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한국에 돌아왔을까?

나는 2014년 여름 한국을 떠났고, 올해 초 귀국했다. 11년 6개월 동안 미국살이를 한 셈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 한국을 떠났고,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을 지켜봤으며, 이태원 참사와 계엄 사태를 지켜본 후 돌아왔다.

피츠버그에서 석사 공부를 했고, 샌프란시스코의 게임회사에 취직해 3년간 일한 후, 엘에이의 지사로 옮겨 7년간 더 일했다.

엘에이에 살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겪었고, 서핑을 시작했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엘에이 집 차고에는 차 세 대, 서핑보드 5개, 스케이트보드 4개, 드럼, 기타, 베이스, 앰프, 그리고 벤치프레스와 랫풀다운을 할 수 있는 홈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왜 돌아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이유를 일상적인 대화에서 요구되는 30초 남짓의 답변 안에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때문에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답변은 조금씩 달라졌다. 미국 경제가 불안해서, 나이들어가는 부모님 때문에, 커리어 때문에, 외로워서, 애국심 때문에, 건강 때문에, AI 때문에, 복지 때문에, 종교 때문에... 

그래서, 나는 왜 돌아왔을까? 

한국에 돌아온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을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하고, 미국을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한국을 떠날 때 한국과 미국은 어떤 나라였는지, 한국을 떠난 이후로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또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에게 한국과 미국은 어떤 나라인지.

결국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유를 알려면, 나와 한국과 미국을 알아야 한다.
자유의 땅

쿵.

사람이 날아올랐다. 나는 붐비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킹 스트리트를 걷고 있었다. 나는 인도를 걷고 있었고, 그 사람은 차도를 거의 다 건너왔을 때 택시에 치였다. 노숙자로 보인 그는 내 옆에서 체감상 1.5미터 정도를 날아오른 후 소화전에 이마를 부딪히며 땅에 떨어졌다. 이마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미국에 온 지 2년하고 몇 개월 되었을 때였다. 나는 석사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의 게임회사에 취직한 상태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였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아래 실리콘밸리에서는 애플과 구글이 세계를 견인하고 있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흥분과 투지에 가득 찬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구석구석 누비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날도 언어교환 행사에서 만난 미국 친구들의 파티에 가던 중이었다. 미국 살이 2년 남짓만에 사람이 차에 치이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잠시동안 멍하니 있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전화기를 꺼내 911에 전화를 했다.

영어로 더듬더듬 신고를 하는 동안 동양인 택시기사는 내게 다가와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너도 보지 않았느냐고 열변을 토했다. 전화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 가던 길을 갔고, 몇 명은 멈춰서 잠시 지켜보는 듯 했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고를 당한 노숙자가 피를 흘리며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그를 쫓아가서 세워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여기 킹 스트리트하고 4번가 교차하는 길의 인도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어요. 4번가 쪽으로 간 것 같아요."

사라지는 노숙자를 멈춰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걱정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후 파티에서 만난 중국계 미국인 친구는 유창한 미국 영어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헤이 민웅~ 뭘 그런 걸 고민하고 그래. 그냥 약에 취한 노숙자였을 거야."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구급차를 타면 돈이 엄청나게 나올껄. 그 사람은 의료보험도 없을 거고. 그래서 그냥 간 걸 꺼야."

누군가 크게 다치면 바로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이제 그렇지 않은 세상에 왔음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누구건 간에 목숨부터 살리고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 누군가는 죽는 것이 당연한 세상. 이것이 내가 당도한 나라였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이 나라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

이곳은 자유의 땅이다.

이곳은... 야생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바닷바람이 서늘했지만, 서늘함은 이내 샌프란시스코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잊혀졌다. IT는 전례없는 호황을 맞았고 아마존과 구글은 전세계의 개발자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로 산다는 것은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과도 같았다. 자립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지만,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제한 없는 보상을 약속하는 곳. 그것이 바로 자유의 땅이었다.

* 글쓴이 - 지민웅
 
게임개발자, 작가. 미국에서 10년간 게임개발자로 일하다 올해 1월 한국에 귀국했다. <NBA2K>, <레고 2K 드라이브>, <NBA2K25: 그래비티 볼>에 참여했고, 2024년 저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에서 비디오게임 개발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게임 <리틀 데빌 인사이드>를 개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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