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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30. 애자일 조직은 무엇이고, HR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by jason KIM

몇 년 전부터 '애자일(Agile)'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올해 접어들면서 다소 주춤한 것 같습니다만, 작년까지는 온갖 자료에서 '애자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20년에는 ‘올해의 경영 트렌드 용어’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유행하는 애자일이 무엇이고, 왜 애자일 코치 같은 신종 직업이 생길 만큼 많은 기업이 열광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애자일의 기원(origin)과 특징


애자일이라는 말 자체가 IT 용어입니다. ‘폭포수 기법’과 정반대의 개발 방법론을 의미합니다. 폭포수 모델은 ‘계획-요구분석-설계-구현-시험-유지보수’의 단계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한 번 지나온 단계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단계마다 최고의 완성도를 추구해야 하죠. 반면 애자일 방법론은 각 단계를 경계를 확실히 나누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설계와 구현, 그리고 수정을 반복합니다. 전형적인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모습을 띠고 있죠. 다시 말해, “빨리 시도하고 빨리 실패한 후 수정해서 다시 시도한다”가 애자일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빠르고 가벼우며 기민한 개발 방법론을 조직 전반의 운영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 ‘애자일 조직’입니다. 전통적인 피라미드 조직 대신 필요에 의해 협업하는 자율적 셀(Cell, 소규모 팀) 조직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체계, 시스템, 관리, 지시, 통제보다는 자율, 권한위임, 도전, 실패로부터 학습, 빠른 의사결정 같은 것을 중시하는 것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엉뚱하게도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의 주인공이 만든 나노로봇이 생각납니다. 아주 작은 로봇들이 모였다 흩어지면서 주인공이 원하는 모습을 갖추거나 기능을 하는 것이죠. 각자가 독립된 지성을 갖고 있는 데다가,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하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모습을 바꿀 수 있죠. 아무튼 애자일 조직이 유행하는 것을 두고, 현대 기업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던 테일러리즘(Taylorism)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됐고, 조직에서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가는 Z세대는 지시와 통제를 불편해하니, 애자일 조직을 지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애자일 조직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계획 수립에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Do it, then fix it.”이라는 슬로건이 잘 어울립니다. 둘째, 권한을 고객과 접점에 있는 구성원에게 상당 부분 위임합니다. 현장과 빠른 실행을 중시합니다. 셋째, 의사결정을 빨리 내립니다. 조직의 핵심가치 및 규범에 부합한다면 오래 고민할 것 없이 바로 결정해서 실행합니다. 넷째, 많은 정보가 구성원 모두에게 높은 수준으로 공유됩니다. “정보는 공유되어야 가치가 있다”가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객 접점에 있는 구성원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대처하려면, 회사의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스포츠팀에 비유한 애자일 조직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비전시대의 조직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초판이 1991년에 나왔으니 너무 오래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원제는 「Reframing Organizations」인데, 번역서의 제목이 좀 유치해서 그런지, 아니면 책이 너무 두꺼워서 그런지 금방 절판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좋아해서 가끔 책장에서 꺼내 읽습니다. 조직 내 권력, 정치, 상징 같은, 다른 학자들은 잘 다루지 않는 것들까지 다루고, 또 굉장히 풍부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어 읽을 때마다 즐겁습니다. 이 책의 제2부 5장 <집단과 팀의 설계>를 보면, 현대 조직을 세 가지 스포츠팀에 비유했는데, 저는 이것이 꽤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원문은 꽤 긴데, 제가 한번 요약해서 잘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야구팀이 있습니다. 야구는 분명 팀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9명 선수 각자는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야구는 결국 9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구팀은 전형적인 느슨하게 연계된 시스템, 즉 Loosely coupled system입니다. 다시 말해, 선수 개개인의 노력이 합쳐져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선수 간에 쌍방적 의존관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팀의 승리는 주로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게 됩니다. 야구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선수 간에 조정이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감독의 작전지시 대부분은 지엽적 전술이며, 일반적으로 특정 선수를 교체하거나 플레이에 대해 조언을 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작전 지시도 한 경기에 몇 번 하지 않습니다. 스포츠의 속성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도 팀을 옮기는 것이 용이하며, 새로 이적해온 선수가 바로 그날 저녁 경기에 투입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기자이자 소설가인 존 업다이크(John Updike)는 “야구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경기이다”라고 평했습니다.

