순함, 꾸안꾸 스타일의 멋스러움 이런 것들이었다. 젊은 시절엔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도 해보고 싶었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수십 년간 짧은 커트머리를 N번 째 고수하고 있다. 본태적으로 다리가 짧고 두꺼워 발레리나의 하늘거림은 다음 생에서나 가능하지 싶다. 아! 이런 게 바로 <도달가능미>구나 ㅠ. 열망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 놓인 간극이 결코 좁지 않음을 확인하는 현타의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추구미>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고난 것이야 바꾸기 쉽지 않다 해도, 내면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아름답고 성숙하게 가꿀 수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란 위로의 말 같다. 앞으로는 어떻게, 누구처럼 살고 싶은가가 핵심이다. 

 나는 타샤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샤 튜더(1915.8~2008.6/미국)는 「비밀의 화원」과 「소공녀」,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 삽화를 그린 베스트셀러 동화 삽화작가이자, 40년간 가꾼 아름다운 정원을 맨발로 거닐며, 전기와 수도도 없는 19세기식 농가에서 닭과 염소를 키우고 살던 자연주의자였다.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그녀의 그림은 너무나 따뜻하고, 문명의 이기 없이 살아도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해 보여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었다.

“나는 정원을 무척 좋아해요. 나무나 꽃을 심고 키우며 돌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힘들지 않나요? 하고 묻는 분도 계시지만, 난 정원의 나무나 꽃들에게 특별한 걸 해주지는 않아요. 그저 좋아하니까, 나무나 꽃에게 좋으리라고 생각되는 것, 나무나 꽃이 기뻐하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개를 키우고, 정원을 가꾸고, 옷을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조용한 삶이었다.

 나는 전기 없는 집에서 염소를 키울 자신이 없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자신은 더 없지만, 생의 마지막 날까지 나무 그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삶이 늘상 아름답고 우아할 수는 없으나, 自足하며 산다면 그 끝이 아름다울 가능성은 꽤 높다. 이 <추구미>에는 도달하고픈 욕심이 든다. 거울에 비치는 나이든 내 모습이 美와는 거리가 멀지라도, 마음에는 주름살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기쁜 삶을 추구한다.
지니작가의 <추구미>

  “주꾸미?” 듣자마자 반문했다. 갈수록 청력과 인지력은 뒤죽박죽 서로 충돌한다.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단어의 조합은 특히나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통하는 말이라며 늦 작가님이 친절하게 이런저런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오호라! 요즘 세대는 이런 내용에 관심이 있군.’ 젊은 작가님들을 몰랐더라면 무식쟁이가 될 뻔했다. 서로 통하는 말을 알고 모르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은 연대의 표시다. 같은 언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동지애가 싹트지 않나? 그중에서도 자기들만의 단어는 묘한 동질감과 소속감까지 느끼게 하니 말이다. 반면에 같은 언어를 쓴다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신조어는 소외감은 물론 좌절감과 반발심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말도 있다. “이 카페 ‘느좋’인데,” (이 질문은 내 연배분에게 한함) 감이 오는가? ‘느좋’이 무슨 뜻인지? 점점 줄임말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느낌이 좋다’를 줄인 말인 ‘느좋’을 형용사처럼 쓰고 있다. 발음이 다른 비속어를 연상시키다 보니 의아해하면서도 은근히 카타르시스가 있다. 금단의 열매는 언제나 욕망의 최대치가 아닌가. 

  아무튼 서론이 길지만 한 가지만 더한다면, 추구에 미까지 더한 게 또한 흥미롭다. 유사 이래 인간은 늘 무언가를 좇고(이번에도 발음이 좀 비속어다, 물론 쫓는 자도 있고) 산다. 부를 좇든 명예를 좇든, 사랑을 좇든, 도둑을 쫓든, 애인을 쫓든(스토킹은 아니다), 사냥감을 쫓든, 인간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보태어 서로 전달하며 확장하는 게 요즘 감성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유행에 적극 올라타고 싶은데 참 어색한 말이기도 하다. 마치 8, 90대인 내 부모가 ‘대박’하고 추임새를 넣는다고나 할까. 나로서는 어색한 신조어다. 내가 주로 소통하는 무리는 이 말을 쓰지 않는다. 이런 개념이 없어서는 아니다. 우린 투쟁하듯 추구할 것을 추구해 온 세대다. 여전히 자기만의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 아마도 신념이나 신조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우리는 신념이나 신조에 미(美)를 융합하지 못했을 뿐이다. 신념미 또는 신조미는 음성학적으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 같다. 짬짜면의 상상력이 부족했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비즈니스를 창출하지 못했다. 무엇을 추구하든 그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는 자유와 상상력에 또 한 수 배운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의 추구미는 배움이다. 죽을 때까지 내가 배우는 것은 모두 아름다울 터다. 아름다운 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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슝작가의 추구미

나라는 사람도 나이가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나 보다. 

ENFP의 활기찬 20대 시절을 지나고 지금은 조금 젊잖아진 INFP로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 검사 결과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마치 과일이 숙성되어 최상의 당도를 만드는 것처럼, 삶이 지나며 본인을 더 안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성격을 조금씩 바꾸는 듯하다. 그게 사람이 유해지는 것일 수도 있고 본인을 방어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바뀌기 전의 성격이 없어졌다고 보진 않는다.

