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스포츠와 사회'의 대화 1편』 - 강신욱 교수(단국대학교) [특집좌담: '스포츠와 사회'의 대화]에서는우리 학회와 함께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우리 학회와 관련한 이야기, 연구와 관련한 이야, 회원들에게 전하는 말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의 주자로 지난 2월 단국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임한 강신욱 한국스포츠사회학회 고문을 선정하였다. # Chapter 1: 강신욱이 기억하는 ‘한국스포츠사회학’의 태동 Q) 권순용: 한국스포츠사회학회의 산증인 중 한 분이십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는 차원에서 오랫동안 학회에 몸담으시면서 학회의 역사적인 부분이랄까요, 추억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A) 강신욱: 스포츠사회학회의 창립 멤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입학 당시부터 소위 스터디그룹을 함께 했습니다. 스터디그룹은 주로 이화여대생들하고 1주일에 한 번씩 했었습니다. 책을 읽고 설명하고 주제와 관련된 토의를 하는 방식이었죠. 당시 저는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26~27시간 수업하면서 운동부도 육성할 때니까 정말 정신없이 살 때였지만, 공부 분위기가 정말 뜨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88년도에 늦게 박사과정을 들어갔습니다. 용산고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87년도부터 서울대학교에 조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임번장 선생님께서 87년 즈음, 어느 날 스포츠사회학회를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도 정식 스포츠사회학 강좌가 만들어진 것은 88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 스포츠사회학 강의를 들었죠. 그때부터 공부가 조금 더 조직화 됐다고 할 수 있죠. Q) 권순용: 스포츠사회학은 체육학 내 분과학회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A) 강신욱: 당시에는 분과학회 개념이 없었습니다. 전부 체육학회 회원이었고, 심리학, 교육학 공부는 했지만, 분과라는 개념이 없었죠. 그런데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상당한 분과 활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임번장 선생님이 그걸 보셨던 거죠. 86년도 이후부터 조금씩 분과학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마침 88 서울 올림픽 Scientific Congress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올림픽이 열리면 Scientific Congress가 함께 열렸으니까요. 올림픽이 개최되면 경기행사뿐 아니라 문화행사 그리고 학술 행사가 3대 행사로서 함께 열렸어요. 그러면서 이제 소위 분과학회 개념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죠. 88 서울 올림픽 당시, Scientific Congress의 스포츠사회학 분과의 위원장이 임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게 스터디그룹이 중심되어 학회가 만들어진 이후 우리 학회에서 분화되어 나간 학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후 지금의 여러 인문사회분야 분과학회에 있는 분들도 초창기 스포츠사회학 스터디그룹에서 공부하던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당시에는 그런 지속적인 공부 모임이 많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내에서도 일부 다른 전공 선생님들께서 “좀 유난을 떤다. 왜 맨날 몰려다니냐”라고 말씀하셨죠. 그런 면에서 임번장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신 면이 있죠. 임선생님이 딱 중심을 잡고, 실질적으로 그 모임을 이끄셨으니까요. 우리는 선배든 후배든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공부하고, 따라가고, 한창 열심히 했었는데, 그게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그러니까 서울 올림픽 이전 스터디그룹을 통해 스포츠사회학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이 그려졌지만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88년도 서울 올림픽 학술대회가 끝나고 나서 한 89년도부터 스포츠사회학회의 모습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이 30주년이었죠. 그것은 88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88년 89년에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후 1990년에 정식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 학술대회 시 스포츠사회학 분야 간사 ![]() 1995년 8월 일본 교육의학회와 일본에서 공동 세미나 # Chapter 2: 평생의 연구 주제, 학교 운동부! 그리고 운동중독! Q) 권순용: 선생님께서는 연구자로서 학교운동부에 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하셨는데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강신욱: 81년도에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농여중과 용산여중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1주일에 26시간씩 강의를 했었는데, 그 와중에 하키 선수들을 직접 발굴해서 운동부를 운영했습니다.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많은 선생님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수업 시간 외에 운동부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 일종의 사명 내지는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당시에는 초등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었어요. 