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정신을 깨웁니다. 
뉴스레터 8월호입니다.

리영희재단은 언론재단과 함께 리영희 저널리즘스쿨을 준비했습니다. 리영희는 저널리즘이 뭐냐는 질문에 “현실 속에 들어가 행동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식과 면밀한 관찰이라는 토대와 건전한 주관을 동시에 요구한, 이를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는 글쓰기를 요구한 리영희 저널리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7월에 끝난 리영희클럽 박래군과 함께하는 전쟁기념관 기행 후기와 전제 강좌 종료 후 수강생과 함께한 집담회 기록을 올립니다.

모두가 얘기하는 비상한 시기, 모두가 안된다고 했던 시민의 신문을 두 발로 뛰면서 창간을 해낸 경험을 갖고 있는 김현대 이사,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여전히 한겨레신문이 대한민국의 주요 의제를 끌어가는 언론사가 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확신합니다.‘재단과 함께하는 사람’김현대 이사 편입니다. 후원회원 정현백 선생님은 ‘비판하는 남한사람’ 리영희,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혹은 유쾌한 일이 생길 때 눈가에 바로 기쁨의 표정이 떠오르는 리영희를 엉거주춤 서있는 지금,우리에게 불러내 주었습니다.

아카이브는 리영희가 1989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획사건으로 수감중에 부인 윤영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재판에서 모두진술과 최후진술로 발표한 내용은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고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삽시다” 라는 편지 내용에도 불구하고 출옥 후 정리되어 잡지에 실리게 됩니다. 임재경 선생은 그의 <길을 찾아서>에서 “내 주변에서 편지와 엽서를 잘 쓰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리영희다. 만약 그에게 옥중 생활 동안 집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면 우리에게도 로자 룩셈부르크나 안토니오 그람시가 남긴 것 같은 불후의 옥중서간집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쓰고 있습니다. 불행히 한국의 양심수는 1970년대나 80년대 감옥에서 집필할 자유가 없었지요. 이 사건은 집행유예로 끝났기에 봉함엽서와 기억에 근거해 글로 완성되 나올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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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식
2022 리영희 클럽-리영희와 현장
리영희클럽 8강은 박래군과 함께하는 전쟁기념관 기행이었습니다. 전쟁 속에 인간의 삶은 없고 전투만 있는 전시. 전투에서는 ‘적’ 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승리가 목적일 수 밖에 없는 논리에 충실한 전시였습니다. 박래군 선생은 이 전투현장에 인간의 삶을 우선시하는 빨간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9강은 그간의 강좌 소감을 나눈 잡담회였습니다. 강영선, 송환웅, 권해형, 유성애, 조성지 수강생과 강좌 내내 함께해주신 염종선 리영희재단 이사, 그리고 이 강좌 전반의 담임선생 역할을 했던 김언경 이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세히 보기

리영희 저널리즘 스쿨 2022 - 리영희와 행동

<강의 일정>


1강 9/15 리영희 저널리즘을 생각하다 | 박영흠(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 전 협성대학교 교수, 전 경향신문 기자)


2강 9/22 국제분쟁 보도 무엇이 중요한가 | 김영미(국제분쟁 전문피디, 다큐앤드뉴스코리아 대표)


3강 9/29 문제를 해결하는 탐사보도 | 박상규(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전 오마이뉴스 기자)


4강 10/6 리영희 저널리즘, 무엇을 갖춰야 할까 | 변상욱(프리랜서 언론인, 전 CBS 대기자)


5강 10/13 ‘좋은’ 정치기사의 조건 | 안수찬(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전 한겨레 기자)


6강 10/20 지역언론 이슈 찾기와 생존전략 | 심병철(대구MBC 보도국 편집제작부장)


7강 10/27 북토크 | 일과 인간관계의 속에서 안녕하기 | 이병남(전 LG인화원장/리영희재단 이사)


8강 11/3 유튜브 저널리즘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 | 신혜림(유튜브 씨리얼 피디)


9강 11/10 특강 | 리영희 선생과 나 | 특별강사(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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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후원제와 유료화를 포함한 한겨레형 구독모델을
과감하게 실험하고 진화시켜 나가야
김현대(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사장)

후원제를 시작하면서 안팎의 비판 많이 받았습니다. 모든 후원 절차가 디지털에서 진행되는데요. 후원자들의 이용편의성, 후원 마케팅, 그리고 후원을 요청할만한 기사 품질 향상까지 제대로 준비돼 있느냐 하는 지적이었지요. 이른바 ‘개문발차’를 했습니다. 후원제 하기에 미진한 점 투성이였지만, 먼저 시작부터 했습니다. 한겨레 문화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제대로 준비하자면 제 3년 임기 내에 첫걸음 떼는 것 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냉정하게 판단했던 거지요.

재단 친구 회원의 글

'비판하는 남한 사람' 리영희 선생님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혹은 유쾌한 일이 생길 때 선생님 눈가에 바로 떠오르는 기쁨의 표정과 빛나는 그러나 때로는 치기어린 눈빛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희열을 느끼고, 동시에 있는 그대로를 신선하게 수용하는 그 분의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엉거주춤하며 당혹스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요즈음의 우리 모습을 보면서, 더욱 리영희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그리워진다.
리영희 아카이브
89년 한겨레 방북 취재 사건으로 수감중 집으로 보낸 편지

재판 같지도 않은 재판에서 뭐 진지하게 최후진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의견도 옳아요. 그런 생각이기는 하지만 재판이 재판답지 않을수록 밖의 사회의 기록에라도 남기고, 활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재판”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인가 하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