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종이컵을 만들게 된 이유🌿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생각해보면 당연히 있을 텐데 막상 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오늘 찾은 업체인 '페리칸앤플러스'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겉에서는 간판도 잘 안 보이는 직사각형 건물이지만 알고 보면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생산력이 높은 종이컵 공장이다. 배달 플랫폼 회사에서 종이컵 공장을 소개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해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공장에 도착하니 중키에 작업복을 입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쓴 남자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해외영업 과장 권기오. 이 회사에서만 11년 일한 베테랑이다. 그를 따라 들어간 문에는 '요기요 환영합니다'라는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제조업 특유의 소박한 환대였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공장 회의실에서 간단한 환영 인사 겸 인터뷰를 시작했다. 페리칸앤플러스는 한국 종이컵 공장계의 1세대에 해당한다.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한국에서 종이컵을 처음으로 생산했다. 그전에는? 놀랍게도 모두 수입했다고. 하긴 생각해보면 그때는 종이컵을 쓸 일이 많지 않았다. 동전을 넣어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나 종이컵이 있었고, 패스트푸드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종이가 두툼한 스타벅스 종이컵은 허세의 상징이었다. 페리칸앤플러스는 한국산 종이컵 생산의 역사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종이컵을 만들어 왔다. 많은 종이컵을 만들어 오셨으니 당연히 회사의 자랑스러운 부분도 많을 것이고, 사장님 말씀도 그만큼 길어지고 있었다. 실무자는 이럴 때 마음이 급해지게 마련이다. 권기오 과장님은 매끈하게 사장님의 말을 끊고 우리를 공장으로 인도했다.

종이컵 공장을 상상할 수 있나요 : 친환경 종이컵 공장 탐험 
  • 일시: 2021년 10월 어느 목요일 
  • 장소: 경기도 용인 '페리칸' 공장 
  • 탐험 난이도: 2.5/5.0 
       ➡ 독자 기술이 많은 공장이라 다소 조심스러운 탐험이었다.  
  •  획득 물품: 친환경 컵 용기 1개 
우리는 이곳의 종이컵을 벗어날 수 없다

자르고 붙이고 포장한다. 종이컵 만드는 과정은 이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자르는 건 아주 큰 종이 뭉치다. 종이라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사무용지 같은 게 아니다. 굉장히 크고 두꺼운 두루마리 티슈를 생각하면 된다. 그 티슈를 걸어두면 컵 만드는 기계로 종이들이 조금씩 풀려 나간다. 윗부분은 컵의 몸체로 감기고, 아랫부분은 바닥 모양으로 펀칭되듯 잘리는데, 이 둘이 순식간에 붙어 다음 코스로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0.5초에 하나씩 종이컵이 만들어진다. 놀라운 속도다. 3분 43초 분량의 개코 신곡 '논해'가 끝나고 나면 컵 446개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페리칸앤플러스는 이런 기계를 3대 보유하고 있다. 쇼미더머니10 1차에 참가한 래퍼 27,000명이 다 음료수를 한 잔씩 마시기 위한 컵을 만드는 데에 75분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제조업은 위대하다. 

제조업의 농익은 세계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페리칸 공장에서 만드는 종이컵은 한 달에 2천만개에 달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직원은 32명에 불과하다. 생산량/직원으로 생산성을 계산한다면 직원 한 명에 62만 5천개의 생산력을 가졌으니 아무리 자동화가 되었다고 해도 엄청난 생산성이다. 비밀은 천장에 있다. 다 만들어진 컵은 사람이나 컨베이어 벨트가 올리는 게 아니라 포장 섹션으로 발사된다. 천장에 촘촘히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기로 쏘아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페리칸의 종이컵 공장 촬영에는 특이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동영상 촬영 일체 불가. 다른 업체가 따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공장을 돌아보니 페리칸앤플러스가 컵을 잘 만드는 걸 넘어서 우리가 이곳의 컵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들은 종이컵 공장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혁신과 투자를 다 하고 있었다. 소주잔만한 2.5온스 종이컵부터 KFC의 커넬 샌더스가 인쇄된 치킨용 대형 종이 용기(내가 어릴 때는 왠지 그 대형 종이컵 치킨이 사치의 상징 같았던 기억이 나 잠깐 아련해졌다)까지, 모두 페리칸앤플러스의 용인 공장에서 만든다. 던킨도너츠의 도넛 용기도, 모든 대형 극장 체인의 팝콘 용기도 여기서 만든다. 다만 페리칸 쪽에서도 계속 혁신해야 한다. 계속 경쟁사 대비 뭔가 다른 걸 해야 한다. 새로운 특기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페리칸과 요기요가 만나게 됐다. 새로운 시대의 에이전트와 함께. 

친환경은 옵션이 아니다

모든 제조업은 성숙 단계에서 비슷한 숙제에 놓인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사람들이 잘 살게 되고, 어디든 잘 살다 보면 인건비나 환경 관련 비용 등 원가가 상승한다. 같은 생산기지에서 제조업을 유지하려면 부가가치를 꼭 높여야 한다. 페리칸이 친환경 종이컵을 제작하게 된 이유는  환경에도 좋겠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종이컵이란 무엇일까? '친환경'이란 분해가 잘 되는 걸 말하고, 지금 종이컵이 '친환경'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음료가 닿는 면에 물이 새지 않도록 코팅한 PE 소재가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친환경 종이컵이란 결국 분해가 잘 되는 소재를 코팅한 종이컵이다. 생산 설비가 아닌 종이 차이라면 페리칸앤플러스 말고 다른 곳에서도 만들 수 있을까? 