중학교 이상은 등록금을 못 내면 학생들이 학교를 못 다녔어요. 81년도에 전농여중에 발령을 받아 갔을 때, 안타깝게도 1년에 3~4명은 등록금을 못 내서 학교를 그만두는 모습을 봤습니다. 특히 전농동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지역대회나 전국대회 나가서 3위 안에 입상하면 등록금 면제 혜택을 주는 겁니다. 운동이 아이들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운동부를 하는 게 학생들 장래에 손해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선수를 자신있게 선발해서 가르치고, 물론 성적을 낸 것도 있지만, 개인으로는 그런 심리적인 만족감도 컸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부유한 아이들이 여름에 얼굴 까맣게 타가면서 누가 하키 같은 운동을 하겠어요. 전농중에서 하키 하려고 모인 애들은 전부 집이 어려웠습니다. 젊을 때니까 사명감도 강했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강할 때라 모든 걸 쏟아부었었죠. 그때 제자들이 67년생, 68년생이었으니까 지금은 50대가 훌쩍 넘었겠네요. ![]() 인생에서 너무도 소중했던 아이들 ![]() 제66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Q) 권순용: 하키부를 운영했던 경험이 운동부에 관한 연구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겠네요. A) 강신욱: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생각한 것이 적어도 논문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제 평생의 연구들은 ‘학교 운동부 활성화’, ‘학교 운동부 정상화’, ‘학교체육 내실화’, 이런 주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제도 또는 정책에 관한 문제도 다뤘지만, 나는 주로 사람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지도자와 선생이 학교체육과 운동부의 내실화에 이바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평생토록 “교실이 없어도 학생을 가르칠 수 있고, 책이 없어도 가르칠 수 있지만, 선생님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다”라는 교사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운동부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설이 좀 낙후되고,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할지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학생들한테 정성을 다하면, 그들이 올바른 사람으로 클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당시에 많은 그 동기들이나 주변 선생님들이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생들을 보고 가르치면서 그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을 논문에 담아냈죠. Q) 권순용: 지도하던 운동부의 성적이나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A) 강신욱: 성적은 정말 좋았어요. 용산고등학교 있을 때는 전국체전에서 우승도 하고, 전농여중에 있을 때는 춘계대회 나가자마자 준우승하고, 많은 성적을 냈죠. 그중 제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단 한 번도 수업결손을 한 적은 없다는 거예요. 6교시 전까지는 모두 수업을 듣도록 했죠. 운동부 학생들은 수업 빼고 나와봐야 운동할 데가 없는 거죠. 다른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콤팩트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애를 썼어요. 특히나 가을, 겨울이 되면 금방 어두워지니까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지도를 하려고 했죠. 지금 옛날 제자를 만나면 그걸 고마워하고, 나도 스스로 그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실천을 한 거죠. 운동부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폭력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전농여중에서 지도할 때 우리가 운동을 잘하니까 우리 학교로 연습게임을 많이 왔어요. 처음에는 나도 선수들을 모질게 때렸어요. 그런데 다른 팀하고 연습게임을 하다가, 상대 지도자가 학생들을 때리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운동장 다 보이는 데서 막 때리는 모습을 본 거죠. 게다가 뺨을 때리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적어도 애들의 장래를 위해서 때린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었던 거 같은데, 천만의 말씀인 거죠. “나를 위해서 때리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지도자들한테 지기 싫어서, 주변에서 잘 가르친단 소릴 듣기 위해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건 정말 비겁한 짓이다, 크게 깨닫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그 어떤 체벌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운동부의 내실화와 관련된 주제는 지금도 학생선수에 대한 ‘폭력’, ‘수업결손’ 등에 여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내가 교사를 시작했던 81년부터 2021년까지 4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 고민이 해결이 안 된 겁니다. 수도 없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학교폭력 운동부에 폭력 문제, 성폭력 문제, 수업결손의 문제 이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게 안타깝죠. 사실 학원스포츠 내실화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래에 선수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결국 이 사회에서 정말 괜찮은 성인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져 있어야 하거든요. 