두 번째 조직 유형으로는 미식축구팀이 있습니다. 저는 미식축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군 시절 선임이 모 대학 미식축구 선수였던 덕분에, 기본적인 규칙을 배우고 훈련까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고 재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미식축구의 본질은 두 가지 키워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략’과 ‘분업’입니다. 미식축구는 야구와 많이 다릅니다. 야구팀에 비해 미식축구 선수들은 서로 근접해서 경기를 합니다. 이처럼 선수 개개인의 노력 간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동시에 분업도 철저해서, 공격팀과 수비팀이 나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업 체계 때문에 미식축구팀은 선수 간 조정 및 작전지시의 필요성이 높습니다. 이때 조정은 주로 사전 계획과 위계적 통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즉, 현장에서 선수들이 임의로 전략을 변경하여 실행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전략적 의사결정은 수석코치가, 전술적 의사결정은 보조감독 또는 주장선수가 담당합니다. 미식축구가 이처럼 선수 간에 팀워크와 사전에 정해진 전략/전술,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연습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의 이적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도 교체하기 어렵습니다. 야구와 달리 미식축구는 세밀한 전략의 수립과 그 전략의 조직적 실행이 승리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조직 유형은 농구팀입니다. 농구는 미식축구보다 선수끼리 더 근접한 상태에서 경기를 뜁니다. 농구는 순식간에 공격과 수비가 바뀝니다. 각 선수의 노력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성이 있고, 선수 각자는 동료 선수의 노력에 크게 의존합니다. 5명의 선수 간 상호관계가 매우 높으며, 선수 누구나 볼을 다루거나 슛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경기를 해온 경우에는 동료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동작을 취할지 미리 알 수 있죠. 그러나 새로 합류한 선수가 있는 경우에는 서로의 특기나 습관을 충분히 모르기 때문에 호흡일치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농구는 순간적으로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그때그때 코트 위에 서 있는 선수들의 임기응변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경기 전에 여러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하지만, 그 상황이 계획한 대로 경기 중에 펼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략/전술의 변형이나 수정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이를 지휘하는 것이 보통 포인트가드이고, 이 때문에 포인트가드를 ‘코트 위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스포츠팀을 살펴보니, 애자일 조직은 어느 팀에 가까운 것 같나요? 네, 맞습니다. 농구팀이 애자일 조직에 근접한 것 같습니다. 상당히 유기적이고, 탄력적이며, 자율적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어쩌면, 현대 조직의 발전 단계가 야구팀-미식축구팀-농구팀 순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제약회사가 새로운 약물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과정 속에서 조직이 겪는 변화를 이러한 흐름으로 설명합니다. 처음 의약품을 개발할 때 각 연구자는 '야구팀처럼' 꽤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시도와 실패를 해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유망한 물질이 발견되면 '미식축구팀처럼' 화학자, 의사, 약사, 독물학자, 임상 연구진 등 분업화된 체계를 통해 발전시킨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이를 제품화하여 판매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농구팀처럼' 사람들이 서로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여러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합니다.

애자일 조직만이 답일까? 애자일 조직의 문제는 없나? 

