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소녀가 사라지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실 건가요”
1부 “여리고 부서질 듯한 소녀에서 좀 더 호기심 많고 용감한 소녀로”
 
O 오후의 소묘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
K <버섯 소녀>를 그리고 쓴 김 선진이라고 합니다. 독립출판물은 오 하루라는 필명으로 출간 했어요 오는 감탄사, 하루는 9년째 함께 사는 저의 강아지 이름이에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산책 때 떠오른 생각들로 작은 것들을 만들며 살고 있습니다.
 
O <버섯 소녀>는 2017년에 독립출판물로 먼저 나왔었는데요. 이번에 저희와 다시 펴내면서 ‘버섯 소녀가 새 옷을 입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소감이 어떠신지, 그때와 지금의 버섯 소녀는 어떻게 다를까요?
K 책 속 버섯 소녀의 여정처럼 이 책도 여러 해의 여정을 거치며 새롭게 출간됐어요. 책과 버섯 소녀의 긴 여정이 닮은 느낌이에요. 처음의 종이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은 날개 책에서 이번에 크고 단단한 양장으로 새 옷을 입으면서, 여리고 부서질 듯한 소녀에서 좀 더 호기심이 많고 용감한 소녀가 된 것 같아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며 버섯 소녀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바뀐 것 같고요. 독립출판 전까지는 단순히 요정 같은 존재로서 버섯 소녀를 보았다면, 그 후의 버섯 소녀는 시간이 흐르며 여러 의미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지나온,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소멸하지는 않은 우리 모두의 그 시절 소녀의 모습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는 사라졌지만 어느 곳에 분명 존재한다고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라고 전하는 위로의 정령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죠.  
O 버섯 소녀의 캐릭터 탄생이 궁금해요. 복고적인 느낌도 있고 무표정해서 서늘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소녀의 이미지와 캐릭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려주세요.(이 질문은 추천사를 써주신 무루 작가님이 던져주셨어요 :)
K 버섯과 연관된 신비한 이야기라 먼저 떠오른 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앨리스가 버섯을 먹고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초기 원화들은 대부분 단발머리에 머리띠를 한 전형적인 앨리스의 모습으로 그려져요. 그러다 어느 순간 버섯 소녀니까 버섯처럼 동그란 머리로 바꾸고 약간 무생물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표정을 만들지 않았어요. 무섭다는 얘기도 좀 들었답니다.
 
O 맞아요. 어떤 장면에서는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볼 때마다 묘한 매력이 있어요. 후후.
<버섯 소녀> 에필로그에 이 책을 지은 계기를 밝혀주셨는데요. 산책길에서 만난 하얀 버섯이 돌아오는 길에 사라져버렸다고요. 마치 요정처럼 말이에요.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는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한 것일까요? 초기 구상의 스케치들을 보면 내가 환각버섯에 홀린 걸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데, 책의 시작점이랄지, 버섯을 떠올리며 첫 구상을 하던 때의 마음이 궁금해요.
K 초기의 스케치는 현재의 <버섯 소녀>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들이 처음 그림책을 구상할 때 자아찾기 주제로 많이 시작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때마침 독버섯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머쉬룸이라는 마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버섯을 먹고 환각 속에서 증식하는 버섯을 매개체로 내 안의 여러 나를 표현하고 싶었죠.
스케치는 앉은 자리에서 몇 분 만에 그렸어요. 전시에 사용된 원화들도 이때쯤 여러 기법들로 그려본 그림이 많아요.
O 정말 전시에서 보여주신 <버섯 소녀> 초기 작업물들을 보면 독버섯이 떠오르고 자아분열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느꼈어요. 그럼 어떻게 지금의 이야기로 바뀌게 된 걸까요?
K 더미 작업을 마치고 소녀들이 말 위에 앉아 떠나려는 메인 장면으로 원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쯤 팔레트가 꽉 차서 비닐을 씌워 물감을 짜고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그런데 비닐에 남은 붓 자국들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비닐에 남은 자국을 활용해서 그 장면을 그렸어요. 비닐에 물감이 밀착되게 하려고 아크릴과 수채과슈를 섞어서 그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메인 장면을 그리고 난 후 한동안 작업을 놓고 있었어요. 그러다 다시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를 떠올렸어요. 사라졌던 버섯이 내내 기억에 남았죠. 산책길에 만났던 그 버섯은 유독 작은데 뽀얗고 예뻐서 눈여겨보게 됐던 거였어요. 오는 길에 생각나 또 보려고 했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게 마치 사람에게 들켜 황급히 존재를 숨기려고 햇살을 따라 표표푱 사라진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 후로 여러 날 비가 온 후에는 산책길에서 꼭 버섯을 찾게 돼요. 사라진 나의 요정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요.
원래 그렸던 메인 그림은 서로 다른 자아들이 나를 밀어내며 떨어지는 장면이었는데, 산책길에서 버섯을 다시 만난 후 이야기를 고쳤어요. 그때부터 지금의 <버섯 소녀>의 이야기가 시작됐죠.  
비가 내린 후 산책길에서 다시 발견한 새로운 버섯
O 최근 한참을 가물다가 폭우가 쏟았죠. 이번에도 산책길에서 버섯을 발견하셨을까요?
K 장마가 시작됐는데 이튿날 반짝 해가 나더라고요. 매일 산책하는 공원에서 갈색 버섯과 하얀 버섯 무리를 봤어요. 일부러 살피며 걷는데 돌계단 밑이랑 나무 풀숲 사이에 숨어 있어서 못 보고 지나칠 뻔했어요. 이동 끝에 가장 마음에 든 곳으로 버섯 소녀들이 자리를 잡고 기다렸나 생각했어요.
 
