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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ip | 걱정이라는 걱정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담담해졌다. 걱정을 해도 일은 줄지 않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 김보통

✏️ 작가의 생각, 기획자의 마음 |  최갑수

제법 그럴듯한데?

’일단 시작하고 본다.’

첫 줄을 이렇게 써본다.


보통 ‘이렇고 이런 주제로 써 주세요.’ 하는 청탁을 받아 원고를 쓴다. 매일 아침 보내는 레터는 메모장을 뒤적이며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뭘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정말 난감하다. 그래도 뭐라도 써야 한다. 마감을 해야 하니까. 마감이란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물론 좋은 글을 쓰면 좋겠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매수의 글을 써내는 것이니까.


오늘처럼 막막할 때는 그냥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에스프레소에 초콜릿을 씹어 먹으며, 요가 음악을 틀어놓고(요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요가 음악을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요가와 글쓰기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무작정 첫 줄을 쓰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일단 시작하고 본다’라는 문장부터 다짜고짜 썼다.


자, 그다음은 뭘 써야 할까? 모르겠다. 그래서 ‘첫 줄을 이렇게 써본다.’ 하고 다음 문장으로 썼다. 그다음은 또 뭘 써야 할까? 여전히 막막했다. 그래서 ’보통 이렇고 이런 주제로 써 주세요’ 하는 문장을 이어 썼다. 그렇게 겨우겨우 여기까지 써왔다. 와! 그러고 보니 벌써 500자를 넘었군. 잘 쓴 글은 아니지만(사실 엉망이지만), 중요한 건 일단 여기까지 썼다는 거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든 문장이 나아간다. 마치 아이스 피켈로 빙벽을 찍으며 겨우겨우 올라가는 클라이머 같다. 어쨌든 이만큼 써놓고 보니, 글쓰기의 괴로움, 첫 문장의 아득함에 관한 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써왔으니까, 오늘은 ‘글도 처음엔 우격다짐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베란다로 나가 희미하게 밝아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이럴 땐 담배가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앞에 썼던 문장을 읽어 보니, ‘그래, 글쓰기엔 우격다짐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음,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글쓰기나 연애나, 비즈니스나 처음엔 우격다짐이 필요한 법이다. 완벽한 계획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어느 만큼은 전진시켜 놓은 다음,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시작해야만 보이는 것이 있으니까. 시작도 하지 않고, “아직 정확한 계획도 없고, 확신도 없어.” 하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비겁한 태도일 수도 있다. 어차피 책임은 내가 지는 거니까 일단 밀어붙이고 봅니다! 이런 각오와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시작 단계에서는 더더욱.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있고, 그때 그때 약간씩 방향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작 단계에서는 손해 볼 것도 적다. 백스페이스키를 눌러 몇 문장만 지워버리는 되는 것이다.


연애도 그렇지 않을까? 저녁 여덟 시, 콜택시를 불러 보내드리는 것도 좋지만, 어떨 때는 “한 잔 더 할까요? 근처에 근사한 위스키 바가 있어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상대방은 “그때 당신이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여 어쩔 수가 없었어요.” 하는 변명을 준비해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음, 이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고.)


다시 첫 문장으로 가본다. ‘일단 시작하고 본다’라는 문장이 맨 앞에 있다. 그렇군, 거기서 시작해, 벌써 여기까지 왔군. 뭐, 이만하면 나쁘지 않는데? 제법 그럴듯한데? ✉️

최갑수는 작가다. 오늘은 정말 뭘 써야 할까?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김보통의 '걱정해 봐야 소용없다'는 문장을 보곤 그냥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쨌든 썼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서촌과 작업실

경솔한 판단 미스와 함께 작업실 구하기 미션이 주어졌다. 집구석에서 아내와 티격태격하며 무용하게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한결 생산적인 일을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 첫 작업실이니 의욕은 한껏 충만했고, 틈틈이 모아둔 인테리어 잡지들을 들춰보며 행복한 상상회로를 돌리는 나날이었다. 잡지 에디터로 살아오면서 체득한 것 중 하나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추진력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인터뷰이 섭외도, 다른 매체에서 취재한 적 없는 낯선 곳으로의 단독 출장도 일단 시작을 해야 다음 단계로 다다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 여기에 마감 기한까지 정해져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찾기 마련이다.  


