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 다룬 결혼에 대한 문장

보통이 말하는 결혼과 사랑
이전 호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다루다보니,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떠올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개인적으로 작가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데, 부부의 세계보다는 훨씬 덤덤하지만 마찬가지로 숨이 막히기도 하고 찡해지는 문장들을 소개해봅니다.
첫 번째 문장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람의 성과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83p
흔히들, '모든 것이 꼭 맞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이 낭만적인 결혼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맞는 운명적 상대를 찾기보다, 그 사람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요. 저는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보다 유지하는게 어렵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기술'의 문장들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적어도 모든 취향과 가치관이 맞을 수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도 조화의 일부라 생각이 듭니다. 뉴욕타임즈에 몇 년 전에 실린 결혼하기 전 물어야 할 13가지 질문처럼, 적어도 가족 관계, 종교, 가사, 지출 문제 등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에 대해 사전에 서로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문장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진보한 낭만주의적 비관주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일 수 없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78-279p
소설속 주인공 라비에게 16년동안의 결혼생활은 롤러코스터 같았습니다. 그는 출산, 육아, 외도, 불화, 화해 등을 겪고서 이제야 결혼에 준비가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그가 통과해온 시간동안 그는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는 어쩌면 한 사람과 [열두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속에서 실망하고 화해한 시간을 합치면 말이죠.
사실 누군가와 애정에 기반한 경제적, 사회적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고 노력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비관적이지만 "낭만주의적인"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8p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77p
세 번째 문장
사랑은 조사를 거부하는 본능이자 감정이라는 개념에 취해버린 세계에서 그들의 대화는 성숙함을 연구하는 작은 실험실처럼 느껴진다(...)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라는 것 말이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62p
위의 문장은 주인공 부부인 라비와 커스틴이 부부상담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사랑의 신화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성숙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전 호에도 언급한 것처럼,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기술임을 깨닫게 됩니다.
발행인의 문장
당신은 내 가장 약한 모습과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이죠. 나 자신보다 나를 믿어주었습니다.
선뜻 나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기로 결심해주어 감사합니다. 우린 앞으로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겠죠. 그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고, 이해받으려고 노력하는 이 "결혼"을 당신이랑 해서 다행입니다.
-2017년 가을, 발행인의 결혼서약 중
위 문장은 제 결혼 서약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결혼식에서는 주례사가 없어서 대신 서약서를 읽었습니다. 서약서를 쓰기 전 참고한 사례들은 주로 전통적인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만 언급하는 것 같아 불만이었습니다. 뱃살 관리하기, 설거지 정도는 해주기, 돈 많이 벌어다주기, 몸매 가꾸기, 아침상 차리기, 주안상 차려주기 등이 아닌 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서약문을 작가의 또 다른 저서인 인생학교:섹스의 한 구절에서 착안해서 이 문장을 썼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결혼서약이 좀더 비관적인게 나으리라 여기며, "나는 여러가지 불행의 선택을 검토했고 내 일생을 바칠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소개하거든요.
그즈음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결혼에 임하는 제 태도가 유난히 비장하고 심각했습니다(당시 제 글의 제목에 "살아만 있으면"이란 구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직도 결혼서약 부분을 차분한 마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결혼 서약이 저렇게 진지하면 식의 흐름이 가라앉는다는 부작용이 존재한답니다. 서약을 쓰실 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결혼도 결국 선택지라고 생각해요
결혼하니 좋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아직도 대답을 어물쩡 넘어갑니다. 결혼을 하고보니 더더욱, 모두에게 결혼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좀더 빨리 결혼했다면 좋았겠다 싶지만요.
오늘 제가 고른 문장들이 불합리한 상황, 불공평한 상황에 대한 면죄부가 되거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낭만주의적 "비관주의"는 그럼에도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의 몫이고, 낭만은 모든 상황을 정당화해주지 못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기혼자가 된 요즘, 오히려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비혼의 삶을 다루는 팟캐스트, 동거중인 커플이 결혼을 놓고 고민하는 만화, 두 친구가 분자가족을 이루는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의 법제적 근거가 될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준비가 될 때, 다양한 형태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볼게요.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문장줍기는 어떠셨나요?
SENTENCE PICKER
sentencepicker@gmail.com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