그 때문에 지금도 잘못된 관행들을 지적할 수밖에 없고, 학교운동부 내실화에 관련된 문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겁니다. ![]() 경향신문 2006. 03. 23. '운동중독' 화 부른다 고급 웃음을 선사하던 김형곤씨가 타계했다. 1975년 연예인 축구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허장강 선생에 이어 운동하다 변을 당한 또 한 사람의 유명 연예인이 된 셈이다. [더 보기] Q) 권순용: 선생님께서는 학교운동부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셨지만, 운동중독에 관한 연구로도 유명하십니다.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강신욱: 개인적으로 테니스 같은 운동을 많이 합니다. 하다 보니 운동중독에 빠져서 아주 애를 먹었었거든요. 학교운동부의 문제가 학교체육의 주제라고 한다면, 운동중독은 생활체육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운동중독을 상당히 긍정적 측면으로 봤어요. 워크홀릭 그러니까 일중독 같은 게 대표적인 중독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처럼 운동중독 역시 긍정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던 거죠. 한 개인이 살아가는데 생애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알코올중독이나 도박중독이나 사이버중독 같은 그런 부정적인 중독하고는 매우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운동을 하다 죽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다이어트를 하다 운동중독에 빠진 사례였거든요. 그때부터 운동중독이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로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물론 운동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사회학자로서 긍정적 측면만 보고 운동은 중독 수준에 이르러도 무조건 긍정적이라 규정을 한다면 그것은 학자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중독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치료나 치유 쪽으로 연구를 계속 집중했습니다. # Chapter 3: 스포츠사회학의 미래! 결국 현장 속으로 ~ Q) 권순용: 학교체육과 관련하여 학교운동부, 생활체육과 관련하여서는 운동부란 두 가지 주제, 모두 현장의 문제 해결을 위한 쪽으로 집중을 하신 것 같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께서 당시 하신 연구가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훨씬 현장 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A) 강신욱: 일반적이지 않았죠. 우리는 초창기부터 미국의 학문 체계를 많이 따랐죠. 미국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현장보다는 이론적 접근을 많이 했고. 사회적인 분석을 하고, 그것을 이론 틀로 만들고, 설명하는 작업이 반복되었죠. 정책을 세우는데도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론에 따라서 방향을 잡고 하니까 꽤 그럴듯해 보이고, 이런 현상이 30~40년 정도 한국 사회에 반복되었죠. 미국도 사실 스포츠사회학에 문제가 생겼죠.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는 학문이란 평가를 받다 보니 대학 커리큘럼에서 빠지고, 전공하는 사람들도 없어지고,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거든요. 그나마 한국스포츠사회학이 지금도 조금은 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계획을 세우고, 자문하는 데 관여해왔거든요. 사실 모순적인 게 스포츠사회학자들은 실제로는 현장에 깊이 관여를 하지 않지만, 현장을 대변해 정부에 얘기하고, 실제로 그 모습을 보면서 스포츠사회학의 후학들이 계속 커나간 측면이 있는 거죠. 문제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현장 중심적 생각을 하고, 정책을 끌어내지 못하면, 우리 학문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좋은 예일 겁니다. 대한체육회장에 출마하고 현장 지도자들로부터 내가 혁신위를 찬성했다고 비판받았습니다. 나는 스포츠혁신위의 취지나 방향은 존중했지만 디테일에 있어서는 소홀했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은 결국은 현장을 위해서 존재해야지요. 그런데 단지 현장에 가서 목소리를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선수도 하고 지도자도 하면서 현장의 문제에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해오던 사람들을 포함 오랜 시간 현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맥을 짚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권순용: 스포츠사회학의 현실적합성 문제에 대한 말씀이신가요? A) 강신욱: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 과정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고민도 하고, 많은 사람도 만나봤습니다. 나에게 정말 큰 공부가 됐는데요. 그 과정에서 깨달을 것 중 하나가, 우리 스포츠사회학이 그동안 너무 거대 담론에 취해 있었다는 겁니다. 스포츠개혁 얘기가 나오고 혁신위 활동이 일어나면, 우리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 뭔가 이론적 틀을 대고 학문적으로 완전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거죠. 