작업실의 목적은 단순했다. 디자인을 시작한 아내와 프리랜서 에디터로 살아가야 할 내가 함께 일하는 공간. 10평 내외의 사이즈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동네에 구하고 싶었다.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해야 할 테니 기왕이면 좋아하는 동네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여기에 아내는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볕이 잘 드는 곳이면 좋겠어.” 순진무구한 두 아마추어의 작업실 구하기 미션이 그렇게 시작됐다.    


먼저 좋아하는 동네 고르기. 내심 염두에 둔 지역이 있어 이는 쉽게 결정됐다. 바로 경복궁역 부근 서촌. 이전 사무실이 평창동에 있었고,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삼청동의 한옥이었다. 그런 연유로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서촌을 지나쳤고, 자연스레 생활 반경 안에 들어왔다. 서촌은 주거지와 상업 구역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고 청와대 인근 고도 제한이 있어 건물이 나지막하고, 인왕산과 북안산 같은 자연과도 가까웠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서울답지 않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느긋한 속도로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 모두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삼청동이나 익선동 같은 인근 상권처럼 젠트리피케이션도 덜한 편이라 임대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언젠가 서촌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작업실을 구해 출퇴근하는 일상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서촌으로 지역을 정하고, 본격적으로 부동산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무런 정보도 개념도 없는 상태였다. 근생이 뭔지, 적합 업종이 뭔지 도통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그저 “볕이 잘 드는 작업실”이라는 모호한 조건을 말하면 부동산 사장님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몇몇 사무실이나 상가를 소개해 줬다. 처음 본 곳은 내자동의 3층 사무실. 작은 플라워 스튜디오로 쓰던 곳이라 볕이 제법 잘 들었는데, 같은 건물의 중국집에서 음식 냄새가 올라왔고, 사이즈도 5평 남짓으로 좀 작았다. 부동산 어플도 매일 같이 주시했다. 마침 필운대로에 통유리로 된 주스 가게가 임대로 나왔다는 직거래 게시물이 올라왔다.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라 익숙한 곳이었다. 임대료 조건도 괜찮아 보였다. 아내와 나는 하루 정도 고민한 끝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이미 다른 분과 계약했어요.”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한 곳은 다른 사람 눈에도 똑같다는 것을. 괜찮은 곳은 오래 고민하면 사라진다는 사실도.


서촌의 온갖 부동산을 전전하며 임대로 나온 공간을 돌아보기를 한 달째. 임대료가 저렴하면 뭔가 걸리는 하자가 보이고, 위치며 볕이며 여러 조건이 괜찮은 곳이면 임대료가 비쌌다. “월세가 조금 나가는데, 예쁜 곳이 하나 있긴 해요.” 부동산 사장님이 추천해 준 곳은 옥인길의 어느 카페였다. 단층 건물인데 내부는 한옥 서까래가 남아있는 곳. “여기는 일반음식점으로 허가 난 곳이라 술집도 할 수 있어요.” 부동산 사장님이 덧붙인 한 마디는 우리의 미션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자그마한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건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언젠가 은퇴를 하면 좋아하는 동네에 좋아하는 위스키를 모아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담을 나누는 바를 열고 싶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부산의 모티 같은 바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로망에 가까운 머나먼 일이라 여겼는데, 옥인동의 그 한옥 카페를 유심히 둘러보면서 뭔가 현실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세는 당초 생각해 둔 예산보다 다소 높은 편이지만, 상업적인 기능을 끼워 넣으면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간 체득한 것처럼 일단 저질러 보면 어떻게든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고민을 길게 하면 기회는 사라진다.  


짧고 굵은 고민 끝에 옥인동의 한옥 카페를 작업실로 쓰기로 결정했다. 보증금을 높이는 대신 월세를 조금이나마 낮춰 계약을 했다. 계약 직전, 우리는 그곳의 콘셉트를 정해 놓았다. 아내 역시 평소 편집숍을 운영해 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리하여 낮에는 디자인 숍, 밤에는 위스키 시음실. 그러니까 그간 숱하게 찾아본 다른 작업실 레퍼런스 어디에도 없는 기이한 콘셉트의 작업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설레는 기분이 좀 더 앞섰다. 우리 두 사람의 로망을 실현해 줄 작업실이 생긴 것이기에. 그렇게 순진무구한 두 아마추어의 작업실 구하기 미션이 일단락됐다.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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