O 버섯의 이동이라고 하시니, 버섯 소녀의 푸른 날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까맣고 짧은 머리에 양옆으로 귀 같기도 하고 뿔 같기도 한 푸른 날개가 있다가 없다가 해요.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무루 작가님이 팟캐스트에서 자세히 다뤄주시기도 했지만, 이 푸른 날개가 무엇인지 직접 설명해주신다면요?
K 푸른 날개는 버섯의 포자를 표현한 거예요. 책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가 버섯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버섯이 스스로 이동한다는 것이었어요. 포자는 버섯의 생장이 완료되는 일생의 마지막인 동시에 다시 버섯으로 시작하는 시발점이기도 한대요. 버섯에서 포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래요. 포자를 최대한 멀리 퍼트리려면 바람이 불어줘야 하는데 바람이 불지 않으면 버섯의 갓이 주변 공기를 움직이도록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포자를 이동시킨다고 해요. 그래서 버섯 소녀가 이동할 때 포자 날개를 달아주었어요.
버섯 소녀가 말하죠. ‘한동안 바람이 불지 않았어. 먼저 가서 기다릴게’라고요. <버섯 소녀>는 자연과학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O 자연과학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글은 굉장히 문학적으로 쓰였어요. ‘이끼 숲에는 매일 세 번의 밤이 찾아온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버섯 소녀의 푸른 날개처럼 어떤 과학적 사실을 문학적으로 비유한 것일지 궁금했어요. 우리의 시간과 버섯 소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일까요?
K 버섯 소녀의 이끼 숲은 버섯과 이끼가 살아가기에 최적의 장소예요. 언제나 축축하고 그늘지며 어둡고 썩은 향이 가득하죠. 하지만 소녀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예요. 멀리서 온 새가 들려 준 새로운 세상이 궁금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남을 선택해요. 세 번의 밤은 이끼 숲이 항상 어둡고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세상이라는 표현이기도 하고, 두렵지만 익숙한 곳을 떠날 만큼 버섯 소녀가 성장했다는 표현이기도 해요.
 
O 호기심 많은 아이! 맞아요. 버섯 소녀는 먼 곳으로부터 온 새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호기심을 키우죠. 작가님께도 새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K 조금 부끄럽지만 SNS라고 생각해요. 집에서 작업하고 약속도 별로 없고 코로나로 더 세상과 멀어져 가는데 여러 아름다운 색과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새들을 통해 저의 항상 똑같은 세상 너머를 보게 돼요. 가끔 어서 저 새들을 따라 가야 외롭지 않을 텐데,라는 걱정도 생기지만요.
 
