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오늘의 에세이 당번 야백입니다. 

5월 초의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연휴 앞뒤로 연차를 붙여서 간만에 좀 푹 쉬었습니다.

쉴 때와 일할 때, 같은 24시간이라도 시간이 흐르는 속력과 방향은 참 제각각인 것 같아요.

오늘의 에세이는 천천히 흐르던 휴가 중의 시간을 보존해두고 싶단 생각으로 써봤습니다.


오늘도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간의 시간>

연차를 썼다.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집에만 있기로 한다. 동네를 대낮에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휴양이다. 공들여 부풀린 꽃다발 같은 초록 하양의 이팝나무가 만개한 계절. 꽃그림자가 아스팔트 위를 어른대기 시작하면 나도 슬리퍼를 끌고 공원으로 나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노인들이 많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도는 노인들의 행진에 슬쩍 끼어들어서, 공원 밖의 세상을 생각한다. 쓸데없이 요란해서 나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명함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맛을 알려준 회사 앞 카페와, 인간이 만든 모든 지식을 학습했다는 인공지능과, 회의, 회의, 회의들. 잠시 부재중 알림을 띄워두고 온 나의 밥벌이들을.


이번 주엔 정말로 그것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도 된다. 앞으로 하루 이틀은 돈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시험 기간도 아니고, 병실에서 의사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온갖 잡다한 고민 없이 보낼 수 있는 지구에서의 시간이라니. 완벽하게 치워져 있는 책상, 혹은 충분히 크고 깨끗한 캔버스 같은 시간을 누릴 자유를 손에 넣었다. 뭘 해야 할까.


싱겁게도 내 마음은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어쩌다 욕망하기를, 또 욕망하기를 욕망하는 것에도 흥미를 잃어버리게 됐나. 지난 몇 년 간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고장이 난 걸까.


지난주엔 어떤 작가에게 책에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게 소원이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아마도 신이 내게 같은 걸 물었을 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 운명이란 걸 깨달았고.


소원이 도대체 뭐지. 소원이 어떻게 있지. 아니, 소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지. 가슴속에 난 어떤 어두운 공간을 순식간에 모른 체하고, 목울대를 애써 누르느라 먹먹해진 목소리를 티 내지 않고서? 소원이란 너무 애틋한 말이다. 다분히 신파적인 단어다. 소원은,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공원을 계속해서 걷는다. 산책로를 벗어나 소원의 반대 방향으로, 더 이상 그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기척이 잦아들고, 그림자는 짧아진다. 어쩌면 소원의 반대항은 해탈이나 금욕 따위가 아니라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시간. 사용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시간.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 같은 그런 시간.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다 볕이 너무 뜨거우면 그대로 첨벙첨벙 달려가 몸을 푹 담가 볼 수도 있는 시간.


한참 멱 감고 놀고 나선 발만 적시고 누워 그 값비싸다는 유한성이 광속으로 흘러가는 것을 잠결의 곁눈으로 볼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그 시간. 어떤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의 시간. 내가 감히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연차를 쓰거나,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꾸거나, 조용히 책을 읽거나, 술에 취하거나. 이건 모두 시간에 조금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 하는 일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시간의 더 깊은 곳으로.

땅을 따라 시선을 긋다가 벤치 아래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개들과 눈이 마주친다. 졸릴 때 마음대로 졸 수 있는 팔자를 타고난 이들-목줄을 찬 미지의 주민들의 눈동자에서 마음대로 읽어낸 이야기.


“같은 물에 두 번 발 담굴 순 없다고들 하지. 맞는 말이야. 시간도 마찬가지야. 두 번은 없어. 모든 게 단 한 번, 순식간에 지나가는 건데도 왜 조금 더 많이 느끼는 걸 선택하지 않지? 왜 시간을 향해 가는 법을 모르지?"


다시 공원. 그림자를 모조리 흩어버리는 한낮의 태양. 꽃가루가 코를 간질이고, 햇볕이 하얗게 부서지며 정수리를 따끈하게 데우는 정오의 풀밭을 걷는다. 어른들에겐 소원을 묻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꿈이 뭔지 묻는 풍습을 가진 나라에 사는 나는 어린 시절의 여름휴가를, 거기에서 지었던 모래성을, 모래성을 지을 때 성 속의 주민들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해내려 애쓰며.


"어떤 섬에 살던 부족이 있었대. 이제는 사라졌단다. 거기서 쓰던 언어에선 시간과 꿈을 뜻하는 단어가 똑같았대. 그들은 시계 대신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헤아렸단다. 그곳의 아이들도 여기와 마찬가지로 해변에서 모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모래성이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시간, 아이의 흥미가 모래에 머무는 한나절 동안이 바로 시간의 단위지. 거기서 시간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헤엄을 칠 때, 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 모두 각각 다르게 흐르는데, 그 섬에서 시간이란 마땅히 그렇게 흘러야 하는 거였지.


