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동안 잘 지냈어? 4일제가 된다면 언제 쉬는게 좋을지 생각해본 적 있어? 나는 수요일이라고 생각해. 월화 출근 후 하루 쉬고, 목금 출근하고 토일을 쉴 수 있잖아!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요일이 일주일 중 가장 지겨운 요일이라고 느껴졌어. 금요일은커녕 아직 목요일도 안됐어? 라는 생각이 드는 수요일 아침, 눕방일기를 보며 5분이라도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소설 [파친코] 개정판 2권이 지난 8월 말 드디어 출시되었어. 1, 2권을 한 번에 읽으려고 기다렸던 사람들은 드디어 때가 된 거야. 워낙 유명해서 모두들 잘 알겠지만,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소설이고,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가 무려 30년 동안이나 자료를 조사하고 퇴고하고, 때론 소설을 다시 쓰기도 하며 완성한 베스트셀러야

1910년에서 1989년까지 4대에 걸쳐 재일조선인 가족의 삶을 담았어. 내가 산 [파친코] 1권에 작가의 친필 싸인이 있는데 ‘We are a powerful Family’라고 적혀있어. [파친코]는 가족 때문에 살아남은 가족, 가족 때문에 고통받은 가족, 결국 가족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거든.


소개가 무거워 보여 망설여지기도 할거야.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아마 끝장을 볼 때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거라고 장담해. 그만큼 몰입도 높은 전개가 가능한 것은 등장하는 인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부여된 캐릭터가 무척 견고하기 때문이야.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바로 캐릭터야. [파친코]의 인물들은 꽤나 복잡한 속내를 가지고 있어서, 그들끼리 충돌할 때마다 일어나는 반응들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고 느꼈어. 개개인의 욕망이 발현될 수 없는 시대에 각자 짊어져야 했던 운명과 선택들이 얽히고 설켜 탄생한 것이 [파친코]가 보여주는 가족의 삶인 셈이야


특히 소설이 유의미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시나 ‘자이니치’의 삶이 아닐까 해. 소설에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물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하곤 하는데, 나 역시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았던 터라 그들이 광복 후에도 남한이나 북한, 어찌됐든 한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조선인으로 남은 것에 궁금증이 있었어.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면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들이 모국에서도 타국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상황과 심리를 집요하게 들려주고 있거든. 소설 [파친코]를 읽으며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한 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어.

드라마 [파친코] 시즌1은 소설 1권에서 3분의 2지점 정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소설과 다른 점은 보다 직접적으로 그 시대를 견뎌낸 여성들의 삶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소설이 벌어지는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객관적인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드라마는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했던 그 시대의 생존 본능과 응축된 희망을 조명하는 느낌이야. 주목할 점은 드라마의 프로듀서와 공동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 감독 역시 미국계 한국인이라는 거야. 단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경계 위에 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초개인화의 시대에 [파친코]는 참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 가족, 함께라는 단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하지만 읽다 보면 우리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시대에 나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그리워하잖아. [파친코]의 시대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수많은 가족들의 희생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과 지켜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같이 느껴보면 좋겠어. 소설과 드라마 모두 매력이 확실히 다르니 두개 다 챙겨보아도 좋아. 나라면 드라마를 먼저 본 후에 소설을 볼거야.

소소한 관람포인트1. [파친코]에서 영감을 얻은 팝업스토어

(자체홍보)드라마 [파친코]에서 영감을 얻은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의 두 번째 팝업이 열려.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대를 견뎌낸 여성들의 삶에서 강인함과 생명력을 강하게 느꼈고, 이야기의 배경이 된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이 에너지들을 패턴으로 이미지화했어. 침구세트와 니트블랭킷, 패브릭포스터, 엽서 등으로 구성했으니 많이 기대해줘! 자세히보기(클릭)

소소한 관람포인트2.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

드라마를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을 추천해! 올해의 영화리스트 중 큰 이변이 없다면 1위를 기록하게 될 거야.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인간인 이 고장이 난 후 함께 살던 가족이 그의 기억을 백업해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역설하는 이야기야. 어쩐지 [파친코]와도 이어지는 것 같지 않아? 출생, 지역, 인종, 나이에 상관없이 대안 가족을 이루는 시대를 아무렇지 않게 현재의 모습으로 그리는데, 어떠한 규정에도 얽매이지 않고 초월한 형태의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돼.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덤이야.

소소한 관람포인트3. 씨네필들을 위한 선물

코고나다 감독은 영화 데뷔 전 시네마 에세이스트로 활동했어. 히치콕, 브레송, 큐브릭부터 웨스 앤더슨, 타란티노까지 세계적 거장 감독들의 연출법을 짧은 영상으로 응축해서 한 눈에 보여줘. 각 영상마다 2~3분으로 아주 짧아서 이동 중에 보기도 좋을거야. 플레이리스트(클릭)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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