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단련일기]는 
"원래 하려고 했었는데ㅡ 기록하지 못했던 날들"을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잘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한 집에 산다는 것, 그것도 문화가 완전히 다른 외국인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4년이나 손님과 동거를 하고 있는 나에게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이냐고 물었던 친구도 있지만, 글쎄, 그것보다는 이 동거가 ‘임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내 눈앞에 거슬리는 행동을 조금은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셰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더러운 것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매우 어지럽게 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님아신발은벗고들어오시오

한국 드라마 밈 중에 한국인이 견디지 못하는 것 중 하나로 신발 신고 방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나 역시 신발을 신고서는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는 한국인이기에 손님이 가끔 신발을 신고 집에 올라오면 화들짝 놀랐다. 방에 두었던 신발을 밖에 나가기 전에 잠깐 신는 게 무슨 문제야?라는 표정으로 외출하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가방안에 있던 신발이라도, 방바닥에 올라온 신발을 참을 수가 없네요…

#분리수거를부탁해

한국의 분리수거 룰은 참 복잡하다. 느슨한 것 같으면서도 꽤나 까다롭게 많은 것을 분리해야 한다. 주택가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분리수거 품목을 비닐에 한꺼번에 넣어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플라스틱, 비닐, 캔, 병, 종이 정도는 분리해서 내놓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손님들에게는 간단하게 종이, 비닐을 각각의 분리수거 통에 넣고, 나머지는 한 통에 넣어달라고 하는데 비닐과 플라스틱을 헷갈려 한 통에 넣어놓거나, 휴지를 종이 통에 넣어두면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휴지는 일반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했더니 종이로 휴지를 만든 게 아니야?라며 도리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그런가?

#초대받지못한손님

함께 지내는 공간이기에 누군가를 집에 데려올 일이 생기면 서로 양해를 구하곤 한다. 나의 집에 내 친구를 부르는 데 왜 자기한테 허락을 구하냐고 하던 손님도 있었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모르는 사람이 오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 나 역시도 친구를 초대할 때엔 먼저 이야기를 해 두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한 시쯤 자고 있는 날 깨워 친구가 술이 깰 때까지 잠깐 재워도 되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다. 손님이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였다. 대부분의 부탁에 yes를 하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안 될 것 같아 “Sorry, NO, NO..” 하며 다시 잠들었다. 그 이후에 그 남자친구를 만나보니 그날 내가 들어오라고 했어도 안 들어올 친구 같아 보이긴 했다.

#이우산이네것이냐

유럽의 비와 한국의 비는 다르다. 유럽에 여행 갔을 때 사람들이 죄다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기에 이 사람들은 추위를 안 타는 건가 싶었는데, 유럽의 비는 내리는 양이 한국과 달랐다. 한국의 여름은 쏴아아아 쏟아붓는 비가 오기 때문에 우산을 쓰지 않으면 홀딱 젖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럽 손님은 여행 짐에 우산이 없다. 몇 번은 비를 맞고 다니다가 속옷까지 젖는 비를 맞거나,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국인의 눈빛을 경험하고 나면 우산을 찾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벌의 우산을 빌려주곤 했는데, 우산이라는 게 비가 오지 않으면 깜빡하기 일쑤라 빌려줬던 우산이 아닌 새로운 우산으로 돌려주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그중엔 팀에서 단체로 제작한 내가 만드는 서비스명이 새겨진 우산을 가져가서 쓰다가 잃어버린 손님이 있었다. 체크아웃을 한 후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어 가져다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말이 없었고, 나는 조금 속상했다.

#말은하고가져가지그랬니

캠핑에 다녀온 후 빨래방에 가서 담요를 빨아 빨래 바구니에 두었다. 방에 다른 빨래도 있어 나중에 정리하려고 빨래 바구니를 바닥에 둔 채 이틀 정도가 지났다. 이틀 후 빨래를 정리하다 보니 빨아둔 담요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빨래방에 갔던 날 정신없이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해서 내가 담요를 두고 온 줄 알았다. 그 담요를 갠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빨래방에 전화를 해보니 CCTV를 확인해 주며 내가 잘 접어서 가져갔다고 전해주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손님방을 열어보니 담요가 손님 가방에 접혀있었다. 써도 되냐고 물어봤다면 내가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 말 없이 가져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담요에 대해 물어보니 그제야 아차, 하며 돌려주었다. 내 표정이 좀 딱딱해서였는지 왜 가져갔고, 뭐 하느라고 가져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후에 담요를 확인해 보니 담요에 마른 잔디가 잔뜩 붙어있었다. 며칠 전 한강에 다녀왔다고 하더니 한강 잔디밭에서 담요를 깔고 앉은 것이었다. 마음대로 가져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잔디가 잔뜩 붙어있는 그대로 가져왔다고? 이미 지난 일이라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있고 나는 꽤나 분노했고, 다시는 이 손님과 같이 지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어려운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함께 살기 바운더리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사람이란 일관성이 있어서 늘 조심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분리수거부터 물건을 사용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나에게 물어보고 조심하지만, 남의 물건을 마구 사용하는 사람은 무리한 부탁도 서슴없이 한다. 상대방이 느끼는 나는 함께 살기 편한 사람일까, 어려운 사람일까? 나의 생활 패턴도 잠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