그런데 이론적 정립이 안 되어있는 사람이더라도 현장에서 오랜 시간 경험하고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이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장의 본질과 문제를 모르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와 관련된 문제를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위 그 거대 담론에 파묻히지 말고 우리가 거기서 빨리 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권순용: 우리 스포츠사회학이 비교적 현실에 대한 연구를 주도적으로 해 왔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A) 강신욱: 체육인 그리고 스포츠인들이 사는 문제들, 스포츠를 통하여 살아가는 문제들,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체육이라는 학문 자체가, 특히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생기는 문제에 관한 관심에서 생겨난 거죠. 사회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겨난 학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외국의 사회학 이론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는데, 옛날에 한동안 applied sociology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applied sociology와 fundamental sociology를 왜 구분하냐고 생각했죠. 당연히 sociology라는 학문 자체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떤 틀 또는 생각, 관점을 좀 더 정교하게 연구해가면서 집중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틀 속에 현장을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 틀을 잡아 놓고 “당신은 어떤 이론에 근거해서 그런 얘기를 합니까?”이런 얘기를 한다는 거죠. 이런 방식의 사고를 보면, 우리가 현장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교만해져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은 이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본인들 나름대로 상당한 경험이 있는데, 그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론 공부한 사람들이 스스로 우월한 위치에 있고 그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보고, 배워야 하는 한마디로 조금은 낮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대학교수는 굉장한 인격자들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하는 사람들처럼 굉장히 오만한 생각을 하게 돼버린 거죠. ![]() 체육개혁 교수연대 발족 ![]() 체육ㆍ예술 교과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 Q) 권순용: 그럼 앞으로 스포츠사회학에서 ‘현장중심’ 연구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A) 강신욱: 저는 우리 스포츠사회학이 현장과 이론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게, 현장의 목소리를 우리가 조금은 내고 있잖아요. 어딘가 한 번 발만 들여놓으면 모든 밑천이 금방 들통나는데도, 풍선처럼 부풀려진 자아를 인식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함부로 얘기하죠. 어떻든 한국 사회에서는 교수집단에 대한 존경심이 크니까 그게 의사결정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관해 연구하지 않고, 정말 현장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하는 얘기는 공허할 뿐입니다. 현장 중심의 연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론의 일반화에 기여 못 하는 연구는 마치 허접한 연구처럼 몰아가니까, 이런 풍조가 한국스포츠사회학회에서 걷어지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권순용: 현장 전문성과 학술 전문성의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장 체육인들이 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A) 강신욱: 88 서울 올림픽 당시만 하더라도 학자들이나 교수들이나 연구자들한테 상당한 존경심을 가졌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데 이제는 현장에 도입되지 않는 얘기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얘기들에 대해 이전처럼 존경심을 갖지 않습니다. 학자들 얘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고 당신들이 얘기하는 거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현장 체육인들은 교수에 대해 굉장한 저항감이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책을 내서 이런 괴리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교수라고 하면 온실에서 자랐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이만저만 좀 부족한 사람이고, 이렇게 살아왔고, 이전에 살아왔던 삶을 책에 담아 보여주니 “우리랑 다르지 않네. 같은 길을 걸어오셨네.” 그렇게 인정을 하면서 속을 열어놔요. 그런데 대학 생활은 사람들이 알 수가 없으니까, 대학 얘기하면은 “훌륭하신 분들이고 온실에만 계셨네” 이런 얘기하는 거죠. Q) 권순용: 옛날 말로 하면 소위 상아탑에 갇혀있다는 건가요? A) 강신욱: 상아탑 얘기는 직접적으로 안 하지만, 양지에서만 자랐다는 것, 어둡고 힘든 자리에 안 와봤던 사람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스포츠사회학하는 친구들도 현장 연구를 해야 합니다. 안 하면 모르잖아요. 현장에 개입도 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교수라는 직위가 있으니 지역 위원회 같은 곳에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그런 곳에 참여해서 현장에 맞지 않는 쓴소리만 하는 거죠. 제일 중요한 현장에 관심을 갖고, 현장 연구를 해야 한다는 거죠. 관심을 가져야 알게 되고, 좀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Q) 권순용: 현장 연구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A) 강신욱: 서울대학교에서 스포츠사회학 박사과정 수업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류학과 학생이 수업을 들어왔더라고요. 