그것은 나의 추구미.

보통 체리는 검정색에 가까워졌을 때 맛이 절정에 다다른다. 아삭함이 극대화된 체리의 달콤함은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숙성되기 전 빨간빛의 체리는 새콤달콤 하면서도 통통함이 매력적이다.

 나는 지금 검정색 체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빨간 체리의 시절인 20대의 기억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마음에 불이 타오르는 것 같고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10년 전 나의 모습이 나의 추구미라니, 아이러니하다.

부쩍 겁이 많아진 요즘이다. 

사회생활도 어느덧 10년 차가 되었고, 자유롭게 어디 한 곳을 놀러 가기도 쉽지 않다. 
돈 문제 시간 문제 피로 문제 등. 무언가를 추진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기 마련인데 나의 추구미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결과에 대하여 다음 목표를 정하고 다시 도전하는,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할 때 과정이야 돌아갈 수 있겠지만 실패나 후회라는 결과값은 전혀 없었다. 
안되면 어쩌려고? 라며 묻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그냥 웃음으로 답만 할 뿐 내 머릿속에는 온통 성공의 시나리오만 작성되어 있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마치 보물처럼 내 안에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이번에는 마트에서 검정색 체리가 아닌 빨간 빛의 체리를 사서 먹어보아야겠다.
로즈문작가의 직업과 추구미

내 직업은 섬유공예가다.

뭐 꽤나 멋있어보이는 타이틀이지만 실상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일을 하는 영세업자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직업으로 이 일을 해내려니 장애물이 끝도없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보려 노력도 해보고 잠시 갈아타 보기도 했지만 결국 되돌아왔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한 이십년 이렇게 살다보니 이젠 그냥 직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추구미가 뭐 별거 겠는가? 

좋아하는 일 하며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는게 추구미겠지.
이제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매일 매일이 반복없는 하루가 되더라도 나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섬유공예는 나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닌, 
현실을 살아내는 나만의 방법이다.
내 삶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그냥 그곳.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좀 더 해봐야겠다. 힘든 날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작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리라. 

결국,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
인정 받기 위한 길이 아니라 나자신에게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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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자작가의 멋스럽게 익어가는 어른

영원하지 않음을 완전하지도 않음을 알면서도 신기루를 쫓듯 사는 살았던 시간들을 엎고 싶다.
생각이 말을, 말이 행동이 되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 삶과 인생이 됨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무엇인가 채우고자, 담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버리는 작업, 비우는 습관을 익히길 바래본다.

첫째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멍때리기
둘째는 가까운 곳보다는 시선을 멀리두기
셋째는 말을 줄이기
넷째는 많이 걷고, 많이 움직이기
.
.
.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타인들에게 불리어져야하는 존칭이기에 이것에서도 벗어나려한다.

먼훗날, 나이 많은게 벼슬이야! 이런 평가만 듣지 않게 살아야겠다.
봄꽃들이 곧 만개할 3월의 어느 날. 나의 추구미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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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작가의 영원히 늙지 못하는 마음을 추구합니다.

새벽 5시, 모든 것이 고요한 시간, 양치를 하며 마주한 나의 모습은 뭐랄까. 아무렇게나 짜져 있는 치약처럼 쭈굴해보인다. 자고 일어났을 때 얼굴의 자국들이 회복되지 않는 걸 보면, 35살부터 과속노화가 시작된다는 의사의 호들갑이 영 틀린 소리는 아닌가보다.

나이를 잊고 싶다고 해서 그 숫자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가 '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외적인 젊음에 대한 집착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늙지 않는 마음이다. 외적인 젊음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지만, 내면의 젊음은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자아를 풍요롭게 만든다. 나이를 먹어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며 신조어를 메모장에 꾹꾹 눌러 쓰는 작가님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는 그 호기심과 열정이 삶을 얼마나 젊게 만드는지를. 

앞으로 30년 뒤, 영원한 소년! 늦작가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철없이 살겠다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몰랐던 세상에 조금씩 다가가는 싱그러운 계절에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무엇을 알게 될지, 또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영원히 젊다.
어쩌면 뉴스레터가 선정한 오늘 내 방을 채울 음악
🎵 해리안윤소안 남매가 부르는 '아이유의 푸르던'
그날 알았지 이럴 줄 이렇게 될 줄두고두고 생각날 거란 걸 바로 알았지
귀뚜라미 울음소리힘을 주어 (잡고 있던) 작은 손

너는 조용히 내려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나는 한참을 서서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너의 기억은 어떨까 무슨 색일까너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소중했을까
연구름이 지나가네그 사이로 (선바람이) 흐르네

너는 조용히 내려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나는 한참을 서서 (참을)(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빗소리가 삼킨 사랑스런 대화조그맣게 움을 트는 마음그림처럼 묽게 번진 여름 안에오로지 또렷한 너

너는 조용히 내려 (조용히)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나는 한참을 서서 (ah)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그날 알았지 이럴 줄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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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한 교육서비스책을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한 출판서비스를 업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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