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게 있어요.
“혜린이랑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아이 마음을 여는 특별한 질문이 있는지, 무슨 말을 꺼내야 대화가 길어지는지 물어보시고요.
그런데 저희가 나누는 대화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아요.
저희도 이런 대화를 배워본 적이 별로 없잖아요.
어릴 때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두런두런 나누기보다, 잔소리를 듣고 조용히 밥을 먹는 일에 더 익숙했고요.
그러니 막상 내 아이와 이야기하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한 게 당연해요.
어느 날 피자를 먹습니다.
“피자 너무 맛있다.”
“엄마는 피자 먹으러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
“이탈리아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을까?”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피자를 먹기 시작했을까?”
이런 식이에요.
피자를 먹다가 이탈리아로 가고, 이탈리아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토마토가 많이 나서 그랬을까. 빵 위에 남은 재료를 올려 먹은 게 시작이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매일 피자를 먹을까.
정답은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정답을 맞히려고 묻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같이 궁금해하는 거예요.
찾아볼 때도 있고, 서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다가 끝날 때도 있어요.
결론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는 자꾸 중요한 것부터 물으려고 해요.
학교생활은 어떤지.
친구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이의 가치관은 어떤지.
다 중요한 이야기라 질문도 무거워져요.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
“너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데 이런 질문을 갑자기 받으면 어른도 쉽게 답하기 어려워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엄마가 왜 묻는지도 신경 쓰여요.
뭔가 그럴듯한 답을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러니 짧게 끝냅니다.
“그냥.”
“몰라.”
“별일 없어.”
엄마는 아이가 대화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화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큰 질문부터 받은 걸 수도 있어요.
좋은 대화는 양쪽 모두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대화라고 해요.
미리 정해둔 결론이 없고,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고, 말을 주고받는 동안 생각이 옆으로 계속 뻗어가는 대화요.
부모가 답을 다 아는 사람처럼 앉아 있을 때보다 “나도 모르겠는데?”라고 할 때 아이가 더 많이 말하기 시작하고요.
생각해보면 당연해요.
엄마가 이미 답을 알고 물으면 아이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됩니다.
엄마도 답을 모르고 같이 궁금해하면 아이는 대화하는 사람이 되고요.
둘은 완전히 달라요.
이런 사소한 질문은 아이가 부담 없이 생각하게 해요.
피자를 보면서 나라를 떠올리고, 토마토를 떠올리고,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해요.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데리고 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이미 자기가 아는 걸 꺼내보고, 서로 연결하고, 말이 되는지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질문은 틀려도 괜찮아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피자를 왜 먹기 시작했을까?”에 엉뚱한 답을 한다고 혼날 일은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가 자기 생각을 꺼내봅니다.
말해보고, 엄마 말을 듣고, 그 말을 받아서 또 다른 생각을 붙여요.
대화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저는 대화를 위해 질문 목록을 준비하지 않아요.
눈앞에 있는 걸 그냥 말합니다.
복숭아를 먹다가 왜 여름 복숭아가 더 맛있는지 이야기하고, 영화를 보다가 저 사람은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이야기해요.
길을 가다가 이상한 간판을 보면 저 가게는 왜 저 이름을 지었을까 묻고요.
무슨 교훈을 얻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혜린이 생각을 검사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한 사람의 생각이 궁금한 거예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못 본 걸 너는 봤는지.
그게 궁금해서 묻습니다.
저는 이걸 친구에게 말하듯 두런두런 이야기한다고 표현해요.
그런데 이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세요.
친구에게 하듯 아이에게 엄마 속마음을 전부 털어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엄마는 네가 그렇게 말해서 너무 섭섭했어.”
“엄마는 요즘 너무 힘들고 화가 나.”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상한지 아니?”
이건 제가 말하는 대화와 달라요.
친구처럼 이야기한다는 건 아이에게 엄마 감정을 다 받아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른 친구라면 내 속상함을 오래 들어주고 위로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는 엄마 감정을 들으면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엄마를 더 힘들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자기 이야기를 줄일 수도 있고요.
그러면 아이와 가까워지려고 시작한 대화가 오히려 아이에게 무게가 됩니다.
감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엄마가 오늘 마음이 좀 복잡해서 말이 짧았어.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어요.
내 감정을 알려주는 것과, 아이가 달래고 책임져야 할 몫으로 건네는 건 다릅니다.
제가 말하는 두런두런 이야기는 훨씬 가벼워요.
“엄마는 이 피자 끝부분이 제일 맛있다.”
“엄마는 이탈리아에 가서 피자를 먹어보고 싶어.”
“엄마는 저 사람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너는 어때?”
내 생각을 먼저 살짝 꺼내놓고 아이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거예요.
아이에게 엄마 마음을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봤는데 너는 어떻게 봤느냐고 건네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하루 이틀 쌓인다고 갑자기 아이가 속마음을 다 말하지는 않아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자 이야기, 날씨 이야기, 길에서 본 사람 이야기, 같이 본 영화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를 오래 주고받으면서 아이가 알게 돼요.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정답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끝까지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 생각이 엄마와 달라도 대화는 계속된다는 것.
그 시간들이 쌓이고 나면 어느 날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냅니다.
친구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던 일, 자기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 엄마와 생각이 다른 문제를요.
많은 분들이 원하는 깊은 대화는 그때 나옵니다.
그런데 그 대화는 그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에요.
그동안 함께 나눈 수많은 쓸데없는 이야기 위에서 나온 겁니다.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꼭 중요한 걸 찾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같이 먹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 방금 웃었던 것에서 시작하면 돼요.
깊은 대화는 깊은 질문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에요.
피자 한 조각 앞에서 함께 궁금해했던,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수백 번의 이야기 끝에서 나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