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적인 영화관입니다.
002호                                                                                                                 

어두운 시대에도 빛나며 살아간 청춘, <동주>(2016)
 
#일제강점기 #윤동주 #송몽규
이 어려운 시기에 시인이 되길 원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시인이 슬픈 천명임을 알면서도 시를 남긴 시인부끄러움의 시인.
누군지 짐작이 가실 거라 생각됩니다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윤동주 시인이죠.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史적인 영화관>의 두 번째 작품은 바로 <동주>(2016)입니다

ⓒ네이버 영화
🎞 <동주>(2016)
  • 감독 : 이준익
  • 출연 : 강하늘, 박정민 등
  • 2016년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남자신인연기상 
  • 2016년 제37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신인남우상
<동주>윤동주를 다룬 최초의 영화라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에디터는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윤동주 시인은 입시 공부를 하면서 안배우고 지나칠 수 없기도 하고, 잘 알려진 시인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는 작품 그 자체로도,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죠. <동주>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요? 영화는 윤동주 시인이 숨을 거둔 장소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그가 취조를 받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형사의 취조에 대한 윤동주의 대답과 회상으로 영화는 진행되죠. 영화에는 <별 헤는 밤>이나 <서시> 등 잘 알려진 시들이 삽입되어 몰입감을 더하면서 시인의 일대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에디터는 익숙한 부분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있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동주>보기 전에 알면 좋을만한 포인트를 위주로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운명적 관계, 송몽규

우선 가장 먼저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영화에서 거의 동주에 버금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몽규입니다.
ⓒ네이버 영화
윗줄 오른쪽이 윤동주, 아랫줄 가운데가 송몽규
ⓒ윤동주기념사업회
🕵 송몽규는 누구인가요?
  • 윤동주의 고종사촌 형제로서, 윤동주보다 3개월 가량 먼저 태어났어요.
  • 윤동주와는 함께 자라고 학업과 유학을 같이 했던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 그의 호는 문학의 바다라는 뜻의 '문해(文海)'인데요, 여기서 드러나듯 시와 수필을 쓰던 문인이었습니다동시에 송몽규는 독립운동가였어요.
  • 송몽규는 윤동주가 사망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사망한 19일 뒤에 사망하였습니다.
  • 영화에서는 박정민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상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송몽규는 윤동주에 비해서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은데요, 역할을 맡은 박정민 배우는 촬영 전 직접 송몽규의 묘를 다녀왔는데 윤동주 시인의 묘에 비해 초라한 그의 묘가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송몽규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윤동주 시인을 부끄러움의 시인으로 잘 알고 있듯이, 그의 성격은 다소 내성적이고 정적인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송몽규는 윤동주보다는 용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어요. 둘 사이의 성격 차이는 독립운동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도 연결되는데요, 영화 속에서는 이런 둘의 차이가 잘 드러납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영화 속에서 몽규는 중학교에서 한학을 가르치던 명희조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고,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합니다. 이후 1936년에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 혐의로 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는데요, 이때부터 몽규는 일제의 요시찰인물이 됩니다.
🕵 여기서 잠깐, 치안유지법이 뭐예요?
치안유지법은 1925년 일제가 반정부·반체제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에요, 일제가 특히 경계했던 사회주의 운동을 조직하거나 선전하는 자에게 중벌을 가하도록 한 법입니다. 그런데 일제는 이 법을 사회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 운동, 항일 민족운동을 탄압하는 데에 사용했어요. 그래서 이 치안유지법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탄압받았습니다
이후로 다시 학업의 길로 들어 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에서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한 뒤, 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물론 이때도 동주와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오르죠. 비록 동주는 다른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지만요.
 
윤동주에게 송몽규는 절친한 벗이자, 가족이고 또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었어요. 영화 초반에 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사건 때문에 동주는 상심한 듯하고, 자신의 시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앞서 같이 일본 유학길에 올랐지만, 둘은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고 언급했는데요, 몽규는 명문인 교토 제국대학에 합격하고 동주는 성적이 안 돼 교토 도시샤대학에 갔습니다. 동주에게는 늘 자기보다 뛰어나고, 열정적이며 실천력 있는 몽규를 향한 열등감이 있었고, 영화에서는 이런 점이 잘 드러납니다

ⓒ네이버 영화
이준익 감독도 이 둘의 운명적인 관계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둘러싼 이런 환경과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는 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윤동주 한 명으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서 송몽규를 큰 비중으로 다루었다고 해요. 영화 제목도 ‘동주와 몽규로 할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 이준익 감독
  • 연출작 : 키드캅(1993),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라디오 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곳에(2008),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1), 소원(2013),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변산(2017), 자산어보(2021)
  • 연출작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사극, 시대극 영화를 많이 만들었어요.
  • 그중에서도 이준익 작품은 대부분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나 구조를 다루기보다는 역사적 인물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가 많아요. 영화 제목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나는데요, 왕의 남자, 소원, 사도, 동주, 박열 등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어요.   
인물에 집중한다는 이준익 감독의 특징은 <동주>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몽규 외에도 동주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동주와 인물들

동주와 몽규 둘 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둘은 문예지를 창간하고 발표했기에 당대 문인들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옵니다. 이광수, 최남선, 정지용 등이 언급되죠. 앞의 두 사람은 친일 행위를 했기에 몽규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정지용은 동주의 정신적 스승이었습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문구로 유명한 <향수>가 정지용의 작품입니다. 그는 박목월과 이상 등을 발굴하기도 한 현대 문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정지용은 광복 이후 윤동주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발행을 도왔고 시집의 서문을 썼습니다. 정지용 역할은 문성근 배우가 맡았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문성근 배우의 아버지인 민주화운동가, 통일 운동가이면서 신학자인 문익환 목사가 윤동주의 실제 벗이라는 점입니다

ⓒ영화 <동주>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사단법인 통일의 집
문익환 목사는 만주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윤동주, 송몽규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문익환 목사는 젊은 나이에 떠난 친구 윤동주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쓰기도 했어요.    
동주야

너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 섰구나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다시 돌아와, 동주
 
영화 <동주>는 윤동주 개인의 서사와 더불어 그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을 담고 있어요. 이 영화는 흑백영화로 제작되었는데요, 흑백영화였기 때문에 좀 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로케이션, 의상이 없어도 <동주>는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요.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인물 자체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동주>가 이준익 감독의 인생작이라 불리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요. 차분한 흑백 영화에 담긴 두 사람의 인생을 여러분의 눈에 담아보는 건 어떠세요?
 
이번 호는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끝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시인이 쓴 마지막 시로일본 유학 생활을 하던 당시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시입니다.    

그럼 여러분, 저희는 설레는 새해 첫날에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나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史적인 영화관
에디터 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