모두가 각자의 시간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에 밤이든 낮이든 큰 차이 없이 늘 조용한 그곳에는 시간을 다르게 세야 하는 경우가 딱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야.


그러면 그들은 서로의 눈을 충분할 때까지 바라본단다. 그게 얼마나 오래냐고? 음... 모래성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바람이 지구를 몇 바퀴 돌고... 아무래도 그 기적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만큼이라고 밖에 못 말하겠네. 우리말로 번역이 좀 어려워. 굳이 고르자면-음-인생? 그 섬에선 이걸 사람의 생을 헤아리는 단위로 쓰거든."


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림자가 빼꼼 자라났다. 그림자의 무게에 못 이기는 척 이제 그만 돌아가기로 한다. 지금이 몇 시쯤이려나.


괜찮다. 아직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

파주 :  빨간날이 유난히 많은, 참으로 은혜로운 5월입니다. 저는 연차를 내진 못했지만 공휴일 덕분에 숨통이 조금 트였어요. 물론, 하루 덜 일한 만큼 하루치의 일이 쌓여있겠지만요. 어차피 초과근무가 일상인 요즘이라 하루라도 출근을 덜 하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어제는 서촌이나 북촌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려다가 포기했습니다. 거기에 가려면 씻고 면도도 해야 하고요. 머리도 공들여 말려야 하니까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거기까지 가려면 지하철에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눌러앉아 있어야 하는데, 구름 한 점 없는 이런 날씨에 지하철을 타는 게 꼭 죄 짓는 기분이 들어서요. 집에서 수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곤 배를 두들기며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니까 제가 사는 동네의 풍경이 꽤나 근사하더라고요. 퇴근하고선 집에 들어오기 바빠 미처 둘러볼 생각도 못했거든요. 가까운 천까지 가는 길엔 길쭉한 가로수가 있고 그 가로수의 그늘이 드리워진 꽤 널찍한 잔디밭도 있었습니다. 야백님이 보셨을 하양이 이팝나무도, 각양각색의 꽃들도 길마다 흐드러진 모습도 보았고요. 이름 모를 새들도 만났습니다.


배우자와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내내 감탄하면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간을 누리는 것도 모두, 휴일이라서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자연스럽게 파이어족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의 소비패턴을 고려하면 ‘당신에게는 18억이라는 돈이 필요하다’라는 진단을 받았거든요. 그러려면 앞으로 몇 년, 아닌 몇 십 년 동안은 죽을 듯이 일만 하고 외식과 데이트도 포기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지금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려면 앞으로 십여 년 간 잠깐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라니…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미래도,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포기한 다른 미래도 모두 두렵기는 마찬가지네요. 하지만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배우자와 함께 산책하며 아주 잠깐의 여유를 누리는 어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요. 휴일은 이제 끝났지만, 괜찮습니다.

파주 :  요즘엔 회사가 위치한 역에 내리면 이 노래를 재생합니다. 남의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꼭 호빵맨처럼 제 머리통 한쪽을 떼어주는 일처럼 느껴져서요. 엄숙해지지 않으면 출근할 용기가 솟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모든 걸 소진한 듯한 기분이 드는 퇴근길에도 이 노래를 꺼내듣습니다. 그런 날엔 몸이 늘 비어있는 깡통처럼 툭 치면 날아갈 것만 같거든요. 그 순간 주윤하 아저씨의 낮은 저음이 빈 공간을 묵직하게 채워주는 느낌입니다.

사실 집에 간다고 해서 딱히 근사한 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지럽힌 공간과 곧 닥칠 내일의 출근이 저를 기다릴 뿐이죠. 그럼에도 나직하게 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만큼은 묘한 안도감을 느낍니다. 몇 번의 반복재생이 흐르고 나니 어느새 집이네요. 이제 다시, 내일 뜯길 머리통을 수선할 시간입니다.

유일한 진정한 여행, 유일한 청춘의 샘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한 사람의 눈으로, 백 명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 각자가 보는, 그들 각자인 백 개의 우주를 보는 것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권 중


연휴 후 복귀 첫날인 오늘 풀칠러님은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며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지난 휴일에 눈에 담은 것들이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느끼는데 도움이 되었길 바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주 뒤에 또 뵙겠습니다.


우정을 담아, 풀칠 팀 드림.

credit
에세이 | 야백
코멘트 |  파주
풀칠러스케치 | 야백
풀레이리스트 | 파주
사진 | 파주
편집 | 야백, 파주

Published by
풀칠 | 밥벌이 미학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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