저는 애자일 조직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회사의 업종, 산업, 비즈니스 속성에 가장 잘 맞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핏(Fit)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한 장치산업을 떠올려 봅시다. 한 번의 사고로 수많은 인명을 다치거나 아프게 할 수 있는 업종이라고 가정할게요. 이 회사의 공장의 조직이 애자일한 것이 과연 맞을까요? 이런 공장에서 잦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학습한다고요? 각 부서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네트워크로 일한다고요? 이런 회사는 어쩌면 전통적인 피라미드식 구조와 수직적 의사결정체계가 적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군대를 들어보겠습니다. 군대의 조직문화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군대의 핵심가치는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물론, 소대장이 적과 맞서 싸우는 개별 전투에서는 당연히 애자일해야겠죠. 상황에 따른 순간의 판단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소대가 애자일하게 움직이면, 많은 지휘관과 전략담당 장교가 세운 전략/전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개별 전투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패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죠. 그러니 군대에는 애자일 조직이 맞지 않는다고 단순화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한 회사의 모든 조직이 애자일 조직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세분화할 수 있다면, 각 기능/부서의 속성에 맞는 조직운영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같은 회사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원리로 운영되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애자일 조직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복잡하고, 변화가 잦으며,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일 때 어울립니다. 이러한 주장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애자일에서 중요한 개념인 스크럼(Scrum)의 창시자인 제프 서덜랜드(Jeff Sutherland)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도 애자일이 최고의 기법이나 운영원리가 아닌 여러 방법론 중 하나일 뿐이며, 이미 효과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조직까지 유행을 따르듯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자기 조직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애자일 조직은 단순히 조직구조를 바꾸고 각 부서에 권한과 책임을 더 준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구조 외에 조직문화, 의식·태도 같은 소프트한 부분들, 그리고 인사제도 같이 인프라적인 요소까지 총체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저는 종종 (허세가 든 CEO들을 만날 때) 회사에 애자일 관련 포스터 몇 개 걸고, 준비되지 않은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며, 직급과 호칭을 모두 파괴해버리고서 “우리도 애자일 조직을 지향한다”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봅니다. 특히, 이렇게 겉모습한 애자일한 회사의 특징은 작은 실패도 용인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애자일은 작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처럼 작은 실수나 실패에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어떻게 애자일을 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좋아하는 동시에 자주 써먹는 표현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직원에게 하는 권한위임은 방치와 동의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CEO와 회사 전체가 잘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시도하는 애자일 조직화는 책임회피 및 난장판과 동의어입니다.


이러한 실패/실수의 작은 예로, 평가제도가 기존 그대로인데 갑자기 조직운영이 애자일스럽게 이루어지면, 구성원들은 당장 누가 내 평가자 또는 의사결정자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합니다. 또, 리더십도 중요한데, 기존 리더십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는 경우도 혼란을 야기합니다. 애자일 조직에서 부서장은 전통적 의미의 리더가 아닙니다. 오히려 코치나 퍼실리테이터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리더들이 리더십 스타일이나 본인의 역할에 대한 자각 없이 무작정 애자일 조직을 적용하면, 겉포장은 애자일인데 알맹이는 기존과 똑같은 팀제가 될 것입니다.

글을 맺으며...

저는 애자일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애자일 조직이 지향하는 바도 멋지지만, “기민하다”라는 말이 주는 어감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그러나 애자일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이것을 팔고 다니는 약장수나 장사꾼은 혐오합니다. 심지어 여기에 더해 ‘홀라크라시(Holacracy)’이니 ‘헬릭스(Helix) 조직’이니 하는 또 다른 신조어를 써서 뭔가 대단한 것인 양 포장합니다. 사실, 애자일 조직의 특성을 잘 살펴보면, 수십 년 전에 나왔던 ‘자율경영팀(Self-Managing Work Team)’, ‘아메바(Amoeba)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애자일 조직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처럼 꾸며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속 보입니다.


애자일 조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습니다.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인간관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현장의 판단을 중시하는 의사결정 구조, 조직과 구성원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철학 등은 훌륭하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이것을 깊은 고민 없이 일반론만을 우리 회사에 그대로 이식하려 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하거나 재요청해야 합니다. HRer가 단단한 철학과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갖고 있어야 세상의 온갖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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