"온도를 잘 컨트롤하는 게 어렵거든요. 생산 현장에는 변수가 많아요." 권기오 과장의 답변은 담담하되 자신감 있었다. 종이컵을 만들 때 밑면과 몸체를 붙이는 등의 공정에서 열처리를 거친다. 여기서의 미세한 열처리 노하우가 뒷받침되어야 새지 않고 튼튼한 종이컵을 만들 수 있다. 새지 않는 종이컵이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달에 2천만개를 만들면서 하나도 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량 생산은 섬세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친환경 종이컵'은 말이 좋을지 몰라도 소비자가가 비싸다는 뜻이다. 모두들 그렇게 좋아하는 '가성비'가 안 맞는다. 페리칸앤플러스의 친환경 종이컵 역시 처음에는 안 팔리다가, 아기 엄마들이 쓰다가, 리와인드라는 파트너가 생겼다. 리와인드는 친환경 용기에 특화된 소셜 벤처다. 생산설비를 가지는 게 아니라 친환경 용기를 필요로 하는 손님들의 물량을 받아서 페리칸앤플러스 같은 곳에 생산을 위탁한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페리칸에게 좋은 일이다. 요기요는 소상공인 지원 사업으로 '백년가게'로 선정된 서울 시내 노포들에게 포장과 배달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친환경 일회용 그릇을 공급하는 것도 포함된다. 리와인드와 요기요가 만나며 페리칸에게도 새로운 일이 만들어진다. 선의들이 모여 페리칸앤플러스에게도 새로운 일이 생긴 셈이다.

혁신의 어깨
우리가 혁신이라고 슥 보고 마는 건 아이작 뉴턴의 비유처럼 '거인의 어깨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모든 일에 기반 산업이 필요하다. 전자상거래와 음식 배달 플랫폼 산업이 발달한다는 건 곧 판지와 종이컵 생산의 증대를 뜻한다. 아무리 많은 게 온라인으로 이어지거나 이루어져도, 오프라인 세상의 뭔가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 우리가 필수 영양소를 클라우드로 다운로드 받지는 못하니까.

여기서 제조업의 고민이 깊어진다. 절정의 생산성이 밝은 앞날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건비는 올랐고 경쟁 업체는 계속 치고 올라온다. 종이컵 생산 역시 국제 경쟁이다. 페리칸앤플러스도 해외로 종이컵을 수출한다. 글로벌 경제는 내 시장이 전 세계에 있다는 동시에 내 경쟁자가 전 세계에서 내 목을 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페리칸앤플러스에서 도전해보려는 인재가 없다. "여기는 관리직도 손이 모자라면 현장 일을 해야 하니까요." '종이컵 공장은 우리 때가 마지막일 것 같다'라며 권기오 과장이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마스크 속 권 과장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쓴웃음에 가까운 것 아니었을지.

취재라는 이름의 세상 구경을 처음 할 때는 만사를 가볍게 생각했다. 원래 살짝 보면 대충 다 알 것 같다. 대충 봐서 알 것 같다는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건방지게 '저런 걸 고치면 되잖아'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착각이었다. 조금 더 구경하다 보니 모두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모두 현장에서 안간힘을 쓰니까. 구경을 할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만 느끼고, 이제는 '저 고민들이 남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생각만 든다. 당신은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자신만만한가? 당신의 일자리와 자산과 특기는 튼튼한가? 요즘 누가 이런 답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페리칸앤플러스 공장에 다녀온 후 종이컵 하나를 집을 때마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컵은 어디서 왔을까. 이 컵의 단가는 얼마일까. 이 컵을 만든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어디서 무슨 고민을 할까. 그 사람은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을까.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분석적이면서도 읽는 맛이 살아있는 글을 쓰는 잡지 에디터에스콰이어 등에서 일하며 라이프스타일 업계를 취재하고 페이지 만드는 일을 해 왔다에디터 업무 내내 식당 취재가 업무의 일부였다. 첫 집 연대기 등 책을 4권 냈다지금은 각종 매체에 칼럼을 쓰며 요즘 브랜드 2를 준비하고 있다

포토그래퍼 송시영 @siyong.song
지금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젊은 사진가 중 하나레드벨벳트와이스NCT  K-팝 아티스트의 앨범 커버나 화보 작업을 다수 진행했다매거진 B》, 신세계 빌리브 등 에디토리얼 작업도 부지런히 병행한다.

📍 서울 종로구: 신안촌 

페리칸에서 만든 친환경 용기들은 요기요가 지원하는 '백년가게'로 간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업력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며 사랑받아온 가게, 즉 훌륭한 노포들에게 주는 일종의 인증 마크다. 신안촌 역시 서울 종로구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만한 노포. 나도 오며 가며 가게 앞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이런 곳도 배달이 된다고?' 하고 놀랄만한, 골목길 사이 한옥에 있는 오래된 한정식집이다. 

주문한 것은 낙지 연포탕과 낙지 비빔밥. 낙지 연포탕은 깊은 맛이 나는 칼칼한 국물이 일품이다. 낙지 비빔밥은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뭔가 달랐다. 남도 음식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있는 나물과 가볍게 데쳐 부드러움이 살아있는 낙지의 조화가 훌륭한 맛을 만들어낸다.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12월부터는 신안촌의 배달 용기들도 친환경 용기로 교체될 예정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페리칸에서는 신안촌에서 쓰일 국그릇과 밥그릇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탐험 담당자 - 아리아나 벤티☕
요기요 콘텐츠 마케터.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요기요에 온 지 2년째.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면 벤티 사이즈도 거뜬하다. 음식 외에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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