O 부끄럽다니요. 너무나 공감하는 이야기예요. 책에서 중요한 문장 중 하나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인데요. 마치 그 새들이 하는 말 같기도 하네요. :)
K 스스로 떠나지만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분명 좋은 곳을 찾게 될 거야, 그곳에서 널 기다려 줄게,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자,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O 그 말을 처음 이끼 숲에서 떠날 때, 또 여정의 끝에서 사라지면서 한 번 더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그 말을 한 뒤에 독립출판물에는 없는 한 장면을 추가해주셨어요. 어떤 의도로 새로 그려 넣으셨을까요?
 
1907년부터 1927년까지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간사(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하면 ‘보스를 뜻하는 그들의 직함’)를 지냈던 찰스 두리틀 월컷은 1909년에 캐나다 로키산맥 고지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인 버제스 셰일 동물상을 발견했어요. 이 사건을 스티븐 제이 굴드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캄브리아기 대폭발 직후의 동물상을 발견한 것이다. 부드러운 해부 구조들이 보기 드물게 잘 보존되어 있어 동물상이 완벽하게 드러난 화석들이었다. (…) 월컷은 그 멋진 화석들을 너무나 심각하게 잘못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버제스 종들을 하나하나 현대의 동물군에 쑤셔 넣었다. (…) 그에 따르면 버제스 동물들은 성공적인 후대 계통들의 선조로서, 단순하고 원시적인 소집합이었다. 생명은 원시적인 단순함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굽힘 없이, 예측 가능하게 진행한다는 시각이었다.
(…) 그러나 지난 20년간 해리 휘링턴과 그 학생들이 수행해온 세련되고 종합적인 재수집, 재조사 때문에 월컷의 해석은 완전히 뒤집혔다. 알고 보니 버제스 동물상의 다양성은 (종 개수가 아니라 해부학적 설계의 다채로움 면에서) 현생 생물들을 모두 합친 것을 능가했다. 생명의 역사는 점진적 진보와 확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감과 제한적 생존의 이야기였다(물론 곤충 같은 소수의 승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성공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버제스의 생존자들이 왜 우세하게 되었는지 딱히 증거가 없다. (…) 이 초기의 격감은 민첩하고 강인한 자가 승리한 경주라기보다 대규모 복권에 가까웠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 [버섯 소녀] 출간기념 전시
•장소: 사슴책방 합정점  (마포구 토정로3길 16, 카페그레이랩 뒤편 / 아크갤러리 옆공간)
•일정: 6.22. ~ 7.22. (수~일 2:00~7:00, 변동 있을 시 사슴책방 인스타그램으로 공지)
•전시 풍경

🍄 [버섯 소녀] 출간

•리뷰로 만나보세요.
    - “작은 발을 흔들며” 걸어온 버섯 소녀. …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보다 더 커다랗게 닿는다. 작지만 커다란 존재들이 매일 더 많이 피어나길. —moya
    - 홀린 사람처럼 마지막 장에서 첫 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책장 사이에서 나뭇잎과 곤충들의 썩은 날개와 호수 바닥의 노래와 구르는 빗방울을 살피는 가만한 눈길을 보았다. 발목이 젖는 것도 모르고 수풀 속을 거닐며 몸을 숙여 무언가를 발견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이곳에서, 사라진 것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기억하는 다정한 사람들을 좇아 나의 여정을 시작할게. —littlestitches__
    - 아련아련하고 독특한 색감과 이미지가 아름다운 오후의 소묘 신작 그림책. …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 이곳의 이야기도 그렇게 멀고 아름답게 사라져가겠지. 사라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마음을 남긴 채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위한 시를 쓰듯 하루를 살고 싶다. —hipiele_books 

🐻🍋 지금 오후의 소묘는 파니 뒤카세 그림책 작업 중 [곰들의 정원] &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  
내 얘기 하듯, 부담 없이 읽어 내려지니 좋네요.
—gen_cloud

앞으로도 우리의 작은 이야기들 찬찬히 전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유월의 편지에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어서 오라고, 이 세계를 보자고" 손짓하는 소묘 곁에 웅크리고 앉아 같은 것을 보려 애쓰는 동안 얼굴을 덮고 있던 두터운 안개가 조금 걷힌 것 같아요. 아껴두었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마워요.
—준

유월의 준일까요 :) 얼굴을 덮고 있던 두터운 안개가 푸른빛을 띠고 머리 양옆으로 날개를 단 모습 상상해봅니다. 답장을 읽는 동안 제가 꼭 그랬어요.
6월의 편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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