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티스트들에게 띄우는 딥한 러브레터

🍷 어느 프로 느긋러를 위한 찬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초록과 두 번째 방이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그 풍경만은 익숙한 초록, 시간과 정성을 들여 지어두곤 가보지 못한 세상 어딘가의 방. 언젠가는 그 초록 밑에서 쉬어가고, 아늑한 그 방에 당도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요. 

Céu의 'Comadi'는 아직 가보지 않은 제 두 번째 방에 무한 반복으로 틀어두고 싶은 곡입니다. 지친 여행의 끝에 이 곡이 흘러나오는 방이 있어 준다면 얼마든지 힘을 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에서 좋아하는 한 장면입니다. 아녜스 바르다는 넉넉지 않은 제작비로도 어떻게든 뚝딱뚝딱 영화를 만들어냈던 감독인데요. 동물들이 갑자기 길을 가로막는 등의 변수들에 취약한 제작 환경을 지휘하면서도, 특유의 긍정 어린 시선을 잃지 않았고, 그걸 작품 안에 기록해내었습니다.
 

어렸을 적엔 너무나도 느긋하고 태평해서 주변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의 레이지 키드였던 저는 어느덧 '느긋해지기' 앞에 아마추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은 느긋하게 늘어지는 것도 방법을 몰라 각종 매뉴얼을 찾아 헤매곤 합니다. 힐링하는 방법마저 공부처럼 학습하려는 것이죠. 그치만 우리가 배워야 할 힐링법이란 그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태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사회라는 휩쓸림에 한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우리 안의 프로 느긋러는 때로 쿨몽둥이질 당하고 업신여김당하며 존재를 죽여야 했습니다. 내가 느긋해지는 법 앞에 까막눈인 척하는 동안 내 안의 프로 느긋러는 언제든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저만의 두 번째 방에 입성할 언젠가의 저는 이 프로 느긋러의 모습이길 꿈꿉니다. 그때 이 'Comadi'가 저를 반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복잡한 건 모두 내 현실이 있는 첫 번째 방에 다 밀어두고서, 두 번째 방으로의 긴 여정을 훌쩍 떠날 그 날을 위해 한 곡쯤 골라두시는 건 어떨까요? 그 빈방은 아주 긴 시간 동안 한 명의 주인을 맞기 위해 단 한 곡으로만 공간을 채워두고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어 줄 겁니다. 그 위안으로 첫 번째 방에서의 복잡다단한 이 현실을 견딜 수 있다면, 곡을 고르는 고민의 시간도 기꺼운 위로가 될 겁니다. 여러분만의 'Comadi'가 울려 퍼질 누구도 당도하지 않은 빈방을 상상할 수 있다면요.

- 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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