그 친구가 얘기하는데, 자기는 연구 논문을 네팔 히말라야 등반할 때 등짐을 매는 쉘파에 대해 쓰고 싶다는 겁니다. 학부 다닐 때 이미 에베레스트에 네 번이나 갔던 경험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현장에 가서 보니, 한국의 내로라하는 등반가들, 우리나라에선 영웅이란 사람들이, 쉘파가 하라는 대로 하는 모습을 본 거죠. 베이스캠프에서 오늘은 A 지점 까지, 내일은 B 지점까지, 결국 쉘파의 가이드에 따라 오르는 그 영웅 등반가들은 마지막에 태극기 꽂는 일만 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는 TV에 자주 나오는 영웅 등반가가 아닌 쉘파를 진정한 영웅이라 생각한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 사람들이 없으면, 한국의 누구도 등반할 수 없다는 말에 고개가 끄떡여지면서, 그 속에 숨겨진 얘기를 연구하겠다는 겁니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늘 그런 식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상태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그 바닥을 보는 데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마치 현장 얘기를 하는 사람은 급이 낮은 것처럼, 이론적 얘기를 하는 사람은 급이 높은 것처럼 여기는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스포츠사회학회를 이끌어왔던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있는 것 같고, 결국 우리가 이 껍질을 벗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사회학은 점점 더 죽는 학문이 될 것이란 거죠. 다른 학문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점점 다른 학문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해버리니까요. 스포츠사회학이 학문 분야로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스포츠사회학 전공자가 지역사회나, 또는 대학사회나, 체육계에서 일정한 중요한 역할들을 좀 했기 때문이지요. 근데 그들이 점점 은퇴하고 있잖아요. 그나마 눈에 보이던 사람들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스포츠사회학이란 학문도 잊혀지는 거죠. # Chapter 4: 스포츠사회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Q) 권순용: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강신욱: 스포츠사회학이 학문적 위기란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돌이켜보면 답은 오롯이 하나입니다.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이론적 틀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면서 한국 사회에 적용만 하잖아요. 적어도 현장과 함께해왔고, 연구해왔고, 고민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면 반응이 안 옵니다. 결국은 현장 중심의 노력을 해야만 학문적 가치나 전문가로서의 위상도 높아지겠죠. 보면 우리 모든 체육학도, 스포츠사회학도들은 적어도 고유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지도교수를 하다 보니까 뭔가 내가 몰랐던 고유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선생은 그걸 끄집어 내는 게 임무죠. Education은 그 용어 자체가 라틴어의 educare에서 유래한 말인데, 지금 얘기하면 “끄집어 낸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육자란 다름아닌 ‘개인의 재능’을 끄집어내는 사람들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개인의 잠재력을 끄집어 내는 게 아니라 무엇을 자꾸 주입하고,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하잖아요. 정년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냐 하면 아무리 어린 학부 학생일지라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말을 안 할 뿐이죠. 저는 연구하는 학생들과 끊임없이 얘기하려고 했습니다. 살아온 얘기를 하다가 “그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서 학생들한테 용기를 주는 거죠. 그건 네가 최고다.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는 거다. 저는 우리 후학들이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 중심의, 깊고, 디테일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하는 이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스포츠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자 가지고 있는 많은 경험을 학문적으로 승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바탕에서 다양한 이론을 공부하며, “스포츠사회학이 이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는구나. 이런 시각도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보여주는 거죠. 우리 스포츠사회학회에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각자가 경험한 것들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아마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고, 주목받고, 쓸모있는 그런 연구가 될 것이고, 그러한 연구들이 모이면 굉장히 훌륭한 학문 공동체가 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회 ![]() 체육단체들에 대한 고민 권순용: 네.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저를 돌아보게 되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