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
찰리 멍거는 100세 생일을 불과 33일 앞둔 11월 28일에 사망했습니다. 오마하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는 인생의 80%를 다른 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35세나 되던 1959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62년에야 투자 관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 3년이 더 지나고 그는 제가 버크셔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아주 정확하게도!)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이미 그 결정을 내렸으니 실수를 바로잡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다음으로 할 이야기에 앞서, 찰리와 그의 가족은 당시 제가 관리하고 있던 소규모 투자 파트너십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고, 제가 버크셔 인수에 사용한 자금에도 투자한 돈이 한 푼도 없었음을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우리 둘 중 누구도 찰리가 버크셔 주식을 하나라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년 찰리는 버크셔를 인수한 저에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워런,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회사를 또 인수할 생각은 잊어버려. 하지만 이제 버크셔를 맡게 되었으니 좋은(저렴한) 가격에 산 훌륭한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 좋은(그저그런) 기업을 훌륭한(높은) 가격에 사는 것을 포기하게. 다시 말해, 당신의 영웅인 벤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버리라는 뜻이야. 그의 방법은 작은 스케일에서만 통할 수 있어."
* 가치 투자의 아버지로도 불리며, 극단적으로 저평가된 '담배꽁초'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을 워런 버핏에게 전수했다.
저는 깊은 고민 끝에 그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죠.
수년 후, 찰리는 버크셔를 운영하는 저의 파트너가 되었고, 저의 옛 습관이 드러날 때마다 반복해서 제가 정신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역할을 계속했고, 초기에 함께 투자했던 사람들과 우리는 찰리와 내가 꿈꿔왔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찰리는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였고, 저는 그의 비전을 매일매일 건설하는 '시공자' 역할을 했습니다.
찰리는 자신이 한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제가 공로를 인정받고 찬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찰리는 제게 큰 형 같기도 하고 자상한 아버지 같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제가 고삐를 쥐고 있도록 해주었고, 제가 실수했을 때에도 제 실수를 결코 상기시키지 않았어요.
실제 세계에서 위대한 건물은 건축가와 연결되지만, 콘크리트를 타설하거나 창문을 설치한 사람은 곧 잊혀집니다. 버크셔는 위대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오랫동안 건축 책임자였지만 찰리가 이 회사의 진정한 건축가였다는 공로를 영원히 인정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